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피스
일상 속에서 내가 어른이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사소하게는 부모님이 내주던 휴대폰 요금을 내가 낼 때이다. 데이터의 노예로 살았던 학창시절에서 벗어나 데이터 무제한을 자신 있게(?)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은 부모님 대신 아파트 관리비나 자동차세도 낸다. 이런저런 공과금을 내다니! 마치 엄청난 커리어 우먼 같음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의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아래 항목 외에도 더 있겠지만, 공통적인 의견을 취합했다.
1. 가만히 숨만 쉬어도 돈 나갈 때(=소름돋게도 다 내가 긁은 카드내역일 때).
2. 나를 부르는 호칭이 00씨 일 때.
3. 술 마시고 놀아도 다음날을 생각하며 일찍 들어갈 때.
4. 속으론 개발새발 욕을 해도 겉으론 상냥할 때 (=상황에 따라 나의 캐릭터가 여러 개)
5. 관계에 연연하지 않을 때, 그러니까 친구든 연인이든 신경은 쓰지만 액션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모아보니, 각자가 가진 어른의 기준은 다양하면서도 공감이 간다. 내가 ‘최근’에 어른이라고 느낄 때는 위의 4,5 번과 유사하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과 밥을 먹고, 농담을 주고받고 그 사람에게 칭찬할 때 ‘나 어른인가?’ 싶다. 앞에서 잘 지내다가 뒤에서 호박씨나 깐다는 얘긴 아니고, 호의적인 감정을 필요할 때 꺼내 쓸 줄 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면 불편했던 감정이 묽어지기도 하고 ‘일’을 해야 하므로 사적인 감정과 업무는 구분할 수 있기도 하다.
게다가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 즉 집단 속에 또라이가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면 본인이 바로 그 또라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누구나 이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무조건 싫어하기보다는 안 맞는 사람과도 잘 지내려고 노력을 한다거나 내가 이상한 사람은 아닌지 검열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업무로 만난 사람이 아니라면 마음가짐은 달라진다. 관계를 끊는 것이 두렵지가 않다. 표면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닌 데다가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그러하다. 끊어진 줄을 이으려 아둥바둥거렸던 20대 초반과 달리,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붙잡고 있지 않다. 나와 잘 맞는 사람들만 만나기도 벅찬데 안 맞는 사람까지 만나면서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하나 싶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한참을 얘기하고 글을 쓰다 보니 어른이 된다는 건 관계의 유연성을 배워 나가는 건가 싶다. 관계가 포함된 기준(이라고 쓰고 고민이라 읽는 것)이 9할이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편이 확실할 것(고민을 털어놓을 사람) /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살기 때문에 이해는 가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는 마음을 가질 것 / 참고만 살지 말 것/ 나만의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가질 것(ex_필라테스, 꽃 등등) / 여행가는 여유를 가질 것 등 단단한 내면을 만드는 일이다.
앞으로도 어른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은 찾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생기는 고민이 많을 것 같다. 피할 순 없으니 고민을 멋지게 해결해나가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인생 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
좋아하는 것에는 아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