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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순문학이든 장르문학이든 잘 쓰는 게 중요”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이 소설은 90년대 조폭코미디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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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앉아서 구라를 푸는 것 말이에요. 수다를 여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남자도 마찬가지거든요. 남자들은 언제나 술자리에서 말을 해요. 허세도 부리고요. 이 작품에도 그런 장면이 많아요. 그게 남자의 세상이죠.

비정규직 건달이 등장하고, 삼류 포르노 감독이 등장한다. 도박판을 전전하는 하루살이 인생들과 지방을 장악해 작은 왕국을 사는 유지가 등장하니 사기꾼의 등장은 차라리 자연스럽다. 우리의 ‘형님’은 생매장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탈출해 관계된 모든 놈들을 죽이고 지역을 평정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라는데, 남자들의 세상이 뭐 다를까. 오히려 작가는 이 하류인생들, 허세 가득하고 보잘것없어 그저 모여서 거짓말만 늘어놓는 모습을 남자의 세상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크게 한탕 하고 인생 대반전을 꿈꾸는 밑바닥 삶 말이다. 이들이 발 붙인 현실은 아주 얇고 허약한 유리바닥 같다.


이야기는 여기저기 구르고 굴러 끝에 거대한 난장판을 이룬다. 4년 만에 장편으로 돌아온 천명관이 그린 이 한바탕 촌극은 다름아닌 “90년대 조폭코미디의 유산”이다. 코믹하고 가볍다. 천명관 작가는 이 소설로 다른 곳에 있는 독자를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좀 더 가벼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만나고 싶었”으므로 “팬이었던 분들은 배신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과연 독자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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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나를 흥분시키는 이야기들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이후 4년, 오랜만에 나온 장편이에요. 뒷골목 건달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이야기인데요. 무엇보다, 왜 이 소재였을까요?


뒷골목 건달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남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소재죠. 특히 90년대, 제가 영화하던 시절은 조폭코미디 붐이었어요.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같은.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그 시대 조폭코미디의 유산이라고 할까요. 당시의 그런 코믹한 정서가 재미있었거든요. 그것을 제 스타일로 써본 거죠. 문학 작품이라고 하면 고상하고, 우아하고, 귀족적인데 조폭코미디는 어떻게 보면 정반대예요. 저급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제가 그런 걸 좋아해요.(웃음)

 

제목 역시 노골적이죠.


제임스 브라운의 노래 「It’s man’s world」에서 따왔어요.

 

90년대 조폭 영화의 유산을 문학 작품으로 풀어낸 것, 어찌 보면 경계에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실은 범죄소설의 영향도 있어요. 엘모어 레너드(Elmore Leonard)를 좋아하는데요. 영화화가 많이 됐잖아요. <겟 쇼티(Get Shorty)>라든가, <표적(Out Of Sight)>, 『럼 펀치』를 영화화 한 <재키 브라운(Jackie Brown)> 같은 작품이요. 캐릭터와 대사가 살아 있고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의 <좋은 친구들(Good fellas)>이나 <카지노(Casino)> 같은 작품들, 그런 건 언제나 저를 흥분시키는 이야기들이죠. 그런데 그것을 진지하지 않고 아주 가볍게 다뤘어요. 어처구니없고 유머러스하게요.

 

심각한 장면에도 코믹한 시선이 있잖아요.


제 기질이 장난질을 치고 싶어 해요. 이야기를 잘 써나가다가 갑자기 ‘말과 사랑에 빠지면 어떨까?’ 이런 엉뚱한 상상력이 발동을 하죠. 그래서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가 된 것 같은데 모르겠어요, 이걸 어떤 스타일이라고 말하기는 그래요. 장르라고 하기에는 어떤 장르에 딱 들어맞지도 않고요. 순수 본격 문학,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죠. 저도 뭐라고 이름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웃음) 사실 문학 독자는 안 볼 거라고 생각했고요. 이 안에 문학적인 요소가 거의 없잖아요. 드라마 대본 같은 대사에,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문학 독자 가운데 제 팬이었던 분들은 배신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문학 독자 말고 웹소설 같은 좀 더 가벼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이렇게 쓰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이건 가치판단을 배제한 감상인데요. 참 한국적이에요. 당연히 지명이나 등장인물도 가깝게 느껴지지만 삶의 방식이라고 할까요. 각자도생 하는 인물들 모습은 과연 지금 사회를 엿보게 하는 것이었어요.


글쎄요, 그런 걸 의식한 건 아닌데요. 그런 모습이 담겨 있다면 아마 제가 바라보는 시각이 그런 거겠죠. 어쨌거나 작가는 쓰다보면 결국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나 자기 정서가 드러나게 돼 있죠. 맞아요. 이건 한국적인 이야기죠. 인물들마다 그런 게 있어요. ‘울트라’는 소위 청년 실업 시대의 20대고요. ‘양 사장’은 늙어가는 386세대 같죠. 일선에서 물러나 노화와 싸우면서 점점 외로워지는. ‘삼 대리’들은 미래도 없고 도박이나 하면서 갑갑하게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들이에요. 또 ‘남 사장’은 지방의 유지 같은 느낌이고요. ‘박 감독’도 그렇고요.

 

과거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상상의 출발은 언제나 영화였다’고 했었어요. 이번에도 그 말이 유효했나요? 


이 얘기도 출발은 영화였어요. 영화 하던 시절에 만들어둔 이야기도 있고요. 새로 만든 이야기도 있고 그래요. 아무래도 영화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앞서 말했듯이 90년대 조폭코미디의 유산이니까요. 거기에 대한 나의 애정 같은 게 있죠. 당시 그걸 저급한 영화라고 했지만 다들 즐겁게 봤잖아요. 그것이 한국의 남성 서사에 교두보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 좀 더 진지한, <신세계>라든가 <범죄와의 전쟁> 같은 본격적인 남성 서사들이 나왔는데요. 90년대 조폭코미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이 소설에는 그 시절에 대한 애정과 회고가 있어요.

 

영화화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거예요.


소설로 읽는 것보다도 배우들이 직접 연기를 하면 재미있겠다 싶은 장면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만들고 싶죠.

 

 

언제나 실패하는 이야기


작품을 쓰면서도 무척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장면을 가장 재미있게 써내려가셨어요?


말장난도 많고, 스토리 갖고 장난도 치고 그랬는데 즐거운 놀이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했는데 그 재미가 어떤 것이냐 하면 다들 앉아서 말만 하는 영화라는 거예요. 주로 말하는 장면이 많잖아요. 처음엔 종식이 부하들 앞에서 이빨을 까죠. 양 사장에 대한 구라, 그리고 ‘민 박사’가 또 ‘맨홀의 법칙’이 어쩌고 하면서 이빨을 까요. 나중에 ‘박 감독’도 그렇고요. 저는 이게 남자의 세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장면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앉아서 구라를 푸는 것 말이에요. 수다를 여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남자도 마찬가지거든요. 남자들은 언제나 술자리에서 말을 해요. 허세도 부리고요. 이 작품에도 그런 장면이 많아요. 그게 남자의 세상이죠.

 

인물이 여럿 등장하고 등장인물의 비중도 크게 한쪽으로 치우쳐있지 않아요. 그 중 굳이 주인공을 꼽는다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당연히 ‘울트라’예요.(웃음)


‘울트라’와 ‘형근’, ‘양 사장’ 정도가 될 텐데요. 이 세 명의 시선으로 진행이 되죠. ‘박 감독’도 많이 등장하는데 그는 약간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반동 인물)같은 거고요. 어쨌든 따로 주인공이 없어요. 그래서 영화로 만드는 데 문제가 있어요. 모든 배우들은 다들 주인공을 싶어 하는데 주인공이 따로 없으니까요.(웃음)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작가의 말에서 ‘어쩌면 모든 소설은 결국 실패담’이라고 했었는데요. 실패라는 것이 작가에게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대중은 성공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잖아요. 영화를 보면 언제나 성공해요. 악당을 물리치고 여자를 구해내는 성공 스토리잖아요. 그런 게 흥행도 잘 되고요. 소설은 대부분 그렇지 않아요. 성공담을 소설로 쓴다는 건 이상한 일이죠. 언제나 실패하는 이야기예요. 뭔가 애를 쓰지만 잘 안 되죠. 그 안에서, 실패 속에서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이고요. 제 이야기는 다 실패담이에요. 끝내 뭐가 되고 싶어 하지만 못 되거나 장애를 만나거나, 계속 그래요. 실연과 고난의 연속이죠. 그런데 저는 그게 삶의 조건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 자기의 꿈을 이루고, 뜻한 바대로 성공을 하고,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어요? 성공을 해도 그렇죠. 겉으로 보면 성공한 것 같지만 사실은 또 실패한 거죠. 그런 것에 눈이 가는 거예요, 저는. 저뿐 아니라 작가라면 다 그런 눈을 가졌다고 생각하죠.

 

실패하는 이야기에 시선을 보내는 게 소설을 쓰는 작업이고, 영화를 하는 작업이 비교적 성공하는 이야기를 바라보는 거라면, 그렇다면 뭔가 설명이 되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제가 영화를 하는 데 실패했나 봐요.(웃음) 맞아요, 매우 예리한 통찰인 것 같네요. 내가 왜 이렇게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 생각했는데 내 시선이 그렇게 가 있다 보니 영화와는 안 맞았던 게 아닌가, 지금 그런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러니 앞으로 성공하는 이야기를 쓰면 영화를 할 수 있겠네요.(웃음)

 

최근 영화계에 남성 중심의 이야기, 이른바 ‘알탕 영화(남성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한 영화를 비하하는 인터넷 신조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잖아요. 같은 맥락으로 이번 작품을 읽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세요?


‘알탕 영화’는 이유가 있어요. 시스템 문제인데요. 원래는 피라미드나 항아리형 구조죠. 블록버스터 100억짜리 영화가 몇 편 있으면 가장 밑에 저예산 독립 영화가 있고, 중간에 30~40억 예산의 ‘허리’에 해당하는 영화들이 탄탄하게 받치고 있어야 해요. 지금은 충무로 구조를 보면 허리가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알탕 영화’밖에 없는 거예요. 90년대만 해도 허리를 떠받치고 있는 게 로맨틱코미디 혹은 조폭코미디였어요. 예산은 많이 안 들면서도 아이디어가 다양한 영화들이요. 이게 다 없어진 거예요. 그런데 블록버스터는 반드시 장르영화여야 하거든요. 재난이거나 시대극, 액션이거나 이런 것 말이에요. 여자가 아무래도 불리하죠. 중요한 건 그 모든 게 다 관객의 선택 때문이라는 거예요. 100억이 넘는 블록버스터만 보니까요.


제 작품은 거칠어요. 언어도 거칠고 상스러운 말도 많고, 성에 대한 저급한 표현도 많아요. 이 작품에도 여자가 등장하는데 술집 여자죠. 이 정도면 무조건 ‘여혐’예요.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라는 제목만 보고 욕하는 사람도 있어요. 읽지도 않고요.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이건 다 남자가 세상의 재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예요. 여성이 국회의 절반을 차지하고, 관료 절반, 기업과 경제인 절반에 자리하게 되면 훨씬 나아질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안 그래요. 다들 살기 빡빡하죠. 연애도 쉽지 않고, 결혼시장도 치열해지고요. 거기서 소외된 사람들이 여혐, 남혐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 같아요. 따지고 보면 이런 시스템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모두 불행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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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종교가 됐다


그간 발표한 여러 작품들 중에서 가장 ‘천명관 스타일’에 가까운 작품을 꼽는다면 어떤 것일까요? 제각각의 느낌이나 성격들이 달리 있거든요.


다 제 스타일이겠죠. 『고래』도 그렇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도 약간 뒷골목 이야기 같은 건데요. 『고령화 가족』의 그 지질한 이야기도(웃음) 제 식의 유머였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이것대로 그런 것 같고요. 스펙트럼이 좀 넓은 편이죠. 사람이 진지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한 가지만 파야 하는데 그런 스타일이 아니고, 그냥 재미있는 것을 하고 그것을 자꾸 비틀고 싶어 하고 그런 것 같아요. 그 또한 제 스타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걸 쓰겠어, 그런 기분이 들죠. 그렇지 않나요?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했던 작품이잖아요.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여럿 등장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 어떻게 바라보고 계세요?


당연히, 이미 오래 전에 그렇게 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단은 너무 많은 권위가 있어요. 거의 종교적 믿음 같은 거죠. 그래서 문학이 종교가 됐어요. 그동안 문단은 대중에게 그걸 팔아먹은 거죠. 종교처럼 숭고한 문학. 그래서 문학이 점점 고립되고 있잖아요. 추문만 만들어내는 동네가 되어버렸어요. 빨리 세상 밖으로 나와서 소통하고 건강하게 작동해야 해요.

 

앞서 영화계의 구조를 말씀하셨는데 문학 역시 같은 지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몇몇 힘 있는 작가 외에 읽히는 작가가 별로 없죠. 웹소설 규모를 보면 독자의 욕구가 굉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거든요. 이 틈을 잇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어요.


프랑스에서도 3만 부 정도 팔면 베스트셀러라고 해요. 그런데 그런 3만 부 작품이 많은 거죠. 그런데 우리는 100만 부가 하나 있고, 나머지는 3,000부, 그런 쏠림현상이 심해요. 물론 그것도 대중의 선택이죠. 출판사, 언론도 바로 그런 지점만 노려요. 그래서 스타를 만들고 그 스타 작가 몇 명으로 유지해왔잖아요. 그런데 그 스타 작가한테 문제가 생기면 답이 없어요. 지금이 바로 그런 국면이에요.

 

작가 역시 계속 소설을 쓰고 있고, 그 소설을 찾아 읽는 열성 독자도 있잖아요. 굳이 이름 붙이자면 스타 작가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문단에 대한 이런 시선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 작가로서의 고민이나 전망도 궁금해요.


전 스타 작가는 절대 아니고요. 하여간 문단은 고립된 채로 계속 갈 거예요. 왜냐하면 이걸 바꿀 수 있는 주체들이 뭔가 바뀌길 원하지 않아요. 지금이 좋은 거죠. 고립될수록 더 좋아요. 더 권위가 생기죠. 국가 예산은 계속 집행이 되고, 그들은 거기서 계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요. 밑의 애들은 계속 그 앞에 줄을 설 테죠. 그분들이 좋은데 왜 바꾸겠어요? 애들 야단치고, 줄 세우고, 손목 만지고, 이러면서 계속 가겠죠. 안 변할 거예요. 그러다 언젠가 다 사라질 날이 오겠죠.(웃음)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그 아래 세대도 똑같이 따라할 거예요. 선생님들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죠. 다들 준비되어 있어요. 선생님들에게 착실히 줄 서 있고, 그대로 할 거예요. 계속 반복될 테고요.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점점 고립되는 거죠.


예전에 어느 지면에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에 대해 추천사를 쓴 적이 있어요. ‘예언을 하겠다, 앞으로 몇 년 내에 서점가는 이런 책으로 뒤덮일 것이다, 첫 출발은 정유정이다’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바로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웃음) 예언이 틀렸어요. 저는 당시에 우리도 드디어 범죄 스릴러의 시대가 도래 했구나, 앞으로 장르 작가들이 등장할 거다, 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직은 아닌가 봐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독자는 준비가 되어 있는데 작가들이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 하지만 다시 예언을 하자면 분명 머지않은 장래에 새로운 장르작가들이 대거 등장해서 서점가를 점령할 거예요.

 

비관적인 한국 문학 상황에서 한 줄기 희망하는 것이 장르군요.


네, 장르는 어떻게든 나올 텐데요. 지금도 사실 범죄 스릴러나 SF나 판타지, 이런 게 없어서 그렇지 『구르미 그린 달빛』 같은 작품 보면 대박이잖아요. 이게 장르죠. 한국적 장르죠. 『덕혜옹주』 같은 거요. 한국에선 역사 소설이 강세예요. 김진명 작가, 김탁환 작가 같은 분들이 있고요. 사람들은 장르라고 하면 문학이 아닌 것처럼 인식하는데 순문학이든 장르문학이든 잘 쓰는 게 중요한 거죠. 그런 분위기부터 바꿔야하는데요. 시간이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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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존재한다는 증거


많이들 천명관 작가의 이야기를 꼽아요. 정유정 작가는 워낙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요. 분야를 막론하고 천명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 이유는 아까 말씀하신 서사의 다양성이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 때문일 거예요.


제 소설 좋아해주는 후배작가들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죠. 그 이유는 아마 다른 작가들과 작풍이 달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혼자 제멋대로 쓰다보니까 그게 부럽기도 하고 그런가 봐요.(웃음) 저렇게 막 써도 되나, 하는 그런 부러움 있잖아요. 문학이라고 하면 진지하고 피를 말리고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라고 하는데 내 걸 보면 장난치듯 막 쓰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쓰는 게 그냥 막 쓰기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그걸 알아야 하는데.(웃음)

 

왜 그렇게 쓰지 않을까요?


선생님들 때문이죠. 선생님들이 지켜보시거든요. 글을 쓸 때도 잠을 잘 때도 언제나 어디서나 선생님이 등 뒤에서 지켜보는 느낌으로 평생을 사는 거거든요. 그래서 함부로 쓸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전 그런 분이 없어요. 실은 좋은 스승이 있는 건 멋진 거죠. 언제나 나를 누군가 따뜻한 시선으로 시켜보고 있다는 그런 기분으로 살 수 있다면 말이에요. 때론 부러워요, 누군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지도편달을 해주었으면 인생이 좀 달라졌을 텐데 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진심이에요.

 

잡지 <악스트(Axt)> 와의 인터뷰도 문단 권력 비판으로 화제가 됐었죠. 자연스럽게 질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상처 입은 짐승은 물어뜯지 않습니다.(웃음) 지금은 다른 힘센 것을 무너뜨려야죠.

 

인터뷰 당시에는 힘이 있었다고 판단한 거죠?


그렇죠, 아무 변화도 없었고, 그래도 계속 흘러 왔고요. 그 이후 일 년이 넘었나요? 일 년 만에 지금 문단을 다시 생각해보세요. 정말 처참하잖아요. 이것이 긍정적으로 작용을 하면 좋겠는데요. 가능할지는 의문이 들어요. 표절문제부터 시작해 권력 문제, 지금의 성추행 문제, 이런 것들. 점점 추문으로 얼룩지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기존의 병폐를 잘 해결하고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 한다면 잘 모르겠어요. <악스트(Axt)> 인터뷰에서도 그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내가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요. 나만 적이 늘어날 뿐이라고요. 실제로 그래요.

 

문단 성폭력 문제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세요?


복잡하고 긴 얘기가 필요한 사안일 터인데 사실 저도 대부분 처음 듣는 얘기들이었어요. 놀랍기도 하고 ‘아, 정말 그 지경까지 갔구나’ 싶은 비참한 기분도 들었고요. 성추행, 성희롱은 권력의 문제거든요. 그것이 바로 권력이 존재한다는 증거예요. 사실 이건 모두가 부끄러운 짓이죠. 직접 당사자든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든 멀리서 이렇게 한 다리 건너 얘기를 듣는 사람이든 그래요. 모두를 비참하게 만드는 짓이에요. 그런데 그게 어디 문단에만 국한된 문제겠어요? 문단이 이 지경이면 다른 덴 어떨까, 싶기도 하고요. 하여간 이런 걸 보면 정말 이 사회는 변태사회예요. 성추행은 가장 변태적이고 악랄한 권력이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소중한 곳까지 침범한 사건이고요.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천명관 저 | 예담
천명관이 신작 장편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예담에서 출간했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이후 4년 만이다. 격동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기구한 인생 유전을 통해 굵직한 서사의 힘을 보여줬던 그가 이번에는 뒷골목 건달들의 한바탕 소동을 다룬 블랙코미디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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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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