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승현 “파페와 포포를 기억하는 방법”
『사랑까지 딱 한 걸음』 펴내 5년 만에 다시 시작된 파페포포 이야기
어렸을 때 좋아했던 사람을 나중에 커서 만나게 될 경우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둘의 뒷이야기는 직접 확인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 담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게 우리가 파페와 포포를 기억하는 방법 같아요. (2018. 01. 04.)
파페와 포포를 만난 지도 15년이 훌쩍 지났다. 2002년 『파페포포 메모리즈』로 시작된 둘의 이야기는 『파페포포 투게더』, 『파페포포 안단테』, 『파페포포 레인보우』, 『파페포포 기다려』로 이어졌다. 아직은 사랑에 서투른 모습, 그래서 더 풋풋하고 담백했던 파페와 포포의 마음은 400만 독자를 사로잡았다. 파페포포 시리즈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고, 그들의 추억 안에서 함께 자랐다. 가끔씩 두 사람을 떠올릴 때면 ‘지금쯤 파페와 포포는 어떤 모습일까? 조금은 사랑을 알게 됐으려나?’ 궁금해지곤 했다.
한동안 뜸했던 소식이 다시 들려온 건 지난 11월이었다. 5년 만에 재회한 파페와 포포. 두 사람의 새로운 이야기에는 『사랑까지 딱 한 걸음』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부제는 ‘여전히 사랑이 어려운 나와 당신에게’다. 사랑이라는 게 여전히 달콤쌉싸름하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건, 파페와 포포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말한다. “언제나, 영원히 사랑할 순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사랑할 순 있다”
모든 순간마다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파페포포 시리즈’는 2~3년 간격으로 찾아왔었어요. 『사랑까지 딱 한 걸음』은 5년 만에 출간됐는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5년 동안 이 책만 쓴 건 아니에요.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파페포포 애니메이션이 방송됐거든요. 『파페포포 기다려』가 2012년에 나오고, 이후 2년 동안 애니메이션 기획에 참여했어요. 시놉시스를 쓰고 캐릭터를 그리고 배경, 색감, 음악 등을 기획했어요. 프리 프로덕션을 맡게 된 거죠. 애니메이션은 SBS에서 방영됐는데 평일 오후 4시에 편성이 됐어요. 그래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그 작업이 끝난 후에 『사랑까지 딱 한 걸음』을 쓰기 시작해서, 2015년부터 2년 정도 준비했어요. 그러고 보면 2년이나 3년에 한 번씩 책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이번 책의 제목에는 ‘파페포포’가 빠져있어요.
출판사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새롭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시리즈가 시작된 지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파페포포 앞에는 항상 ‘추억’이라는 수식어가 붙고는 하잖아요. 그래서 이번 책에서는 과감하게 제목에 파페포포를 넣지 않기로 한 것 같더라고요.
리부트(reboot) 인가요?
그렇죠. 하지만 표지에 그려진 캐릭터가 포포라는 건 많은 분들이 알기 때문에, 굳이 파페포포를 제목에 넣지 않아도 아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책의 부제는 직접 지으셨나요?
아뇨, 편집자 분이 지어주셨어요. 제목도 마찬가지인데요. 제가 마음에 드는 걸 고를 수 있도록 리스트를 만들어 주셨어요. 그 중에서 『사랑까지 딱 한 걸음』이라는 제목과 ‘여전히 사랑이 어려운 나와 당신에게’라는 부제가 좋아서 고른 거죠.
부제에 공감하세요? 여전히 사랑이 어렵다고 느끼세요?
네. 20대에는 연인의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모든 것을 통틀어서 봤을 때, 사랑이란 모든 것에 다 들어있더라고요. 프롤로그에 썼듯이 “인생을 잘 견디며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삶의 모든 순간마다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던 건 삶의 곳곳에 사랑이 숨어있었기 때문에, 그게 힘이 된 것 같아요. 너무나 흔한 사랑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책을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전작들과는 스타일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지금까지 파페포포는 여백이 많고 짧은 글이 실려 있었는데요. 의도적으로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추억의 파페포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림도 많이 넣었고요. 색감에 있어서도 예전에는 약간 무채색이었는데 조금 더 다채롭게 넣고 싶었어요. 삽화 같은 느낌의 그림들도 많이 싣고요. 그런데 영화 포스터나 사람 얼굴 같은 경우에는 저작권 문제로 빠진 부분도 있어요. 그런 건 그림으로 대체했죠.
『파페포포 기다려』에서도 사진과 그림의 결합을 시도하셨어요. 레고를 활용하셨었죠?
네. 그때는 레고 코리아에 직접 문의해서 허락을 받았어요. 이번 책에는 찰스 디킨스의 사진이나 영화 <그녀에게> 포스터를 싣고 싶었는데, 외국 저작권이다 보니까 승인을 받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걸로 대체하는 방법을 썼어요.
직접 서점을 찾아 다니면서 사인회를 진행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서점에 들러서 『사랑까지 딱 한 걸음』을 보고 계신 분께 그림 사인을 해드렸는데요. 의도한 바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공식적인 사인회를 따로 마련할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서점에서 제 책을 구입하시는 분들에게 사인본을 선물하고 싶었던 거예요. 2주 정도 시간을 두고 5군데 서점에 가서 사인을 하고 왔는데요. 처음에는 서점 관계자 분들께 말씀을 드렸어요. 책에 사인을 하면 어떻겠냐고.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사인한 책을 매대에 올려놓는 것만 하려고 했는데, 마침 책을 보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셨어요. 그래서 이 책을 구입하시면 제가 직접 사인을 해드린다고 말씀드렸던 거죠.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파페포포를 모르는 분도 계셨어요. 한 아주머니께서 아들을 위해서 책을 고르고 계셨는데 『사랑까지 딱 한 걸음』을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가가서 권유를 했었죠. 또 어떤 분은, 그 분도 파페포포를 모르셨는데, 친구한테 메시지를 보내서 파페포포를 아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런데 친구 분이 안다고 하시면서, 자신도 책에 사인을 받아달라고 하셔가지고, 그때 2권인가 3권을 사인해드렸던 기억이 있어요. 직접 독자 분들을 만나면서 인연이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랑까지 딱 한 걸음』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소심한 파페에게 포포가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 있다’고 말해요. 저도 이번 경험을 통해서 내가 문을 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열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찾아가는 사인회’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시작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지금까지 소통하는 데 있어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파페포포가 활성화 됐을 때는 카페 회원이 12만 명 정도 있었거든요. 그때는 자연스럽게 생각됐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 분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이었는지 느끼게 된 거죠. 그래서 제가 소통에 조금 더 적극적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화가나 창작자들에게는 잘 그린 그림과 잘 쓴 글도 중요하지만, 독자들의 공감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통해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부족하니까 제가 직접 가게 된 거죠. 다른 이유는 없었고요.
파페포포의 인기,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작가님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더라고요. 요청을 많이 받으셨을 텐데, 거절하셨던 건가요?
쑥스러워서 많이 거절했었어요. 창피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 자신을 보이는 것보다 파페포포 캐릭터를 많이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파페포포가 JTS(기아, 질병, 문맹 퇴치 비영리단체), 구로구 홍보대사도 하고 있는데요. 그게 곧 저이기 때문에 앞에 나서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원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으셨어요?
네, 20대에 군대에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했었어요. 결론은 글과 그림이었고, 관련된 일이 어떤 게 있을까 찾았었죠. 그때 친구 중에 한 명이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니면서 꿈이 생긴 거죠. 그런데 당시에는 하청 업체가 대부분이었거든요.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드는 게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의 작품을 받아와서 그림만 그리는 작업을 했던 거예요. 창작적인 부분은 전무하고요. 저도 그 작업을 했는데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창작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이었고,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게 이야기와 콘티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그때 짬짬이 그린 이야기들이 모여서 파페포포가 됐어요. 그런데 애니메이션화 되지는 않았고요. 2001년에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한 권의 책을 만들어주는 공모전이 있었는데, 거기에 당선이 되면서 파페포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거죠.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를 하기도 하셨잖아요.
그 이후의 일이에요. 먼저 다음에 카페를 개설했고요.
카페는 직접 만드신 거였군요.
네.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만든 거였어요. 처음에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더니 아무도 안 받아주더라고요. 그래서 카페를 개설한 뒤에 사람들의 반응을 보자고 생각했죠. 그런데 카페를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거예요.
공모전에 당선된 후에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셨던 거예요?
출간 제의를 했었죠. 공모전에 당선됐다고 해서 책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었거든요. 책을 만들 수 있는 천만 원의 비용을 주는 거였어요.
출간 제의를 거절당하신 적도 있나요?
그렇죠. 그때는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만화가 단행본으로 나오는 게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때였어요.
만화 잡지에 연재되다가 완결된 작품들이 단행본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소장용이라고 할까요.
맞아요. 그런데 저는 만화 잡지에 연재를 했던 것도 아니고, 알려진 작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다 거절했었어요. 당시에는 만화 출판사에서만 단행본으로 만화책을 내기도 했고요. 결국은 다음 카페가 활성화 되면서 홍익출판사에서 책을 내게 됐고, 인터넷에서 파페포포를 보시던 분들이 직접 책을 구매하는 독자층이 됐죠.
처음 카페에 연재하실 때는 웹툰이 생기기 전이었죠. 이후에는 웹툰 연재 제안도 받으셨나요?
제안은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웹툰에 적응하기가 조금 힘들더라고요. 카페에 연재를 해보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스케줄에 맞추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저에게는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그때가 『파페포포 메모리즈』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은 상태였거든요. 완전히 기가 다 소멸된 상태에서 다시 연재를 하려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책이 한 권씩 나올 때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해야 된다는 것도 스트레스였고요. 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몸이 굉장히 안 좋아졌었어요. 지금은 건강해졌는데 당시에는 압박감이 심했죠.
파페포포 시리즈가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났잖아요. 작가님에게는 가장 달콤하고 즐거운 시기였을 것 같은데, 스트레스가 크셨군요.
저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어요. 책이 큰 인기를 얻었고 많이 판매됐지만, 저한테는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부담감이 너무 컸나요?
네, 제 능력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걸 감당해내기가 되게 힘들더라고요.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까’라는 불안감도 있으셨어요?
그렇죠. 그랬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죠
파페포포 시리즈가 세운 기록들이 있죠. 『파페포포 안단테』는 『남한산성』, 『향수』를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기도 했어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몇 달간 계속 1위를 한 책으로 출판인협회에서 뽑은 적도 있었어요. 군부대에 파페포포가 배포되고, 초등학교 학급도서로 비치되기도 했고요.
카페를 가도 마찬가지였어요. 대부분 책꽂이에 파페포포가 꽂혀 있었죠. 그렇게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처음 파페포포를 만들었을 때는,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을 담았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 안에 있지만 끄집어내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이 공감하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초등학생부터 군 장병까지,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죠. 그게 인기의 한 요소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20대 초반 여성을 목표로 썼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리트머스처럼 퍼져서, 초등학생부터 40대 아저씨까지 다 보게 된 것 같아요. 책에 실린 에피소드 중에서 적어도 하나씩은 공감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파페’, ‘포포’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캐릭터를 만들려고 할 때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를 봤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ㅍ’ 어감이 좋아서 파페랑 포포라는 이름을 지었죠. 파페는 남자 주인공, 포포는 여자 주인공으로요. 파페는 저랑 비슷한 느낌의 캐릭터고요. 포포는 제가 스무 살 때 짝사랑했던 친구를 상상해서 그린 거예요. 보통 대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파마를 하잖아요. 그 친구가 그런 모습이었거든요. 처음에는 파페와 포포의 사랑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점점 넓어져서 부모님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세상의 모든 사랑 이야기를 담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책에 그런 부분이 많이 표현된 것 같고요.
시리즈가 이어지는 동안 작가님에게도 변화가 있었죠. 20대 청년이 가장이 되기도 했고요. 그런 모습들이 반영된 것 아닐까요?
그런 것 같아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첫째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있었던 일도 실려 있고요.
「나는 보았지」라는 제목의 에피소드죠? ‘정우’와 ‘수지’의 이야기가 너무 귀여웠어요.
네, 그때 제가 느낀 감정들이 들어간 거죠.
‘정우’가 첫째 아드님이죠?
맞아요. 둘째 연우의 이야기도 있어요. 「기특하다는 말」에 보면 숫자 5를 뒤집어서 쓰는 이야기가 나와요. 첫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고 둘째는 1학년인데요. 둘째는 한창 인간관계를 넓힐 때라, 친구들하고 노느라 정신 없이 바쁘더라고요.
부모님께 받았던 사랑에 대한 생각도 담겨 있어요. 직접 부모가 되어 보니 알게 된 것일까요?
지금까지 파페포포 이야기가 다섯 권이 나왔는데,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쑥스러운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 어렸을 때 남한테 놀림 받았던 이야기들인데요. 그런 것들이 이 책에는 있어요. 전에는 ‘이 이야기는 안 쓸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보니까 창피해서 숨기려고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예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들만 했죠. 그런데 이번 책에는 아버지의 직업과 한때 그걸 창피해했던 일, 저의 원래 이름, 어머니께서 지어주신 이름,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의 근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야기하고 나니까 편하더라고요.
파페와 포포를 기억하는 방법
파페포포 시리즈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새로운 캐릭터와 주제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은 없으세요?
써놓은 시놉시스가 몇 개 있는데요. 파페포포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예요.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게 파페포포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서서히 해야 될 시기인 것 같더라고요. 한 가지 예를 들면 ‘클리너’라는 시놉이 있어요. 이 세상에는 인간과 인간을 잡아먹는 존재가 있다는 설정으로, 그 존재를 파헤치는 클리너가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인데요. 자극적인 19금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독자들이 파페포포와 작가님에게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것과 전혀 다른 작품을 보여주셨을 때 반응이 어떨지, 걱정이 되기도 하시겠어요.
네, 그래서 필명으로 써야 되나 생각도 들고요(웃음).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그룹의 이름으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저 혼자 작업했는데, 앞으로는 협업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스토리창작센터’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창작자들을 위해서 제공해주는 작업실이에요. 저 같은 만화가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의 스토리 작업을 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협업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요. 거기에서 공동 작업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파페포포 기다려』에는 '파페포포 10주년 기념 베스트 컬렉션'이 실려 있어요. 전작들을 대표하는 에피소드를 꼽으셨는데요. 『사랑까지 딱 한 걸음』의 베스트 에피소드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세 개 정도가 있는데요. 하나는 「낚시 대회」고요.
아버님과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에피소드죠?
네, 그 작품 같은 경우는 제가 정말 창피해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예요. 아버님이 노동일을 하셨는데, 항상 까만 얼굴을 하고 계신 모습을 보면서 어렸을 때 느꼈던 것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커서 아이가 생겼잖아요. 제 아이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은 나를 어떤 모습으로 바라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 아버님은 대어를 낚는 훌륭한 낚시꾼은 아니셨지만, 지금 아버님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계신 것 자체로 저한테 큰 위로와 희망이 되어주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낚시 대회」 이야기를 그리면서 가장 좋았고요. 두 번째 에피소드는 「세자리아 에보라」예요. 세자리아 에보라는 제3세계 음악을 하는 가수예요. 영화 <위대한 유산>의 OST를 통해서 알게 됐는데, 굉장히 좋아하는 가수예요.
이 에피소드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2011년에 세자리아 에보라가 죽었는데요. 세자리아 에보라는 아주 험난한 삶을 살았는데, 결국 노래를 통해서 자신의 힘들었던 삶을 노래했어요. 저도 힘든 삶을 살았지만, 세자리아 에보라에게 음악이 있었다면 저에게는 만화가 있는 거겠죠. 그런 점에서 세자리아 에보라를 되게 좋아했어요.
마지막으로 꼽으신 에피소드는 뭔가요?
「죽공이」예요.
죽음의 공포를 의인화한 이야기였죠?
맞아요. 제가 네 살 때 저희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요. 그때부터 저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홀연히 사라졌어요. 내가 죽어도 나와 또 다른 내가 세상을 살아간다면 영원한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죽음의 공포가 멀어지더라고요.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공포나 슬픔이 있잖아요. 그런데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 때문에 「죽공이」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독자로서 ‘파페’와 ‘포포’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해요. 두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요? 여전히 사랑하는 중일까요?
그런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좋아했던 사람을 나중에 커서 만나게 될 경우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둘의 뒷이야기는 직접 확인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 담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게 우리가 파페와 포포를 기억하는 방법 같아요.
사랑까지 딱 한 걸음심승현 글그림 | 예담
‘여전히 사랑이 어려운 나와 당신에게’라는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사랑에 서툴고 마음을 전하는 데 애를 먹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준다.
관련태그: 사랑까지 딱 한 걸음, 심승현 작가, 파페포포, 사랑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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