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당신이 원할 때요. 괜찮다면!
『밤에 우리 영혼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현관에 선 채, 그녀를, 길모퉁이 가로등 불빛 속에서 나무아래를 걸어가는 중간 체구에 머리는 백발이 된 일흔 살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원 이게 대체. 그가 말했다. 자, 괜히 앞서갈 것 없어.
그러던 어느 날 애디 무어는 루이스 워터스를 만나러 갔다. 오월,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기 바로 전의 저녁이었다.
두 사람은 시더 스트리트에서 한 블록을 사이에 두고 살았다. 느릅나무와 팽나무들, 그리고 한 그루 단풍나무가 길가에 늘어서서 자라고 거기서부터 이층집들 앞까지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는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었다. 낮 동안 더웠으나 저녁이 되며 선선해졌다. 보도를 따라 나무그늘 아래를 걷던 그녀의 발길이 루이스의 집 쪽으로 접어들었다.
루이스가 문을 열고 나타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들어가 얘기 좀 해도 되겠어요?
그들은 거실에 앉았다.
마실 것 좀 줄까요? 차라도?
아니, 괜찮아요. 차를 마실 만큼 오래 있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이 좋아요.
다이앤은 늘 집안을 잘 가꿨죠. 난 그냥 조금 노력했고요.
여전히 좋아 보이네요. 그녀가 말했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밤이 내리고 있는 창밖 마당을, 그리고 개수대와 조리대에 한줄기 빛이 내려앉은 주방을 바라보았다. 모두 깔끔하고 단정해 보였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인이라고, 그는 언제나 생각했었다. 젊을 적에는 짙었던 머리칼이 이제 백발이었고 짧게 잘려 있었다. 허리와 엉덩이에 군살이 좀 붙었을 뿐 몸매도 아직 날씬했다.
내가 왜 왔나 궁금하겠죠. 그녀가 말했다.
글쎄요, 집이 좋다는 말을 하러 온 건 아닐 거구요.
그건 아니에요. 제안을 하나 하려고요.
그래요?
네. 일종의 프러포즈랄까.
그렇군요.
결혼은 아니고요. 그녀가 말했다.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약간 결혼 비슷한 것이긴 해요. 그런데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겁이 나네요. 그녀가 소리 내어 조금 웃었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정말로 결혼과 비슷하군요.
뭐가요?
겁이 난다는 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좋아요. 음, 이제 말할게요.
듣고 있어요. 루이스가 말했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뭐라고요? 무슨 뜻인지?
우리 둘 다 혼자잖아요. 혼자 된 지도 너무 오래됐어요. 벌써 몇 년째예요. 난 외로워요. 당신도 그러지 않을까 싶고요. 그래서 밤에 나를 찾아와 함께 자줄 수 있을까 하는 거죠. 이야기도 하고요.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호기심과 경계심이 섞인 눈빛이었다.
아무 말이 없군요. 내가 말문을 막아버린 건가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 것 같네요.
섹스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렇잖아도 궁금했어요.
아니, 섹스는 아니에요. 그런 생각은 아니고요. 나야 성욕을 잃은 지도 한참일 텐데요.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말하는 거예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걸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그렇죠?
그래요. 같은 생각이에요.
잠을 좀 자보려고 수면제를 먹거나 늦게까지 책을 읽는데 그러면 다음날 하루 종일 몸이 천근이에요. 나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 쓸모 없게 돼버리는 거죠.
나도 경험해봐서 알아요.
그런데 침대에 누군가가 함께 있어준다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것. 밤중에, 어둠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 그녀가 말을 멈추고 기다렸다. 어떻게 생각해요?
모르겠어요. 언제 시작하고 싶은데요?
언제든 당신이 원할 때요. 괜찮다면, 그녀가 말했다, 이번주라도.
생각해보죠.
좋아요. 대신 올 거면 그날 미리 전화로 알려줘요. 올 거라는 걸 알고 있게요.
그럴게요.
연락 기다릴게요.
내가 코를 골면 어쩌죠?
골면 고는 거죠 뭐. 아니면 고치거나.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리는 없고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현관에 선 채, 그녀를, 길모퉁이 가로등 불빛 속에서 나무아래를 걸어가는 중간 체구에 머리는 백발이 된 일흔 살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원 이게 대체. 그가 말했다. 자, 괜히 앞서갈 것 없어.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저/김재성 역 | 뮤진트리
이 책은 노련한 이야기꾼 켄트 하루프의 유작이다. 저자가 2014년 71세에 타계하기 전 탈고한 소설로, 그래서 더욱 켄트 하루프만의 은밀하고도 위풍당당한 유언과 같은 책이다. 하루프는 홀트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칠십대 두 주인공이 교감하는 믿음과 우정, 나이 듦에 대한 생각들을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절제된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
관련태그: 애디 무어, 루이스 워터스, 켄트하루프, 이야기꾼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켄트 하루프> 저/<김재성> 역11,700원(10% + 5%)
미국문학에 불후의 공헌을 남긴 노련한 이야기꾼 켄트 하루프의 마지막 소설. “왜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행복을 찾은 방식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가.” 이 책은 노련한 이야기꾼 켄트 하루프의 유작이다. 전작 『플레인송』으로 전미도서상과 「뉴요커」 북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저자가 2014년 71세에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