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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경, 록이든 메탈이든 블루스가 기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원작자 ‘블루스 기타리스트’ 타이틀에 걸맞는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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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블루스 감성이 있다고 본다. 아리랑과 블루스가 뭐 다른가. 블루스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장르다. 근데 미디어가 너무 역할을 못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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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꼭 블루스만을 한 것은 아니다. 앨범을 들으면 컨트리도 산재해 있고 히트작 '부르지마'처럼 완연한 팝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가 블루스에 절개를 바쳤음은 분명하다. '블루스에의 헌신'이란 표현은 국내에서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 그에게만 주어지는 특전이다. 음반과 달리 공연에서는 그 타이틀에 매우 충실하다. “록이든 메탈을 하든 블루스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그 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입히면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그는 포크송이라 할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김광석도 김목경 노래를 듣고 훗날 리메이크를 기약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사실 한 시간도 안 걸려 이 곡을 썼으며 김광석은 슬퍼서 술을 먹고 녹음했다”는 뒷얘기를 전했다.

 

돈 안 되는 블루스지만 그래도 거기서 그는 적잖은 영예를 얻었다. “내가 만일 블루스 말고 다른 걸 했으면 그렇게 오래 못 갔을 것”이라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2003년 미국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 블루스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공연했을 때를 꼽았다. 여기선 찬밥인데 거기서는 인정해준다는 이유였다. '노벨상 받은 책 하나도 안 읽었고 누가 뭘 썼는지도 모르는데, 그는 내게 직접적 영향을 줬으니까.'라며 밥 딜런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행복했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슬픈 블루스를 '즐겁게'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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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연은 어떤 무대에서 주로 하나요.


클럽이든 어디든 다 한다. 어제, 그제는 춘천에 'CC Blues'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춘천 상상마당에서 주최하고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공연인데, 올해가 4회째다. 무대든 객석이든 전부 블루스 애호가들이다. 그제는 세 팀이나 출연했다.

 

혹시 국내 지역으로 볼 때 여기는 블루스 인프라가 있구나 하는 곳이 있나요.


없다. 지금 춘천 CC 블루스를 매년 하고 있고, 경북 영주에서는 블루스 페스티벌을 올해 2회째 했다. 내가 음악감독이다. 되게 재밌는 건, 그런 일들이 서울 같은 대도시에선 전혀 안 일어나고 지방에서 일어난다. 그 사람들이 특별히 블루스를 좋아해서 하는 건 아닐꺼다. 더구나 영주는 유교적인 관념이 강한 덴데. 근데 영주 시장님이 적극적으로 후원한다. (웃음)

 

블루스는 토속적인 측면도 있지만 통상적으로 도시에서 소화해주지 않나요. 블루스 팬들이 서울에 많을 텐데 영주에서 하는 게 아이러니라는 얘기인가요?


그렇다. 이렇게 지방에서 한다는 게 물론 좋은 일이긴 하지만 뭔가 잘못 되어서 좋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는 그게 왜 안 되는지... 솔직히 우리에겐 블루스 감성이 있다고 본다. 아리랑과 블루스가 뭐 다른가. 블루스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장르다. 근데 미디어가 너무 역할을 못한다고 본다. 이미 늦었다. 1960-1970년대에 그 기본이 갖춰졌어야 한다.

 

아이돌, 힙합, EDM 아닌 블루스를 하면 팬들은 덜 모이는 게 당연하지요. 진골 팬밖에 모이지 않아요.


그거보다 더 중요한 게, 우리는 한국 전쟁 끝나고 음악을 잘못 받아들인 거다. 그때는 대중음악이란 게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미국 음악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반면 일본은 제대로 들어왔다. 그래서 일본도 마찬가지로 젊은 층에서는 댄스도 좋아하고 힙합도 좋아하고 하지만 한국엔 없는 인프라가 있다. 일본은 어디가나 블루스 팬이 꼭 존재한다.

 

지금도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이 공연하면 일본을 꼭 거치지요. 본국에서 소화 못하는 걸 일본이 소화해준다고 할까요.


맞다. 저도 1년에 한 번씩 가서 한다. (주로 어디냐고 묻자) 도쿄다. '지로키치'라는 블루스 클럽에서 주로 한다. 1976년에 오픈한 블루스 전문 클럽인데 굉장히 오래되고 유명한 곳이다. 요즘은 그렇지 않겠지만 예전엔 일본에서 공연하는 해외 블루스 아티스트들이 무조건 이 클럽을 거쳐 갔다. 상당히 유명하다.

 

데뷔 이래 공식적으로 음악 한 것만 30년이 넘었습니다. 물론 꼭 블루스만 했던 건 아니지만, 블루스를 30년간 해왔는데 감회가 어떤가요.


럭키 맨? (웃음) (운이 좋았다는 거냐고 묻자) 맞다. 내가 만일 블루스 말고 다른 걸 했으면 그렇게 오래 못 갔을 것이다. 돈도 못 벌고 인구도 많지 않은 나라에서 왜 블루스를 하느냐. 일단 내가 좋다. 이걸 하면 굉장히 재밌다. 그건 어떻게 보면 늙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예의 순간으로 가봐야겠습니다. 기타 제작사 펜더(Fender)가 커스텀 모델을 헌정한 것이 언제였나요.


2013년 11월이다. 신대철('시나위' 기타리스트)하고 김도균('백두산' 기타리스트)하고 같이 받았다. 그 전에 펜더가 트리뷰트 해준 국내 뮤지션 1호는 신중현 선생이다. 내가 계속 펜더만 쳤으니까 그런데다가 음악이 일단 록의 기원인 블루스니까 헌정해준 것으로 안다. 그 사람들도 다 체크를 했을 것이다. 요새는 유튜브도 있으니까. 그 이유일 것이다.

 

그곳에서 라이브도 했죠


원래는 연주를 하는 걸로 알았는데 어떤 이유였는지 결국 못했다. 대신 LA에 있는 커스텀 샵(Custom shop) 공장에 가면 연주를 할 수 있는 홀이 있다. 거기서 했다.

 

당연 블루스를 했겠죠?


물론. 셋(김목경, 김도균, 신대철)이 같이 할 수 있는 걸로. 그 커스텀 샵 안에 7명의 마스터 빌더가 있다. 기타를 만드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대량생산은 안하고 주문 생산만 한다. 에릭 클랩튼 기타 만드는 사람, 뭐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만나서 방을 각각 다 돌아다니면서 인터뷰도 하고 평소에 궁금했던 것도 물어봤다. “한국 사람들은 납땜까지 신경 쓰더라. 납의 질 같은.” 그런 걸 물어보니까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더라. (웃음) 깜짝 놀랐다. 별로 상관이 없다기에! 그럼 뭐가 중요하냐고 하니까 답하는 게 다 다르긴 한데, 에릭 클랩튼 기타 만드는 사람은 '줄의 두께'가 중요하다고 하더라. 결국 그게 울림을 만드니까.

 

깁슨과 펜더를 취향 수준에서 비교한다면요?


내가 펜더를 선택한 이유는 나는 (무대에서) 노래를 해야 한다. 노래하는 순간에는 기타의 볼륨을 줄여야 한다. 근데 또 리듬도 쳐야하고, 또 솔로가 오면 다시 볼륨을 올려야하고. 펜더를 오래 치다보니까 이게 손에 익숙해졌다. 깁슨은 조절 레버가 밑으로 내려가 있다. 그게 어렵다. 깁슨은 불편하다. 물론 성격 탓도 있겠지만..

 

2003년에 블루스의 고장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 페스티벌(Beale Street Music Festival)>에 초청 받기도 했습니다. 어떤 페스티벌인지 소개해주세요.


'멤피스 인 메이(Memphis in May)'라는 5월 축제가 있다. 그 조직위 안에 빌 스트리트 뮤직 페스티벌이 있다. 3일간 하는데 약 13만 이상이 오는 매머드 급 축제다. 톰 리 파크(Tom Lee Park)라는 미시시피 강 옆에 굉장히 큰 공원이 있다. 거기서 하고 스테이지는 3개로 이루어져있는데 각각 블루스, 록, 가스펠 전문이다. 당시 난 3일 공연에 모두 올랐는데, 백업하는 미국인들과 맞춰봐야 하니 1주일 전에 갔었다. 블라인드 미시시피 모리스(Blind Mississippi Morris)라는 밴드가 있다. 무지하게 유명한 애들이다. 블라인드 미시시피 모리스는 사람 이름이고 하모니카를 부는 장님인데, 블루스 하모니카로는 미국 3대에 들어간다. 정말 잘한다. 걔들이 백킹 해주니까 리허설 한 두 번했나. 두 번 하고 무대에 올랐다. 쇼는 한 시간 정도. 한 시간짜리를 3일 동안 3번 하는 거다.

 

최소한 12, 13곡은 했겠네요. 놀라지 않던가요. 동양인이 블루스를 하니까요.


그런 건 있더라. 공연 리뷰도 좋게 나왔다. 첫 날 딱 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웃음) 미국 애들이 못하면 바로 야유하지 않나. 잘하면 또 반응이 바로 오고.

 

음반 가져가면 미국 관객들이 많이 샀을 텐데요.


그러게. 음반을 안 가져갔다. (웃음) 거기 있는 동안 텔레비전 인터뷰를 2번, 라디오 인터뷰를 한번인가 했다. 중요한건 내가 거기 가기 전에 현지 라디오에서 '한국에서 목경 킴이 오는데' 하면서 내 음악을 계속 틀어줬다는 것이다. 뭘 틀어줬냐면 1집에 있는 'Mr. Clapton'. 거기 가니까 이미 사람들이 날 알더라. 멤피

스가 그리 큰 동네는 아니다. 그래서 길거리 다니면 사람들이 알아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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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Mr. Clapton'을 창작한 의도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우상이기 때문이었나요.


아니다. 노래는 1980년대 중반에 만들었다. 오래 전에 만들어둔 곡이고 녹음은 1988년도인가에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에릭 클랩튼은 사실 예전의 전성기 같지 않았다. 히트작도 없었고 내리막길이었다. 가사 내용도 그렇다. '사람들이 이제 너 갔다고 하는데, 이제 내가 할게.' 뭐 이런 내용이다. 사실은 반대다. (웃음) 물론 에릭 클랩튼이 어렸을 때부터 영향은 많이 줬다. 그건 부인 할 수 없다.

 

노래 초반에 아주 명징한 기타 사운드를 잡아 놓고 들어가는데 그거 깁슨인가요?


아니다 펜더다. 그 앨범은 전부 펜더로 녹음했다.

 

펜더에서 그렇게 예쁜 소리가 나오나요?


그건 아무 이펙터 없이 그대로 앰프에서 나오는 소리다.

 

처음 그 소리를 듣고는 참 예쁘다, 어떻게 뽑았나 했습니다.


내가 이런 얘기할 자격 있나 싶지만, 내가 요즘 젊은 애들, 기타 치는 애들한테 사람들 많은 공연무대에서 '이펙터를 쓰지 않고 한번 쳐보라'고 한다. 그럼 얘들이 무지하게 당황하는데, 내 경험상 그 순간에 또 하나를 알아차린다. '소리가 이렇게 좋네.' 이런 거. 단지 자기 플레이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연습 할 때도 가능하면 클린 톤으로. 대신 소리가 밖으로 나가야 하니 볼륨을 좀 키워야 할 것이다. 그러면 분명히 (그 소리를) 발견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목경 기타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 하시나요. '내 기타 사운드는 이거다.'

 

'심플'이다. 난 지금도 이펙터를 하나밖에 안 쓴다. 작은 것 하나. 밟으면 켜지고 끄면 꺼지는 것. 그거 두 소리면 충분하다. 솔로 할 때는 밟고. 아니면 기타 볼륨으로 조절한다. 기타 볼륨을 줄이면 밟았을지라도 생소리가 난다. 거기서 볼륨만 올리면 약간 찌그러진 소리가 나고.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앰프에서 직접 나오는 그 소리다. 기타 대 앰프가 1대 1로 붙었을 때가 제일 좋다. 거기 뭐가 끼기 시작하면 복잡해진다. 점점 깎인다.

 

그런 면에서 어렸을 때 특별히 좋았던 기타 연주가 있다면. 참고로 저는 어려서는 리치 블랙모어, 커서는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 였습니다.


마크 노플러 좋다. 그 사람도 그 '과'다. 그런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 그 매력을 알고 있는 거다. 앰프에서 직접 나오는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소린지. 생각해보니 나도 마크 노플러 같은데. (웃음)

 

김목경 선생과 마크 노플러 소리가 같은 계통이었나요. 물론 그가 블루스에 헌신한 기타리스트는 아니지만. 공통점이 뭔가 했더니 이펙터에 있었군요.


홍대에 있는 젊은 친구들이 해보긴 해 봤을 텐데, 안 끌리고 자신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쳐본 사람은 안다. 왜냐면 이펙터를 쓰면 음의 길이가 길어지지 않나. 그 찌그러진 소리가. 그럼 서스테인이 오래 가니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 거다. 근데 그건 한 순간에 바뀐다. 아름다운 소리를 한번 경험하고 나서는 이게 고운 소리구나 하는 거를 알게 된다.

 

기타를 잡게 된 계기는요.


기타는 중학교 때부터 쳤다. 블루스는 고등학교 때부터다. '빽판' 막 사갖고 “너 이거 있어? 나는 없어.” 이거 할 때. 그 때 청계천에서 뭔지도 모르고 그림이 너무 멋있어서 2장짜리 컴필레이션 앨범을 하나 샀다. 기타 치는 사람들이 있고 그랬는데 그게 <블루스 컴필레이션>이었다. 애들이 없는 거 샀다고 좋아서 집에 와서 그걸 듣는데, 전에 내가 그렇게 어렵게 따려고 했던 레드 제플린이나 롤링 스톤스 이런 비밀이 여기 다 있더라. 쭉 들어보니 다 비슷한 음악인데 기타의 비밀이 여기 있었다. 한마디로 '스케일(scale)'을 발견한 거다. 펜타토닉 스케일. '백인 애들이 이거 다 갖고서 쓴 거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블루스 앨범들 다 사고 에릭 클랩튼도 사고 그랬다. '에릭 클랩튼 이 사람은 프레디 킹(Freddie King) 그대로 베꼈구나.' 이런 걸 그때 알았다.

 

펜타토닉 스케일 그 맛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역시 손맛인가요.


손맛과 그 사람의 정신상태, 사상. 왜냐면 그걸 이용해서 나만의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 그림도 스케치하고 데생하고 채색하듯이 이거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기승전결이 있는 기타리스트가 흔히 '참 맛있게 잘 친다.' 하는 기타리스트다.

 

런던 유학이 큰 도움이 됐을 것 같습니다.


런던은 1984년에 가서 1989년까지 있다가 1990년에 들어왔다. 내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기였다. 난 거기서 진짜 블루스를 알게 되었다. 100%다. 보고 듣는 게 '다 배우는' 거였다. 게네들하고 음악을 하면서. 건반 치는 애가 리더였는데 걔가 나한테 이렇게 한번 쳐보라고 스케일을 쳐준다. 그럼 내가 그걸 따라하고 그랬다. 걔들이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는데도 블루스를 속속 다 알고 있더라. 한마디로 도사였다. 그러니 배울게 얼마나 많았겠나. 이거 들어봐라 저거 들어봐라. “이거 어떻게 친 거야?” 하면 자기가 쳐준다. 그걸 그대로 다 따라하고 배우면서 흥분된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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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1집에서 'Mr. Clapton'보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에 끌렸습니다. 당시 라디오 PD들이 그걸 일제히 다 틀었으니까요. 그 노래도 런던에서 썼나요?


그때가 런던에서 한 5년차 됐을 때다. 그동안 한국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쯤 되니 친구도 보고 싶고 집에도 오고 싶더라. 약간 향수병에 걸려있을 때였다. 당시 내가 살던 방이 2층에 있었는데, 방에서 건너편 집 뜰이 보였다. 그 집에 70대쯤 된 영국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 집 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손자를 데리고 밥을 먹으러 왔었다. 그러다가 밤 10시 정도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때 노부부가 뜰에서 손을 잡고 안녕 해주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몇 번 봤다. 사실 그 전까지는 한국 사람과 서양 사람의 문화적 공통점이 전혀 없다고, 100% 다르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때 그걸 딱 보는 순간, 그래도 몇 개는 공통점이 있구나 싶어서 '일단 이 사람들이 없는 것부터 써보자.' 하고 썼다. 거기 막내아들 대학 시험 이런 건 전혀 없다. 부모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이런 거. (웃음)

 

가사에서 아내가 먼저 죽잖아요. 비극적으로(?) 끝맺음을 한 이유가 있나요.


예를 하나씩 들어가며 쓰다가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썼는데, 엔딩을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더라. 그러다 '한 명이 죽어야 한다.' 하고 그렇게 만들었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마지막에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 문장은 정말 명문인 것 같습니다. 김광석이 잘 부르기도 했지만요.


광석이가 잘 불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말해주는 것 아닌가. 근데 그거 사실 술 먹고 부른 거다. 지금의 가로수길 쯤 인데, 압구정동에 있는 지하 녹음실에서 했다. “형 나 오늘 녹음인데 오세요.” 해서 갔더니 벌써 들어가기 전에 족발에다가 소주 한잔 하고 있었다. 나중에 왜 술 먹고 했냐고 했더니 “이 노래는 술 먹고 해야 한다”고 하더라. “너무 슬프니까, 이 노래를 이어 나가기 힘들 것 같다”고 그러면서. 광석이 버전도 베스트지만 그 노래 부른 사람 중에는 유석이 형(서유석) 버전이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노래는 거짓말 안하고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쓴 거다. (명곡은 의외로 산고를 거친 게 별로 없다고 했더니) 더 웃긴 건 내가 녹음 할 때 영국 애들이랑 하지 않았나. 다른 곡 7곡은 영어 가사도 있고 컨트리도 있으니 다 이해를 하더라. 근데 이거만 이해를 못하고 밍숭맹숭했다. (웃음)

 

느낌이 없으니까요. 그건 한국 사람만 알지 않을까요.


그래서 일부러 앨범 맨 아래 8번에 깔았다.

 

김광석은 그때 당시에 왜 이걸 부르려고 했던 건가요. 1995년 <다시 부르기> 앨범에 수록했는데, 그때 들으면서도 '이거 노래 잘 골랐다!' 했습니다.


광석이가 그 노래를 부르기 전에도 내 오리지널 버전이 라디오에 많이 나왔다. 광석이도 라디오에서 듣고 좋아해서, 특히 당시 자기가 진행하던 불교 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밤의 창가에서’)에서 많이 틀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부르겠다고 하길래 “그래 불러라.” 했다.

 

사실 그 노래는 스토리 송으로 코드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메시지를 위해 음악적 부담은 줄인 것 아닌가요.


그런 점도 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윤형주, 김세환, 김민기 이런 포크 송 했던 사람들 음악을 오랫동안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 감이 몸에 배어있다. 그 감각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이번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어땠나요.


좋다. 행복했다. 내가 노벨상 받은 책 하나도 안 읽었고 누가 뭘 썼는지도 모르는데, 밥 딜런은 내게 직접적 영향을 줬으니까.

 

앨범 얘기 돌아가서, 지금까지 총 6집을 냈습니다. 과작(寡作)입니다.


라이브 음반 2장까지 하면 총 8장이다.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만들 때 고통이 있었던 앨범은 하나도 없다는 얘길 하고 싶다. 해피했다. 뮤지션들은 그거 할 때가 제일 재밌다. 그 다음에 닥쳐 올 고통을 생각하면서도 일단 내가 즐겨야 하니까. 그게 우선이다. 내가 창작을 하는데 있어서 재밌게 만들어야지. 나중에는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 '뒤에 따르는 고통'. 으으….

 

그때부터는 산업의 영역이니까요.


그렇다. 그때 어떤 생각이 드냐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만드는데 방송에 안 나오면 어떡하지', '말짱 황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 아무튼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4집부터 '부르지마' 같은 지극히 대중적인 곡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치지 않던가요.


지쳐도 뭔가 만들려는 노력 속에 시간을 보내니까. 녹음 할 때는 내 방식이 있다. 우선 멤버들 다 데리고 가서 내가 할 곡의 뼈대를 다 만든다. 그 다음에 나의 문제다. 노래와 기타를 입혀야 하니까.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까 돈 들고 이런 거는 나한테 다 달려있다. 내가 제작을 하기 때문에. (그는 데뷔 때부터 매니지먼트 없이 혼자 했다고 덧붙였다)

 

대단합니다.


난 그걸 '너무너무' 후회한다. (웃음) 그래서 지금 젊은 친구, 신인이 그렇게 한다고 하면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다. “네가 1-2년 손해를 보더라도 기획사를 들어가서 해라. 그래야 나처럼 고생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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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의 앨범 중에서 대중들은 1집을 가장 많이 아는 것 같고 4집의 '부르지마'는 전형적인 팝 스타일인데, 가장 자랑스러운 앨범은 어떤 건가요.


나는 다 좋지만 굳이 얘기하자면 내가 제일 감성이나 머리가 반짝반짝 할 때 만들었던 1집이다. 그땐 딱 자려고 누우면 멜로디가 떠올라서 쓰고 그랬다. 요즘은 그런 게 없다. (웃음)

 

4집의 '부르지마'는 어떤 곡인가요.


그거도 무지 빨리 만든 곡이다. 사실 의도는 컨트리였다. 근데 곡이 마이너다 보니 바이올린 입히고 해도 컨트리 맛이 안 살지 않는 거다. 의도한대로 그 맛이 잘 나오진 않았다. 결과는 뽕 비슷하게 가요 풍으로 나왔다. 그걸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5집에서는 '거봐 기타 치지 말랬잖아'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고달픔인지요.


전혀 아니다. 오히려 코미디처럼 희화화 한거다. 혹자는 “돈도 못 벌고...”하는데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웃기게 만들려고 한 거다. 엄마가 어려서 기타치는 거 보고 맨날 하던 소리가 기타치지 말라는 거였다. 너 뭐가 되려고 기타 치냐고. 그게 나이가 드니까 자꾸 그 말이 생각이 나더라. 엄마는 이제 돌아가셨는데. 그래서 그렇게 썼다. 물론 염려는 했다. 사람들이 이 가사를 보면 분명히 얼마나 고달프면 그럴까 생각할 텐데, 싶은 거다. 사실 난 웃기려고 쓴 건데. (웃음)

 

3집의 '여의도 우먼'을 쓸 때의 배경은요.


3집은 전체적인 콘셉트가 있었다. '앨범 자체를 블루지(bluesy)하게 가볼까' 하고 만든 거다. 앨범 전체를 다. 그때 '외로운 방랑자'도 있었고.

 

'외로운 방랑자'? 혹시 그때 실연을 경험하신 건가요.


(웃음) 외로운 방랑자는 연주곡인데 그 노래가 어떻게 나왔냐면, 한국에 와서 앨범을 3장 째 만들었는데 내가 정말 '외로운 방랑자'인거다. 돈도 안 되지,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돌아가야 하나, 영국에 가서 맨날 블루스만 해야 하나.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그래서 제목을 외로운 방랑자라고. 내 얘기다. 우울하지 않나. 가장 김목경적인 앨범이다.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답할 것이다.

 

이건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걸작이다 싶은 곡이 있다면요?


5집의 '멕시코로 가는 길'.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아서.

 

5집이 2002년에 나오고 6집이 2008년에 나왔으니 오래 쉬고 있는 편입니다. 물론 중간에 라이브가 있긴 했지만. 앞으로 나올 새 앨범의 콘셉트는 잡았는지요.


현재 뼈대는 다 만들어 놨다. 처음으로 리메이크 곡을 수록할 예정이다. 무당의 '멈추지 말아요', 대수 형(한대수)의 '하룻밤', 이장희 '당신을 처음 본 순간' 3곡을 리메이크 한다. 평소에 좋아하는 곡들이니까. 별 의미는 없다. (웃음)

 

앨범의 성격은 정통 블루스인가요.


3곡의 커버를 포함해서 기존 해오던 방식으로 8곡을 수록했다. 창작곡은 5곡이고 7집으로 명명될 것이다. 또 하나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건 완전 블루스 커버 음반이다. 블루스 명곡들로만. 10여 년 전인가, 일본에서 “라이브는 블루스인데 음반은 왜 블루스를 안 냈냐.”는 얘기를 들었다.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창피했다. 벌거벗는 것 아닌가. '한국은 블루스 하면 돈 안 돼! 그냥 망해!!' 이렇게 얘기를 할 수는 없는 거다. 잘 설명을 해주긴 해줬지만. 근데 이제는 상관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블루스 앨범 그걸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어떤 곡들이 들어가나요.


지금 뼈대는 다 만들어 놨다. 머디 워터스의 'Rollin' and tumblin'', 알버트 콜린스(Albert Collins)의 'Honey hush', 알버트 킹(Albert King)의 'The sky is crying',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Dust my broom' 비롯해서 한 8곡정도. 그건 빨리 된다. 왜냐면 무대에서 항상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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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김목경 선생을 잡은 블루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혼(魂)인가요.


뭐랄까... 무형의 소리를 말로 하기가 참 그렇다. (웃음) 블루스라는 게 기타가 반을 얘기 하지 않나. 노래가 있으면 가사가 반이고 나머진 기타. 가사가 못 채운 부분을 기타가 말하는데, 그게 재밌는 거다. 기타로 사람들을 설득 시켜야 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전에 그 소리에 내 자신이 설득 당해야 한다. 그럼 그거 성공한 거다. 무대 밑에서 보는 사람들도 그걸 느낀다.

 

그럼 솔로에서 가장 맛을 잘 내는 사람은 누구라고 보세요.


비비킹(B. B. King)이다. 처음에 들으면 굉장히 단조롭다. '원 노트 맨(One-note man)' 이라고 하지 않나. 별로 벤딩도 없다. 근데 거기 한 음 '띵'에는 그 사람의 모든 열정이 들어있다. 물론 다른 사람도 '띵'은 된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피카소 찍은 점 하나를 천억이라고 한들, 초등학생이 점 하나 찍고 피카소라고 하면 천억을 주겠나. 비슷한 얘기다. 비비킹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사실 블루스의 매력은 이거다. 한 기자가 어느 날 비비킹에게 “아니 당신은 한 음으로 평생을 사나. 재미없지 않나.” 라고 하니 비비킹이 “상대방하고 대화할 때 처음부터 막 감정이 고조 되어서 얘기하면 그 사람 절대 설득 못 시킨다. 그러나 네가 하고 싶은 말 하나에 중점을 둬서 딱 얘기했을 때, 한마디를 하더라도 그때 그 사람을 설득 시킬 수 있다.” 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이 맞다. 그게 블루스다.

 

근데 그거 아무나 못하는 거잖아요. 한 번에 나올 수가 없죠. (웃음)


당연히 그건 맞는데. (웃음) 근데 사실 '원 노트 맨'이라고 해서 딱 한 음만 계속 치는 건 아니다. 몇 음을 치는데 사람 혼을 울리는 톤을 딱 내는 거다. 그 말에 현혹 되어서 기타리스트가 음을 조금만 치는 건 좋은 게 아니다. 그런 사실을 인지를 하고 자기 색깔을 입혀 나가야 하는 거지. 블루스가 재밌는 건 그런 것 같다. 내 그림을 그리는 것. 내 스토리를 얘기해주는 건데 메탈 하는 사람들처럼 과격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블루스같이 몇 음 많이 안 하면서 감정을 실어서 하는 사람도 있고. 블루스 뮤지션이 인상 안 쓰고 기타 치면 그거 블루스 아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요.


2003년이다. 멤피스에서 초청했을 때. (그렇게 좋았나요 하니까) 여기선 '개털'인데 거기서 인정해주니까. 퍼포먼스 비용도 줬다. 비행기, 호텔, 음식 다 대줬다. 자비 하나도 들지 않았다.

 

후배 블루스 밴드들과 교류는 하는지요.


영주 페스티벌 섭외를 내가 한다. 그래서 나도 찾아봤는데 그때 발견한 팀들이 몇 있다. '부기 몬스터'도 있고, '소울 트레인'이라고 있다. 브라스까지 있는데, 그 친구들 음악 좋다. 평소 홍대에서 못 듣던 스타일이다. 병주(윤병주)네 '로다운30'도 괜찮고. (대선배로서 한마디 부탁했더니) 내 밥도 못 찾아 먹는데.. (웃음) 기타는 일단 블루스다. 블루스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입히면 된다. 록이든 메탈을 하든. 그러나 블루스가 베이스로 되어 있는 뮤지션이 되어야지 외국에서 인정을 받는다.

 

지금까지 내 인생을 결정한 음반이 있다면요.


아까 말한 청계천에서 산 빽판 2장짜리. 타이틀이 <블루스 기타리스트 컴필레이션(Blues Guitarists Compilation)>인가 그럴 거다. 거기 비 비 킹, 알버트 킹 다 있다. 그거다. 그거 때문에 블루스를 하게 되었으니까.

 

사진 : 이기찬
인터뷰 : 임진모, 정민재
정리 :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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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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