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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책] 모든 의미에서 성공적인 소설

<월간 채널예스>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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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을 읽기 시작하면 당신이 얼마나 피곤하고 할 일이 얼마나 쌓였든, 이 책을 끝내고 나서야 생각하게 된다. (2018. 04.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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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토에서 아말피로 넘어가는 해안도로에서 나폴리를 바라본 적 있다. 베수비오 화산을 등지고 한낮에도 환한 빛을 발하던 도시. 세계 3대 미항으로도 꼽히는 나폴리는 그러나 카모라(마피아)로 악명 높은 도시기도 하다. 나폴리에서 아름다움은 두려운 것들 사이에서 빛난다.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도 폭력과 위선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격렬하게 빛나는 두 소녀 이야기다. 인생의 수많은 곡절과 세상의 진창 사이에서 태어난 눈부신 이야기다. 이 소설의 눈부심을 어떻게 다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정과 견제, 사랑과 배신, 가족과 개인, 도시와 시골, 성공과 실패, 남성과 여성, 부와 가난, 파시스트와 좌파, 폭력과 저항, 지식과 현실, 신념과 행동, 글과 삶에 이르기까지 이 소설은 많은 것을 그리고 있고, 그 모든 것에서 성공적이다. 이 4부작에 관해 논하는 것은 결코 끝나지 않는 대화가 될 수 밖에 없다.

 

이야기의 중심은 릴라와 레누, 두 주인공의 60여 년에 걸친 우정이다. 시리즈 첫 책의 제목 『나의 눈부신 친구』 가 알려주듯 둘의 우정은 눈부시다. 다만 눈부시다는 말을 ‘서로에게 모든 걸 내어주는’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릴라가 천재형에다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안하무인 스타일이라면, 레누는 노력형에 모범생이고 주위의 사랑을 받기 위해 자신을 다듬을 줄 안다. 우정을 지탱하는 천성적 교집합이 협소하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 서로 다른 길을 택하면서 서로에 대한 동경과 질투, 견제와 경쟁도 심해진다. 친구가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기도 한다. 둘의 우정은 ‘흔들리지 않는’ 같은 수식어를 거부한 채, 멀어지고 가까워지길 수없이 반복한다. 릴라와 레누의 우정이 눈부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서로를 놓지 못한다는 데 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무수한 사건을 겪는 둘의 관계는 수없이 방향전환하는 역동적인 이야기로 펼쳐진다. ‘페란테 열병’(Ferante Fever)이란 말이 세계적으로 유행할 정도로 흡입력 극강이다. 나폴리를 벗어나 피사, 밀라노, 피렌체, 토리노로 나아간 레누와 평생 나폴리를 벗어나지 않은 릴라의 삶은 다른 좌표에 서 있다. 현대화라는 이름의 경제개발, 파시스트와 좌파의 격한 대립, 전통적 가족의 해체, 68혁명과 테러리즘, 컴퓨터로 상징되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 같은 이탈리아가 겪은 격동적인 현대사는 릴라와 레누를 휘감는다. 폭력적인 인물과 위선적인 인물 사이에서, 어떤 방향으로 치달을 지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릴라와 레누가 겪는 곡절은 격렬하다.

 

『나폴리 4부작』 이 화제를 불러모은 또 한 축은 이야기의 거대함이다. 페란테는 릴라와 레누를 역사의 큰 강으로 흘려 보내면서, 출신과 계급, 정치적 성향, 성별이 다른 수많은 인물들도 함께 동동 띄워 놓았다. 이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부딪히며 역사의 큰 그림을 이루는 각각의 조각이 된다. 아마도 독자들은 인생의 복잡다단함이나 세상의 거대함을 담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스케일도 충분히 커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요즘은 흔치 않은 대하소설의 매력을 다시 갈망하게 될 지도 모른다.

 

제 아무리 이야기가 역동적이고, 스케일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하더라도 총 4권 2,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은 역시 부담이 아닐까? 글쎄, 그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어디까지나 내 경험이지만, 나폴리 4부작을 읽기 시작하면 당신이 얼마나 피곤하고 할 일이 얼마나 쌓였든, 이 책을 끝내고 나서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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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는다면…

 

이탈리아 현대사
폴 긴스버그 저/안준범 역 | 후마니타스

우리 역사만큼이나 역동적인 이탈리아 현대사를 다룬 권위있는 이야기. 정확하게 나폴리 4부작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다루고 있다.

 

 

 

 

 

 

 

 

남부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주제들 외
안토니오 그람시 저 | 책세상

이탈리아 그리고 나폴리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주제가 바로 '남부문제'다. 나폴리 4부작 릴라와 레누를 둘러싼 환경을 정치경제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모라
로베르토 사비아노 저/박중서 역 | 문학동네

나폴리를 근거지로 삼아, 100여 년 동안 그 모든 것에 검은 손을 뻗쳐온 범죄 조직 '카모라'를 폭로한 충격적인 르포르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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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금주(서점 직원)

chyes@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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