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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빨간사춘기, 수줍은 듀오의 새로운 미래
볼빨간사춘기 'Red Diary Page. 1'
수록곡 「나의 사춘기에게」가 음반에 부여하는 메시지의 파동은 상당하며, 이는 볼빨간사춘기의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2017.10.18)
볼빨간사춘기의 가장 큰 매력은 진입장벽이 낮은 어쿠스틱 팝 작법과 보편적인 감성을 일기처럼 풀어내는 쉽고 편한 가사다. 전작 <Red Planet>의 수록곡 「사랑에 빠졌을 때」와 「우주를 줄게」는 첫사랑의 설렘을 한 편의 시처럼 예쁜 노랫말로 꾸몄고, 「나만 안되는 연애」에서는 독백 형식으로 사랑의 종착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이번 EP는 어쿠스틱 기타가 전체적인 반주를 맡고 틴 팝처럼 톡톡 튀는 멜로디가 가득한 전작의 기조를 이어간다. 「고쳐주세요」나 「상상」은 리드미컬한 기타 연주와 우지윤의 랩이 「Girlfriend」로 유명한 캐나다 출신 여가수 에이브릴 라빈의 「Nobody’s fool」을 떠올리게 하고, 2절 이후 안지영의 보컬 변화가 매력적인 타이틀 곡 「썸 탈꺼야」는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팝 발라드다. 볼빨간사춘기의 음악적 정체성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가사는 더 단조로워졌다. 「우주를 줄게」의 비유와 상징은 희석되고 SNS에 올라올 법한 단순한 묘사들이 행을 메운다. ‘지나간 행성에다 그대 이름 새겨 놓았죠’처럼 설익었지만 참신한 표현이 사춘기 소녀 같았다면, 「썸 탈꺼야」나 「Blue」의 ‘나 차가운 도시의 따뜻한 여잔데’, ‘알잖아 나 좀 예민해 네게만 참 까다롭잖아’와 같은 노랫말은 어른의 언어와도 같다.
미숙한 사랑과 이별이라는 반복적인 서사만 가득했던 이들의 음악에서 처음으로 어린 시절의 아픔과 좌절, 방황을 그리는 「나의 사춘기에게」는 초반부의 단조로운 피아노 연주와 어떠한 꺾기, 기교도 없이 직선적으로 뻗어가는 안지영의 목소리가 진중함을 더하고, 클라이맥스에서 터져 나오는 그의 고음과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절망의 늪에 빠진 청(소)년들을 대변한다. 예상치 못했던 묵직한 카운터 펀치다.
모두 6곡의 짧은 러닝타임은 악기의 변화가 없는 비슷한 편곡으로 채워져 듣기에는 편하지만 큰 편차가 없는 사운드 때문에 다소 지루하게 들릴 수 있고, 1집에 비해 무게감이 덜한 가사는 공감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나의 사춘기에게」가 음반에 부여하는 메시지의 파동은 상당하며, 이는 볼빨간사춘기의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곡이다. 수줍은 듀오의 새로운 미래가 제시된 앨범이다.
정연경(digikid84@naver.com)
관련태그: 볼빨간사춘기, 여성 듀오, Red Diary Page. 1, 나의 사춘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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