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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보다 명징하고 또렷한 오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와 슈베르트의 ‘피아노소나타 21번’
시술 받은 육체는 일견 아름답게 보일지언정 그 인생은 추해진다. 아름다워지려고 할수록 더욱 추해진다. 이것이 시술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생활은 육신을 쇠퇴시킬지언정 그 인생을 아름답게 만든다. 한 권의 소설만 읽어도 이 단순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통령에게는 책을 읽는 사생활 같은 건 없었던 것일까?
TV에서는 매일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청와대 뒤에 숨은 비선실세가 이 나라의 주요 정책을 좌우하는 동안, 대통령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감추지 못하고 미용에 힘썼다고 한다. 그 갈망을 두고 대통령의 변호인은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라고 표현했다.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을 막으려는 필사적인 노력, 그것을 ‘개인의 생활’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에 이미 비극이 내포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활이란, 과연 그런 것일까?
살아오면서 몇 번, 광화문 앞 몇 차선일지도 모를 만큼 넓은 대로를 산책하듯 걸어본 적이 있다. 얼마 전에도 의외로 따뜻한 저녁에 촛불을 손에 든 여러 사람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나는 중앙선을 밟으며 걸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짜증이 조금 났다. 토요일 그 시간이면, 느긋한 마음으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거나 근처 서점의 신간 매대를 훑어보거나 일몰 뒤, 강 건너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고 싶었다. 생활이란, 그런 게 아닐까? 이 익숙한 세계와 함께 조금씩 늙어가는 것.
생활은 우리를 서서히 쇠퇴시킨다. 입가와 눈가에는 주름을 만들고, 예전과 달리 쉽게 지치게 만든다. 어떤 시술을 받고 무슨 주사를 맞는다고 그 쇠퇴의 과정을 막을 수는 없으리라. 그건 아주 오래된, 헛된 욕망일 뿐으로 시술 받은 육체는 일견 아름답게 보일지언정 그 인생은 추해진다. 아름다워지려고 할수록 더욱 추해진다. 이것이 시술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생활은 육신을 쇠퇴시킬지언정 그 인생을 아름답게 만든다. 한 권의 소설만 읽어도 이 단순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통령에게는 책을 읽는 사생활 같은 건 없었던 것일까?
생활이란 무엇인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마쓰이에 마사시가 쉰네 살의 나이에 발표한 데뷔작이다. 수십 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1982년 대학을 막 졸업한 사카니시 도오루가 존경하는 건축가인 무라이 슌스케의 설계사무소에 들어가 여름이면 온 사무실이 옮겨가는 가루이자와의 여름 별장에서 사무소 직원들과 보낸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표면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건 공모를 앞두고 국립현대도서관의 설계도면과 모형을 만들어가는 일이지만 그 이면에는 무라이 슌스케의 일생, 조카인 마리코와의 연애담 등도 있어 흥미를 돋운다.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이라고 부를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거나 힘들지는 않다. 그건 누군가 생을 마감하는 장면을 지켜보거나 사랑하는 여인이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느낄 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이렇게 무덤덤할 수 있을까, 싶다. 덕분에 몇 번의 촛불집회가 계속 이어지는 동안, 몇 번이고 내려놓은 이 소설을 다시 펼치면서도 나는 어떤 단절감도 느끼지 못했다. 마치 모처럼 TV를 켰다가 초등학교 시절에 시작된 가족 드라마가 여전히 방송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처럼.
이런 무덤덤한 태도는 작가의 미의식에서 비롯한다. 생존의 측면에서만 따져보자면, 생명 연장을 향한 최신 의료 기술은 적극적으로 권장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의료 기술의 사용료가 몇 천 만 원에 달한다면, 생활의 관점에서는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말하자면 부자는 젊게 오래 살고 가난뱅이는 빨리 늙고 일찍 죽게 된다. 비윤리적인 사회적 불공정에서 어떤 미적인 것을 찾기 어려우리라는 진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작가는 사멸 속에서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작가는 생존이 아니라 생활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건축에는 사용에 견디는 사용 가능 햇수가 있다. 보기만 하는 작품과 달리,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고, 사용하고, 조금씩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이나 발이 닿는 곳은 더러워지고, 느슨해지고, 낡아간다. 하얀 벽에는 그림자 같은 손자국이 생기고 벽지는 모서리부터 젖혀지고, 마룻바닥은 기름기가 빠져 마른 것처럼 허예진다. 몇 천 번, 몇만 번 여닫는 동안에 문의 경첩은 느슨해지고 이윽고 어긋난다. (389쪽)
건축가로서 인생을 반 정도 살아간 뒤에 화자인 사카니시 도오루가 말하는 이 ‘건축학 개론’은 건축이란 시작부터 소멸을 염두에 두는 작업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은 이내 열정을 잃어버리고, 선생은 어느 날 쓰러진다. 젊은 날의 여름을 꼬박 바쳐서 만든 도서관 모형은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여름 별장에 방치된다. 그럼에도 사카니시는 집착하지 않는다. “내 방에 남아 있는 카디건이나 숄에서 마리코 냄새가 희미하게 떠돌면 달콤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마음과 울 것 같은 쓸쓸함이 목까지 솟구쳐 올라왔다”면서도 “그러나 그렇게 마리코가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것을 나 따위가 되돌리는 것은 무리라고 마음 밑바닥에 체념이 쌓여갔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 따위가’라는 말은, 마리코의 집안이 대단해서이기도 하지만, 삶의 변화란 나 개인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 이토록 명징한 문장들인가?
생활이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어찌할 수 없는 일의 최종적 목적지는 사멸이다. 각종 시술과 주사제로 이 엄정한 사실에 맞설 때가 아니라 체념하듯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생활의 아름다움이 발생한다. 이 사실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소설의 문장으로 형상화해보라면 다들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그렇다면 모범답안은 여기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속에 있다. 어디를 펼쳐도 상관없다.
태풍으로 인한 정전은 일단 복구되었지만, 점검 결과 몇 군데 송전선 교환이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도 그 작업 때문에 오후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자가발전기는 가동했지만, 식당 테이블에 늘어선 촛불에 의지해 저녁을 먹기로 했다. 비시스와즈와 로스트비프, 밭에서 막 따온 가지랑 토마토, 피멘토에 주키니, 오크라 등 여름 채소 찐 것을 늘어놓았다. 색색가지 채소에는 호두 오일과 채 썬 레몬, 바게트에는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을 준비하고, 커다란 페퍼 밀과 솔트 밀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으로 왔다 갔다 한다.(109쪽)
노미야 하루에는 장서 중에서 특히 큰 피에로 델라프란체스카의 화집과 두껍고 무거운 옥스퍼드 인용구사전을 반쯤 망가져서 테이프로 보강한 커다란 독서대에 올려놓았다 내려놓았다 해보이면서 4단계로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조절 장치에 대해 설명했다. 원고 교정을 볼 때는 독서대를 평면에 가까운 15도로 한다고 한다.(241쪽)
성가시게 느껴질 만큼 저녁 식탁에 올라온 여름 채소와 오일과 조미료 등의 이름을 일일이 밝히거나 원고 교정을 볼 때의 각도까지도 정확하게 적는 것은 50대 중반에야 첫 소설을 발표한 마쓰이에 마사시의 이력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일본의 출판사인 신초사에서 편집장으로 오래 근무했다. 편집자는 문장을 매만지는 사람이다. 마치 깨끗한 헝겊으로 수석을 닦는 사람처럼 그는 골똘하게 단어들에 줄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긋고 새 단어로 바꾼다. 그 일을 반복할수록 문장과 단어들은 점점 구체적으로 바뀐다. 필기도구를 이용해 모호하고 추상적인 문장들을 또렷하고 구체적인 문장으로 교체하는 것, 이것이 바로 편집자의 기술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시 편집자니까 그렇겠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면, 이 책의 주제와 관련한 중요한 뭔가를 놓치게 될 것이다. 그 뭔가에 대해서 알자면, ‘왜 이토록 명징한 문장들을 사용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져야만 한다. 일단은 이 의문을 마음에 담은 채, 슈베르트의 ‘피아노소나타 21번’을 들어보는 게 좋겠다. 물론 내가 강권하지 않더라도 381쪽까지 읽는다면 다들 이 곡을 찾아 듣게 될 것이다. 그 연주에 대해 화자는 이렇게 말했다.
터치는 부드럽고 막히는 곳이 없었다. 교양이라고 할 레벨이 전혀 아닌 것에 대한 놀라움은 이내 사라지고 그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와 맞서는 것도 아니고 친한 친구에게 보내는 것도 아닌, 하물며 애인에게 들려주려는 것도 아니고 혼자 자기하고 대화하고 있는 것 같은 선율이었다. 슈베르트는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381~382쪽)
퍼스트플러시 다즐링과 마르콜리니 초콜릿
나는 우치다 미츠코의 연주를 찾아 들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2009년 6월 29일자 <뉴요커>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게 됐다. 그 즈음 여름이면 우치다 미츠코가 머물던 미국 버몬트 주의 말보로 스쿨 캠퍼스에 있는 숙소에 관한 설명이었다.
반지하 원룸으로 하얀색 시멘트 벽에 가구도 많지 않고 빛도 흐릿했다. 우치다가 여기서 혼자 살고 있으면 마지막 주에 영국 외교관인 파트너 로버트 쿠퍼가 찾아와 합류했다. 피아노 위에는 우치다가 공부 중인 음악 자료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책장에는 여름에 가볍게 읽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책들이 꽂혀 있다. <신곡 - 지옥편>, <햄릿>, W.G.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 예이츠와 제라드 맨리 홉킨스의 전집들, 독일어로 씌어진 스테판 츠바이크의 자서전. 얘기를 나누는 동안, 우치다는 자신에게 허락한 두 가지 사치품을 내놓는다. 퍼스트 플러시 다즐링 차와 마르콜리니 초콜릿이다. (THE MUSIC MOUNTAIN By Alex Ross)
왜 이토록 명징한 음률과 또렷한 세계일까? 우치다 미츠코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아마 거기서 생활의 미학이 생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생활의 아름다움은 성형 시술로 주름 하나 없어진 매끈한 얼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한 해 중 처음 수확되는 다즐링 차의 맛을 알아보고, W.G.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천천히 읽는 일에서 비롯되리라.
쇠퇴하고 소멸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일보다 더 괴로운 일은 아마도 자신의 쇠퇴와 소멸을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그때 우리가 알게 되는 건 바로 그런 이유로 내가 살아온 인생은 저절로 명징하고 또렷해진다는 사실이다. 그 점에 대해서 소설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양손으로 끌어안듯이 아크릴 케이스를 살그머니 들어올려 옆에 두었다. 이렇게 정밀하고 견고한 모형은 전에도 후에도 본 일이 없다. 우치다 씨하고 나와 유키코가 별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이 모형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팔과 손목, 손바닥과 손가락의 연계가 이상적으로 안정되고(어떤 세밀한 작업에서도 손가락은 1밀리미터도 떨지 않았다), 시력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고(0.1밀리미터의 틈새도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본인들은 그 사실에 아무런 자각이 없던, 틀림없는 젊음이 있었기 때문이다.(414쪽)
물론, 젊음은 아름답다. 하지만 젊음이 아름다운 건 1밀리미터도 떨지 않은 손과 0.1밀리미터의 틈새도 구분하던 눈처럼 이 세계의 사물을 그 모습 그대로 감각할 수 있는 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지금 우치다 미츠코의 연주에 세세하게 빠져들고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한, 오늘 나는 내일보다 더 젊은 존재라는 뜻이다. 왜 이토록 명징하고 또렷해야만 하는가? 세계를 섬세하게 구분할 때, 생활은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마쓰이에 마사시 저/김춘미 역 | 비채
일본 현대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등장했다. 오랜 편집자 생활을 뒤로하고 늦깎이 작가로 데뷔한 거물 신인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 그 주인공이다. 인간을 격려하고 삶을 위하는 건축을 추구하는 노건축가와 그를 경외하며 뒤따르는 주인공 청년의 아름다운 여름날을 담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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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소설 문법의 자장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소설적 상상력을 실험하고 허구와 진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이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섰다. 대표작에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 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등이 있다.
<마쓰이에 마사시> 저/<김춘미> 역15,1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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