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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이승엽, 여전히 야구가 너무 좋다

<월간 채널예스> 2018년 5월호 『나. 36. 이승엽』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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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패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몇 번의 큰 실패를 통해 오히려 영원한 패배는 없다는 진리를 터득했다. (2018.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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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을 만나기 전,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됐다. 이승엽 전 선수? 이승엽야구장학재단 이사장? KBO 홍보대사? 이승엽은 쿨하게 “이승엽 씨”라고 불러달라 말했지만 ‘이승엽 선수’라는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2012년 삼성에 복귀한 뒤 3차례 통합 우승, 프로 선수로서 이례적으로 은퇴 시점을 예고했고, 지난해 KBO 리그 최초 은퇴 투어의 주인공이 된 이승엽. 그는 한동안 ‘시간이 좀 늦게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나. 36. 이승엽』 을 썼다.

 

프로야구가 생긴 1982년 이승엽은 일곱 살이었다. 공 던지고 치는 게 마냥 좋았던 꼬마 이승엽의 이야기는 1회 초였다. 1회부터 시작해서 9회, 연장전까지 들어가는 이승엽의 야구 일대기. 이승엽은 인터뷰 내내 책 뒷날개에 써 있는 문장 “나는 여전히 야구가 너무 좋다”를 되뇌었다. 그는 너무 가득 차기 전에 쉼표를 찍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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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로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책 출간과 더불어 얼마 전 이승엽야구장학재단 출범식을 했다. 어떻게 보면 야구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됐다.

 

좋은 의미를 갖고 출발한 일이다. 그동안 사랑을 많이 받았다. 내가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한다. 모범이 되는 재단을 만들고 싶고 투명하게 꾸려나갈 계획이다.

 

『나. 36. 이승엽』 목차가 재밌다. 1화가 아닌 1회부터 시작해서 9회, ‘이승엽의 야구 수업’ 연장전까지 펼쳐진다.

 

출판사에서 공을 많이 들였다. 첫 책이라서 그런지 부담감이 컸는데 생각한 대로 잘 나온 것 같다. 사실 책을 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엊그제 아버지를 만나 책을 드렸는데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영광스럽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 가장 많이 들었다.


야구 팬들이 가장 기다린 책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감사하다. 바라건대 진솔하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한 가지만이라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뭐가 됐든 ‘이건 정말 좋은 말이다’라고 생각할 만한 것이 있다면 좋겠다.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흔히 작은 성공을 통해 자신감을 얻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좋다고들 하지만 나는 반대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어려운 일에 먼저 덤빈다.”(37쪽), “아버지는 내가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야구 못하는 선배들에게 더 잘하라’고 가르쳤다.”(120쪽)

 

책을 쓰면서 내가 참 좋은 말을 많이 들었구나, 주변에 좋은 사람이 참 많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글쓰기 울렁증이 심한 편이라 도움을 많이 받았다. 두 아들 은혁이랑 은준이는 내가 밤에 책을 쓰고 있으면 발걸음마저 조용하게 걸었다. 이제 많이 놀아줘야 한다.(웃음)

 

제목을 마음에 들어 하는 독자가 많더라.

 

나 역시 만족스럽다. 출판사에서 후보를 몇 개 보내줬는데, 아무래도  『나. 36. 이승엽』 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요즘은 제목이 긴 책이 많이 나오던데, 운동선수가 쓴 책이라서 그런지 짧은 게 더 임팩트 있을 것 같았다. 출판사와 여러모로 잘 맞았다.

 

집필은 어렵지 않았나?

 

머리에 쥐가 나는 줄 알았다.(웃음) 야구는 몸으로 하는 스포츠인데, 글은 가만히 앉아서 써야 하지 않나. 한 시간 정도는 괜찮았는데 그 이상이 되면 몸이 적응이 안 돼서 그런지 어렵더라. 막판에 팩트 체크를 할 때는 다시는 책을 못 쓰겠다 싶을 정도로 고단했다. 인쇄되면 끝이니 심사숙고한다고 했는데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손석희, 박찬호, 김제동, 유재석에게 추천사를 받았다. 박찬호의 추천사는 특히 길었다고 들었다.


출판사에서 많이 줄여주신 걸로 안다.(웃음) 그간의 인연을 계기로 덜컥 부탁했는데 모두들 흔쾌히 써주셨다. 짧게 써줘도 고마웠을 텐데 네 분 모두 원고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셨다. 읽고서 써야지 어떻게 쓰느냐며…. 특히 제동 형의 글을 읽고 나서 굉장히 감동받았다. 제동 형은 시인 같다.

 

사람 이야기가 유독 눈에 많이 걸리더라. 평소 인연을 중히 여기는 것 같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사람들에게 잘하진 못한 것 같다. 그동안은 야구만 잘하면 됐으니까,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지 못했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니 많은 생각이 스치더라. 조금 더 주위를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나는 원래 좌완 투수였기 때문에 부상으로 인해 타자로 전향하면서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어릴 때는 소통보다는 독한 훈련에 더 집중했던 게 사실이다. 내내 야구만 하다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프로 구단에 입단했으니까. 어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최고의 스승으로 백인천 감독, 박흥식 코치, 김성근 감독, 다카하시 요시히코 코치 등을 꼽았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인데, 그중 가장 큰 복은 좋은 스승을 만난 거다. 홈런 타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백인천 감독님의 영향이 컸다. 백 감독님은 KBO 리그 처음이자 마지막 4할 타자다. 삼성 라이온즈 개혁을 부르짖었던 감독님은 보스 기질이 강한 분이었다. 현재 KIA 타이거즈 퓨처스 감독인 박흥식 코치님은 나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믿어주신 분이다. 김성근 감독님은 일본 무대에서 내가 무너질 뻔했을 때 일으켜주셨고 독기를 일깨워주신 분이다. 책에는 미처 담지 못한 인연도 많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에도 많은 일본 감독님과 코치들께 야구의 정석을 배웠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성을 잘 갖춰야 한다

 

이승엽을 말할 때 실력과 항상 따라붙는 것이 ‘겸손’이다. 책을 보니 아버지의 영향이 아닌가 싶더라.

 

아버지에겐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는데 나를 혼내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부모님들은 대개 “너는 이렇게 해”라고 자식에게 명령하지 않나? 우리 부모님은 내게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버지는 칭찬을 아끼는 편이었다. 항상 강한 모습으로 날 대했다.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는 일이 아버지의 사랑법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어렵기만 했는데, 그런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초등학생 시절, 야구를 반대했던 아버지 아닌가?

 

집안에 운동선수로 대성한 사람도 없었고, 운동선수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하는 거라 편견이 심했던 시절이니까.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대였는지도 모른다. 한 달 동안 매일 우리 집을 찾아와 설득했던 야구부 부장님이 아니었더라면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물론 나 역시 단식 투쟁까지 하면서 고집을 부렸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사흘 동안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고픈지 몰랐다.

 

어릴 적 별명이 ‘똥엽’이었다고.

 

똥고집이 정말 심했다.(웃음) 막내아들이라서 그런지 고집이 참 셌다. 경상중학교 야구부에 들어간 건 감독님이 사주신 볶음우동 한 그릇 때문이었고,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한 건 서석진 감독님(현 TBC 해설위원)의 따뜻한 인품과 선수들을 챙기는 모습 때문이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의견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껏 내가 한 선택의 99%는 스스로 내린 결정이다. 그래서 나는 후회가 없다. 물론 내 선택이 항상 옳은 건 아니었겠지만 소소한 마음들이 나를 움직이게 한 적이 많았다.

 

2004년 일본 야구로 무대를 넓혔다. 약속 시간만큼은 칼같이 지킨다는 철칙이 있는데, 2013년 12월 11일, 기자회견장에 20분 지각했다. 이 일이 큰 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평소 지각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일본행을 결심하기까지 정말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야 할 시간이니 내가 결정하는 게 맞았다. 일본 선수 생활은 좋을 때도 있었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 프로야구를 경험하면서 야구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일본은 야구 선수가 오로지 경기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그라운드에서 100%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반면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멘탈 관리 등이 아쉬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인 메이저 리거들이 본국으로 돌아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은 야구에서도 진리다. 야구를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야구를 해야 하는 이유와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찾도록 돕는 일이다.

 

세리머니 철학이 인상적이었다.

 

세리머니 자체의 가치 판단은 어려운 것 같다. 관중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의무도 있으니까. 하지만 야구 선수들 간에 감정이 상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본다. 세리머니를 하는 순간은 좋겠지만, 상대방이 느낄 감정도 생각해야 한다. 지나친 행동으로 인해 2차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으니까. 야구 역시 포커페이스가 중요한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내가 최고일 수 없다는 걸 안다면 신중할 수밖에 없다.

 

36번은 이제 영구 결번이 되어 이승엽 고유 번호로 남았다.

 

내가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번호는 27번이다. 프로 입단할 때 27번을 원했지만 이미 다른 선배가 달고 있었다. 투수 출신이던 나는 최동원 선배님의 11번도 원했지만, 역시 다른 선배가 갖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 없이 갖게 된 번호가 36번인데, 프로 3년 차에 정규 시즌 MVP에 오르면서 ‘이 번호가 내 운명인가’ 싶었다. 일본 무대에서는 33번, 25번, 3번을 달기도 했지만 애착이 가장 큰 번호는 역시 36번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아마추어 선수 가운데 등 번호 36번을 달고 뛰는 왼손 거포들이 부쩍 늘었다. 내게 36번은 행운을 부르는 부적 같은 번호다. 삼성에서는 영구 결번이 됐지만 대표팀에서는 달 수 있는 번호이니 후배들이 사용해준다면 반가울 것 같다.

 

야구 꿈나무, 후배 선수들에게 꼭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뻔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프로 선수는 모범이 돼야 한다. 사람이니까 실수를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항상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성을 잘 갖춰야 한다. 실패할 때의 마인드 컨트롤도 중요하다. 긴박한 상황에서는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본인이 헤쳐 나가야 한다. 내 의지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자녀를 운동선수로 키우려는 부모들이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확고한 교육관을 갖고 아이를 대해야 할 것 같다. 스포츠는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부모가 아무리 막아도 정말 하고 싶으면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안했을 때 평생 후회하기 때문이다.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후회 없이 사는 게 중요하다. 부모를 평생 원망하는 경우도 많이 봤기 때문에 내 아이의 의지를 잘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내 아이들에게도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자주 이야기하곤 하는데, 멀리 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지금 당장의 어려움보다 미래를 생각해봐야 한다. 쓴맛이 결코 쓴맛으로 끝나지 않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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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가족 이야기도 꽤 많이 나온다.

 

조심스러웠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니까 쓰고 싶었다. 사실 아내와 아이들이 주목받을 때마다 기쁜 마음 한편에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불편한 건 나 혼자만 감당하고 싶다. 은퇴하면서 아이들이랑 시간을 자주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둘째는 요즘 아빠가 집에 많이 있으니까 아주 좋아 죽는다. 멀리서도 나만 보면 달려온다.(웃음)

 

아이들은 아빠의 책을 읽었나?


첫째 은혁이는 아직 안 읽은 것 같고, 은준이는 아직 어리고. 아내는 펴놓긴 한 것 같은데 어디까지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내가 아이들 때문에 많이 바쁘다. 공부를 좀 덜 시켰으면 좋겠는데, 본인은 많이 시키는 편이 아니라고 한다. 아빠의 마음으로는 아이들을 많이 놀게 하고 싶다.

 

67쪽에 “아내가 있어서 이승엽이 있는 것”이라고 썼다.

 

아내가 나와 결혼했을 때가 21세였다. 정말 어린 나이였다. 야구밖에 모르는 남편을 둬서 답답한 게 많았을 거다. 그런데도 무엇이든 잘 해냈다. 내 건강과 스케줄은 물론이고 집안 대소사까지 도맡았고 일본어도 혼자 공부했다. 책에도 썼지만 둘째 은준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내가 또 하나의 아들 같은 존재였다. 아내가 해준 내조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제 시간이 여유로워졌으니까 최선을 다하고 싶다.

 

사회생활 6개월 차인 지금, 어떤가?


너무 편하다.(웃음) 타이트한 일정이 없으니까 긴장감과 박진감이 떨어지지만, 확실히 편하긴 하다. 은퇴 투어를 마친 후에는 일부러 야구장을 가지 않았다고. 야구가 너무 하고 싶어질까 봐 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평안한 상태다. 야구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보는 걸로 만족한다. 지금도 집에서는 TV 채널 5개를 돌려가면서 야구 중계를 본다. 야구선수로서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전혀 없다.

 

차 마시는 모임을 즐긴다고 들었다.

 

술은 맛이 없어서 못 마시겠다. 가끔 누가 강하게 권하면 한두 잔을 할 때가 있지만 흔치 않다. 식사 모임을 하면 2차는 무조건 카페, 3차도 차를 마실 때가 있다. 수다 떠는 걸 좋아한다. 경기장 밖의 내 모습은 감성파다. 요즘은 나이가 드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훨씬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30대 때는 야구 선수로서의 이승엽만 생각했다면, 40대가 돼서는 가정을 더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을 더욱 신경 쓰게 된다. 안타까운 건 요즘 은퇴 나이가 너무 빨라진 점이다. 60대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나이 아닌가.

 

서재에는 주로 어떤 책들이 있나?

 

아이들이랑 읽고 싶은 책은 좀 챙겨두는 편이지만, 솔직히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쓰면서 ‘아, 쉬운 일이 결코 아니구나’ 실감했다.(웃음) 야구인들, 선배들이 쓴 책은 챙겨 읽고 있다.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일본을 이긴 한국인』,  『허구연의 야구』  ,  『인생은 1%의 싸움이다』는 특히 좋아한다. 소설보다는 실화를 담은 책을 좋아한다. 『좋은생각』을 즐겨 읽는데, 읽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져서 참 좋다. 영화도 스릴러, 멜로는 거의 안 본다. 아들이 보자고 하면 봐야 하지만, 내 취향은 <국제시장> 같은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고 하루 종일 울었던 것 같다. 옆에서 말 걸면 “말 걸지 말라”고 하고. 그래서 슬픈 걸 잘 안 보려고 한다. 재밌는 영화가 좋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을 택하고 싶나?

 

글쎄, 지금에 만족하기 때문에 원하는 게 딱히 없지만 어떠한 능력이라도 가능하다면 어린 학생들에게 공부 시간을 좀 줄여주고 싶다. 하나 더 가질 수 있다면, 모든 사람에게 직업을 줬으면 싶다. 요즘 안타까운 일이 너무 많아서 좋은 일이 생겼다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이승엽에게 세 가지 소원이 있다면?

 

우선 우리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공부 잘하고 못하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까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둘째는 언젠가 야구계로 복귀한다면 내 능력이 한국 프로야구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고, 이승엽야구장학재단이 많은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조그맣게 시작했지만 작게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이승엽야구장학재단에서 주력하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가?

 

리틀야구단 어린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 이만수 감독님이 선수 시절, 우리 학교에 와서 일일 코치를 해주신 적이 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지금 초등학생인 아이가 커서 프로야구 선수가 됐을 때 “어릴 적 이승엽 아저씨한테 야구를 배운 적이 있다”고 말해주면 굉장히 뿌듯할 것 같다. 꼭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은?

 

일단 유니폼이 멋지다.(웃음) 축구도 농구도 반바지를 입고 하지 않나? 야구는 유일하게 감독과 선수들이 똑같은 유니폼을 착용한다. 23년간 야구를 하면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힘든 적은 있어도 싫은 적이 없었다는 게 내가 생각해도 큰 축복이고 행운이다.

 

벌써부터 복귀를 기다리는 팬도 많다.

 

어찌 됐든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할 것이기 때문에 한 번쯤은 복귀하겠지만, 시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팀에서도 원해야 하고 나도 준비를 많이 해야 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갈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4~5년 후를 바라본다.


 

 

나. 36. 이승엽이승엽 저 | 김영사
단 한 시간도 야구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없던 그였기에 또 다른 도전과 기회들을 만들어갈 것이다. 진정한 그의 레전드는 바로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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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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