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오승원의 반딧불 의원
잠도 오지 않는 밤에
불면증에 대처하는 방법
잠을 자려고 애쓸수록 잠은 달아나기 마련입니다. 잠 못 자고 출근하면 피곤하고 힘들 텐데 하는 마음부터 버리고 그냥 누워서 눈 감고 쉰다고 생각하세요. (2018. 01. 10.)
언스플래쉬
최영호 씨는 눈을 뜨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디지털시계가 여섯 시 이십오 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시와 분을 나타내는 숫자 사이의 쌍점이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네 시쯤 시계를 본 뒤엔 설핏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두 시간 쯤은 잔 셈이다.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으면 좋으련만. 눈꺼풀은 무거운데 최영호 씨의 바람과는 달리 머릿속은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잠을 더 자긴 틀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차피 직원 퇴근 시간인 여덟 시에 맞추려면 지금 일어나야 했다.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의 칼질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시계가 규칙적인 기계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최영호 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알람을 껐다. 매번 뒤늦게 울리는 시계는 주인을 깨우는 본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지 오래였다. 어깨가 뻐근했다. 전날 재고를 정리하며 상품을 옮기느라 안쓰던 근육에 힘을 쓴 탓인 것 같았다. 최영호 씨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어깨를 주무르며 애꿎은 시계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개업식 날 선물로 들어온 납작한 상자 모양의 나무 색깔 시계는 요즘 추세에 맞게 라디오와 블루투스 스피커 역할까지 할 수 있는 다용도 제품이었다. 상판에는 개업식 날짜와 함께 “화니프라자 번영회 회원 일동”이라는 검정색 궁서체 글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최영호 씨가 편의점을 차린 것은 일 년 반 전이었다. 십오 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는 데는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재취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퇴직금 오천만 원으로 가능한 선택지 역시 많지 않았다. 자영업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고 퇴직 후 식당이나 술집 등을 차렸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가게를 접는 지인들도 종종 보았던 터였다. 택배 기사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에도 택배 박스를 내려놓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들을 떠올리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차일피일하다 한 달이 훌쩍 지났고 그는 점점 초조해졌다. 문득 편의점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어느 날 담배를 사기 위해 집 근처 단골 편의점에 들렀을 때였다.
일단 결정하고 나니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안정적인 수입을 낼 수 있을 겁니다.” 본사의 가맹 상담 직원은 자신 있는 말투로 ‘안정적’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편의점을 내기 위해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퇴직금만큼의 돈이 필요했고, 최영호 씨는 왜 길거리에 편의점이 이렇게 많아졌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업이 가까워지면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은 거의 바닥나 있었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확인할 때면 허무함과 함께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빚 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편의점을 찾는 손님은 꽤 많았다. 두 달이 지난 뒤엔 단골도 제법 생겼다. 물건은 꾸준히 팔렸고 매출도 늘었지만 수입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본사에 내야 하는 수수료 외에 임대료, 아르바이트 직원의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제외하면 월말에 통장에 남는 돈은 삼백 만 원이 채 안 되었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세 달 째부터는 야간에 일하는 아르바이트 직원을 한 명 줄였다. 대신 일주일에 이틀은 최영호 씨가 야간에도 매장을 지켜야 했다. 밤샘 근무 다음 날 아침은 아내에게 매장을 맡겼다가 오후 세 시쯤 다시 출근했다. 밤새 몰려오는 졸음을 쫓으며 만 하루의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면 몸은 파김치가 되었지만 막상 오랜 시간 잠을 이루진 못했다. 그래도 다시 편의점에 나가 일을 하려면 수면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야 했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급히 침실의 두꺼운 커튼을 닫고 침대에 올라가 수면 안대와 귀마개를 착용한 뒤 돌진하듯 잠을 청하곤 했다.
월말 통장 잔고는 이전보다 늘었지만 최영호 씨의 다크서클은 심해졌다. 원래 작은 체형인데다가 체중이 오 킬로그램이나 줄어 비쩍 마른 몸이 되었다. 보다 못한 아내의 권유로 병원을 찾은 게 삼 개월 전이었고, 의사는 그에게 당뇨병 진단을 내렸다. 최영호 씨는 고민 끝에 다시 야간 아르바이트 직원을 늘리기로 했다. 당뇨병이 올 정도로 나빠진 건강이 밤새 일하는 걸 버텨주긴 힘들 것 같았다. 매일 아침 여덟 시에 출근하고 저녁 여섯 시에 퇴근하는 규칙적인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수입은 다시 줄어들겠지만 밤낮이 바뀌어 생체 리듬이 뒤죽박죽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최영호 씨는 퇴근 후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이라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불면증이 심해진 것은 야간 근무를 그만둔 이후부터였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면 금방이라도 졸음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학원에서 돌아올 아이들과 얼굴이라도 맞대려면 피곤함을 참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에 침대에 눕는 순간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숙면에 좋다는 따뜻한 우유도 마셔보고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재미없는 책도 읽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뇨병 진단을 받은 뒤엔 밤 아홉 시쯤 나가 삼십 분쯤 속보로 걷곤 했는데, 몸이 피곤해지면 잠이 잘 올 것 같아서 운동장을 뛰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뜀박질한 날에도 불면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옆에 누운 아내의 숨소리를 들으며 침대 안에서 뒤척거리다 보면 매번 새벽 한두 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였고, 그럴 때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케이블 심야 영화 채널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취침과 기상 시간이 자로 잰 듯 일정했다. 열한 시부터 아침 여섯 시까지, 어디서든 베개에 머리를 대면 금새 잠이 들었고 중간에 깨는 일도 없었다. 불면증으로 병원에 다닌다는 동료들의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긴 퇴직을 하기 전엔 내 사업을 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도 미처 몰랐었다. 다음 달엔 근처에 편의점이 하나 더 생긴다고 했다. 고만고만한 규모의 비슷한 매장이라 매출에 타격을 입을 것은 뻔했다. 내년부턴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하는데 늘어날 인건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도 걱정이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했지만 그 부담을 자신과 같은 영세 업주가 모두 지게 되는 것 같아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꿈쩍도 하지 않는 본사 수수료와 매년 꼬박꼬박 오르는 건물 임대료도 원망스러웠다. 불면증이 심해진 건 어쩌면 스트레스 때문인지도 몰랐다.
“혈당이 지난 달보다 올랐네요. 약은 잘 드신 것 같은데, 그동안 다른 변화가 있었나요?”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던 의사의 질문에 최영호 씨는 무거운 눈꺼풀에 힘을 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당뇨병을 진단받은 뒤론 한 달에 한 번씩 같은 건물 3층의 반딧불 의원을 찾고 있었다. 치료를 시작하고 지난번까진 혈당 수치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빠졌던 체중도 절반 정도는 회복한 상태였다. 그런데 오늘 검사 결과는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아뇨. 큰 변화는 없었어요.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단지… 요즘 잠을 통 못 자서 피곤해요.”
“야간 근무는 그만두셨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당뇨병이 생긴 뒤부턴 밤일은 안해요. 그런데도 그 뒤로 잠은 더 못 자니 미칠 노릇입니다.”
“보통 몇 시쯤 주무십니까.”
“열한 시요. 그런데 매번 한 시, 두 시가 넘어야 잠이 들어요. 중간에 깨는 경우도 많구요. 아침 여섯 시 반엔 일어나야 제시간에 출근을 합니다. 네 시간쯤 자면 많이 자는 날이에요. 몸은 피곤한데 밤에는 머리가 말똥말똥해지고, 일을 해야하는 낮에는 오히려 머리가 멍하고 졸음이 와서 커피라도 찐하게 마셔야 버틸 수 있어요.”
“침대에서 잠이 안 오면 어떻게 하시나요?”
“방법이 있나요. 뒤척뒤척하는 거죠. 잠이 안 올 때 침대에 오래 누워 있는 것도 불면증엔 안 좋다고 해서 요즘은 거실에 나가서 티비를 봐요. 그러다 운 좋게 소파에서 잠이 들기도 합니다. 자기 전에 따뜻한 우유를 마시는 게 좋다고 해서 그렇게도 해봤어요. 대추차나 허브차도 마셔봤습니다. 밤에 격한 운동을 해서 일부러 몸을 피곤하게도 해봤고요. 그런데 효과가 전혀 없었어요.”
최영호 씨는 우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새 눈 밑 다크서클이 손가락 한 마디 쯤은 더 깊어진 것 같았다.
“불면증이 생기기 전에는 잠을 못 잔다는 게 이렇게 괴로운 건지 몰랐습니다. 해가 기울어가면 밤이 되는 게 무섭습니다. 몇 시간 동안 침대에서 뒤척일 생각을 하면 괴롭기만 해요. 원장님,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요?”
“못 먹어서 죽는 사람은 있지만 못 자서 죽는 사람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의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심각한 환자를 앞에 두고 농담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의사의 표정은 진지해 보였다.
“잠 못 자는 걸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잠을 못 잔 날은 다음 날 몸이 너무 힘들어요. 얼마 전엔 카운터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손님이 들어와 계산 안 한 물건을 그냥 가지고 나가는 것도 몰랐습니다. 어떻게든 밤에 잠을 자야 이런 일이 안 생기죠.”
“잠을 자려고 애쓸수록 잠은 달아나기 마련입니다. 잠 못 자고 출근하면 피곤하고 힘들 텐데 하는 마음부터 버리고 그냥 누워서 눈 감고 쉰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다 보면 또 잠깐 잠들 수도 있죠.”
최영호 씨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천천히 끔뻑거렸다. 의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저도 늘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 눕습니다. 저는 최 사장님보다 더 늦게 자거든요.”
그는 이곳이 밤에만 여는 병원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앞에 있는 까칠한 얼굴의 의사도 잠을 푹 잘 것 같지는 않았다. 마음이 약간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수면제를 처방해 드릴게요. 효과가 있을 겁니다. 대신 오래 쓰진 않을 거예요. 원래의 수면 리듬을 찾으면 줄여보도록 하지요. 다음 날 어지럽거나 졸림이 심하면 다음에 오셨을 때 알려주세요.”
“그래 까짓것, 잠 못 자서 죽는 사람 없고 잠 못 자면 다음 날 너무 힘들겠지만 어쩔 수 없지, 오늘 밤엔 이렇게 생각해보죠, 뭐.”
체념한 듯 고분고분한 말투로 대답하는 최영호 씨에게 의사는 한마디 더 당부했다.
“점심 먹은 뒤부턴 커피는 절대 드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낮에 손님 없을 때는 가게 안에만 계시지 말고 앞에 나가서 햇볕 쬐세요. 햇볕은 최고의 수면제이거든요.”
불면증은 심한 스트레스와 같은 유발 인자에 노출될 때 흔히 생길 수 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다거나 실연, 가족의 사망 등을 겪은 직후 일시적으로 잠이 안 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원인이 되었던 사건이 해결되거나 시간이 지나면 불면증도 좋아지지만, 수면장애에 취약한 유전적 요인, 잘못된 수면 습관, 불규칙한 수면 스케줄 등으로 인해 만성화될 수 있다. 또한 불면에 대한 걱정으로 지나친 각성 상태가 되는 것, 잠을 더 자기 위한 방어 행동(잠이 안 와도 누워 있는 것, 더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 등)도 만성 불면증의 원인이 된다.
수면제는 망가진 수면 패턴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정해 짧게 복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흔히 쓰는 졸피뎀(zolpidem) 성분을 비롯한 모든 수면제는 장기 복용 시 의존이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 사용해야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적절한 인지행동요법이 수면제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대표적인 것이 자극조절치료다. (1) 졸릴 때만 잠자리로 가라, (2) 잠이 안 올 경우 침대에서 나와 다른 방으로 가고 잠이 바로 올 것 같은 경우에만 침대로 돌아가라, (3) 침대에선 수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 활동을 피하라(텔레비전이나 휴대폰을 보지 말 것, 일을 하거나 문제 해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등), (4) 전날 밤의 수면 양에 상관없이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라, (5) 낮잠을 피하라 등이 주된 내용이다.
인지행동요법이 효과를 나타내려면 대개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꾸준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수면 위생도 중요하다. 늦은 시간의 흡연이나 카페인 섭취를 피하는 것이 그 예다. 그 외에도 낮 시간의 적절한 운동은 수면 유도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잠자기 직전의 과도한 운동은 오히려 각성 상태를 일으켜 불면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 Cho YW, Shin WC, Yun CH, Hong SB, Kim J, Earley CJ, Epidemiology of insomnia in korean adults: prevalence and associated factors, J Clin Neurol, 2009 Mar; 5(1): 20~23.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에세이 <반딧불 의원>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