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 음악으로 담은 와칸다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드러내다
와칸다가 멋진 강국으로 그려진 데는 마블의 대규모 시각 효과의 공만 있지 않다. 성실히 담아낸 음악이 < 블랙 팬서 >의 독립적 색깔을 만드는 중요한 조력을 했다. (2018. 03. 09)
영화를 위해 켄드릭 라마를 불러왔고 OST 앨범 하나를 새로 만들었다. 올드 팝을 적극적으로 가져온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를 비롯해 최근 마블은 사운드 트랙에 비중을 두며 작품마다 다른 특성을 부여한다. 켄드릭 라마는 영화 일부를 보고 이미지와 맞는 음반을 구상했고, 음악 감독 루드비히 괴란손(Ludwig G?ransson)은 와칸다에 어울리는 소리를 찾기 위해 남아프리카까지 다녀왔다. 마빈 게이의 'Trouble man'이나 왬의 'Careless whisper' 등 기존 발매된 곡을 가져와 액션을 부각하는데 그친 그동안 마블 삽입곡과는 다른 규모다.
< 블랙 팬서 >의 OST 앨범은 두 버전으로 발매되었다. 켄드릭 라마가 주조한 것과 다른 하나는 괴란손이 작업한 오리지널 음반이다. 켄드릭의 곡은 상영관에서 공개되지 않은 노래가 더 많지만 'King's dead'나 'Big shot'은 영화를 본 뒤 남아있는 어느 잔상에 투영해도 어울린다. 전체 스코어를 지휘한 괴란손은 힙합의 최전선 트랙들은 켄드릭에게 맡기고 와칸다를 소리로 그려내는데 집중한다. 그의 열정을 보여주듯 두 번째 쿠키영상이 나오기 전 무려 7분에 가까운 삽입곡이 흘러나온다. 이처럼 아프리카 음악이 할리우드에서 오랜 시간 사용된 경우는 흔치 않다.
아프리카 음악가들과 녹음 중인 음악 감독 루드비히 괴란손
아프리카 경관을 담은 명화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 라이온 킹 >의 삽입곡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622'나 'The lion sleeps tonight'은 모두 개발되지 않은 미지의 땅의 풍경에 초점을 맞추었다. 와칸다가 흑인들의 주체적 뿌리이자 이상향으로 자리한 만큼 배경의 무게감과 중요도도 달라졌다. 괴란손은 이 가상 국가를 사실적이면서 진중하게 표현해야 했고 작업 과정에서 오랜 공을 들였다. 그가 세네갈 가수 바바말을 비롯해 한 달 동안 아프리카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모은 소리들은 와칸다의 자연과 섞여 장대하게 펼쳐진다. 질감은 세밀해지고 부피는 거대해졌다. 'United nations / End titles'에는 익숙한 악기인 부부젤라부터 풀라 플루트(Fula flute), 하프 코라(Kora) 같은 전통 악기들이 선명히 드러난다.
차일디시 감비노의 제작자이기도 한 괴란손은 힙합 프로듀서로서 힙합을 영화에 녹여내는 솜씨도 훌륭하다. 킬몽거가 왕좌를 차지한 순간 흘러나온 'Killmonger'는 음악과 인물이 가장 밀착한 순간이다. 둔탁한 808 드럼 비트는 거친 환경에서 난폭하게 성장한 킬몽거의 캐릭터와 무력으로 왕좌가 뒤바뀐 혼돈의 상황을 잡아낸다. 블랙뮤직 팬들이 원했을 빽빽한 랩이 장면에 녹아드는 부분은 예고편에서 더 잘 드러난다. 빈스 스테이플스의 'Bagbak' 비트를 쪼개거나 부산 광안대교를 질주할 때 'Opps'를 액션에 맞게 변주해 박진감을 높인 것은 괴란손 특유의 활용법이다. 그는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차일디시 감비노의 'Redbone'을 만들 때도 곡을 자르고 붙이며 평범함을 벗어나고자 했다고 말했다.
< 블랙 팬서 >의 감독 라이언 쿠글러와 음악 감독 괴란손의 호흡은 처음이 아니다. 둘은 이전 < 크리드 > (2015)에서도 적극적으로 힙합을 활용한 바 있다. 복서 영화 < 록키 >의 7번째 속편인 이 작품은 < 블랙 팬서 >와 마찬가지로 흑인 배우가 주인공이고 블랙 커뮤니티 소재로 채워졌다. 킬몽거 역할을 맡은 마이클 비 조던이 조연으로 함께 했다. 록키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러닝 씬은 젊은 흑인 감독 라이언 쿠글러의 손을 거쳐 새롭게 덧칠해진다. 그래피티로 장식된 거리나 바이크 라이더들, 노래로는 필라델피아 출신 래퍼 믹 밀의 'Lord knows'가 깔린다. 쿠글러와 괴란손은 유독 흑인 영화의 멋을 살리고 특화된 장면을 불어넣는데 재능이 있고 앞선 상영작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아 마블과 작업을 하게 된다.
후작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와칸다 랜드를 단단하고 입체적으로 구현한다. 기차를 사이에 두고 킬몽거와 블랙 팬서가 대결하는 클라이맥스에 쓰인 'The great mound battle'은 현악 연주와 아프리카 전통 악기, 808 드럼 비트가 섞인 대규모 스코어를 들려준다. 편곡을 가하는 과정에서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자 했다는 괴란손의 의도를 보여주듯 세 가지 소리가 이루는 균형이 흥미롭다. 부족 음악과 트렌디한 힙합을 섞어 만든 OST는 전통을 간직하면서 첨단 기술을 개발해나가는 국가의 특징과도 닮았다. 와칸다가 멋진 강국으로 그려진 데는 마블의 대규모 시각 효과의 공만 있지 않다. 성실히 담아낸 음악이 < 블랙 팬서 >의 독립적 색깔을 만드는 중요한 조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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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