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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기린, 정글까지 무대로 구현한 뮤지컬 <라이온 킹>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과 다양한 동물들이 함께하는
테이머가 <라이온 킹>을 바라본 핵심은 ‘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라는 데 있다. 그래서 완벽하게 동물로 보이기 위해 배우가 탈을 쓰거나 숨는 것이 아니라 전면에 나선다. (2018. 08. 08)
Mufasa - THE LION KING - Photo by Deen van Meer ⓒ Disney
뮤지컬 <라이온 킹>이 20주년을 기념한 인터내셔널 투어의 일환으로 오는 11월 대구를 시작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6년 샤롯데씨어터 개관작으로 일본 샤기 극단이 첫선을 보였으나, 원어로 뮤지컬 <라이온 킹>을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994년 개봉한 동명의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무대에 옮긴 <라이온 킹>은 1997년 11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 20개국, 100여 개 도시에서 25개 프로덕션에 의해 공연되며 9천5백만 명 이상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의 흥행은 단순히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이 있는 애니메이션을 무대에 옮긴 것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여느 ‘무비컬’과 달리 <라이온 킹>의 캐릭터는 동물, 배경은 아프리카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라이온 킹>이 지난 20년간 전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은 원동력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속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과 다양한 동물을 무대만의 언어로 완벽하게 표현하며 공연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 데 있다. 1998년 토니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연출상, 안무상, 무대미술상, 의상상, 조명상 부문을 휩쓴 점도 뮤지컬 <라이온 킹>이 시각적으로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지 입증한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대륙의 동물들은 어떻게 무대 위에 구현됐을까? 공연에 앞서 자세히 살펴보자.
<라이온 킹>을 무대에 구현한 줄리 테이머(Julie Taymor)
뮤지컬 <라이온 킹>의 흥행에는 무대 연출과 디자인,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활동한 줄리 테이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라이온 킹>을 맡기 전까지 줄리 테이머는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상업적인 공연은 작업한 경험이 없었다. 처음 월트디즈니에서 ‘<라이온 킹>을 무대에 올릴 텐데 작업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도 그해 가장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던 ‘라이온 킹’조차 몰랐다고 한다. 덕분에 그녀는 기존 틀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해석과 색다른 아이디어를 구현했고,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초로 토니상 연출상을 거머쥔 여성 연출가가 됐다.
사람과 동물을 하나로 ‘더블 이벤트’
줄리 테이머가 <라이온 킹>을 바라본 핵심은 ‘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라는 데 있다. 그래서 완벽하게 동물로 보이기 위해 배우가 탈을 쓰거나 숨는 것이 아니라 전면에 나선다. 이 파격적인 실험은 아시아 전통 극에 관심이 많아 인도네시아에서 가면극과 인형극을 배운 그녀의 특별한 경험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서 마스크는 영혼을 담는다고 해서 ‘영혼의 덫’으로도 불리는데, 얼굴을 가리는 대신 머리 위에 쓰도록 만들어진다. 또 일본의 전통 퍼펫극 양식인 ‘분라쿠 퍼펫극’에서는 대형 퍼펫의 경우 가장 숙련된 퍼펫사가 관객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고, 다른 퍼펫사들은 가려지는 방식인데, 퍼펫과 조종하는 배우를 함께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은 상상력을 동원해 퍼펫 조종사의 기술과 함께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다.
뮤지컬 <라이온 킹>에서도 배우들은 얼굴을 가리는 대신 마스크를 머리 위에 쓰고 있고, 퍼펫을 조종하는 모습 역시 모두 노출된다. 기린 가면을 쓴 배우의 얼굴은 가리지 않지만 대신 긴 목과 긴 다리로 기린의 모양을 구현한다. 또 배우가 모습을 드러낸 채 수레를 밀면 바퀴에 달린 가젤이 위 아래로 움직이면서 평원을 뛰노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과 동물이 혼연일체가 되고, 마스크나 퍼펫 역시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것이 줄리 테이머가 말하는 ‘더블 이벤트’다. 뮤지컬 <라이온 킹>에는 이 개념으로 200여 개의 퍼펫과 마스크가 사용되는데, 17,000시간 수작업으로 제작됐다고 한다. 마스크는 무거워 보이지만 항공기 등에 사용되는 탄소 섬유로 제작돼 스카의 마스크는 190g, 무파사의 마스크는 300g에 불과하다. 또 퍼펫은 인간과 동물의 신체적인 특성을 결합해 우아한 걸음걸이의 치타, 배우의 팔로 활 모양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영양, 수레바퀴로 회전하며 전진하는 가젤 등 다양한 동물의 모습을 구현한다.
Nala and Simba - THE LION KING - Photo by Joan Marcus ⓒ Disney
광활한 아프리카, 누 떼 협곡 질주까지 무대로
<라이온 킹>은 영화로 치자면 블록버스터급이다. 아프리카 정글이 배경인 데다 등장하는 캐릭터도 많다. 무대에서 도대체 어떻게 구현할 수 있었을까? 무대 디자이너 리처드 허드슨(Richard Hudson)은 18세까지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무대를 디자인했는데, 상징적인 세트가 바로 ‘프라이드 록(Pride Rock)’과 ‘코끼리 무덤’이다. 펼쳤을 때 약 6m 폭의 원형 계단 세트인 ‘프라이드 록’은 심바의 탄생을 알리는 장소로 ‘생명’을 상징한다. 반면 코끼리뼈로 연속된 나선형 계단 세트인 ‘코끼리 무덤’은 ‘죽음과 위험’을 상징한다. 두 세트는 회전 각도와 조명에 따라 자유롭게 연출되며, 모두 회전형 계단이라는 동일 디자인으로 생명과 죽음이 연결돼 있음을, <라이온 킹>의 세계관인 ‘생명의 순환’을 드러낸다. 그런가하면 700여 개의 조명장치를 통해 정글의 다양한 모습 또한 연출된다.
<라이온 킹>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무파사의 죽음을 몰고 오는 수천 마리 야생 누 떼의 협곡 질주 장면인데, 무대에서도 누 떼가 심바는 물론 관객들을 향해 돌진할 것처럼 보인다. 영화적 기법을 공연에 활용한 것으로, 먼저 여러 겹의 붉은 문이 무대 양쪽에서 미끄러지듯 나와 겹치면서 점점 깊어지는 붉은 협곡을 착시현상으로 연출한다. 누 떼의 질주 장면은 캔버스 스크롤과 여러 개의 대형 롤러로 표현했는데, 스크린롤에 그려진 누 떼와 대형 롤러에 부착돼 움직이는 누 떼는 관객과 가까워지며 점점 커진다. 또 배우들은 얼굴과 양 손에 모두 세 마리의 누 마스크를 쓰고 리드미컬하게 움직여 마치 앞으로 돌진하는 듯한 원근 효과를 준다. 극적인 장면 연출을 위해 무대와 배우의 연기가 정확히 계산된 장면이다.
다양한 문화가 더해져 무대 위에 구현된 뮤지컬 <라이온 킹>
<라이온 킹>을 무대에 구현하는 데 있어 시각적인 요소 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청각이다. 아프리카적인 요소를 얼마나 잘 보여주느냐가 공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모든 프로덕션에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배우를 캐스팅해서 아프리카적인 소울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라피키는 영화와 달리 여성으로 설정을 바꾸고 6개의 아프리카 언어를 표현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구현했다. 뮤지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에서도 아프리카적인 요소가 곳곳에 배치된다. 엘튼 존과 팀 라이스의 협업으로 아카데미상까지 받은 애니메이션의 원곡은 메인 넘버지만, 캐릭터와 스토리가 심화된 뮤지컬을 위해서는 훨씬 많은 음악이 필요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의 전체적인 음악 흐름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레보 엠(LEBO M.)이 담당했다. 무대에서 만나는 깊고 감동적인 아프리카 리듬과 멜로디는 모두 그의 작품이다. 결국 뮤지컬 <라이온 킹>이 무대 위에 구현돼 전 세계적으로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연출부터 무대 디자인, 음악, 배우까지 다양한 문화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다채로운 경험이 더해졌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