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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이 아니라 건축이 바로 나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건축가는 가도 건축물이 남았다. 그 건축물이 아름다운 생물이 되었다. (2019. 08. 22)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포스터
한국인 유동룡. 일본에서 태어나 공부하고 활동했지만 한국 국적으로 일본 이름 없이 살았던 아름다운 건축가. ‘이타미 준’은 예명이다. 한국에 가려면 비행기를 탔던 공항 이름 ‘이타미’에서 땄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보는 것은 여행과 같다. 바람처럼 관객을 이끌고 제주도로 온양으로 홋카이도로 도쿄로 데려간다. 거기에는 이타미 준의 건축물이 있다. 이끼가 덮여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 하거나 햇살이 스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듯도 하고 물 소리와 함께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듯 보이는, 야성적이고도 온기가 있는 건축물들. ‘야성미와 온기’는 이타미 준이 추구했던 건축 철학이었다. 매끈매끈하고 반짝반짝한 현대 건축물이 아닌 더 원초적이고 무겁지만,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작업을 하고 싶어했다.
“마른 물방울이 내 눈 속에 있다. 마른 물방울은 한낮 도시의 빛과 그림자 속에 숨 쉬고 있다. 빛 속에 물방울이라고 부르고 싶다.” ‘마른 물방울’이라는 대조적인 형용어로 이타미 준은 물을 탐구하며 건축물을 설계하고 꿈꾸었다. 바닷마을 시미즈에서 자라면서 바다와 함께했던 유년기의 기억과 물의 원초적인 힘을 작업에 반영한 것이다.
1968년 31세에 건축연구소를 설립했지만 한국인이란 이유로 일을 수주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타미 준의 데뷔작은 바로 어머니의 집이었다. 아주 독특하게 튀어나온 거실의 창은 한밤중에도 밝게 빛나며 일본 시골에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보였다. 순천이 고향인 어머니는 아들의 데뷔작에서 전통적인 삶을 살았다.
첫 번째 클라이언트는 제주도 서귀포 출신 재일교포였다. 아파트 리모델링을 맡아 공사 대금을 받는 날, 이타미 준의 손이 몹시 떨렸다고 클라이언트는 애틋하게 전했다.
영화는 여느 전기 다큐처럼 주인공에게 말을 많이 건네지는 않는다. 이타미 준은 몸집 작고 소박하고 그다지 예술가연하지 않는 매력이 있었다. 딸의 증언으로는 언제나 사색하는 모습이었다고. 늦은 밤에도 이른 아침에도 목격하게 되는 아버지는 마당에 앉아 귀퉁이의 물웅덩이를 응시하거나 나무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의 한 장면
이타미 준의 건축물은 주위 환경과 맥락이 닿는 형태였고 건축 재료는 자연 본래의 성질을 지닌 것이었으며, 그래서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레 깊은 ‘시간의 맛’을 내는 생물처럼 숨 쉬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과 함께하며 아우라를 발산하는 건축물”이라고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는 적확하게 표현했다.
이타미 준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제주도 ‘포도호텔’을 10여 년 전 출판인 넷이 간 적 있다. 방과 복도, 나무 욕조의 존재감. 서 있을 때는 풍경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앉으면 밖이 보이는 낮은 창, 방문이 숨어 있는 구조 등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그때 건축가의 이름을 또렷이 새겼다. ‘방주교회’에서는 놀라운 나머지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물 위에 세워진 방주교회는 변하는 하늘의 표정, 구름의 흐름을 그대로 표현했다. 이타미 준의 딸, 건축가 유이화는 방주교회 설계는 골조가 세워진 다음에도 몇 번이나 변경되었는데, 오로지 하늘을 어떻게 완벽하게 담아낼까 고심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건축물을 영상으로 보는 기쁨은 상공에 띄운 카메라로 이타미 준의 건축물을 새의 눈처럼 보는 것에 있다. 나무와 돌, 흙과 바람에 어울리는 그 건축물을 실제 보아도 영상에서처럼 조감할 수 없으니까.
프랑스 기메동양미술관 한국관에는 이타미 준이 모아서 기증한 한국의 고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생전 기메동양미술관에서 전시 준비를 하던 이타미 준의 영상 자료에는 “나는 도자기를 빚는 마음으로 건축한다”고 고백한 모습이 남았다. 온기와 소박함, 조선 자기를 빚었던 마음 같은 건축물.
한국 국적 여권 때문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때 미국 출입국 관리가 곤란한 상황이 빈번해지자, 성품이 조용하던 이타미 준은 관리국 사람에게 자신의 건축 도록을 보여주며 힘주어 말했다고 전한다. “이 건축책이 바로 나, 건축가 이타미 자체다”라고. 건축을 자신이라는 생명체와 동일시했던 건축가의 마음은 그가 사랑한 바다처럼 여일하게 우리 곁에서 출렁거린다.
건축가는 가도 건축물이 남았다. 그 건축물이 아름다운 생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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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