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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우리나라 정치의 문제는 심판이 안 되기 때문”

각자도생에서 상생의 시대로, 서민 교수 『서민적 정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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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유권자들이 오늘날의 정치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정치인의 수준이 낮아서 정치가 후진 게 아니라, 어쩌면 유권자의 수준이 따라오지 못 하기 때문에 정치가 이 모양이라는 거죠. 우리나라 정치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 '심판이 안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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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0일, 국민TV 카페 온에어에서 서민 교수의 『서민적 정치』 출간 기념 특강이 열렸다. 저자는 기생충학과 교수이자 칼럼니스트로, 『서민의 기생충 열전』, 『서민적 글쓰기』, 『서민적 정치』 외에도 여러 권을 집필했다.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큰 가운데,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민적 정치』가 나오기까지

 

"제가 정치 전문가는 아니지만 정치는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누구나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서민적 정치』를 쓰게 됐습니다. 기생충학 교수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기생충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냉대했어요. 여자 분들은 제 얼굴만 보고 화를 내곤 했죠. 이런 이유로 책으로 뜨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정말 많은 책을 말아먹게 되죠. 당분간 책을 그만 쓰기로 마음먹고 울적해하고 있을 때 웅진출판사에서 한 편집자가 찾아왔어요. 기획만 잘하면 괜찮은 책을 쓸 가능성이 있다면서 책을 내자고 했어요. 좋은 기회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그 때는 좌절의 늪이 컸기에 결국 글을 완성하지 못 했죠."
 
그 후로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게 된다. 그동안 <경향신문> 칼럼으로 이름을 알리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지도를 쌓게 된 서민 교수. 이 여세를 몰아 '글을 잘 쓰면, 말도 잘할 것이다'라는 한 PD의 착각 덕분에 <베란다쇼>라는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 마음의 빚을 진 출판사 편집자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도 이 무렵이다. 그 편집자가 이번엔 출판사까지 차리고, 계약서까지 준비해왔다.  
 
"제가 이번에는 무조건 책을 함께 내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8년 동안 이 분도 많이 변했어요. 저를 다루는 법을 알고 있더라고요. 매주 일정 분량을 써내게 하고, 제때 안 쓰면 불같이 화를 냈어요. 저는 누군가 화를 내면 그게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편이고, 화내는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거든요. 제가 그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 당시 저의 글 분투기를 썼는데, 원고를 꼬박꼬박 보내면서도 이게 과연 남들이 읽을 만한 책이 될 것인가 회의감이 들었어요. 최종적으로 원고를 다 보내고 난 후에 그 분이 편집본이라는 것을 보내왔어요. 그런데 책이 이상하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왜 그런가 봤더니 그 분이 제가 쓴 순서대로 원고를 배열한 게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배열하고 원고를 마음대로 고친 거예요. 여기까진 괜찮아요. 놀라운 건 이거죠. 제가 쓰지도 않은 말을 막 써놓은 거예요. 이 책이 재미있던 비밀이 따로 있었던 거죠.

 

 제가 지금 계약해놓고 안 쓴 게 10권 쯤 되는데요. 대표님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어요. 내년에 대선이 있으니 정치 관련 책 하나 쓰자고 하시더라고요. 죄송하지만 밀린 책이 많아서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도 12월까지 원고를 완성하고 2, 3월에 책을 내자고 하시더라고요. 저를 다루는 방법을 여전히 알고 계시라고요. 어쩌다 보니 매주 드리게 됐어요. 그런데 '탄핵'이라는 변수가 생겨요. 원래 제 계획은 4월 즈음에 책이 나오고, 12월에 대선이니 8개월 동안 판매 부수를 올리는 거였는데 대선이 5월로 당겨졌죠. 2주 동안 책을 팔아야 하게 됐습니다. 이 책은 스토리펀딩도 했는데 목표액의 20%밖에 모금이 안 됐어요. 돈이 너무 안 모이여서 제가 집사람 이름으로 10만 원을 몰래 했던 가슴 아픈 사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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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사라진 이유

 

자원 배분의 우선 순위는 무엇에 의해 정해질까? 바로 '정치'다. 예를 들어, 어떤 대통령이 통일에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하면 다른 분야가 찬밥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웬만큼 먹고 사는 사람들에겐 별 관련이 없을 수 있지만, 못 사는 사람일수록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

 

"보통 매스컴에서 정치가들이 선행을 한 것보다는 뇌물수수나 거짓말을 한 게 더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정치를 혐오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죠. 그런데 이게 꼭 정치인만의 문제일까요? 저는 유권자들이 오늘날의 정치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정치인의 수준이 낮아서 정치가 후진 게 아니라, 어쩌면 유권자의 수준이 따라오지 못 하기 때문에 정치가 이 모양이라는 거죠. 우리나라 정치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 '심판이 안 된다'는 겁니다. 한 정권이 국정운영을 잘못했다면? 정상적인 나라라면 정권이 교체되어야 합니다. 아이슬란드는 글로벌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몰려가서 시위를 했습니다. 결국 총리가 사임을 하고 정권 교체가 됐어요. 심지어 국회의원 29명이 구속됐어요. 나라 살림을 잘하지 못 한 정권은 투표해서 심판을 해요. 우리나라는 IMF 이후에도 어떠한 심판이 없었습니다. 이거 뭔가 이상한 거 아닌가요?"
 
서민 교수에 의하면 '북한 문제' 역시 심판이 사라진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안보관을 검증하는 키를 항상 보수가 쥐고 있는데, 과연 보수는 정말 안보에 유능한가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심판 기능을 해야 할 국가기관,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뒤늦게 국정농단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 검찰, 이름에 걸맞게 누구보다 세월호사건 당시 눈물을 흘렸어야 하는 엄마부대와 같은 시민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심판이 실종된 또 하나의 이유는 젊은 층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데 있어요. 젊은 층들은 항상 60대에 비해 투표율이 낮았어요. 젊은 층이 정치를 외면하면 투표를 열심히 하는 60대가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되는 거예요. 더 무서운 게 뭐냐면 노년층이 연령대별 인구도 많고, 점점 들어난다는 겁니다. 나이와 투표가 관련이 있는 예로 저희 작은아버지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찍으시던 분이셨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명박, 박근혜를 찍으시더니 이제는 저한테 홍준표 찍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분이 달라진 건 나이밖에 없어요. 젊은층이 유권자 수도 적은데, 투표도 안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우리는 알게 모르게 편향되어 있고, 선동에 취약하다. 권력의 세뇌는 집요하고 은밀하다. 서민 교수는 세계일보에서 정윤회가 사조직을 만들어 국정을 농단한다는 보도를 냈을 때, 국민들은 땅콩 회항 사건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던 상황을 예로 들었다. 우리는 커다란 것을 놓치고 권력이 원하는 대로 엉뚱한 사건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국정 농단이 제대로 밝혀지고 나서야 언론이 돌변을 하죠. 이 때라도 돌변해주는 게 참 고맙더라고요. 특히 그 당시에 조선일보가 각성을 합니다. 언론 권력이 각성한 것이 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지는 데 큰 도움을 줬다는 걸 말씀드리는 건데요. 조선일보가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해 최초로 보도한 거 아세요? 조선일보는 원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표현을 했던 언론이에요. 판매부수는 올려야 했는지 이렇게라도 비판언론의 지위를 유지하자고 한 거죠.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계기로 최순실을 조사하게 되는데요. 안팎으로 탄압을 받으니까 최순실 조사가 중단됩니다. 어쩌면 최순실 사태가 밝혀지지 않을 뻔 했는데, 한겨레가 뒤를 이어받아서 최순실에 대해 보도를 하기 시작하고요. 이화여대생들이 정유라를 걸고 넘어지다가 최순실이 끝에 나옵니다. 결과적으로 JTBC까지 힘을 보태죠. 3년 반 동안 아무 일도 안 하다가 6개월 바짝 일하더니 나라가 바로 서지 않습니까. 언론이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는 겁니다. 언론사가 제대로만 서면 정말 좋을 텐데. 계속 기대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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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를 위한 우리의 과제
 
"우리나라 최대 문제는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현 정부가 이 문제를 제일 먼저 해결해줬으면 좋겠어요. 나치가 탄생한 것도 독일이 파산 직전에 있었지 않습니까? 경제가 어려울 때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일어나고 그래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외국인이 많이 없으니까 여성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지금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하잖아요. 그 이유가 청년들을 대변할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너무 늙었어요. 우리나라 국회의원 3, 40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젊은 국회의원을 비례대표에 넣어달라 요구를 해야 하는데요. 문제는 젊은이들이 연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지금은 직접 모일 필요도 없어요. 인터넷 사이트 만들어놓고 모이면 됩니다. 20대만 한 사이트에 모여도 큰 권력이 되는 거죠. 양들이 왜 죽었죠? 침묵해서예요. 취업의 문을 연대해서 넓혀야지, 혼자 스펙 쌓아서 뚫으려고 해요. 프랑스에서는 정년 연장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왔어요. 이렇게까지 시위는 못 하더라도, 선거나 투표로 심판하면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일자리 부족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유일하게 해낸 일로 '대학등록금'을 꼽았다. 대학등록금은 지난 10년 동안 오르지 않고 있다. 서민 교수의 월급이 10년 동안 오르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자본주의 반하는 이러한 상황을 가능하게 한 게 20대다. 숫자를 믿고, 동료를 믿고, 연대하면 할 수 있다는 사례다. 
 
"연대를 위해서는 우선 스마트폰을 버려야 해요. 대신 종이신문을 보는 것을 추천해요. 종이신문은 1면이 정치 면이니까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지금은 종이신문을 안 보니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거죠. 스마트폰으로는 연예 기사만 봐요. '설현, 뒷태까지 완벽' 이런 것만 보는 거죠. 좋은 언론사가 있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게 하나의 방안이에요. 언론사가 삼성을 비판할 수 있으려면 삼성 광고 없이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으로는 대기업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경향신문> 독자가 100만 명만 되더라도 <경향신문>이 자립할 수 있는 구조가 되고, 언론이 좋은 나라를 위해 애쓸 수 있다는 거죠."
 
이어서 서민 교수는 연대를 위한 또 다른 과제로 '독서'를 꼽았다. 책은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만들어 주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과 공감 능력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면 세월호 유족들을 그렇게까지 냉대하지는 않았을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이게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 또한 명확히 말했다. 끝으로 그는 기생충 학자답게 '연가시'를 예로 들며 우리 역시 연대해야 할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연가시는 물속에서만 짝짓기와 산란합니다. 연가시들은 수없이 모여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며, 대책을 세웠고 결국 물에 뛰어드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연가시들이 죽었죠. 대한민국 청년의 상황을 연가시와 비교해보면, '연가시보단 좀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봐요. 우리도 연가시가 했던 것처럼 여럿이 모여서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봤으면 합니다."


 

 

서민적 정치서민 저 | 생각정원
촛불 이후, 장미 대선을 앞두고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는 무엇일까? <경향신문>의 칼럼니스트인 서민 교수는 특유의 반어법과 비틀어 보기를 통해 한국 정치의 민낯을 신랄하게 벗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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