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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맨’은 했고 <나는 남자다>는 하지 못한 것

피드백을 빠르게 받아들일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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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로든 평으로든 고전을 면치 못한 <나는 남자다>는 후반부에 가서는 여성 방청객들을 초대한 여성 특집을 마련해 다소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시청률은 고착화된 상황이었고, 프로그램 컨셉을 남성들만의 쇼라고 못 박아 둔 탓에 여성 방청객들에게 손짓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 자체가 프로그램 정체성을 모호하게 한다는 딜레마를 이겨낼 수 없었다.

(‘<더 지니어스>는 했고 <잘 먹는 소녀들>은 하지 못한 것 ? 피드백을 빠르게 받아들일 것 (1)’ 에서 이어집니다.)
 
시작할 때부터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2010~ )은 그 어깨가 무거운 프로그램이었다. ‘패밀리가 떴다’ 시즌 1(2008~2009)은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2009~2013)에 밀려 폐지됐고, 그 뒤를 이은 시즌 2(2009~2010)는 영 성과를 못 내고 헤매다 방영 다섯 달 만에 종영된 상황. <일요일이 좋다>나 유재석이나 모두 일요일 저녁 버라이어티에서 자존심 회복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MBC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2000~2002)이나 SBS <일요일이 좋다> ‘X맨을 찾아라’(2003~2007) 시절부터 유재석이 꾸준히 강세를 보였던 게임 버라이어티에, <무한도전>(2005~ ) 추격전 시리즈의 요소를 가미한 ‘런닝맨’은 <일요일이 좋다>가 작정하고 띄운 승부수나 다름 없었다.
 
이렇게 모두의 기대를 사며 출발했음에도, 첫 촬영분의 리듬감은 어딘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프로그램의 정체성이나 캐릭터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인데, 제작진은 다짜고짜 50명의 시민들과 닭싸움 대결을 마련한다거나, 한국 최대 규모의 쇼핑몰에서 게임을 진행한다는 점을 연신 강조하며 쇼의 스케일을 자랑하는데 집중했다. 제작진이 마련한 게임을 하기 위해 멈춰서는 것을 반복하는 리듬은 ‘걷지 말고 뛰어’라는 슬로건을 내건 쇼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속도감을 내세운 쇼가 속도감 대신 덩치를 자랑한 모양새가 됐으니, 제작진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는 좀처럼 읽히지 않았다. 출근길 올림픽대로를 연상시키는 가다 서다 속에서 가장 많은 웃음을 자아낸 건 역설적이게도 게스트였던 이효리였다.
 
 
지적을 빠르게 검토한 ‘런닝맨’
속도감을 높여 쇼의 향방을 바꾸다
 
영 좋지 않은 첫 반응에, 도심 속의 속도감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을 표방했던 제작진은 빠르게 쇼의 리듬감을 손보기 시작했다. 정적인 게임의 수를 줄이고, 4회에서부턴 각자의 등 뒤에 힌트를 붙여 서로 쫓고 쫓기며 이름표를 떼는 ‘런닝맨’ 특유의 이름표 떼기 추격전의 문법을 확고히 세웠다. 7회에서는 술래의 신발에 방울을 달아 레이스의 숨바꼭질 요소를 더 강화함으로써 속도감과 긴장감을 강조하는 방향을 추구했다. 쫓고 쫓기는 레이스 속에서 자연스레 강자와 약자 구도, 약자 사이의 이합집산과 배신 구도가 잡히면서 비로소 각자의 캐릭터와 그 상호작용이 무르익기 시작했고, 이거다 싶었던 제작진은 매 회 게임 종목을 바꿔가며 포맷을 실험해 보던 앞의 회차들과는 달리 4달 가량 방울 레이스를 고정으로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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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에 처음으로 등장한 방울 레이스.
앞선 부진을 극복하고 이후의 ‘런닝맨’의 성격을 규정하는 변화였다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 ⓒ SBS. 2010~ 

 

 

늘날 ‘런닝맨’의 국제적 인기가 많은 부분 출연진들의 선명한 캐릭터 성에 기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변화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세우고 대중의 환호를 사는 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런닝맨’은 초반의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감지하자마자 지적 받은 부분 위주로 쇼의 문법을 더 정교하게 매만졌다. 이처럼 발 빠른 행보 덕분에 ‘런닝맨’은 캐릭터 간의 역학관계와 쇼의 속도감을 동시에 잡아 한국 예능 한류의 중심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만약 도심 속 랜드마크를 소개하는 것에 집착했거나 개리의 평온한 돌부처 표정의 인기 때문에 포토존 게임을 계속 고집했다면 지금과 같은 인기가 가능했을까. 아마 여기까지 오지 못하지 않았을까?
 
 
파일럿에서 정규편성까지 4개월
변한 게 없었던 <나는 남자다>
 
앞서 유재석에게 초반 부진이나 프로그램의 실패는 드물지 않은 일이란 걸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그조차 제때 피드백을 수용해 보완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결과에서 현격한 차이를 봤단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에 대한 지적을 빨리 수용해 제대로 된 타이밍에 쇼를 보완한 케이스가 ‘런닝맨’이라면, 그 정 반대편에는 KBS에서 선보였던 토크쇼 <나는 남자다>(2014)가 있다. 기획단계에서부터 MBC <놀러와>(2004~2012) ‘트루맨쇼’의 확장판 격으로 여겨지던 <나는 남자다>는, 2014년 4월 방영된 파일럿 방송부터 그 조악한 완성도 탓에 적잖은 문제점을 지적 받았다.

 

포맷변환_2.jpg

이미 파일럿 때부터 여러 지적이 있었지만, KBS는 4개월 뒤
포맷을 바꾸지 않은 채 <나는 남자다>의 정규편성을 강행했다.
쇼는 혹평과 시청률 부진을 면치 못하다 막을 내렸다.
<나는 남자다> ⓒ KBS. 2014

 

공동MC 김원희를 동등한 자격으로 대화에 참여시켜 남성 위주의 시선을 여성의 눈으로도 검토하고 보완했던 ‘트루맨쇼’와는 달리, MC부터 방청객까지 전원 남자로만 채운 <나는 남자다>는 남성들의 유아적인 부분까지도 ‘남자끼리’라는 암묵적인 분위기 속에 묻어 버렸다. 이는 분명 2년 전의 ‘트루맨쇼’보다 오히려 퇴행한 지점이었다. 게스트로 출연하는 여자 연예인을 ‘오늘의 여신’이라 호명하며 대상화하는 식의 접근이나, 남자 방청객들의 사연을 소개하며 지나치게 소모적인 농담들로 시간을 떼우는 구성은 쇼의 원심력을 저하시켰다. 특히 특별 게스트 고유진이 ‘Endless’를 부르며 등장할 때 다 함께 떼창으로 노래를 따라하는 방청객들을 잡는 카메라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게 단순한 스케치인지 그런 방청객들을 향한 자조인지 제 자신도 확신이 서 보이지 않았다.
 
이런 완성도로도 정규편성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KBS는 ‘시즌제 토크쇼’라는 조건을 걸고 <나는 남자다>를 정규편성하기에 이른다. 아마 TV의 주 소비층인 2049 여성층이 남자들끼리 있을 때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궁금해 할 것이라는 계산과 유재석의 진행능력을 믿은 결정이었으리라. 그렇다면 파일럿에서 지적된 여러 단점들은 제 때 보완이 됐을까? 파일럿 방영 이후 4개월이 지나 첫 정규 방송이 나간 날, 많은 이들이 탄식을 금하지 못했다. ‘트루맨쇼’ 시절 성적인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스윽 흘리는 것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권오중이 MC진에 추가된 걸 제외하면, <나는 남자다>는 파일럿에서 지적 받은 그 어떤 부분도 고치지 않았다.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배타적인 방청객 모집과 철저히 남성 본위의 주제설정 또한 파일럿 그대로였고, 소모적인 농담을 유재석의 진행능력에만 기대 고수하는 것 또한 변한 게 없었다. 파일럿에서 정규편성까지 4개월 동안, 제작진은 권오중의 합류를 제외하면 어떤 피드백에도 응하지 않았다.
 
 
보완도 할 수 있는 때가 있는 법
타이밍을 놓치지 마라
 
시청률로든 평으로든 고전을 면치 못한 <나는 남자다>는 후반부에 가서는 여성 방청객들을 초대한 여성 특집을 마련해 다소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시청률은 고착화된 상황이었고, 프로그램 컨셉을 남성들만의 쇼라고 못 박아 둔 탓에 여성 방청객들에게 손짓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 자체가 프로그램 정체성을 모호하게 한다는 딜레마를 이겨낼 수 없었다. 뒤늦게 김제동을 투입해 유재석-김제동이라는 검증된 콤비 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변화의 몸부림도 프로그램 초반에 쏟아졌던 혹평과 실망을 넘어서진 못했다. <나는 남자다>는 1시즌이 종영한 지 1년 8개월이 지나도록 다음 시즌 소식이 없다. 파일럿에서 정규편성까지 4개월 동안 쇼를 보완했다면, 그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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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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