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개, 헤어드라이어 응징 사건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도대체 작가 10년째 같이 사는 태수 이야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태수는 자기 짓이 아닌 듯 시치미를 떼고 있었지만, 가전제품의 전선을 이빨로 씹어서 끊을만한 구성원은 우리 식구들(사람 셋, 개 하나) 중에서 자기밖에 없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2017.10.30)

 

2.jpg

 

태어난 지 두 달쯤 되었다는 강아지가 처음으로 집에 온 날, 식구들은 이름 짓기 회의부터 열었다. 저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이름을 하나씩 말해봤지만 어느 것도 온 가족의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강아지를 안아 올리며 말씀하셨다.

 

“테-스?”
“테스? 여자 이름이잖아. 얘는 수컷이야.”
“그래? 그럼 안 되겠네.”
“아니지. 비슷한 발음으로 태수라고 하면 되지. 그래, 태수 괜찮네.”

 

그렇게 그 귀여운 강아지는 ‘테스’와 발음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많이 다른 ‘태수’가 되어 우리 가족으로 살기 시작했다.

 

4.jpg

 

태수는 아주 얌전한 강아지였다. 한창 이가 나면서 근질거릴 때 문지방이며 방문, 의자 다리 같은 곳을 갉긴 했지만 그 정도였다. 용케도 자기한테 사준 장난감들만 가지고 놀았다. 인형을 물어뜯어서 몸통의 솜을 꺼내버리기도, 건전지로 움직이는 장난감 강아지의 숨통을 1분 만에 끊어버리기도, 들어가서 쉬라고 사준 개 전용 텐트를 박박 긁어 커다란 구멍을 내기도 했지만 어쨌든 자기 소유의 물건들만 착실히 망가뜨렸다. 인간의 물건이라면 가지고 놀라고 내준 것이 아닌 이상 슬리퍼 한번 물어뜯지 않았다.

 

그런 태수가 세간을 망가뜨린 사건이 있었다. 헤어드라이어의 전선을 씹어 똑 끊어버린 일이었다. 망가진 드라이어를 들고 황당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내 옆에서 태수는 자기 짓이 아닌 듯 시치미를 떼고 있었지만, 가전제품의 전선을 이빨로 씹어서 끊을만한 구성원은 우리 식구들(사람 셋, 개 하나) 중에서 자기밖에 없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태수가 처음으로 고장 낸 세간이 드라이어였던 게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 나는 아직도 일부러 그런 거였다고 믿고 있다. 태수도 여느 개들처럼 목욕 후에 털 말리는 걸 싫어했기 때문이다. 몸이 푹 젖은 상태에서는 체념한 듯 누워서 이리저리 드라이어 바람을 쐬다가도, 털이 거의 다 마른 것 같으면 벌떡 일어나서 ‘이제 그만해!’란 듯이 짖으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곤 했다.

 

그런 태수의 눈으로 바라본 드라이어는 어떤 존재였을까? 웅- 웅- 한없이 시끄러운 데다가, 더운 입김을 뿜으며 달려드는, 있는 거라곤 입밖에 없는 괴상한 요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저놈만 사라진다면 앞으로는 목욕한 후에 털을 말리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니 기회를 엿봐서 혼내줘야겠다고 전부터 마음먹었겠지. 그리고는 식구들이 없는 틈을 타서 감행, 전선을 잘근잘근 씹고 또 씹어 드디어 드라이어의 숨통을 끊어낸 것이다! 그 순간 이 작은 개가 얼마나 의기양양했을까?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웃느라 태수를 혼내지도 못했다.

 

8.jpg

 

그러나 태수의 응징은 보람 없었다. 인간이 절연 테이프라는 것을 이용해 드라이어를 다시 살려놓은 것이다. 그때 부질없음을 깨달았던 것일까? 태수는 이후로 다시는 어떤 세간도 망가뜨리지 않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도대체(작가)

만화 에세이 단행본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를 썼습니다. 반려견 태수와 함께 십 년째 살고 있습니다.

오늘의 책

수학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표 유아수학 공부

국내 최대 유아수학 커뮤니티 '달콤수학 프로젝트'를 이끄는 꿀쌤의 첫 책! '보고 만지는 경험'과 '엄마의 발문'을 통해 체계적인 유아수학 로드맵을 제시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수학 활동을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도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나를 바꾸는 사소함의 힘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시대. 불안과 번아웃이 일상인 이들에게 사소한 습관으로 회복하는 21가지 방법을 담았다. 100미터 구간을 2-3분 이내로 걷는 마이크로 산책부터 하루 한 장 필사, 독서 등 간단한 습관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내 모습을 느끼시길.

지금이 바로, 경제 교육 골든타임

80만 독자들이 선택한 『돈의 속성』이 어린이들을 위한 경제 금융 동화로 돌아왔다. 돈의 기본적인 ‘쓰임’과 ‘역할’부터 책상 서랍 정리하기, 용돈 기입장 쓰기까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자연스럽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저마다 삶의 궤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한 생애 주기를 거친다. 미숙한 유아동기와 질풍노동의 청년기를 거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늙어간다. 이를 관장하는 건 호르몬. 이 책은 시기별 중요한 호르몬을 설명하고 비만과 우울, 노화에 맞서는 법도 함께 공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