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의 측면돌파] 좋은 인생에 대한 답은 없다 (G. 제현주 작가)
좋은 일상에 대한 답이 있을 뿐
오늘은 책 『일상기술 연구소』의 책임연구원, 제현주 님을 모셨습니다.
작은 것이 좋다고 말하는 삶은 혹은 작지만 의미 있는 무언가를 좇는 삶은 겉보기와는 달리 훨씬 어려운 것 같습니다. 큰 목표를 추구한다면 이미 정해진 길을 걸어가면 되지만 작은 것을 추구하는 삶은 스스로 길을 직접 만들어가야 하니까요. 내비게이션에 따라 운전하며 가는 것과 지도를 보며 걸어가는 일의 차이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작은 것에 끌립니다. 그리고 저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작은 것에 끌려 기꺼이 이곳저곳을 헤매는 수고로움을 자처하기를 바랍니다. 주어진 삶이 단 한 번뿐이라면 우리에게는 가봐야 할 더 많은 길과 더 많은 모험이 필요하니까요.
‘밥벌이하며 딴짓하는 모두를 위한 잡지’ 『딴짓』의 6호에 실린 머리말이었습니다. 딴짓, 잡지 이름이 참 재밌지 않나요? 보통 이 말의 뒤에는 ‘하지 마’가 붙는 것 같아요. 앞에는 ‘쓸데없이’가 붙고요. 합치면 ‘쓸데없이 딴짓 하지 마’가 되는데, 슬며시 반항심이 드는 말이기도 합니다. 꼭 쓸모 있는 일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 쓸모는 누가 정한 기준인가요? 사람도 물건처럼 쓸모로 평가받는 시대에, 어쩌면 우리는 쓸데없는 일을 하면서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고 한 숨 돌릴 틈을 찾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터뷰 - 제현주 작가 편>
김하나 : 팟캐스트 <일상기술 연구소>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협동조합 ‘롤링다이스’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롤링다이스’를 간단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현주 : 협동조합 ‘롤링다이스’는 제가 조합원으로 6년째 활동하고 있는 부업 공동체이자 전자책 중심의 출판사라고 말할 수가 있는데요. 일단 저희가 부업 공동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조합원이 11명인데, 롤링다이스의 일은 대부분에게 두 번째나 세 번째의 일이에요. 다들 다른 본업이나 생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롤링다이스라는 일종의 플랫폼 안에서 함께 결합을 해서 전자책을 만들거나 혹은 『일상기술 연구소』와 같이 다른 종류의 콘텐츠를 만들거나 행사를 기획해서 열기도 하고요. 저희는 관계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더 가볍고 유연한 편이지만, 일반적인 사업체나 회사라고 하기엔 의무가 일방적으로 주어지고 월급을 주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부업 공동체라는 말을 많이 쓰고요. 그때그때 각자의 상황에 맞춰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해서 책을 만들거나 팟캐스트를 만들거나 하고, 발생하는 수익이 있으면 나눠서 가지는 식으로 운영이 되는 협동조합입니다. 처음에 조합원들 만난 건, 원래 독서모임을 하고 있었어요. 거기에 모였던 사람이 뭔가 조합이 우연하게 좋았던 거예요.
김하나 : 그렇군요. 몇 명 정도였어요?
제현주 : 시작했을 때는 열댓 명 정도 됐던 것 같고, 끝날 때쯤 7~8명 정도였던 것 같고요. 이 조합이 좋으니까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그럼 우리끼리 공부를 계속 해보자’라고 제안을 해서 우리끼리 돌아가면서 글도 써서 발제도 나누고 매주 만나서 철학 공부를 했거든요. 그러다가 5명 정도가 남았어요. 그때 저희가 ‘철학 공부는 많이 했으니까 정치 경제 쪽의 책으로 옮겨보자’ 하면서 다시 멤버들을 더 모았어요. 그때 만들어진 멤버가 9명이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까 협동조합이라는 방식을 발견하게 된 거죠. 당시에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7~8개월쯤 됐을 때였던 것 같아요.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협동조합의 형태로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독서모임의 멤버들한테 제안을 했던 거죠.
김하나 :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봐야 될 것 같은데요. 이력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번 방송을 준비하면서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를 읽으면서 프로필을 봤는데 너무나 화려하더라고요. “카이스트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경영 컨설팅 업체 맥킨지, 투자은행 크레딧스위스, 사모펀드운용사 칼라일에서 기업 경영 및 M&A, 투자 분야 전문가로 10년간 일했다” 얼떨떨합니다(웃음).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물어보면, 그 사람의 대답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스스로를 규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을 설명할 때 거기에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제현주 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 분입니까?
제현주 : 보통 어떤 상황과 묻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버전의 답을 해요. 세 번째 진짜 칼라일을 그만두고 난 이후로는 계속 하고 있는 일이 한 가지일 때가 거의 없었어요. 늘 여러 일들을 하는 거예요. 제가 ‘일의 포트폴리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대부분 누군가를 만날 때는 각각의 일의 맥락 안에서 만나니까 출판사 분들하고 만나면 저는 출판인, 글을 쓰는 사람 혹은 번역을 하는 사람, 아니면 롤링다이스라는 전자책 출판사를 하는 사람인 거고요. 롤링다이스가 협동조합이니까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의 형태가 일반 회사와는 다르게 사회적인 가치나 목적을 함께 고민하면서 일한다는 의미가 있거든요. 그런 활동을 하는 분들하고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협동조합을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요. 협동조합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저의 이전의 이력이 있으니까, 사회적 경제에서 활동하는 조직들을 위한 컨설팅이나 조언을 구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는 프리랜서 컨설턴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물으면 저에게는 각각의 버전의 스토리들이 있는 거죠.
김하나 : 엑셀 파일을 만드셔야겠네요.
제현주 : 그렇죠. 이제 직장인이 됐으니까 요즘은 다시 투자하는 일을 하고 있고요. ‘임팩트 투자’라고 부르는, 사회적인 가치와 경제적인 수익률을 함께 고려해서 하는 투자 일을 하고 있어요. 사회적인 임팩트를 고려하면서 투자를 한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임팩트 투자를 하는 회사에 다니는 임팩트 투자자입니다.
김하나 : 돈을 어떻게 벌어 들이냐 수익을 얼마나 냈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투자를 해서 어떤 반향을 일으키느냐가 중요한 거군요. 재밌는데요?
김하나 : 직장을 그만두고 롤링다이스 협동조합을 꾸리고 팟캐스트를 시작하고, 이런 다양한 활동들을 하는 데 있어서 불안감이 작용했을 것 같아요. “내일은 막막하고 마음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막막함, 좋은 인생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찾으신 것 같으세요?
제현주 : “내일은 막막하고 마음은 불안한 시대, 좋은 일상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기술을 연구합니다”라는 게 <일상기술 연구소>의 오프닝 멘트인데요. 저는 그게 답인 것 같아요. 내일은 막막하고 마음은 불안한 시대에는 좋은 인생에 대한 답은 없고, 좋은 일상에 대한 답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제가 <일상기술 연구소>를 시작하면서 가졌던 마음이 그런 방향을 향하고 있었는데요. 좋은 인생에 대해서 생각을 하려고 하니까 불안하고 너무 어렵더라고요.
김하나 : 인생은 또 너무 크고 길고요.
제현주 : 그렇죠. 막막하고요. 그래서 ‘그건 모르겠으니까 하루하루라도 어떻게 잘 살아볼까를 생각해 보자’ 그런 생각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일상기술 연구소> 안에서 ‘기술자’라고 저희가 게스트 분들을 모셨는데요.
김하나 : 저도 ‘힘빼기의 기술자’로 갔었잖아요(웃음).
제현주 : 그렇죠(웃음). 기술자 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래, 역시 나의 가설이 맞았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좋은 인생이라는 건, 제가 이제와 생각해 보면, 사후적인 종합인 거죠. 내가 오늘을 살면서 ‘나는 좋은 인생을 살고 있어’라고 생각한다는 건 되게 어려운 일이고, 저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다 살아봤더니 ‘내 인생이 이만하면 괜찮아, 이만하면 좋은 인생이지’ 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실제로 오늘을 살아가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질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하나 : 지금은 다시 직장인이 되셨지만, 팟캐스트를 진행하시는 동안에는 프리랜서이셨잖아요. 프리랜서에게 필요한 일상의 기술과 직장인에게 필요한 일상의 기술 사이에 차이점 같은 게 있을까요?
제현주 : 차이점이 없게 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내가 회사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렇게 표현을 하는데요. ‘회사에서 주어지는 일이니까 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그래서 매번의 일들이 ‘내가 프리랜서라면 했을까, 안 했을까’ 하고 비슷한 기준을 적용해서 일을 하려고 노력해요. 항상 잘 되는 건 아니지만요. 지금 직장을 다니는 마음가짐과 7년 전에 그만두기 전의 직장을 다니던 때하고는 마음가짐이 굉장히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요새 많이 드는데요. 이전에는 그만둔다는 것이 되게 어렵고 무서운 일이었고, 지금은 어쨌든 회사 밖에서의 생활이라는 것을 6년 넘게 해봤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 회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전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것 같아요.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는 ‘내가 먹고 살려고 하지’ 하는, 언제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순간이 오잖아요. 너무 하기 싫은 일이지만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니까 하고, 그런 지점들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먹고 살려고 하는 거야’라는 말로 정당화하지 않고 일을 하려고 생각을 많이 하고요. 그건 제가 일을 하는 여건이 좋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프리랜서로서 일을 할 때랑 똑같은 기준이나 관점을 가지고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김하나 : 정말 생각 못한 대답인 것 같아요. 보통 프리랜서와 직장인이라고 하면, 보통 대척점에 있는 일의 기술처럼 생각하는데요. 그걸 같이 가져가려고 노력한다는 게... 제현주 님의 책을 보면 수많은 고민의 흔적 같은 게 들어있는데요. 그것으로 인해서 도출된 결론이 프리랜서와 직장인일 때 같은 기술을 가지고 접근을 한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재밌네요.
제현주 : 예전에 이로(독립출판서점 ‘유어마인드’ 대표) 님이 나와서 해주신 주옥같은 말씀 중에 하나가 그거였어요. 실속을 위한 일과 명예를 위한 일을 나누지 않는다고, 그래서 진짜 하고 싶은 일과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을 나눠서 ‘이건 돈 벌려고 하는 거지, 뭐’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는 게 싫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본인이 8가지 일을 하는데, 8가지의 실속은 적지만 명예로운 일을 해서 그 합이 ‘필요한 실속’이 나오게 한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그 말에 너무 공감했거든요. 그거랑 약간 비슷한 맥락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하나 : 보통은 직장이라는 판이 다 짜여있고 거기에 내가 고용되어서 시키는 일들, 해야 하는 일들을 연극하듯이 해낸다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내가 직접 대본을 쓰고 판을 깔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접근을 하시는 것 같아요.
제현주 : 네, 그렇게 표현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하나 : 이로 님도 그렇고, 제현주 작가님도 그렇고요. 그냥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조금 더 조율하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할까요. 아주 멋있게 보입니다.
제현주 :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가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거든요. 그런 상황일 때 제일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해야 되니까 하는 일이, 사실 인생에 하나도 없을 수는 없지만, 그 일이 내 일상에서 어느 수준 이상을 넘어가는 때를 제일 괴로워하더라고요.
관련태그: 일상기술 연구소, 제현주 작가, 딴짓, 독립출판물
브랜딩, 카피라이팅, 네이밍, 브랜드 스토리, 광고, 퍼블리싱까지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힘 빼기의 기술』,『15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을 썼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중이다.
<제현주>,<금정연> 공저13,5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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