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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과 보약을 꼭 먹어야 하나

결핍증이 없는 상태에서 비타민을 복용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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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비타민은 만들기 쉽습니다. 원가는 미미한 수준입니다. 의약품과 달리 규제도 거의 받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먹어주기만 한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심리를 파고듭니다. 하나는 “완벽”이고, 또 하나는 “불안”입니다. (2018. 0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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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비타민이 무조건 건강에 이로운 것은 아닐 수 있다

 

“현대인의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고려할 때 비타민 결핍증은 피할 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비타민제만큼은 챙겨 먹어야 한다.”

 

“아이가 과일이나 채소를 잘 안 먹고, 입이 짧아요. 학교에서 바로 학원으로 가니까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그러니 비타민과 홍삼정이라도 먹여야 안심이 되죠.”

 

비타민은 건강의 대명사입니다. 음식에 들어있는 미량의 영양소가 부족하면 질병이 생긴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졌습니다. 콜럼버스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지요. 신대륙을 찾아 긴 항해를 하던 중 선원들 사이에 정체불명의 출혈병이 돕니다. 잇몸과 점막에서 멈추지 않고 피가 흐르다 결국 죽고 마는 사람이 늘어나자, 콜럼버스는 병에 걸린 선원들을 작은 섬에 내려놓습니다. 죽더라도 땅 위에서 죽으라는 배려였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섬에 들른 콜럼버스는 깜짝 놀랍니다. 선원들이 아주 건강하게 살아 있었던 거죠. 나중에야 선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출혈병이 비타민 C 결핍증, 즉 괴혈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비타민 C는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과일이나 채소, 우유 등을 통해 섭취해야 하는데 오랜 항해 중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섭취하지 못해 병에 걸린 거죠. 섬에 내려놓은 선원들은 굶어 죽지 않으려고 야생 열매나 과일 같은 걸 따 먹다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비타민 C를 섭취하여 괴혈병이 나은 거고요.

 

점차 비타민이 부족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밝혀집니다. 비타민 A가 결핍되면 야맹증, 비타민 B1이 부족하면 각기병, 비타민 D는 구루병, 이런 식으로 교과서에도 실렸지요. 비타민vitamin이란 단어 자체가 생명을 뜻하는 vita-와 유기화합물을 뜻하는 -amine이란 말이 결합된 겁니다. 생활이 풍요로워지고, 먹을 것이 풍족해지면서 기아에 시달리는 나라를 제외하고는 비타민 부족증이 거의 없어졌지만 “생명의 화합물”이란 고정관념은 끈질기게 살아남지요. 20세기 들어 비타민의 분자 구조와 합성법이 속속 밝혀지면서 결국 실험실에서 대량합성이 가능해집니다. 비타민 판매가 하나의 산업이 되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비타민을 챙겨 먹게 되었죠.

 

2007년 덴마크에서 비타민에 관한 논문을 메타분석했습니다. 메타분석이란 수많은 논문의 데이터를 모아 재분석하는 방법입니다. 표본 크기가 커지기 때문에 오차가 줄고 검정력이 향상됩니다. 이 연구는 68편의 논문에 포함된 피험자 숫자가 무려 23만 명에 이르러 상당히 신빙성이 있지요. 충격적인 것은 연구 결과 비타민제는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망률을 높였다는 겁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계속 보고됩니다.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비타민이 무조건 건강에 이로운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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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완벽한 식단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요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결핍증이 없는 상태에서 비타민을 복용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될까요? 아프리카 등 기아에 시달리는 지역에서는 비타민 결핍으로 실명하거나 사망하는 어린이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비타민 결핍증이 있을 때 비타민을 투여해야 한다는 데는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의학적으로도 임산부, 만성 소화흡수장애 환자, 채식주의자 등에게는 비타민 보충을 권합니다. 그러나 먹고 살 만한, 심지어 비만을 걱정하는 나라에서 따로 비타민제를 먹어야 할까요? 대부분의 의사나 영양학자들은 부정적입니다. 모자라면 보충해줘야 하지만 모자라지 않는데 더 먹는다고 특별한 이익을 보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지만, 이미 밥을 먹어 배가 부른데 또 밥을 먹으면 배탈이 나겠지요?

 

둘째, 비타민제가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비타민과 같은 효과를 발휘할까요? 코펜하겐 연구는 합성비타민제를 통해 섭취하는 비타민이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것과는 다르며,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 논문을 100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상식과 일치하는 것 같지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영양을 섭취하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는 음식을 눈으로 보고, 입 안에서 맛과 향기와 질감을 느끼고, 배고픔과 포만감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다양한 맛과 색깔과 질감의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 자체가 인생공부예요.

 

합성비타민은 만들기 쉽습니다. 원가는 미미한 수준입니다. 의약품과 달리 규제도 거의 받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먹어주기만 한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심리를 파고듭니다. 하나는 “완벽”이고, 또 하나는 “불안”입니다. 완벽과 불안은 반대말 같지만 사실 하나입니다. 우리는 항상 바쁩니다. 뭔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에 시달리죠. 그래서 “불안”합니다. 눈코 뜰새 없이 사는 와중에 온갖 매체를 통해 나와 비슷하게 살던 사람이 어느 날 암에 걸려 허무하게 죽었다든지,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자살했다든지, 겨우 먹고 살게 됐는데 정신 차려보니 아이가 영 비뚤어져 버렸다는지 하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과 함께 챙길 수 있는 건 모두 챙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완벽”하고 싶은 거죠.

 

비타민 업계는 계속 불안과 완벽을 부추깁니다. “하루 요구량이 얼만데 이걸 채우려면 귤은 40개, 사과는 20알… 너 이거 다 먹을 수 있니? 안 되지? 아침은 대충 때우고, 점심은 햄버거, 저녁은 삼겹살에 소주나 먹잖아… 아이들은 어때? 뭘 먹는 지나 챙겨 봤어? 하지만 걱정 마. 이거 한 알이면 충분하거든….” 이런 식이지요.

 

비타민 업계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세계적으로 연 매출 27조 원, 우리나라도 약 300억~700억 원 규모로 추산합니다. 그 정도 돈이면 못할 일이 있을까요?

 

옆집 엄마는 비타민 젤리도 먹이고, 홍삼 캔디도 먹이고, 짜먹는 녹용도 먹여요. 다들 하는데 나만 하지 않자니 불안합니다. 이럴 때 중심을 잡으려면 현명함과 용기가 필요하죠. 진실을 파악하는 요령은 아주 간단합니다. 뭔가를 파는 쪽, 이익을 보는 쪽의 말을 훨씬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신문이든 TV든 뭔가를 사지 말라고, 어떤 치료를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의 말을 일단 옳다고 믿으세요. 적어도 어떤 이익을 노리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혹시라도 비타민을, 홍삼을, 녹용을 먹이지 않아 우리 아이가 뭔가 손해를 보면 어쩌죠? 걱정 마세요. 그것 하나로 세상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덕분에 그런 사소한 일에 시시콜콜 신경을 쓰지 않는 대범함과 느긋한 태도를 배웠다고 생각합시다.

 

‘완벽’하다는 건 뭘까요? 완벽한 식단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요? ‘완벽’이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정해두고 ‘당신은 이게 부족하고, 이것도 필요하고…’ 식으로 따진다면 비타민제가 필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비타민뿐입니까? 산삼도 필요하고 녹용도 필요하지요.

 

저는 엄마들에게 비타민을 먹일 정성으로 이것저것 다양한 식품을 먹여보고, 균형 잡힌 식단을 고민해보라고 권합니다. 이유기의 아이라면 이런 노력을 통해 편식하지 않는 습관을 들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큰 아이라면 시장에도 데려가고, 먹고 싶은 것을 직접 고르게도 해보세요. 요리할 때 참여시키는 것도 편식을 바로잡는 데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들은 자기 손으로 고른 것,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은 먹고 싶어하거든요.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편리하게 비타민제를 먹이면서 엄마 스스로 마음을 놓고 이런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려면, 자신의 건강을 지키려면 관심과 노력과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관심을 기울일 시간을 아껴 성공에 쏟아 붓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입니다. 사람을 돈으로 키울 수는 없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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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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