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배짱이 두둑한 여자, 용기 있는 여자, 독한 여자”
예스24 중고서점 수영점 F1964 개관 기념 『여자의 독서』 북토크
2,3년 안에 이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로맨스로 영화가 나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중고서점에서 낡은 기억과 상처를 가지고 사람들이 와서 만남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요. (2017.10.10)
9월 24일, 예스24 F1964점 오픈을 기념해 『여자의 독서』 저자이자 도시건축가인 김진애 박사와 <씨네21> 이다혜 기자가 강연자로 나선 북 콘서트가 열렸다. 부산 수영고 망미동에 열린 예스24 F1963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중고서점으로, 20만여 권의 분야별 중고도서와 음반, DVD, 도서 관련 다양한 상품 등을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여자의 독서』는 ‘서울대 공대의 전설’ ‘원조 센 언니’ 등 강한 수식어가 붙던 도시건축가 김진애 박사가 쓴 여성 작가의 책과 삶 이야기다. 그가 찾아 읽으며 기쁨과 공감을 얻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여자들에게 자신의 삶과 길을 찾을 것을 권유한다. 책이 책이니만큼 북콘서트 장소를 찾은 예스24 회원 중에는 여성이 많았다. 여름과 가을 사이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회원들은 사전에 준비한 다과를 즐기며 김진애 박사와 이다혜 기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쌓인 공간
이다혜 기자는 예스24 F1963점의 ‘공간이 정말 특이하고 멋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진애 박사도 공간에서 받은 감상을 말하며 행사의 문을 열었다. F1963점의 오픈을 기념하여 열린 북토크여서 그런지 주로 공간을 주제로 여성과 책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김진애 : 역시 책은 마술을 부린다는 걸 오늘 와서 느꼈습니다. 책이 들어오니까 공장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졌어요. 저도 항상 리모델링 한 공간을 좋아하는데, 부서진 게 멋있는 게 아니라 안에 시간이 녹아있는 게 멋있거든요. 이 세상에서 모든 걸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시간만은 못 사요. 이미 있는 시간에 새로운 걸 더 하면 이런 맛이 나는데, 거기에 책의 시간까지 합해지니 정말 근사한 공간이 된 것 같습니다. 부산이 상업공간 위주로만 되어 있는데 이런 문화공간이 생기면 달라지는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책을 많이 사 주셔야 해요. 제 책도 찾아보니 여기 여섯 권 있더라고요. (웃음)
이다혜 : 중고서점도 많이 가시나요? 예전에는 헌책방이라고 불렀는데, 저도 여행을 가면 동네 헌책방에 자주 가는 편이에요. 헌책방 거리가 지닌 매력이 있어요. 무엇보다 큰돈 안 들이고도 책을 여러 권 살 수 있다는 게 매력이지만 옛날 베스트셀러를 다시 보면 재밌기도 하고요.
김진애 : 청계천 근처에 살 때 헌책방 많이 갔는데, 요새는 인터넷으로 사죠. 책도 그렇지만, 공간도 누가 손을 댄 곳에는 혼이 담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이다혜 : 그게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 같아요.
김진애 : 지금 이 자리에도 영혼이 있을 거예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 가장 가까이서 본 죽음이 강아지의 죽음이었는데, 항상 우리 집 어딘가에서 저를 지켜줄 것만 같아요. 책도 그런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요? 책에도 영혼이 담겨 있어서 그 영혼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해요.
이다혜 : 이 공간이 비 내리는 날에도 좋을 것 같아요. 야외무대기 때문에 지금은 날씨가 맑은 게 행운이지만, 비가 내리는 날에는 운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김진애 : 아직은 못 느끼시겠지만 조경의 코드가 대나무거든요. 앞에 있는 대나무가 2,3년 있으면 금방 다른 색으로 자라날 거예요. 생명이 주는 힘이 여기에 더해지면 또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성의 건축, 여성의 공간
사람들은 흔히 건축을 남성적인 분야로 여긴다. 유신 시절, 김진애 박사가 처음 대학에 건축과로 입학할 때에는 7년 만에 처음 들어오는 여학생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김진애 : 건축은 세워진다는 의미에서도 상징적으로 남성성에 가깝습니다. 산업 분야 자체도 경쟁적이고 치열하기도 하고요. 남성들의 영웅주의 내지는 불변의 의지가 건축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아테네 도시를 지켜주는 신은 아테네 여신입니다. 집을 지켜주는 신은 헤스티아예요. 모든 공간, 사람이 사는 공간은 여성적입니다.
이다혜 : 원래 공장 건물이었는데, 조경이 공장이 지닌 삭막한 느낌을 부드럽게 만든다는 느낌도 있어요. 건물과 건축이 남성적인 요소라고 한다면 그걸 부드럽게 만들고 자연을 깃들게 하는 게 조경이 하는 역할이기도 하고, 최근 건물을 지을 때 조경 요소가 더 강조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나무 심을 자리에 방 하나 더 지었다면, 요새는 적당히 개천도 있고 산책로도 있어야 살 만한 공간이라고 느끼는 것처럼요.
김진애 : 여기 공간이 좋은 이유는 ‘공간’이라는 말을 할 수 있어서예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건축을 형태로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건물 안에서 움직이고 체험하는 게 중요하지 형태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거든요.
이다혜 : 항상 집에 책 읽을 공간이 있었으면 하거든요. 서재가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주거환경상 서재를 따로 놓기 어렵기 때문에 대안으로 생각하는 게 책 읽기 좋은 의자 하나 정도인데, 넓은 도서관이나 서점에 오면 그 장소가 서재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김진애 : 『여자의 독서』에 소개한 버지니아 울프의 책 제목도 ‘자기만의 방’이잖아요. 여성들이 자기 공간을 가진 게 역사적으로 얼마 안 되었어요. 200년 전 제인 오스틴이 자기 방이 없어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식탁 옆에서 글을 써요. 그런 여자가 자기만의 방이 생긴다면 생각이 달라지죠. 『자기만의 방』에서 자기만의 공간과 돈이 필요했다면, 요새는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제일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방과 돈이 있으면 시간을 조금 더 가질 수는 있겠죠. 제가 어렸을 때 집에서 책 읽으라는 소리도 안 하고, 책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하지만 책을 읽으면 어른들이 심부름 안 시키고 안 건드리는 거예요.
1남 6녀 중 셋째 딸이었던 김진애 박사는 책에서 자존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집에서 흔하디흔한 딸로 태어나 자존감이 없었지만, 책을 읽으면 누구도 자신에게 뭐라 하지 않고 존중해주는 것이 좋아 책으로 성을 쌓았다고 한다. 이다혜 기자도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도서관과 서점의 매력으로 꼽았다.
김진애 : 2,3년 안에 이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로맨스로 영화가 나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중고서점에서 낡은 기억과 상처를 가지고 사람들이 와서 만남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요. 책에 나온 ‘디어 걸스’들이 서로를 만나는 공간이 될 것 같은데, 여기는 도서관과 다르게 조용하게만 있지 않아도 되고, 바로 밖으로 나올 수도 있고요. 여러분의 로맨스를 여기서 만드십시오. 기대됩니다.
책 읽는 여자는 힘이 세다
이다혜 : ‘책 읽는 여자는 힘이 세다’ ‘힘이 세지고 싶은 여자는 책을 읽는다’고 말씀하셨어요. 책이 자신을 바꾸고 있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김진애 : 모든 책은 저를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정희진 선생님은 ‘내 몸이 책을 통과할 때’라는 표현을 하셨어요. 정희진 선생님은 뭘 표현하셔도 이렇게 아프게 표현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예전에도 여성 역할 모델이 없어서 고민했던 적이 있어요. 매일 신사임당, 선덕여왕, 유관순 언니도 아니고 누나가 롤 모델이었던 시기기 때문에 바라볼 여자가 많지 않았거든요. 박경리 작가님도 남자로 알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박경리 선생님이 여자라는 걸 알았을 때 하늘에 구름이 걷히면서 빛이 내려오는 기분이었어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었을 때는 벼락 맞는 느낌이 들었죠. 마찬가지로 인간이 지닌 여러 가지 면이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여러 면이 채워지기도 하고 광이 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다혜 : 『자기만의 방』에서도 나왔지만 남성 작가는 작업실을 따로 가지고 있을 때가 많아요. 여성 작가들은 글을 언제 쓰냐고 물어보면 아이들이 일단 자고 나서야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인 거예요. 한국 작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일본 작가, 프랑스 작가도 남편과 애들이 자고 살림을 마친 새벽 두 시부터 쓴다는 거죠. 그러면 당연히 식탁에서 글을 많이 쓰고, 깊게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소재가 아니라 당장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글 안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제인 오스틴이 로맨틱 코미디의 원전 같은 『오만과 편견』을 썼던 이유도 환경 자체가 사람들의 관계 안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지금까지 여자 작가들이 잘 쓰는 게 사랑이나 남녀 간 이야기,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잘 쓴다는 편견이 있었다면 박경리나 한나 아렌트는 그런 편견을 다 없애는 글쓰기를 했죠.
김진애 : 책을 읽으신 분은 제 취향을 아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모르게 생각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습니다. 라디오에서도 남자 목소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면을 잘 씁니다. 보호색이기도 하죠. 힘든 분야에서 힘들게 살아오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제 여성성을 버리거나 여자여서 가지는 딜레마를 못 느끼는 건 아니거든요. 이제까지는 남성성만 드러내느라 바빴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여자의 독서』에서 여자여서 겪는 문제와 고통을 다 이야기하고 나니 저도 후련하고, 이제까지 썼던 책 중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제일 뜨겁더라고요.
나이와 취미를 넘어선 여성들의 모임
『여자의 독서』에는 김진애 박사가 속한 ‘디어 걸즈’라는 모임 이야기가 나온다. 여자라는 공통점만 빼고는 비슷한 업계에 종사한다거나 나이가 비슷하다거나 하는 공통점이 없는 모임이다. 이다혜 기자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으면 좋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참고하면 좋겠다고 감상을 밝혔다.
이다혜 : 흔히 자기가 있는 범위 안에서만 사람을 만나잖아요. 같은 회사 사람들이라든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라든지요.
김진애 : 다 다른 사람들이지만 비슷한 문제에서는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거죠. 나뿐만 아니라 다같이 가지는 문제 같은데 이야기하다 보면 어떤 때는 같이 분노하고 어떤 때는 위로하고 넘어가죠. 특별히 목적을 가지고 만나지 않다 보니까 만나고 나면 자기가 가진 스트레스 등이 풀어져서 이런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나라에서 인간 관계가 가족이나 친구, 동료 관계에만 묶여 있을 때가 많아요. 자연스럽게 인간 가지를 넓히는 모임에서는 책이나 영화 이야기, 자신의 섹스 생활도 이야기할 수 있겠죠.
이다혜 : 또 하나 재밌는 건 언제 모이자고 하면 한 번에 다 모이지 않아요. 이번에 자기가 시간이 나면 가는 거고 다음달에 못 가겠다 하면 안 가도 되는 모임이에요. 유연하게 어떤 때는 열 명이 모이고 어떤 때는 스무 명이 모이는 모임이죠. 드라마를 화제로 이야기할 수도 있고요.
김진애 : 선거 이야기, 징그러운 남자 이야기, 연애 이야기도 하고요. 만나면 다들 이야기하고 싶어서 정신이 없어요. 허리가 꺾어지게 웃고 오면 풀어져 있죠. 집과 직장에 문제가 있을 때 친구든 엄마든 만나서 밤새 풀어놓으면 괜히 말했다고 후회할 때가 있잖아요. 그렇다고 그럴 때마다 목사님을 찾아갈 수도 없고요. 다른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항상 들어요.
이다혜 :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고독사를 예방할 수 있는지 연구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연결되라는 말이에요. 단순히 누구와 같이 살라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의 모임에 느슨하게 나가거나, 지나가는 동네 주민에게 인사하는 것도 연결의 일부인 거죠. 어떤 학자가 동네에서 할머니들이 친해지는 방식을 보니, 집 앞에 있는 화분에 매일 물주고 솎아주면서 화분을 매개로 둘이 가벼운 대화를 한다는 거죠. 할아버지들은 그걸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남성들이 사회에서 맺는 인간관계에서는 남의 집에 꽃이 피든 말든 상관이 없고, 목적이 분명한 게 아니면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친해진다는 감각이 발달해 있지 않다는 거예요. 누군가와 연결된다고 할 때 커다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작은 틈을 만드는 거고, 디어걸즈라는 모임도 연결을 확대에 모임이라는 형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김진애 : 디어걸즈 안에서 시스터후드를 만드는 것처럼 남자들도 브라더후드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보고 자꾸 놀아달라고 하지 말고 당신네끼리도 노는 방법을 익히라는 거죠. 강연을 하다가 제주도에도, 부천에도 ‘디어 걸즈’ 모임이 생겼어요. 처음부터 무엇을 하겠다고 시작하지 마시고 그냥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오면 오고 아니면 말고 해야 오래가요.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하면 압력이 되죠.
이다혜 : 그렇죠. 마음 편하려고 만나는 모임인데 안 나온 사람들을 흉보고 그러면 오히려 참여가 짐이 되죠. 자기가 괜히 연락을 한 번 더 하는 게 이 사람을 붙잡는 게 아니라 떠나게 만든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되고요. 인간관계에 실패하는 게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진애 : 주제를 바꿔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유형이 있게 마련입니다. 저는 배짱이 두둑한 여자, 용기 있는 여자, 독한 여자, 괴물 같은 여자를 좋아합니다. 가령 박완서 선생님이 얼마나 독한지 글 쓴거 볼 때마다 놀라요. 따듯한 서늘함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따듯한 듯 하면서도 매일 문을 두들기는 느낌을 받거든요. 또한 독하면서도 공간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좋아요.
김진애 박사가 예로 든 박경리의 『토지』는 평사리가 배경이다. 실제 있는 마을처럼 생생한 묘사를 해 놓았지만 사실 평사리는 작가가 우리나라의 산세와 마을의 구도를 가지고 창조해 낸 새로운 공간이었다.
김진애 : 박경리 선생이 살아계실 적에 다시 태어나면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정유정 작가도 독하기로 유명한데, 『28』에 나오는 화양시는 지도를 그려 놓고 쓰더라고요. 병원은 어디로 길은 어디에 있는지 다 그려놨어요. 이 분이 길치라고 합니다. 공간 감각이 없기 때문에 미리 구상해 놓지 않으면 무슨 사건이 어디서 일어날지 감이 안 잡힌다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공간감각에 관련해 여성 작가를 이야기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이 사람이 작가지만 나와 비슷한 면이 있겠구나, 하는 연대감이 느껴지기도 하죠.
이다혜 : 박경리 작가를 떠올리면 토지 문학관도 있어요. 거기에 작가 레지던스가 있어서 젊은 작가들이 무료로 거기 묵으면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게 했죠.
김진애 : 저도 한 번 들어가려고 알아보니까 등단했거나 상 받은 작가 아니면 못 들어간다 그러더라고요. (웃음) 박경리 선생도 원주에 처음 들어갔을 때 재봉틀을 하나 가져가서 작품이 실패하면 재봉틀로 삯바느질 하고 살겠다는 마음으로 갔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무엇을 해도 자기 앞가림을 생각해 두는 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그래야 뒷배가 되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독해지기도 쉽지 않습니다.
남성성과 여성성
이다혜 : 마지막 장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조화시키는 이야기도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마지막 장을 조금 이야기해주신다면요?
김진애 : 양성성을 넘나드는 사람이 가장 인간적이에요. 버지니아 울프도 셰익스피어를 칭찬하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다 가진 사람’이라고 했었죠. 남성성 하면 생각나는 투쟁력, 추진력, 원력 의지, 이런 성질이 여성에게도 있거든요. 여성성은 연민, 공감, 돌봄, 관심 등을 떠올리잖아요. 남자들도 많이 생기고 태생적으로 지닌 사람도 많아요. 우리나라도 이렇게 양성성을 가질 수 있는 데 자꾸 억누른단 말이죠. 여성에게 여성답지 못하다고 하고, 남자는 이래야 한다고 하고요. 저는 이게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김진애 박사는 마지막 장에서 황진이를 모델로 꼽았다. 조선시대라는 억압적인 환경 아래 자기 운명을 선택하는 프로로서의 능력,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높이는 것, 종말에는 자연으로 회귀하면서 자유가 된 것 등이 이유였다.
김진애 : 시조를 지은 걸 보면 황진이 배짱이 두둑해요. 지금 가면 절대로 나한테 못 온다는 배짱이죠. 어렸을 때는 황진이 이야기를 못 하는 것조차 속상했어요. 나이 드니까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네요. 가장 인간적으로 사는 삶, 자기 색기와 자기 기회, 자기 욕구와 갈구를 풀고 사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황진이만큼 좋은 모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다혜 : 책을 읽으면 김진애 선생님을 모델로 해서 저렇게 살면 멋있겠다 하는 부분도 많아요.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직접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삶의 양식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진애 : 여자의 독서는 특별하다는 말로 책을 시작했는데, 역시나 책이 제일 좋은 건 윽박지르지 않는 것이죠. 나에게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게 참 좋습니다. 사적인 관계에서 교류를 많이 맺다가도 책으로 돌아가면 수백년 동안의 지혜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런가 하면 또 책에만 빠져 계시만 안 돼요. 여러분의 현장으로 가셔야 합니다.
이다혜 : 여기서 더 잘 살기 위해 책을 읽고 여행을 가거든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옆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과, 그게 가족이든 제가 선택한 사람들과의 유대가 되었든 앞으로 잘 꾸려가면 좋겠다는 말로 행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여자의 독서김진애 저 | 다산북스
어떤 상황에 놓였든, 여자라서 겪는 의문과 고민과 딜레마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책을 읽어야 그 갈증을 풀어갈 수 있을까? 여기에는 김진애가 여자로서의 자존감을 깨닫고 키워온 독서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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