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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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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인간에 관해 밝혀낸 것 중 가장 위대한 사실은 ‘모든 인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소수자’입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2018.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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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동성애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논의가 진행 중이고 수많은 문헌과 자료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두 가지만 얘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비난합니다. ‘생식을 위한 성교를 쾌락 추구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신의 뜻에 반한다’거나, ‘미풍양속을 해친다’거나, ‘에이즈 등의 질병을 옮긴다’는 것입니다.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동성애자가 이성을 사랑할 수도 있고 동성을 사랑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 동성을 사랑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동성애가 생물학적으로 정해지는 성향이라는 증거는 유전자 연구와 뇌스캔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결정적이냐 하는 점은 아직도 논란 중입니다. 다윈 이래 수많은 석학들이 진화의 증거를 제시해왔지만 아직도 미국인의 55%가 창조론을 믿는다는 허탈한 보고가 있습니다. 아마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다고 해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한다고 해도 선택은 개인의 몫이라고 주장할 사람이 여전히 있을 겁니다. 그러니 복잡한 과학 얘기를 하는 것보다 동성애자들의 체험담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닫게 된 순간을 회상합니다. 일관되게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다고들 하지요. 왜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을까요? 앞에서 말했듯 성적 정체성은 아주 어린 나이에 생기지만, 성적 지향은 사춘기 들어 생깁니다. 사춘기는 성숙한 나이는 아니지만 어린이도 아니지요. 동성애를 ‘선택’한다면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닥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나 이성애를 선택할 겁니다. 동성애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비난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눈이 작다거나 손가락 길이가 짧다고 비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긴 요즘은 ‘왜 얼굴 안 고치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둘째, 동성애는 성교 방식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동성애가 선택의 문제라고 해도 비난 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잖아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겁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동성애의 진실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즉흥적으로 만난 상대와 폭력적인 항문성교를 하여 신체가 손상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에이즈를 옮긴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항문성교-에이즈’란 식으로 도식화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선 이 도식에서 여성 동성애가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항문성교를 하지 않고 에이즈를 옮기지 않으면 괜찮은가요?

 

몇 년 전 일입니다. 캐나다에서 초등학교 7학년,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1학년이었던 막내가 저녁식사 중에 몹시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질성교, 항문성교, 구강성교(사실 이 부분은 영어로 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어려운 한국어까지는 몰랐죠.)를 다 해봤어요?”사레가 들어 캑캑거리다 물을 마시면서 보니 아내도 얼굴이 발개져 있더군요. 그런 걸 왜 묻느냐고 했더니 학교에서 성교육 시간에 사람의 정상적인 성교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배웠다며 엄마 아빠도 그렇게 하는지 궁금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서양에서는 항문성교도 사랑하는 사람끼리 정상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본다는 겁니다. 초등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칠 정도니까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거지요. 우리나라에서는 킨제이 보고서 같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인간의 성행동은 문화에 따른 차이를 걷어내고 나면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가 아니란 뜻입니다.

 

저는 캐나다에 삽니다. 캐나다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지요. 동성인 부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단정하게 털손질이 된 개를 끌고 둘이 손을 꼭 잡고 산책을 다니고, 같이 장도 보고, 이웃을 집으로 불러 맥주파티도 합니다. 집이 아주 깨끗하고 멋지게 꾸며져 있어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고, 역할을 분담하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상대방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이성인 부부와 똑같습니다. 인간의 성은 동물의 성과 약간 다르지요. 생식 목적 외에도 사랑을 전달하고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로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동성인 파트너끼리도 물론 성적인 방법으로 애정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성적인 방식 = 성기의 삽입이라는 도식에 빠져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기의 삽입을 하는 경우라면 정상적인 세 가지 방식 중에서 한 가지는 불가능하니 나머지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하겠지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성교를 하느냐는 기준으로 이성인 부부나 연인을 판단하지 않듯이, 동성인 부부나 연인도 그런 기준으로 판단할 이유는 없습니다.

 

즉흥적으로 만난 상대와 폭력적인 방법으로 성교를 해서 신체가 손상된다거나, 병이 옮는다거나 하는 문제는 본질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성 간의 성교도 즉흥적으로 만난 상대와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질 문제이자, 폭력과 범죄라는 차원에서 다룰 문제입니다. 에이즈가 초기에 난잡한 성교를 즐기는 남성 동성애자 사회를 중심으로 확산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에이즈가 동성애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닙니다. 에이즈의 기원은 매우 흥미롭고 복잡하여 한두 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1900년대 초 아프리카에서 유인원으로부터 사람에게로 종간전파된 것으로 봅니다. (에이즈의 기원에 관해서는 데이비드 콰먼의 책 『인수공통』을 권합니다. 에이즈는 혈액접촉이나 수직감염에 의해 전염됩니다. 항문성교는 질성교에 비해 작은 상처가 나기 쉬우므로 혈액접촉이 자주 일어납니다. 에이즈가 남성 동성애자 사회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된 이유입니다. 현재 에이즈는 환자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동성애 차원에서 논할 문제를 벗어났습니다. 동성애를 막는다고 에이즈가 줄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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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난잡한 성교는 동성애자에게든 이성애자에게든 모두 위험합니다. 동성애자들이 특별히 더 난잡한 성교를 한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즉흥적인 관계를 맺는 동성애자가 더 많을지 이성애자가 더 많을지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성 간의 성교에 의해서도 에이즈는 물론 다른 성병이 옮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보건적인 측면에서 논의하고 대처해야 할 문제입니다.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인정되어 자신에게 맞는 파트너를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두 가지 문제는 자연히 줄어들 겁니다.

 

작년에 아일랜드의 차기 수상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는 인도 이민자의 아들로 38세입니다. 또한 남성 동성애자입니다. 아일랜드는 다소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로 꼽히지요. 이민자의 아들, 38세,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이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봅니다. 동성애자가 행정부의 수반이 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노벨상 수상자 중에도, 아카데미상 수상자 중에도, 가장 탁월한 과학자, 기업인, 예술가, 법조인, 교수, 의사 중에도 동성애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편 군에 입대할 경우 동성애자로 처벌받을 것을 피해 난민 지위로 이민을 신청한 우리나라 남성을 캐나다 이민국에서 받아들였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우리는 어떤 규범을 세우고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하길 좋아합니다. 때로는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소수의 문제를 귀찮아하거나 무시합니다. 인류는 신체적 능력이 보잘것없는 동물이지요. 진화 과정에서 뭔가 낯선 상대를 만났을 때 싸워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를 즉시 결정해야 했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고, 친구와 적을 한눈에 판별하는 기술은 생존에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리니 인간이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버릇은 진화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민족은 식민열강의 지배를 받고, 수동적으로 해방을 맞고, 동족끼리 갈라져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 그 잿더미에서 불과 몇 십 년 만에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압축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 숨가쁜 과정에서 소수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무시되었습니다. 모순이 터져나오면 약자 중에서 희생자를 골라 얼토당토 않은 규범으로 단죄한 후 모순과 함께 묻어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모두 이런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세상은 변했습니다. 과학은 인간과 우주의 본 모습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계속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는 한두 가지 기준으로 판단해도 충분했지만 이제는 수많은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 기준을 맞추어야지, 기준에 사람을 맞추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사람 나고 기준 났지, 기준 나고 사람 난 것이 아닙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상,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을 부정하면서 어떤 기준에 맞아야만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면 법이든, 도덕이든, 미풍양속이든, 그 밖의 어떤 좋은 이름을 뒤집어 쓰더라도 폭력에 불과합니다.

 

왜 3살도 되기 전에 스스로를 타고난 성별과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엄마의 자궁 속에 있을 때 호르몬의 어떤 변화로 인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전적, 선천적인 부분이 있다는 거지요.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있다고 해도 무엇이 바람직한지 판단할 수는 없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현상이 분명 존재하고,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들도 나와 똑같이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어합니다. 그 과정이 특별히 어렵다면 따돌리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같이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도울 게 있다면 도와주면 됩니다. 세 편의 글에서 젠더에 관한 복잡한 용어들을 설명한 것은 개념을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인정의 첫걸음이니까요.

 

우리는 이제야 인간의 젠더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개념이 혼란스럽고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모르는 것은 섣불리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냥 모른다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과학이 인간에 관해 밝혀낸 것 중 가장 위대한 사실은 ‘모든 인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소수자’입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소수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있도록 서로 돕는 일은 자기 자신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과 닿아있습니다. 성소수자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생각해보면서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길을 찾기 바랍니다.

 

 

 


 

 

#성소수자_LGBT(Q)강병철, 백조연, 이주원, 효록, 오승재 저 | 알마
그들은 여전히 소수이며 여전히 사회적 약자다. 그리고 ‘소수(少數)’를 만드는 것은, 의식 속에서 소수를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내 옆에는 없는 무언가’로 규정짓는 다수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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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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