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후 시인과 노키드 만화가가 만든 ‘만화시편’ 『구체적 소년』
『구체적 소년』 엇갈림이 만든 이야기의 확장들
여기 실린 스무 편의 시는 내가 떠나온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낯설게 되어버린 과거의 나를 많이 곱씹으며 작업을 했다.
시인과 만화가의 공동작업으로 완성된 ‘만화시편’ 『구체적 소년』 출간을 기념한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지난 4월 26일 합정 카페 파스텔에서 진행되었다. 행사의 사회는 웹툰 <숏컷>의 작가 이슬아가 맡아 미리 접수한 독자의 질문과 사회자의 질문으로 행사를 구성했다. 시인 서윤후와 만화가 노키드는 비교적 낯선 작업을 하면서 갖게 된 새로운 상상력과 자신들의 작업에 대해 솔직하고 편안하게 말을 전했다.
먼저 두 작가에게 만화시편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노키드 만화가는 “시집을 읽으니 너무 좋더라”며 “소년시대에 받아들이는 여러 감정을 선명하게 캐치한 부분이 와닿았다”고 시를 만났던 첫 느낌에 대해 말했다. 한편 서윤후 시인은 “제안 전화를 받은 날은 예비군 훈련장에 있던 날이라 총 쏘는 일만 아니면 뭐든지 재미있을 거라고 느낄 때였다(웃음)”면서 “처음에는 서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며 솔직한 감상을 전했다. “시는 시 나름이 가진, 만화는 만화 나름이 가진 본질이 있기 때문에 둘이 합쳐졌을 때는 훼손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인데, 더 많은 곳에 시가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노키드 작가님의 만화가 온도감이 있는 작품이라 서로 나쁠 것이 없겠다, 라는 ‘영(0)’의 상태에서 시작을 했다.”라는 이야기였다.
이슬아 작가는 이어 두 사람의 소년기에 대해 물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유년기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 같다”며 “지금 내가 아는 그 사람보다 작고 연약할 때를 상상하다보면 어쩐지 감동적이다”라고 질문의 의도를 전하기도 했다.
노키드 만화가는 먼저 “어릴 때는 <원피스>라는 만화를 되게 좋아했다. 열혈과 뜨거운 우정, 그런 것들이 온몸에 타오르는 느낌이었다.(웃음) 그때가 정말로 내 소년시대, 유년기가 아니었다 싶다.”고 답했다. 서윤후 시인은 “어렸을 때 항상 뭔가를 꾹꾹 참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뭔가를 요구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다. 또 외로움이 좀 많았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시계를 몰래 앞으로 돌려놓고 거짓말하는 유년을 보냈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즈음 시를 쓰면서 내 목소리를 내는 법을 처음 배운 것 같다.”며 자신의 소년기를 회상했다.
예술의 매력은 엇갈림
이슬아: 시의 문장과 디테일을 만화가는 어떻게 채웠는지 너무 궁금했다. 보니까 사이사이 대사가 꽤 많다. 노키드 작가가 대사를 넣을 때 마음이 무척 궁금했다. 어려웠을 것 같은데.
노키드: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서윤후 시인을 만나고 시를 읽은 다음 캐릭터를 만들었다. 주인공은 다 다르지만 똑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외롭고, 말 잘 듣고, 숨기는 게 많지만 말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 그런 동생을 기본으로 했다. 「희디 흰」의 주인공이 가장 마음에 들고,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서윤후: 내 시를 통과하면서 하게 되는 대화들이 있기 때문에 무척 새로웠다.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대사들이 하나하나 재미있게 느껴졌다. 가령 「희디 흰」에는 시골집이 등장한다. 그러나 시를 쓸 때는 굉장히 도시적인 아이를 상상하면서 썼기 때문에 정말 낯설었다. 이렇게도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들이 많았다. 만약 시를 쓸 때 원했던 대로 그림을 그려주셨다면 만족하고 말았을 텐데 엇갈리는 부분에서 재미와 시너지가 생겼던 것 같다.
이 우물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지킬 필요가 없다
길어 올린 것이 너무 많아 마을은 자꾸 어둠
얼굴 없이 얼굴을 부르는 이름들 사이
나는 우물을 지킨다
빠져 죽은 구두가 떠오른다 벗겨 주세요 이 젖은 발들로부터
도망가게 해 주세요
(「우물관리인」 중 일부, 『구체적 소년』 190쪽)
이슬아: 시 전문과 만화 원문 외에도 시인이 만화가에게 주는 코멘트가 달려있다. 어떤 것은 시보다 코멘트가 더 좋을 때도 있었다.
노키드: 좀 더 자세한 코멘트를 바랐다.(웃음) 최대한 굴절 없이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코멘트는 정제된 것이다.
서윤후: 노키드 작가님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작품마다 글을 써서 보냈다. 편집자 분이 그 글을 같이 실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읽으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웃음) 그런 부분은 좀 삭제했다. 사실 내가 내 시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시집에 실리지 못하고 버려졌던 작품들도 있었는데 그 작품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마음으로 더 애틋하게 편지를 썼던 것 같다.
이슬아: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는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 있었다.
노키드: 작가 외에도 누구나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어떤 방법이든 찾아서 그것을 자기 이야기로 표현하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수준이 어떻든지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긍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면 그게 좋은 작품이 아닐까. 그래서 이슬아 작가님의 <숏컷>을 좋아한다.(웃음)
서윤후: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머릿속이 하얗다. 시집을 내보니 전혀 의도하지 않은 작품이 사랑 받기도 하고, 정말 좋아하는 작품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을 종종 느낀다. 결국 제가 좋으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방식에 있어서는 너무 솔직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 이야기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같다.
파도의 디저트가 되네 하나밖에 모르는 맛으로 사탕처럼 둥글게 앉아 녹아 가는 연인들
철썩이는 파도가 핥아 가네
발가락부터 녹으며 조금씩 둘레를 잃어 가는 사랑이여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던 연인들이 전투적으로 질투하고 비로소 세계는 달콤해지고 온화해지네
(「사탕과 해변의 맛」 중 일부, 『구체적 소년』 78쪽)
이슬아: 「사탕과 해변의 맛」의 “전투적으로 질투하고”라는 부분이 재미있다. 질투에 관해 묻고 싶다. 최근 어떤 질투를 했나.
노키드: 질투를 열등감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랑이 포함되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질투라는 단어가 어렵다. 최근 가장 질투하는 대상은 아들이다.(웃음) 아들이 아내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것이 질투라면 질투랄까.
서윤후: 최근 <프로듀스 101>을 보는데 거기 나오는 친구들이 모두 멋있고, 재능이 뛰어나더라. 그런데 거기서 질투가 난 것은 그 친구들이 아니라 가수 보아였다.(웃음)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질투가 났다.
이슬아: 만화는 각각의 장면이 만나 하나의 큰 이야기가 되는 장르라 생각한다. 반면 시는 글이 흐르는 순서대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장르는 아닌 것 같다. 그런 둘의 만남은 공통 요소를 찾는 것이 난점이자 핵심이었을 텐데. 이 작업으로 부각시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나.
서윤후: 예술의 매력, 특히 협업하는 예술의 매력은 엇갈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시를 내가 상상한 그대로 그려달라고 한 적도 없고, 그걸 원하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서 노키드 작가님과 제가 많이 엇갈리는 편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엇갈리지 않아서, 생각했던 그대로 나온 부분에서는 오히려 민망하더라. 혼자서 생각하던 것을 들킨 느낌이랄까. 둘 다 좋았다.
노키드: 공감한다. 텍스트를 읽었을 때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 텍스트가 좋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다. 텍스트가 워낙 좋았다. 서윤후 시인이 만화 그리는 내내 별 개입을 하지 않았다. 그 점이 제일 좋았다. 그냥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하다.
독자가 묻고, 작가가 답하다
시를 그대로 그림으로 그린 작업을 예상했는데 말풍선이 따로 있어서 놀랐다. 작업하면서 고려한 사항이 있나?
노키드: 저도 그런 작업일 거라고 예상을 했었다. 텍스트를 그림으로 옮기는 것만으로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인, 편집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만화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림만 그리는 것은 삽화일 뿐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주셨다. 그래서 여러 사람을 만들었던 거다.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서 한 것도 있고, 상상을 덧붙여서 한 경우도 있다. 그렇게 탄생했다.
작업하면서 떠올린 사람이 있었나? 혹은 누군가가 읽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
서윤후: 시집을 내고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내 시집을 읽어줘야 할 사람들이 내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그랬다. 속상한 마음이 컸다. 이후 여행산문집도 내고 앤솔로지도 내면서 시와 다른 방식으로 이해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만화책을 만든다고 했을 때는 조금 더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직 반응을 살피지는 못했다.(웃음) 작업을 하다보면 분명히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가족일 수도, 시를 같이 쓰는 동료일 수도, 친구일 수도, 제 자신일 수도 있다. 여기 실린 스무 편의 시는 내가 떠나온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낯설게 되어버린 과거의 나를 많이 곱씹으며 작업을 했다.
노키드: 그냥 그림으로 번역을 했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을 굴절 없이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엇갈림에 대해 말을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무엇이었나?
서윤후: 「무사히」라는 작품은 되게 아픈 작품이다. 무사하지 못했던 저의 한 시절과 사건을 떠올리며 쓴 작품이라 이 작품이 그림이 된다는 것 자체가 생생한 느낌이었다. 이것이 실재가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것의 느낌을 받았다.
가장 어긋남이 없었던 작품은 무엇이었나?
서윤후: 교정을 보면서 사진을 계속 찍은 게 있다. 그 중 하나가 「독거청년」이라는 작품이었다. 그것은 어긋남 없이,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나왔던 것 같다. 제가 그 작품에 가장 애정을 많이 갖고 있고, 가장 많은 설계도를 그렸던 작품이기 때문에 그 작품이 이미지로 구현될 때는 작가님이 조금 더 이해를 하고 그리셨다는 생각이 든다.
읽고 씁니다.
<서윤후> 글, <노키드> 그림9,900원(10% + 5%)
시인 × 만화가 = 만화시편 귓가에 맴도는 詩의 소리와 닿을수록 새겨지는 만화의 온도 만화시편; 그래픽 포엠이라는 낯선 텍스트의 낯익은 온도 이 책에는 서윤후 시인의 첫 시집에 수록된 시 10편과 미수록 시 10편을 담았다. 각각의 편은 [만화]―[시 전문]―[시인의 코멘터리]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