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보라 스미스 “『채식주의자』를 선택한 이유는...”
서울국제도서전 참석 차 방한, 기자간담회 개최 출판콜로키움 등 참석
상은 주관적이며, 상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 문학이나 번역에 대해 다른 이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6월 15일, 한국문학번역원의 초청으로 서울국제도서전 참석차 방한한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단상에 오르자마자 플래시가 터졌고 준비한 자리가 모자라 뒤에 기자들이 잔뜩 서 있을 정도로 취재진이 몰렸다. 번역가가 이렇게 높은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을까. 기자들은 앞다투어 소감이 어떤지, 한국의 문화를 잘 모를 때 어떻게 번역하는지 등 질문을 쏟아냈다.
2016년 맨부커 인터네셔널상 수상 이후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곧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상 수상 이후 한 간담회에서 “최대한 빨리 제 방에 숨어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번역가인 데보라 스미스도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보다는 글로 작업해 왔다”며 집에서 조용히 번역하는 순간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보다 더 편하다고 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상은 주관적이다
수상 소식 이후 데보라 스미스에게 쏟아진 관심은 어마어마했다. 많은 한국 언론인이 인터뷰하기 위해 요청 메일을 보냈으며, 한국 문학과 번역, 그리고 한국 미디어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줄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데모라 스미스는 “번역은 겸손한 작업이며 자기 자신을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다”라는 선배 번역가의 말을 빌려 수상만으로 자신이 한국 문학에 대해 왈가왈부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게 아니라고 밝히며 번역에 도움을 준 다른 모든 이들에게 공을 돌렸다.
“상은 주관적이며, 상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 문학이나 번역에 대해 다른 이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제 번역이 인정받은 것은 기쁘지만 무엇보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한강 작가님과 편집자 맥스 포터, 한강의 작품을 처음 찾아내 여러 나라에 알리기 위해 힘쓴 바바라 지투어와 이부영 대표님.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러한 성취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맨부커상 수상은 공동 작업의 성과입니다. 또한 저보다 앞서 문학 번역이 언어능력만큼이나 문학적 감수성이 중요한 창조적 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게 싸워오신 일련의 번역가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데보라 스미스는 오역 논란에 관한 의견도 밝혔다. 국제적 상의 후보가 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영어로 번역된 『채식주의자』를 읽고, 일부 오역의 가능성을 지적한 것에 대한 답변으로 보였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제 번역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완벽은 번역가들이 결코 달성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다른 번역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원 작가와 번역하려는 작품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실수를 완전히 피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해도 오역을 할 때 좌절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나아갈 수 있으며, 번역에 오류가 있더라도 독자들의 읽는 즐거움과 작품에 대한 이해를 저해하지 않았다는 게 고무적입니다.”
수상보다는 작품이 알려진 게 더 기뻤다
데보라 스미스는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 받았던 감동에 대해 말하며 자신의 작업보다는 원저작이 얼마나 훌륭한지 의견을 피력했다.
“저는 부나 명예를 위해 번역가가 된 것이 아니라 제가 사랑하는 작품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픈 욕구 때문에 번역가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소설 기법과 인문학적 예술 작품으로 다가온 『채식주의자』가 그중의 하나입니다. 한강 작가 작품의 치밀한 구조, 강렬한 이미지, 시적인 문장에 주목해 언어를 막론하고 세계에서 뛰어난 작가로 인정했다는 게 기쁩니다.”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을 때 탁월한 작품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3부 연작 소설이기 때문에 3명의 화자의 목소리로 서술된 부분이 번역가로서도, 독자들에게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 개의 단편이 서로 굉장히 다른데, 애틋함과 공포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관리되고 통제된 문체이면서도 무심하거나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노벨상? 국제적? 문학은 문학만으로 충분하다
기자간담회에서 빠지지 않았던 질문은 ‘한국 문학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노벨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한국인이 아닌 관점에서 한국 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질문이었다. 데보라 스미스는 수상과 상관없이 “독자가 작품을 잘 즐기고 감상하면 그것만으로 작가에게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라며 수상보다는 작품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또한 한국문학번역원 등 여러 기관의 노력에 대한 말도 아끼지 않았다.
“한국 문학의 매력이 뭐냐는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작가와 독자가 있기 때문에, 또한 국가마다 우수한 문학에 대한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해외에 번역된 한국 작품이 많지 않은데 점점 더 많이 출간되면서 여러 독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여러 기관이 있습니다. 해외의 기관과도 긴밀한 협력을 하기 때문에, 번역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한국문학은 앞으로 세계에 알려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면 베트남어
데보라 스미스는 2010년 처음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2012년에는 배수아의 소설을, 2013년에는 한국어를 배운지 3년 만에 『채식주의자』를 번역했다. 12년 정규 교육과정에서 영어를 배우면서도 여전히 영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걸 생각하면 분명 고무적인 작업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언어는 전혀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습득 능력이 뛰어난지는 모르겠습니다. 작품을 읽고 싶고 번역하고 싶다는 확실한 목표와 구체적인 동기 부여가 있었기 떄문에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번역하며 너무나 좋은 책을 더 많이 알게 된 게 더 빨리 언어를 습득할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어 만일 다른 언어를 배운다면, 번역하고 싶은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베트남어를 배워보고 싶다고 답했다.
“특정한 작품을 번역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건 아닙니다. 베트남 문학의 위치가 한국 문학의 위치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경우에 한정해 생각한다면, 번역된 작품이 거의 없고 해당 문학의 인지도가 낮으므로 번역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언어권에서도 훌륭한 작가는 존재하기 때문에 발굴하고 소개하는 작업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에 아시아 문학을 알리고 싶다
데보라 스미스는 한강의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와 안도현의 『연어』를 번역했으며, 배수아의 소설 2편은 완역해 올해 10월과 내년 1월 출간 예정이다. 얼마 전에는 주로 아시아권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출판사 ‘틸티드 액시스(Tilted axes)’를 설립해 영국에 아시아 문학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내년에는 한유주의 소설도 출간할 예정이다. 한국 방문 동안 출판사들을 만나며 다른 작품을 계약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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