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책방] 미스터리의 소재가 〇〇이라고요?
『시인장의 살인』, 『제대로 위로하기』, 『하루의 취향』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죠. 삼천포 책방 시간입니다. (2018. 08. 23)
기발한 소재의 미스터리 소설 『시인장의 살인』 , 위로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제대로 위로하기』 , 취향 존중 에세이 『하루의 취향』 을 준비했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저/김은모 역 | 엘릭시르
여름이 가기 전에 한 번쯤은 미스터리 소설을 소개해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시인장의 살인』 이라는 제목을 보면 ‘시체’ 할 때 ‘시(屍, 주검 시)’자를 쓰고 있어요. 분명히 살인이 일어날 거라는 건 이미 드러나 있죠. 이마무라 마사히로 작가가 쓴 일본 미스터리 소설인데요. 소재가 너무 기발해서, 모든 종류의 단점을 제외하고 읽어볼 만한 책이에요. 이제는 미스터리 소설이 너무 복잡해졌잖아요. 웬만한 트릭은 다 나왔고, 그렇다 보니까 작가들이 여러 가지를 섞어서 트릭을 복잡하게 만드는데요. 그 자체가 읽는 데 피로감을 주거든요. 그런데 이 소설은 간명해요. 미스터리 동호회 친구들이랑 연극영화 동아리 친구들이 캠핑을 가서 고립이 되는데, 그 소재가 ‘??’예요. 장르를 섞은 것 자체가 참신해요. 영화에는 그런 작품들이 많이 있는데, 미스터리에서는 시도된 적 없거든요. 그런 점에서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느낌이에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아무도 시도를 하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방백스러움’이 재밌었는데요. 미스터리 동호회의 회원들이 자기가 동호회에서 배운 이론들을 이야기하는데, 마치 연극의 방백 같아요. 독자들을 위해서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거죠. 그게 오히려 더 재밌었어요. 왜냐하면 미스터리 하드코어 팬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미스터리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문법이 되게 어색하잖아요. 그걸 뻔뻔하게 드러내면서 이야기하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이마무라 마사히로 작가는 미스터리가 아닌 다른 종류의 글을 썼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미스터리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독법서, 작법서를 공부해서 이 소설을 쓴 거죠. 그런데 이 책이 주요 미스터리 랭킹, 문학상 등 4관왕을 달성한 거예요. 미스터리계에서는 대박이 난 거죠. 신예가 등장했는데, 그 소재는 ‘??’인 거죠. 미스터리 입문용으로 훌륭하고, 여름용으로 적합한 소설입니다.
그냥의 선택 - 『제대로 위로하기』
켈시 크로, 에밀리 맥도웰 저/손영인 역 | 오르마
제대로 위로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실용서입니다. 감정을 가진 존재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책이에요. 위로라는 건 누구나 필요로 하는 것이고,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주고 싶은 것이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괜히 말실수를 할까 봐,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가 틀어질까 봐, 아물어가고 있는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될까 봐’ 위로를 잘 하지 못한다고 하는데요. 이 책은 그런 것들이 걱정된다고 하더라도, 위로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 ‘그 일 이후에 어떻게 지내고 있어?’ 정도의 말만 건네면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중요한 게 ‘3초 침묵’인데요. 상대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3초를 기다리라는 거예요. 그러면 상대가 이야기를 이어서 할 수도 있는데,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침묵을 깨면 상대가 하려던 이야기도 삼키게 된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 동조하고 다독여주고 싶은 마음에 ‘나도 그런 상황을 겪었어’, ‘네 마음을 알아’라고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요. 이 방식도 잘못되었다고 해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다 보면 상대가 말할 기회를 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책에서 제시하는 원칙이 있는데요. ‘상대(위로를 받아야 하는 대상)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대 역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나는 전체 대화의 10% 정도만 말하고, 나머지는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준다’, ‘상대가 요청하지 않는 한 자신의 경험을 더 꺼내지 않도록 한다’, ‘상대가 더 이야기해달라고 말해도 짧고 간단하게 덧붙이는 식으로 말하고, 다시 상대에게 대화의 초점을 맞춘다’입니다. 소개해 드리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은 책이고, 제 친구들에게 다 선물하고 싶은 책이에요.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 아니라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톨콩의 선택 - 『하루의 취향』
김민철 저 | 북라이프
저희 아파트 옆 라인에 살고 있는 제 후배이자 술친구죠. <측면돌파>에 출연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주기도 했던 김민철 작가의 책 『하루의 취향』 이 나왔습니다. 작고 가벼운 책인데요. 안에 담긴 내용은, 잘 읽히기는 합니다만, 날리듯 가벼운 책은 아니에요. 김민철 작가 특유의 든든함 같은 것이 있잖아요. 그 사람이 뭔가를 조금 내려놓고 바람이 들고 나게 쓴 책이라고 할까요. 읽으면서 ‘철군(김민철 작가)과 나는 어쩜 이렇게 다른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이 책에 제가 등장하는데요. 지난번에 <측면돌파>에서 말했던, 제가 봄밤에 개똥밭에서 굴렀던 이야기가 있고요. 또 하나는 저희가 이웃으로 잘 지내고 있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걸 읽고 ‘우리가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서로 잘 지낼 수 있구나’라는 게 느껴졌어요. 서로의 취향이 다르다는 걸 존중해주려는 마음이 늘 있어요. 상대의 취향을 서로 인정하고, 또 서로 다른 지점을 재밌어하고. 그게 저희 둘 관계의 아주 바람직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이 부분을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김민철 작가가 TBWA 사보에 쓴 글이에요.
“광고는 두 번째. 당돌한 신입사원의 말. 직장 상사들이 다 앉아있는 술자리에서 호기롭게 내뱉은 한 마디. 광고는 두 번째. 힘이 센 광고를 고집스레 두 번째 자리에 앉히고 연약한 저녁식사를 첫 번째로. 사소한 여행을 첫 번째로. 가족과의 약속을 첫 번째로. 연약하지만 중요한, 사소하지만 소중한, 그 모든 것들을 위해 첫 번째 자리를 비워두겠다는 다짐. 광고는 힘이 세니까. 잠깐만 한 눈을 팔아도 급한 일이라는 탈을 쓰고, 경쟁 PT라는 옷을 입고, 금세 내 일상의 첫 번째 자리를 천연덕스럽게 차지해 버리곤 했으니까. 잘 살기 위해 시작한 광고라는 일이 나를 잘 못 살게 한다면 그거야말로 큰일이었으니까. 13년 전 그 신입사원이 이제는 CD가 되어 사보에 써 내려가는 그때 그 다짐. 광고는 두 번째. 결국 잘 살기 위해 우리는 광고를 만드니까. 기어이 잘 살아야 우리는 좋은 광고를 만들 수 있으니까.”
이게 이 사람의 다짐인 거죠. 자기가 얼마나 삶을 내팽개치고 함몰시켜가면서 일에 몰입하는지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요. 김민철 작가의 삶을 보면 광고 일도 잘 하고 있으면서, 자신의 삶도 건강하게 아름답게 꾸려가려는 노력을 놓지 않아요. 너무 잘 해내고 있고요. 그리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책도 계속 내고 있잖아요. 이게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지점이지만, 물론 저도 옆에서 보면서 신기하기는 하지만, ‘이 사람이니까 이걸 할 수 있어, 그 무엇도 허투루 하지 않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너무 믿음직스럽게 보여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루의 취향』 은 취향이 분명한 김민철 작가가 조금은 더 즐거운 취향 부분을 반영해서 쓴 책이고요. 여름 휴가철에 가서 읽으면 너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신의 취향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고요. 그리고 제가 아는 김민철, ‘철군’이라고 하는 사람을 정말로 알고 싶다면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하루의 취향』 을 같이 읽으시면 정말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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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