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칸, 태원준 “이 책은 B급 영화처럼 봐주세요”
에세이 『길 위에서 샤우팅! 노 뮤직 노 트래블』 펴내 음악으로 여행한 시간, 여행이 만든 음악의 기록
굉장히 큰 의미를 두기보다는, B급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2018. 04. 30)
음악으로 여행한 3년의 기록
참으로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은행원이 회사를 박차고 나와 벤처 사업가로 변신했고, 성공 가도를 달리다 회사에서 쫓겨나 빚을 떠안은 채 호주로 떠났다. 냉동 창고의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며 1년을 보낸 끝에, 드디어 빚을 청산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우연히 찾아간 하우스 파티에서 ‘잠들어 있던 록 스피릿’이 깨어나는 걸 느꼈고 “길 위에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며 여행하는” 삶을 시작했다. 음악으로 친구가 된 이들과 같이 작업하고, 또 다른 친구를 찾아 길을 떠났다. 버스킹을 하며 만난 이들은 잠자리를 제공해 주기도 했고, 새로운 뮤지션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노 뮤직 노 트래블(No Music No Travel)’, 음악이 없었다면 계속되지 않았을 여행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에이칸(AKAN, 본명 신현석). 학창 시절 록스타를 꿈꿨으나, 크나큰 열정과는 달리 재주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제3세계 국가로 여행을 다녔고, 대학 졸업 후 은행원이 됐다. 전술한 바와 같이 벤처 사업가로, 외국인 노동자로, 여행하는 히피로, 변모하기도 했다. 지금은 부산의 작업실에서 칼럼을 쓰고 음악과 영상 작업을 하며 ‘노 뮤직 노 트래블’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길 위에서 샤우팅! 노 뮤직 노 트래블』 (이하 『길 위에서 샤우팅!』) 에는 3년 동안 ‘음악으로 여행한’ 시간들이 기록돼 있다. 역사는 153번지에 위치한 셰어하우스에서 시작됐다. 냉동 창고 동료의 초대로 찾아간 그곳에서, 에이칸은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음악과 친구들을 만났다. 그때부터 창고 녹음실을 만들고, 프로듀싱 기술을 익히고, 하우스 파티가 열릴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디제잉과 라이브 잼을 했다. 그리고 빚을 청산하던 날, 에이칸은 생각했다. 앞으로는 재미있는 일만 하며 살겠다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무모한 여행이었다. 길 위에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로드 트립, 그것만이 확고부동한 목표였다. 대학 시절 밴드 동아리에서 만난 후배 ‘빽껸’이 여정을 함께했다. 방콕에서 장기 체류 중이던 빽껸은 ‘21세기 히피가 되자’는 에이칸의 제안에 곧바로 호주로 날아왔다. 끝을 알 수 없는 길이 시작됐고, 두 사람의 곁에는 이미 40만 km나 달린 중고차가 있을 뿐이었다. 음악과 친구, 두 개의 연결고리로 이어진 여행은 끊어질 듯 끝없이 지속됐다.
지난 17일, 서교동에 위치한 트래블 카페 ‘We.AN’에서 작가 에이칸을 만났다. 그의 곁에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 ,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 의 태원준 작가였다. 여행이라는 공통의 관심사 덕분에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십 년 넘게 우정을 쌓아오고 있다고. 이야기는 자연스레 여행과 친구에 대한 것으로 흘러갔다. 『길 위에서 샤우팅!』 에 담긴 바와 다르지 않았다.
‘콜드플레이’ 보다 더 좋아하는 밴드예요
두 분의 여행 스타일이 사뭇 다를 것 같아요. 어떤가요?
태원준 : 에이칸은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고 현지인이 되어 보는 듯한 느낌이에요. 음악으로 같이 소통하기 때문에 빨리 이동할 수도 없고요. 저 같은 경우는 미친 듯이 움직여야 돼요.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움직여요. 웬만한 도시는 3~4일 정도 머물고요. 보통 일주일 걸려서 볼 것들을 그 시간 안에 다 봐요.
여행 스타일이 다르면 같이 다니기 쉽지 않잖아요?
에이칸 : 저희가 같이 여행을 했던 게 스물다섯 살 때였어요. 한국과 수단의 대학생들이 교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때 이 친구랑 처음 만났고요. 같이 사하라 사막에 갔었어요.
이후에도 계속 인연을 이어오셨네요.
태원준 : 둘 다 여행을 하느라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한 것 같아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이 친구가 여행 중이고, 이 친구가 한국에 있으면 제가 여행 중이고... 그래도 마음이 잘 맞아서 계속 교류한 거죠.
에이칸 : 그리고 원준이가 음악, 여행, 사진을 되게 좋아해요.
태원준 : 음악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예요. 여행하면 이동 시간이 길잖아요. 그럴 때 음악 듣고 영화 볼 때가 많죠.
에이칸 : 음악 스타일을 보면 여행 스타일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친구는 콜드플레이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마룬5도 좋아하고. 저는 조금 더 언더그라운드 스타일을 좋아해요.
태원준 : 저는 확실히 오버그라운드를 좋아해요. 그런데 콜드플레이보다 좋아하는 밴드는 ‘노 뮤직 노 트래블’이에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노 뮤직 노 트래블’의 음악을 좋아해요.
‘노 뮤직 노 트래블’의 음악 중 제일 좋아하는 건 뭐예요?
태원준 : 「Chiller No.5」요. 정말 삶의 애환이 담긴 곡이거든요. 저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Chiller No.5」는 정말 이야기가 노래가 된 경우예요. 옆 냉동 창고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서, 이 친구가 만든 비트에 그 친구가 랩을 한 거거든요.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예요? 여행자 입장에서는 ‘이건 정말 대박이다’ 싶은 거죠. 저는 콜드플레이도 좋아하지만 뮤지션으로서 이 친구를 정말 ‘리스펙(respect)’ 합니다. 물론 콜드플레이를 본다면 훨씬 더 영광이기는 하겠지만(웃음).
친구가 나란히 여행 작가가 됐는데, 기분이 남다르시겠어요.
에이칸 : 10년 전의 저는 여행 작가가 돼서 글을 쓸 생각이 없었거든요.
태원준 : 저도 여행 작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에이칸 : 저도 그랬거든요. 서로 여행을 하면서 만났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이 친구도 책을 냈고 저도 책을 낸 거예요. 신기한 스토리 같아요.
태원준 : 되게 재밌지 않아요? 대학생 신분일 때 우연히 여행하면서 만났는데, 12년 뒤에 둘 다 책이 나온 거예요. 심지어 같은 출판사에서.
그렇죠. 태원준 작가님은 계속 북로그컴퍼니와 작업을 해오셨는데 『길 위에서 샤우팅!』 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출간에 도움을 주셨나요?
에이칸 : 원준이가 도와줬어요. 연결을 해줬죠.
태원준 : 도와줬다기보다, 원고를 보낼 출판사 중에 하나로 북로그컴퍼니를 추천해준 거죠. 제가 책을 낸 출판사도 고려해 보라고요. 그런데 마침 출판사에서도 좋게 보신 거고요. 둘이 인연이 있다는 걸 아니까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제가 출간을 부탁한다고 해서 출판사에서 책을 내주시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그런 위치에 있지도 않고요. 출판사가 보기에 마음에 안 들면 당연히 출간이 안 되죠. 이 친구의 글과 이야기가 충분히 좋았기 때문에 책으로 나온 거예요.
『길 위에서 샤우팅!』 을 쓰실 생각을 처음 하신 건 언제였어요?
에이칸 : 처음에는 책을 쓰는 것보다 음악을 계속 만들고 기록하는 게 목표였어요. 빽껸이라는 친구랑 같이 여행을 하면서 음악으로 기록을 해나가자고 생각했고, 곡들이 모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앨범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앨범 작업을 준비하다가, 이왕 기록하는 거 책으로도 한 번 내보면 어떨까 했던 거죠.
태원준 작가님께서는 원고를 먼저 보셨겠네요? 책이 나오기 전에요.
태원준 : 못 봤어요. 이 책이 한창 만들어질 때 여행 중이었거든요. 작년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여행을 다녀왔어요.
어디를 다녀오셨어요?
태원준 : 티베트, 부탄, 방글라데시를 갔다 왔어요.
이번에는 어머님께서 동행하지 않으셨나요?
태원준 : 네, 이제는 홀로서기를 하려고(웃음).
책에서 여행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죠?
태원준 : 물론이죠.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웃음).
우리 여행의 결정적 순간들
『길 위에서 샤우팅!』을 처음 보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태원준 : 재밌었죠. 딱 이 친구 스타일처럼 느껴졌다고 할까요. 정형화 되어 있거나 멋 부리는 글이 아니잖아요. 러프한 맛이 있다고 해야 되나. 그리고 친한 친구이기는 하지만, 호주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잘 몰랐어요. 이 친구가 힘든 시기에 떠났다 보니까 약간 은둔하듯이 있었거든요.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었어요. 그래서 이 책을 보면서 그때 에이칸에게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죠. 짝사랑하는 여성도 있었고, 헛다리를 짚기도 했더라고요(웃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을 것 같기도 해요. 친구가 힘들어했던 시간이 기록돼 있잖아요.
태원준 : 책 초반에 보면 이 친구가 운영했던 회사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는 그 뒷이야기는 모르거든요. 책을 보고 알았어요. 그때 회사를 같이 운영했던 대표도 저랑 친구인데, 굳이 그 친구한테 물어보지는 않았죠. 에이칸한테 물어보지도 않았고요. 그 뒤에 에이칸이 다른 회사를 차렸다가 내쫓기듯이 나왔는데, 저는 그 사실도 몰랐었어요. 책을 보면서 일련의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는 걸 알았죠. 사실 에이칸이 주변에 알리지 않았거든요.
친구로서 섭섭한 마음도 들었겠는데요?
태원준 : 그렇죠. 나한테도 이야기를 안 했네, 싶어서 섭섭하기도 했는데요. 공감이 가기도 해요. 당시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뭔가 설명해야 되는 게 피곤했을 것 같고, 자꾸 물어보면 더 싫었을 것 같아요.
에이칸 : 이번에 책을 내고 북콘서트를 했는데, 그때 같이 회사를 운영했던 친구들도 왔었어요.
저라면 다시 만나지 않을 것 같은데요(웃음).
에이칸 : 솔직히 제가 완벽하게 잘 했다면 그런 일이 있었겠어요? 저도 약간 문제가 있었겠죠. 돌이켜 보면 그때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으니까, 경험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친구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저도 잘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제 길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고요. 나중에 그쪽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다 잘 해결 해줬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다 같이 소주 한 잔씩 하고 ‘러브 앤 피스’ 되는 거죠.
그때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면 호주로 갈 일도 없었겠죠.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에이칸 : 살다 보면 ‘업 앤 다운’이 있잖아요. 그 전까지 큰 문제없이 살다가 그때 한 번 내리막길을 걸은 건데, 오히려 더 많은 걸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새로운 자극을 받기도 했고, 이렇게 앨범이랑 책도 나오고 인터뷰 할 수 있는 상황도 벌어진 거잖아요.
지금이야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사람한테 많은 상처를 받으셨을 것 같아요.
에이칸 : 그렇죠. 그때는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기도 했고, 호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대안이 없었거든요. 한국에서 일하면서 빚을 갚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한국에 있기 싫었어요. 우연히 호주로 이민 간 고등학교 친구가 워킹홀리데이를 이야기해줬고요.
호주로 떠나게 된 과정도 너무 드라마틱해요. 만 30세 생일을 1주일 앞두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으셨잖아요?
에이칸 : 그랬죠. 사실 비자 신청을 하면 언제 나올지 모르거든요.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서, 길면 한 달이나 두 달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 사이에 서른 살 생일이 지나가면 저는 호주를 못 가는 거였죠. 그런데 생일을 바로 일주일 앞두고 비자가 나온 거예요.
3년 동안 여행하면서 결정적인 순간들이 정말 많았는데요. 몇 가지 장면만 꼽아볼 수 있을까요?
에이칸 : 첫 번째는 한국에서 바닥을 쳤던 상황이죠. 두 번째는 153번지 셰어하우스에서 ‘로망’이라는 친구를 만났던 거고요. 그게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만약에 그곳에서 로망을 만나지 않았다면 ‘노 뮤직 노 트래블’은 시작되지 않았을 거예요.
셰어하우스에서 다 같이 쫓겨난 일도 빼놓을 수 없죠(웃음).
태원준 : 결국 술 마시고 쫓겨난 거였잖아요(웃음). 그때 안 쫓겨났으면 로드 트립도 안 갔겠죠.
맞아요. 참 신기한 일이에요.
에이칸 : 그러니까요. 운명이라고밖에 설명을 못 할 것 같아요.
태원준 작가님이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노 뮤직 노 트래블’ 같은 여행을 떠났을까요?
태원준 : 저는 엄청나게 즉흥적인 여행은 잘 안 가는 편인 것 같아요. 2박 3일이나 3박 4일 여행은 즉흥적으로 가지만, 2주 이상 중장기 여행이 되면 고민하고 계획을 세워서 떠나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 친구가 가진 추진력이 되게 신기해요. 어찌됐건 처음의 마음을 계속 밀고 나가잖아요.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자체가 재밌었어요. 이 친구에게 이런 면도 있구나, 싶었고요. 책을 보면서 처음 발견한 모습들이 있었어요. 저희가 같이 일을 했던 것도 아니고, 장기 여행을 떠난 적도 없으니까, 계속 뭔가를 추진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 책을 통해서 친구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됐죠.
후배 ‘빽껸’ 씨와 같이 여행을 하셨는데요. 만약 태원준 작가님께 제안을 했다면, 승낙하셨을까요?
태원준 :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면, 굉장히 오래 고민하거나 결국에는 힘들다고 했을 것 같아요. 제안을 들었을 때 굉장히 재밌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고 싶어 했겠지만, 쉽게 OK 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이 친구가 아니라 다른 누가 말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고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 멈추고 같이 여행을 하자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이후의 대안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역사가 탄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역사가 내 이야기가 될 거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빽껸’ 씨가 단번에 수락한 것도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죠.
에이칸 : 그때 빽껸이 3년 동안 방콕에 있으면서 한국어 강사를 했었어요. 프리랜서처럼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 친구도 뭔가 리프레쉬가 필요한 상황에서 연락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이 여행을 하게 된 거고요.
나쁜여행, 착한여행
‘빽껸’ 씨는 아직 태국에 계시죠? 레이블과 계약도 하셨다고요.
에이칸 : 네, 레이블과 계약해서 활동하고 있고요. 지금은 마음 맞는 친구랑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조금 더 음악 활동에 집중하려고 하고 있어요. 다음 주 정도에 빽껸의 솔로 앨범이 나와요. 아마 이번 달 말에는 런칭이 될 거예요. 타이틀곡을 들어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빽껸’ 씨도 『길 위에서 샤우팅!』 을 봤나요?
에이칸 : 아직 못 봤어요. 태국에 가는 친구가 있어서 전해달라고 했는데, 출국이 조금 늦춰졌어요. 원고는 이미 보내줬고요.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에이칸 : 그냥 ‘잘했네’ 이런 반응이죠. 그 친구도 말이 많은 스타일이 아니에요. 저랑은 완전히 반대예요. 말이 별로 없어요. 오히려 그래서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약간 음양오행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하고 다르게 빽껸은 덤덤한 스타일인데, 그게 되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두 분이 같이 장기 여행을 떠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에이칸 : 아마 저는 12시 이후부터 일어날 거고, 그때 이 친구는 이미 가고 없겠죠.
태원준 : 조식 먹고 어딘가 찾아가서 보고 있겠죠.
에이칸 : 밤 7시쯤에 펍 같은 데서 만나자고 하고.
태원준 : 저는 펍에 가서 그 날 보고 온 것들을 보여주겠죠. ‘이거 정말 대박 아니야?’ 하면서. 그러면 이 친구는 ‘이런 데가 있어? 내일 가봐야겠네’ 하겠죠.
태원준 작가님은 숙소로 돌아가서 주무시고, 에이칸 작가님은 그때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하시고요(웃음).
에이칸 : 그런 스타일이죠. 서로 터치는 안 할 것 같은데, 만약 스케줄 대로 움직여야 한다면 의견이 갈리기도 하겠죠. 저는 조금 프리하게 ‘안 가면 말고’ 하는 스타일이라서.
서로의 여행 스타일을 꿈꾸기도 하세요? ‘언젠가는 저 친구처럼 여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세요?
태원준 : 저는 합니다. 지금까지 92개국 정도를 갔는데, 놀랍게도 휴양이 목적인 곳은 가본 적이 없어요. 보라카이, 발리, 사이판, 괌, 이런 곳은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가면 바닷가에 누워서 맥주도 한 잔 하고, 카페에 앉아서 음악 듣고 책을 읽기도 하는데, 제가 생각할 때는 그건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인 거예요. 제 취향은 그런 것들은 한국에서 즐기고 여행하는 동안은 다른 지역을 열심히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게 일을 하면서 더 공고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많은 곳을 다니고, 많은 것들을 보고, 계속 수집하고 기억하고 기록할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거든요. 그게 저한테는 선순환인 거죠. 한국에서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수익을 창출해서 또 여행을 가고, 거기에서 경험한 것들이 다시 이야기가 되는 거잖아요. 저는 그 선순환이 너무 좋아요. 여행을 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다시 여행을 가고, 그게 평생의 꿈이거든요.
그럼에도 에이칸 작가님처럼 여행하고 싶으세요?
태원준 : 물론이죠. 휴양지에서 칵테일 한 잔 마시면서 해변을 바라보는 걸 꿈꿔요. 제 현실에서는 할 수가 없거든요. 이번에도 인도를 여행하면서 정말 예쁜 해변을 갔었는데, 썬베드에 한 시간쯤 누워 있으니까 지루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또 움직여요. 재밌는 포인트들을 찾아 다니면서 사진 찍고 기록하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저한테는 에이칸 같은 여행이 잘 안 되는 거죠. 실질적으로 제가 바뀌기 전에는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더 하고 싶은 여행 스타일인 거죠.
에이칸 작가님은 어떠세요?
에이칸 : 저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 꽂혀있는 것 같아요.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고요. 음악을 통해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저한테 가장 많은 영감을 주거든요. 저한테는 원준이 스타일의 여행이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호주에 오래 있었지만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아는 건 아니거든요. 예를 들면, 오페라 하우스나 하버브리지 같은 곳을 가기는 했지만, 지나가면서 보거나 그 앞에서 공연을 했어요. 음악 하면서 친구를 만들다 보면, 아무래도 로컬 음악이나 아트와 관련된 공간들을 가게 될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대중이 원하는 정보는 다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원준이처럼 여행하는 것도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이 친구는 정보가 많으니까 쓸 수 있는 콘텐츠가 많잖아요.
‘나쁜여행’ 이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과 사운드클라우드 계정,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시잖아요. 이름이 ‘나쁜여행’인 이유는 뭔가요?
에이칸 : 처음에는 브랜딩 차원에서 사람들이 보고 바로 인지할 수 있는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 나쁜여행이냐’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브랜딩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나쁜여행’이라는 게, 약간 B급 영화 같은 느낌이 있는 건데요. 수준이 아니라 방향성에 있어서 그렇다는 거예요. 보통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인터넷의 정보들을 모으는데, 그런 게 아니라 로컬의 언더그라운드를 보여주는 거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 제가 음악과 연결해서 찾을 수 있는 정보들을 모아서 보여주는 채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름을 ‘나쁜여행’이라고 하면 재밌을 것 같았어요.
태원준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착한여행은 어떤 건가요?
태원준 : 저는 실제로 공정여행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있어요. 여행을 하면서 현지인에게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부분이고요.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서 한 도시에서 3박을 한다면, 이틀 정도는 편한 곳에서 잘 수도 있고 체인점 호텔에 머무르더라도, 하루 정도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거예요. 물건을 살 때도, 대형 마트가 더 편리할 수 있지만, 조금 더 금액을 지불하게 되더라도 이왕이면 현지인이 운영하는 기념품 가게를 가는 거죠. 시장에서 흥정하면서 살 수도 있고요. 실제로 그게 더 재밌거든요. 환경 문제도 빼놓을 수 없어요. 여행자는 그 어떤 집단보다 많은 쓰레기를 배출해요. 여행하는 동안 필요한 것들을 사야 되잖아요. 집과 달리 모든 게 갖춰져 있지 않으니까요. 한국에서도 날이 더우면 페트병 한 병 정도 사먹겠지만, 동남아시아에 가면 하루에 500ml 생수를 10병도 마시거든요. 그러면서 환경이 많이 오염되고,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요. 보라카이가 그 예죠. 지금 폐쇄됐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착한 여행은 현지인들을 위한 소비를 하고, 환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여행인 것 같아요.
B급 영화처럼
‘나쁜여행’ 유튜브 채널에서 「ONE LOVE」, 「From The Street」 영상을 봤어요. 두 곡 모두 여행을 하면서 만드신 건데요. 「From The Street」는 정말 인상적이더라고요. 여러 나라의 래퍼들이 모여서 하나의 음악을 만든 거잖아요.
에이칸 : ‘플레잉 포 체인지(playing for change)’라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처음 그 영상을 봤을 때 충격을 받았었어요. 너무 좋아서요. 언젠가 이런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플레잉 포 체인지’의 ‘Stand By Me’라는 영상을 보시면, 「From The Street」라는 싸이퍼 게임(cypher game)이 그 프로젝트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거예요. ‘플레잉 포 체인지’ 프로젝트를 진행한 프로듀서는 여행에서 만난 스트리트 뮤지션들을 상대로 녹음을 했어요. 예를 들면, 미시시피에서 기타리스트를 만나서 녹음을 하고, 덴버에서 보컬을 만나서 녹음하고, 파리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녹음하는 식이에요. 그걸 다 모아서 하나의 노래를 만든 거죠. 저는 그걸 힙합 버전으로 만든 거고요. 「From The Street」에 참여한 친구들은 ‘Dream Chaser’라는 주제로 꿈을 좇는 이야기들을 하게 됐어요. ‘플레잉 포 체인지’의 프로듀서는 그 프로젝트에서 나온 수익금을 전부 기부했는데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앨범이 나오고 음원 수익이 나오면 제3세계 어린이들 음악 교육을 위해서 쓰고 싶어요. 말 그대로 ‘변화를 위한 연주’인 거죠.
「ONE LOVE」의 메인 보컬은 누군가요? 프로 뮤지션 같던데요?
에이칸 : 발리에서 만난 ‘아디즈’라는 친구인데, 뮤지션이에요. 코러스는 일반 여행자 50명이 부른 거고요. 처음에 여행할 때는 메인 보컬이 없었어요. 기타 라인 하나만 가지고 다니면서 보컬을 찾으면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을 만나면 코러스 파트를 녹음했고요. 계속 메인 보컬은 없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로망’을 만나러 발리에 갔을 때 ‘아디즈’를 소개받았어요. 거기에서 메인 보컬을 녹음하고 홍콩에서 노래를 완성했죠. 「ONE LOVE」는 거의 2년 가까운 시간의 기록인 거예요.
책에 보면, 여행하면서 만난 친구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요. 당시에는 책을 쓰실 계획이 없었는데, 어떻게 인터뷰어 역할을 하게 되셨어요?
에이칸 : 책을 쓰려고 인터뷰한 건 아니었고요. 친구들이랑 녹음을 할 때면 항상 세 가지 질문을 던졌어요. 저는 여행하다가 만난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두 가지를 물어보거든요. 첫 번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곡’에 대한 건데요. 대부분은 잘 떠올리지 못해요. 그럴 때 ‘네가 죽기 전에 듣고 싶은 노래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답이 나와요. 두 번째 질문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행지’에 대한 거예요. 음악을 들으면서 이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인터뷰에서 다룬 주제들이 자연스럽게 나와요. 음악 하나에 담겨 있는 엄청난 사연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임팩트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친구가 죽기 전에 듣고 싶은 음악을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느껴지는 거죠. 100%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그게 제가 음악을 통해서 소통하는 방법이에요.
인터뷰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거나 가끔씩 곱씹게 되는 말이 있나요?
에이칸 : 빽껸이랑 했던 인터뷰가 제일 방점이었던 것 같아요. 빽껸이 그런 말을 했거든요. “여행을 하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이 여행이 하나의 로드 무비라면 이보다 더 재미있는 로드 무비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하고 에이칸 단 둘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게 아쉬울 뿐이야” 어떻게 보면, 그 말이 책을 쓴 계기이기도 해요. 그리고 항상 그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나중에 우리가 할아버지가 된 후에도 곱씹을 만한 안주거리가 생겼다고요. 제일 즐겁고 뜨거웠던 시간을 우리가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여행을 하면서 문득문득 내가 유연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하셨어요.
에이칸 : 여행이랑 음악, 그 두 개가 가장 제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 같아요. 가슴이 뛰게 된다는 건 순수해진다는 의미인 것 같고, 순수해지다 보니까 유연해지는 거죠. 다른 말로 하면, 저를 가장 설레게 하는 두 가지이기도 해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다른 것들이 생길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보면 음악과 여행이 가장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고, 그로 인해서 변화가 생기는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유연해진 만큼, 예전보다 덜 전전긍긍하실 것 같아요. 계획이 틀어진다 해도요. 어떠세요?
에이칸 : 그건 그래요. 물론 현실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완전히 자유인이 돼서 평생 여행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어딘가에는 베이스캠프를 차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먼 미래의 일까지 생각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건, 예전보다 덜한 것 같아요. 5년, 10년, 20년 뒤를 생각하기보다는 1년 정도를 생각한다고 할까요. 예전보다 주기가 훨씬 짧아진 거죠. ‘1년 안에는 이걸 해보자, 이후에는 그때 상황에 따라 생각하면 되니까’라는 마음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더 자유롭게 생각하게 되고요.
태원준 작가님의 경우는 어떤가요? 여행 전후에 달라진 게 있다면 뭘까요?
태원준 :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생각이 유연해지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아요.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기가 훨씬 쉬워지는 것 같거든요. 많은 문화, 풍경, 사람을 만나다 보니까 내 안의 세계가 확실히 넓어져요. 가끔 줄어들 때도 있죠. 한국에서 바쁘게 일하다 보면 변해 있는 걸 느껴요. 넓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무늬만 그랬구나, 싶으면서 다시 또 나가서 열심히 넓혀 오는 거죠. 계속 경계를 넓히기 위해서 여행을 하면서 조절을 해야죠.
태원준 작가님, 친구를 대신해서 『길 위에서 샤우팅!』 을 홍보해 주신다면요(웃음)?
태원준 : 근래에 나온 여행기 중에서 가장 파란만장하고 흥미진진한 여행기가 아닐까 싶어요. 책을 보시면 에이칸과 동화돼서 끝까지 따라가실 수 있을 거예요. 글 자체가 마치 나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여행에도 여러 가지 분위기와 스타일이 있잖아요. 제삼자 입장에서 관찰하는 느낌의 책도 있고 화자의 뒤를 쫓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책도 있는데요. 이 책은 마치 내가 작가의 친구가 돼서 같이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생생해요. 많은 분들께 추천해 드립니다(웃음).
에이칸 작가님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겠죠?
에이칸 : 굉장히 큰 의미를 두기보다는, B급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태원준 : 저는 블록버스터처럼 빵 터졌으면 좋겠어요. 100쇄도 찍고(웃음).
에이칸 : (웃음) 그런 거 있잖아요. 혼자 야식 먹을 때 <무한도전>을 틀어놓고 보는. 그런 것처럼, 진지하게 보기보다는 부담 없이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빽껸이랑 에이칸, 그리고 제가 만났던 많은 친구들과 같이 고물차에 탑승해서 여행하시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고요. 이 책을 통해서 ‘노 뮤직 노 트래블’에 조금 관심이 생기셨다면, 저희가 만든 음악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길 위에서 샤우팅! 노 뮤직 노 트래블에이칸 저 | 북로그컴퍼니
짬짬이 인터넷을 뒤져 음악 프로듀싱 기술을 익힌 그는 하우스 파티가 열릴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디제잉과 라이브 잼을 하면서 제 인생 최고의 암흑기에 로큰롤 펀치를 날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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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에이칸> 저12,600원(10% + 5%)
거침없이 승승장구하던 20대 벤처 사업가! 서른에 쫄딱 망하고 시작된 도망치듯 떠난 그곳에서 시작된 대반전 스토리!!! 대학 졸업 후 은행 다니던 ‘잘난 놈’에서 벤처 회사를 차려 ‘더 잘난 놈’이 되었던 저자는 서른 생일을 앞두고 엄청난 마이너스 스코어를 기록한 채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나 도망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