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직원의 입장에서 솔직히 말해보는 리커버
MD가 출판 기획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로
사은품을 어떤 걸 주느냐는 오히려 고객들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인상이었다. 그보다는 이 리커버에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는지, 얼마나 표지가 감각적이고 눈에 띄는지를 궁금해하는 듯했다.
작년부터 시작된 ‘어나더 커버’ 혹은 ‘리커버’의 바람이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주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저자의 책이나, 인기있던 베스트셀러의 경우 ‘한정판’ 등의 타이틀을 달고 표지갈이를 하여 다시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내용은 동일하나 표지만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표지 디자인이 중요하다. 왜 지금 이 시점에서 표지를 바꾸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담아내야 하고, 독자들의 ‘덕심’을 자극할 포인트도 있어야 한다.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초판본 복간 열풍의 또 다른 변형이라고도 볼 수도 있을 듯 하나, 음반/DVD 시장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소위 말하는 ‘한정판’ ‘리패키지’ 마케팅이 출판에서도 시작된 것이라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백만 장을 우습게 넘기던 음반 시장도 MP3와 스트리밍의 출현으로 예전 같지 않은 가운데, ‘그들만의 리그’인 팬덤을 대상으로 하는 ‘리패키지’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터라, 출판 시장 역시 이런 수순을 밟아가는 건 아닌지 일말의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허나 특정 책을 정말 아끼던 고객이라면 비록 내용은 바뀐 게 없을지라도, 새로운 표지의 책도 갖고 싶지 않을까? 또한 그 책을 처음 만나는 고객이라면 아무래도 근엄한 작가의 얼굴이 그려진 빤한 표지보다는 즐겨 입는 의류 브랜드의 그림이 그려진 표지나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새로운 표지에 눈길이 좀 더 가지 않을까. 우리는 이런 고객들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기에, 어떤 책을 선택하여 어떤 디자인의 표지를 입혀야 할 지 머리를 싸매는 중이다. 어찌 보면 그간 출판 유통에서 MD의 역할은 이미 기획된 상품을 시장에 어떻게 소개하고 알릴지에 방점이 더 찍혀 있었다고 하면, 이제는 MD가 출판 기획에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내가 다니는 서점도 작년 연말에 처음으로 리커버를 기획하여 시장에 내놓았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작년 11월 1일 선보였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대표작 『개미』. 1993년에 출간된 터라 오래되기도 했고, 예스24 고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로도 꼽았던 만큼 의미 있으리라 생각하여 열린책들과 협업으로 리커버 에디션을 내놨다. 이후 우리가 주도하는 리커버를 기획할 때는 가급적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려 노력했다.
1) 지금 리커버하는 데엔 최소한의 이유가 있어야 함 ex) 『노르웨이의 숲』, 작품 탄생 100주년, 연말 선물 패키지 등
2) 받아보는 사람들이 정말 “선물”을 받는 듯한 느낌 (표지, 사은품)
3) 한정수량이지만 최대 2~3달 안에는 완판될 수 있는 수량으로 제작
그간 판매를 해보니 대략 다음과 같은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가격대가 높은 책보다는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의 책들이 좀 더 반응이 좋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미 그 책을 구입한 사람들을 타겟으로 한다면 부담스러운 가격대로 구성되면 선뜻 구매하지 못할 것 같다. 아이돌 음반이라면 멤버별 랜덤 포토카드 같은 옵션을 넣을 수 있겠지만, 책이야 어디 그럴 수 있겠는가. (작가 랜덤 포토카드? 괜, 괜찮으신가요?) 리커버 도서를 포함하여 구매하는 경우를 위하여 표지 컨셉을 살린 사은품도 같이 기획해 증정하곤 하는데, 사은품을 어떤 걸 주느냐는 오히려 고객들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한 인상이었다. 그보다는 이 리커버에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는지, 얼마나 표지가 감각적이고 눈에 띄는지를 궁금해하는 듯 했다. 출판사 주도로 기획된 것이나 다른 서점에서 제작했던 리커버들 중 그런 것들이 잘 구현되었던 것을 꼽아보자면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리커버, 『이갈리아의 딸들』 리커버였던 듯. 이 두 책은 리커버를 출간한 시기도 적절했고, 리커버를 했던 이유나 컨셉도 분명했던 경우였다. 우리 서점에서는 연말연시에 나의 각오를 다지는 이들을 위한 선물 컨셉으로 기획했던 『5년 후 나에게 Q&A a day』와 『미라클 모닝』, 『셜록 홈즈 130주년 특별판』 등이 리커버 기획 의도도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독자들의 반응도 좋았다고 자평한다. 올해는 일단 시리즈성으로까진 진행하고 있진 않으나 호시탐탐 항상 기회는 노리고 있다. 얼마 전엔 『과학혁명의 구조』를 리커버했다. 실제로 출간된 책을 보고 다들 “표지계의 혁명”이라고들 얘기해주셨는데, 이 건은 표지 브레인스토밍 및 디자인 주도권을 우리가 가진 경우라 느낌이 다른 작품이 탄생했다고 본다.
순전히 개인 취향이지만, 나에게 기획 권한을 준다면 라이트 노벨풍의 ‘모에한’ 일러스트 표지로 만든 고전문학전집이라거나 화보 진행을 하는 느낌으로 연예인에게 고전 소설의 주인공 분장 - 이를테면 방탄소년단과 데미안이라거나 - 을 시킨 표지의 소설을 기획해보고 싶다.
(그런데 진짜로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그거 다 제 일이잖아요. 전 던졌으니까 누가 물어주십쇼)
뽀로로만큼이나 노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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