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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을 여행하는 사람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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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희생자 304명의 영정을 바라보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는 것과 우리에게 연락하는 사람들이라도 그 날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남자는 2014, 나는 0416으로 새 휴대폰 번호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몬테비데오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남녀, 여행사정 15-01@우루과이 몬테비데오.jpg
그 때 나는 가라 앉은 배가 지구를 곧장 뚫고 이 반대편 바다로 나오길 바랬다.


‘어느 도시가 가장 좋던가요?’라는 질문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곳이든 한 달쯤 머물다 보면 모든 도시가 사연을 담은 물건 마냥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나 혼자서라도 평가 기준을 만들어 답을 드려야 하나 싶어진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서 ‘어느 도시에 대한 감정이 제일 복잡한가요?’라고 물어 준다면 주저하지 않고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라고 답하겠다.

 

우루과이가 어느 대륙에 속해 있는지 번뜩 생각이 난다면 지리 공부를 상당히 열심히 했거나 축구에 관심이 많은 분일 게다. 제1회 월드컵 개최국이자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지만 최고로 멋진 대통령 ‘호세 무히카Jos? Mujica’를 가졌던 나라이며 한반도만 한 작지 않은 국토를 지녔음에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거대한 두 나라 사이에 끼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국가이다. ‘우루과이라운드Uruguay Round Agreements Act of 1994’ 외에 한국 교과서에 등장할 만한 세계사적 사건도 없을뿐더러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가장 먼 나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관심 밖이다. 그럼에도 몬테비데오를 찾았던 것은 평생 볼 일 없는 달의 뒷면이 궁금한 마음과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애잔한 마음이 먼저 든다. 특별한 볼거리도 없고, 굳이 찾아가야 할 역사적 유적도 많지 않다. 남미 여행의 장점이라면 한국에 비해 저렴한 물가다. 음식 재료의 가격이 싸서 적은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대중교통비도 저렴하여 여행하는 이에게는 더없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서울만큼 물가가 비싼 몬테비데오에서는 이것마저 사라지니 여행자를 불러 모으기 쉽지 않다. 그나마 오던 여행객은 아르헨티나 여행 전 환차익을 노리고 달러를 뽑을 수 있는 ATM을 찾아와 남는 시간을 이용해 여행하던 부류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래 머물면 그 어떤 도시라도 자신만의 매력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접근성이 높은 아름다운 해변을 가졌고, 곳곳에 식민지배 시절 스페인 귀족들이 세운 건물과 성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 여자와 나도 한 달을 머물고 나서야 ‘남미의 작은 파리’라 불리는 이 오래된 도시의 매력이 보였다. 몬테비데오는 부끄러움이 많아 자신의 아름다움을 쉽게 보여주지 않으며 치장할 줄도 몰라 오래 두고 살펴야만 그 본색을 알 수 있다. 스치듯 지나는 여행자에게는 그저 그런 도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여행 중 매력적이지 않은 도시를 지나왔다면 그건 당신이 그곳에 몰두할 시간이 짧았기 때문은 아닐까?

 

낯선 이와 적당히 거리 두지만 한 번 정들면 더없이 따뜻한 마음을 내어주는 우루과쇼Uruguayo, 우루과이 사람이란 뜻의 스페인어. 멀쩡한 배가 가라앉은 그 날, 지구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급하게 묻지 않고 가만히 우리 옆에 앉아 손을 잡아 준 우루과쇼가 있었다. 이 도시를 생각할 때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2014년 그날, 지구 반대편 몬테비데오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남녀, 여행사정 15-02@우루과이 몬테비데오.jpg
현지인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힘겨웠던 2014년 4월의 몬테비데오에서.


강연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더 이상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여행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을까요? 정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미처 하지 못한 대답을 미련처럼 남겨두고 '그 날'을 떠올려 본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있었다. 한반도 가운데를 곧게 파고 들어가면 우루과이 어디쯤으로 나온다. 가까이 있어도 못 믿을 광경을 한국에서 가장 먼 땅에서 보고 있자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몸과 마음을 지배했다. 무력감에 짓눌렸던 우리는 숙소 밖을 나서지 못했다. 몬테비데오의 저 푸르디푸른 바다를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진실과 정의, 유대감이 실종되어 버린 참사 앞에 여행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왜?'라는 질문에 계속 매달릴수록 삶은, 여행은 계속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혹시나 이 불가해한 참사에 다른 원인이 있다는 소식이 들릴지 몰라 방 안에서 인터넷만 들여다보았다. 호스트와 같이 사는 젊은 미국인 친구는 여행의 의지마저 잃어버린듯한 우리의 태도를 우려하며 다른 소식은 없느냐고 매일 물어왔다.

 

강연 자리에서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을 때 돌아올 생각은 들지 않았냐’, ‘괴리감으로 여행을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아직 한 켠에 남아 그 질문이 질책인 듯 받아들여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멈추고 귀국을 해야 했을까?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곧바로 활동가가 되어 천막농성자리 한구석에 자리를 펴거나 사람들의 서명을 받거나 진상을 파헤치려는 르포 글을 쓰기 위해 유가족을 만나러 다니지 않는다면 그저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흔들리지 않고 해내야 하지 아닐까?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일상을 지켜냈던 많은 이들처럼 말이다. 당시 나의 일상은 '여행하는 것'이었다. 책이 계약된 창작물이었고 연재를 하고 있는 밥벌이였으며 무엇보다 나의 오래된 꿈이었다.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여행’이라는 내 일상도 지켜내지 못하면서 객관적이고 밝은 시각으로 이 사태를 끝까지 지켜볼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멀리서나마 여기에 휩쓸리지 말고 내 삶의 균형을 놓치지 않는 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참사가 일어난 지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한국에 돌아왔다.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함 투성인 이 마음을 어찌할지 모르겠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희생자 304명의 영정을 바라보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는 것과 우리에게 연락하는 사람들이라도 그 날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남자는 2014, 나는 0416으로 새 휴대폰 번호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때로 폭력적이기도 해서 모든 이들이 거창한 무언가를 하기를 종용해서는 안 된다. 선택에 문제에 당도했을 때 모두가 행동가가 될 순 없다.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기회가 주어져도 모두가 자신이 바라는 삶을 그 자리에서 단번에 결정지을 수 없듯이 말이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삶 가운데 우리의 일상을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이 중요할지 모른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명제 앞에서 끊임없이 진실을 찾고 사건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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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백종민/김은덕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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