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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이 된 노래

얼마 뒤 출시된 음반을 듣고 나는 정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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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무조건적인 신뢰가 있었다. 그것은 그가 70년대로부터 내놓은 음악들과 더불어 삶의 행보 속에 보여준 진정성에 대한 믿음이었다. (2018. 0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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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곰팡이

 

 

초유의 트로피 세일즈 퍼포먼스만이 기억에 남았지만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의 진짜 주인공은 분명 조동진이었다. 그의 음악처럼 조용히 세상에 던져진 6집 〈나무가 되어〉가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팝음반’ 두 부문을 수상한 것이다. 위원회에서 발표한 선정 이유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여기에 노장에 대한 예우 같은 의미가 끼어들 틈은 조금도 없다. 음악 그 자체만으로 〈나무가 되어〉는 2016년을 가장 빛낸 앨범이다. 여전히 깊은 노랫말이 있고, 20년 세월을 담은 목소리에는 그리움과 쓸쓸함과 허무함 모두가 배어 있다. 그리고 이 모두를 감싸는 놀라운 사운드 스케이프가 있다.”

 

반세기 동안 노래한 그는 누구보다 그 예우하지 않음이 반가웠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뮤지션에 대한 예우일 테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조용필, 나훈아와는 다른 의미의 거장인 그가 귀환했을 때 대중의 반응은 얼마나 미미했던가. 그의 오랜 팬들의 뜨거운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 아름다운 음반은 널리 알려지지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방치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수상의 의미는 값지다. 음악성을 유일한 선정의 기준으로 삼는 한국대중음악상의 가치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나는 이 음반의 출시 소식을 한 달쯤 전에 미리 알았다. 인터뷰를 위해 기타리스트 함춘호 형과 만나기로 했고 약속 장소인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로 갔다. 그곳에선 래퍼 ‘매드 크라운’의 신곡 기타 세션이 진행 중이었다. 녹음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맞은편 선반에 놓인 한 뭉치의 팸플릿을 발견했다. 조동진 6집 음반 소개 글이 적혀 있었다. 언론 배포용이었는데 상업적인 감각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산문집에서 발췌한 듯한 유려한 글이었다. ‘그의 목소리와 감성이 아직 그대로일까 하는 팬들에게 그는 더 깊어진 목소리로 그윽하게 답하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20년 만에 돌아온 칠순의 아티스트가 들려줄 노래가 어떤 모습일지 더욱 궁금했다.

 

과연 그에게서 ‘진눈깨비’의 풋풋함과 ‘나뭇잎 사이로’의 정갈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만년에 이른 여느 거장들의 노래처럼 실망만 하진 않을까. 어쩌면 그게 당연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조동진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무조건적인 신뢰가 있었다. 그것은 그가 70년대로부터 내놓은 음악들과 더불어 삶의 행보 속에 보여준 진정성에 대한 믿음이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헌신적인 음악 동지들이 있지 않은가.

 

(참고로 이날 내가 갔던 스튜디오 ‘Sound Solution’은 조동진이 설립한 90년대 전설적인 레이블 하나음악의 구성원들이 거점으로 마련한 공간이었다. 하나음악은 현재 ‘푸른곰팡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조동진 셀렉 (2).jpg

                                     푸른곰팡이

 

 

얼마 뒤 출시된 음반을 듣고 나는 정말로 놀랐다. 음반은 새로움으로 가득했다. 익숙함 속의 새로움이랄까. 전작인 ‘강의 노래’에서 예고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전면적 도입은 팸플릿에도 적혀 있듯이 ‘새롭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비로소 그의 음악이 이 시대의 언어를 빌어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만의 음색과 감성은 20년의 세월만큼 깊어졌고, 섬세하게 공을 들인 편곡과 사운드(사운드 디자인은 조동익이 맡았다.)는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특히 세 번째 트랙 〈섬 안의 섬〉에서 부유하는 소리들 사이로 조동진의 목소리가 흐르고 신석철의 드럼이 첼로의 선율과 부딪치며 내달리는 순간은 그야말로 황홀한 소리의 향연이 아닌가. ‘1970’의 자전적인 가사와 담백한 포크의 구성에선 ‘행복한 사람들’ ‘나뭇잎 사이로’ 같은 그의 옛 노래들이 떠올라 즐거웠다. 귀 기울이게 하고, 추억에 빠지게 하고, 명상에 잠기게 하는 노래들. 조동진이라는 세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한 걸음 널리 내딛고 있었다.

 

그해 가을 그의 공연 소식이 들려왔고, 얼마 뒤 암 투병 중이라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결국 공연은 열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을 위해 시간을 비워둔 사람들 중 누구도 불만을 표할 수 없었다. 부고를 듣던 날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뜻밖이었다기보다 믿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로 이미 예감하고 있던 일이기도 했다. 그의 노래 속에서 스스로 예고하고 있으므로.

 

‘나무가 되어’

 

나는 거기 다가갈 수 없으니/그대 너무 멀리 있지 않기를
나는 별빛 내린 나무가 되어/이전처럼 움직일 수가 없어

나는 다시 돌이킬 수 없으니/그대 너무 외면하지 않기를
나는 하늘 가린 나무가 되어/예전처럼 노래할 수도 없어

나무가 되어/나무가 되어/끝이 없는 그리움도/흙 속으로

나는 이제 따라갈 수 없으니/그대 홀로 떠나 갈 수 있기를
나는 비에 젖은 나무가 되어/예전처럼 외로움조차 없어

 

이렇게 그의 노래는 유언이 되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기도 했다.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는 설득하지도 채근하지도 않고 그저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다시 삶과 음악에 대해 생각하도록 이끈다. 그 의미를 헤아리고 뜻을 새기는 일은 남겨진 우리의 몫이겠다. 언더그라운드의 대부라는 수식처럼 그는 오랜 세월 동료들이 정신적, 물리적으로 기댈 수 있었던 나무가 되어주었다. 이제는 그를 기억하는 것으로 우리가 그의 곁을 지켜주어야 할 것이다. 제 15회 한국대중음악상이 열리는 2월의 어느 날, 나는 다시 그를 그리고 그의 음악을 떠올린다.


 

가수, 작곡가 조동진_ 1947년 서울 출생. 1967년 동두천 미8군에서 음악을 시작했고 록밴드 '쉐그린'에서 베이스 주자로, 세션 밴드인 '동방의 빛'에서 세컨 기타로 활동했다. 1979년 1집 앨범 〈조동진〉을 발표한 뒤 〈행복한 사람〉(1979), 〈나뭇잎 사이로〉(1980), 〈제비꽃〉(1985) 등의 서정적인 노래로 사랑을 받았다. 90년대 작가주의 음악의 본산인 하나음악을 설립하였고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의 대부로 불리게 된다. 1994년, 예술성을 인정받아 대중가수로서는 최초로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다. 2016년 6집 앨범 〈나무가 되어〉를 발표하였고 이듬해 늦여름 병환으로 영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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