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특집] 작가들이 사랑한 글쓰기 친구들
<월간 채널예스> 4월호
사각사각 연필로 써내려간 시가 있고, 부드러운 펜으로 띄어 쓰고 빼내며 거듭 고쳐진 소설이 있다. 우리가 사랑한 작가들, 작가들이 사랑한 글쓰기 친구들. (2018. 04. 17)
딕슨 타이콘데로가
하루에 8만 자루가 넘는 연필을 생산하던 딕슨이 사들인 흑연회사가 있던 곳, 뉴욕 주 타이콘데로가의 이름이 붙은 연필, 1913년 탄생한 딕슨 타이콘데로가는 최초의 노란색 연필은 아니었지만 가장 유명한 노란색 연필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으로 유명한 영국작가 로알드 달은 “매일 아침 그날 사용할 딕슨 타이콘데로가 여섯 자루를 뾰족하게 깎은 다음에야 일을 시작하곤 했다”라고 한다. - 『제임스 워드 문구의 모험』 중
팔로미노 블랙윙
오랜시간 완벽한 연필을 찾아헤맸다는 존 스타인벡이 사랑했던 연필, 손의 힘을 절반만 들이고도부드럽게 종이 위를 유영하는 블랙윙의 비밀은 흑연에 왁스를 더하고 점토를 섞은 심에 있다.
세 연필을 찾아냈어. 지금껏 써본 것 중에 최고야. 물론 값이 세 배는 더 비싸지만 검고 부드러운데도 잘 부러지지 않아. 아마 이걸 항상 쓸 것 같아. 이름은 블랙윙인데, 정말로 종이 위에서 활강하며 미끄러진다니까.- 『제임스 워드 문구의 모험』 중 존 스타인벡의 고백
“보통 연필보다 꽁지에 지우개가 달린 연필은 왠지 더 정이 갑니다. '실수해도 괜찮아, 틀리면 지우고 다시 쓰면 돼'라고 격려해주는, 관대한 얼굴의 삼촌 같다고나 할까요?” - 소설가 김애란
스타빌로 이지에고
스타빌로에서 선보이는 글쓰기 연필, 손에 쥐기 쉽고, 오래 잡아도 불편하지 않도록 디자인했다.왼손과 오른손 용으로 구별되며 연필심 부분에 쿠션이 있어 심도 잘 부러지지 않는다. 똑똑똑 심이 나오는 경쾌한 소리도 즐겁다. 슬로베니아에서 살고 있는 소설가 강병융에게는 이유를 짐작하긴 어렵지만 ‘#아내를 닮은 연필’이기도 하단다.
“‘연두연두’한 첫 인상부터 나를 사로잡았던, 10년이 넘는 시간을 한결같이 내 곁에 있었던, 잡고 있으면 마치 하나가 된 것 같은, 그래서 더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은 나의 문우.” - 소설가 강병융
크레타칼라 파인아트 그래파이트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거나 착상 노트에 메모를 하거나 짧은 글의 초고를 쓸 때는 늘 종이에 연필로 씁니다. 특별히 어떤 한 브랜드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데, 요즘 즐겨 쓰는 연필은 크레타칼라(CRETACOLOR)의 파인아트그래파이트 세트(Fine Art Graphite Set)입니다. 나무의 질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흑연심의 질감이 부드러우면서도 너무 무르지 않고 적당히 견고한 느낌입니다. 2H부터 8B까지 6자루의 연필이 케이스 안에 들어 있어서 각각의 연필을 꺼내 이런 저런 진하고 연한, 엷고 굵은 선들을 그어 보는 것만으로도 글쓰기의 어떤 가능성, 자유를 느끼기도 합니다. 연필은 써내려간 글을 언제든 쉽게 지울 수 있다는 점이 글쓰기 자체의 무게감 혹은 압박감을 덜어주어 좋습니다. 또 흑심이 닳은 연필을 칼로 깎고 있을 때의 그 짧은 순간을 명상의 순간으로 삼을 수도 있고요. 점점 짧아지는 연필 길이를 보고 있자면 글쓰기가 정신적인 노동인 동시에 육체적인 노동임을 새삼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시인 이제니
라미 ABC 샤프
둥그런 꽁지 부분을 돌려가며 처음 배우는 글씨, 처음 써 내려간 글자들, 초등학교 입학용 선물로 정체성을 새긴 ABC 샤프로 시를 쓴다면? 어쩐지 처음 만나는 청량한 단어, 낯선 감각들과 마주할 것만 같다.
“저는 오래전부터 이 샤프로 시를 써요. 맨처음 연필을 잡는 어린이들을 위해 개발된 제품으로 알고 있는데, 그립감이 최고로 좋습니다. 이 연필을 잡고 있으면 천진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생깁니다.” - 시인 김소연
라미 만년필
만년필이 작가의 가방에, 재킷의 안주머니에 빠질 수야 없다. 잉크에 펜촉을 담그는 오랜 행위는 위대한 고전들을 탄생시켰으니!
“몇몇 단어나 한두 문장을 기록할 때 만년필을 사용합니다. 쓸 때 잘 미끄러져서 왠지 글도 술술 잘 풀릴 것 같습니다!” - 시인 오은
하이테크 펜, 모나미 라이브 컬러, 스테들러 색연필
“저는 사실 꼼꼼한 편이 아니라서 눈에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메모하곤 합니다. 메모한 걸 나중에 찾지 못해서 곤란한 경우도 많아요. 꼭 메모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즐겨 사용하는 펜이 있습니다. 하이테크 펜(0.3mm)과 모나미의 라이브컬러, 스테들러 색연필입니다. 하이테크 펜은 주로 검정색과 초록색, 갈색을 선호하고, 라이브 컬러는 노란색, 스테들러 색연필은 파란색을 선호합니다. 헌데 이런 문구류도 한번 쓰면 잊어버리고 말아서 다시 사야 하는 경우가 많긴 합니다.” - 소설가 손보미
유니볼 시그노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상 위에 놓인 원고더미, 그 위의 교정 선생님은 바로 유니볼 시그노 검정색 0.5m 펜이다.
맥북 에어
이전 시대의 작가들이 연필로 초고를 쓰고, 타이핑 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웠다면 이 시대의 작가들은 컴퓨터와 노트북 속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저장한다. 역시 여전히 지우개 달린 몽당 연필로 지독한 글쓰기를 감내하고 있는 소설가 김훈에겐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테지만.
“맥북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요, 사실 한글이 깔려 있는 컴퓨터라면 다 상관없습니다. 한글로 문서 작업을 배운 이후 다른 프로그램을 접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 상태로 계속 일할 거 같습니다.”- 소설가 강화길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물론 애플입니다. 꽤나 구형 모델이라 조금씩 불편한 점도 생겨나고 있지만, 소설을 쓰거나 메일을 주고 받고 구글로 검색하는 정도의 작업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서브로 맥북 에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www.harukimurakami.com/author) 글 ‘서재에서 #1’중
몰스킨
헤밍웨이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몰스킨 노트는 사실 지금의 것이 아니라 그저 닮은 공책이었다고한다. 하지만 고무줄 홀더가 달려 있고 모서리가 둥근 단순한 직사각형의 공책, 몰스킨을 사랑한 작가들은 많다. 작가들은 자주 빈 공책에 아이디어를 휘갈기고, 영감의 잔해들을 뿌려 놓는다.
“작고 얇고 가벼워 휴대하기 좋아요. 여행 또는 답사 중 '짐 몸살'을 피하고 싶을 때 제격이죠. 물론 ‘이번에도 새 수첩을 사고 또 끝까지 다 못 썼어'라는 죄책감을 피하기에도 으뜸입니다.” - 소설가 김애란
리걸패드
가늘고 붉은 줄을 보고 있자면 무엇이든 쓰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꽉 채 워 진지한 메모를 적기도 하고, 혹은 천천히 소설의 초고가 쓰여지기도 한다. 무엇이든 처음에는 연필로 쓴다고 고백한 토니 모리슨도 그랬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그녀가 가장 좋아한 것은 다름 아닌, “노란색 리걸패드와 품질 좋은 2호 연필”이었으니.
리걸 패드는 미국 작가들이 열광하는 아이템이죠. 손으로 글을 쓸 때의 느린 속도가 좋아요. 손으로 쓴 다음에는 타이핑해서 옮겨놓고, 그 종이 곳곳에 고칠 내용을 마구 휘갈겨 써요. 그러고는 또 타이핑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손으로 고쳐 쓰면서 타자기로도 교정을 해요. 이보다 더 좋은 글을 만들 수 없겠다 싶을 때까지는 계속하죠. - 수전 손택 『작가란 무엇인가』 중
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
<제임스 워드> 저/<김병화> 역16,200원(10% + 5%)
“우리에게는 이 작고 사소한 물건들이 필요하다 더 커다란 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 편리함을 넘어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가져다준 작지만 위대한 도구들의 역사 소박하고 겸손한 도구이자 그 안에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를 담고 있는 물건.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책상 서랍 속에서 서서히 잊혀지거나 회색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