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시리즈’와 일본 미스터리의 새로운 지점
decca의 미스터리 탐구 4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 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시적 사적 잭』 모리 히로시 지음
일본 미스터리를 역사적으로 살피면 세 가지 큰 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에도가와 란포로부터 시작해 세계 2차 대전을 전후해 위세를 떨치던 ‘본격 미스터리’, 전쟁 이후 고도 성장하던 사회와 맞물려 발전한 ‘사회파 미스터리’. 그리고 1980년대, 고전 미스터리를 읽고 자란 세대들이 활약한 ‘신본격 미스터리’. 이들은 각각 그 시기 미스터리의 경향을 대표하는 명칭들이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 일본 미스터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는데, 그 상징적인 시작은 교고쿠 나쓰히코로 여겨진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시작으로 이즈미 교카 문학상, 나오키상, 시바타 렌자부로상, 야마모토 슈고로상 등 일본 주요 대중문학상을 모조리 휩쓴 거장 중 거장이지만, 그는 작가 이전에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던 편집 디자이너였다.
1994년, 모처럼 긴 휴일을 맞은 교고쿠 나쓰히코는 소설 한 편을 다듬어 고단샤 노벨즈 편집부에 보낸다. 몇 개월 정도가 걸릴 거라는 편집부에 답변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고를 읽기 시작한 노벨즈 편집부는 깜짝 놀랐다. ‘저명한 작가가 편집부의 역량을 시험해보려는 것이 아닐까?’ 교고쿠 나쓰히코 역시 깜짝 놀랐다. 단 이틀 만에 답이 왔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데뷔작으로 회자되는 ‘교고쿠도 시리즈’의 첫 작품 『우부메의 여름』은 이렇게 탄생했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수상이 아니라 원고 투고 방식을 통해 등단한 작가이다. 일본에서는 이걸 ‘모치코미 겐코(반입 원고)’라고 하는데, 워낙 많은 문학상이 있는 나라이기에 우리나라의 원고 투고와는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상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화려한 등장과 함께, 원고 투고는 (적어도 고단샤에 한해) ‘메피스토상’이라는 시스템으로 정착됐다. 이 상은 고단샤의 문학 잡지 <메피스토>에서 공모하는 신인상으로 1996년부터 시작됐는데, 특별한 수상 기준은 없고 재미만 있으면 된다. 응모 기간도 따로 없으며, 상금도 출판 인세로 갈음한다. 후에 분량 제한이나 상금 가이드 등이 생겼지만, 자유로운 형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미있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라는 느슨하고도 까다로운 기준을 처음으로 만족한 작품은 모리 히로시의 『모든 것이 F가 된다』였다. 나고야 대학 건축학과 조교수 시절, 취미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소설을 쓴 모리 히로시는 메피스토상 수상을 계기로 소설가라는 또 하나의 직업을 얻게 된다. 훗날 그는 1997년부터 2008년 은퇴하기까지 278권을 발표하고, 총 1,400만 부 이상을 판매해, 150억 이상을 수익을 벌어들인다..
『모든 것이 F가 된다』는 ‘S&M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주인공인 사이카와 소헤이와 니시노소노 모에의 이름 앞 글자를 딴 이 시리즈는 불과 2년 사이에 열 권으로 완결됐고, ‘사계 시리즈’로 이어지며 모리 히로시 세계관의 근간이 됐다. 최근,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방영을 끝마쳤는데, 덕분에 그간 국내에 두 권만 출간됐던 S&M 시리즈는 새롭게 계약돼 새 번역으로 전체가 출간되고 있다.
‘S&M’ 시리즈는 이공계 미스터리로 알려진 만큼, 배경과 트릭 모두 하이테크 위에 구축돼 있다. 외딴섬 최첨단 연구소에 격리된 천재 공학 박사의 죽음(『모든 것이 F가 된다』), 영화 20도의 저온에서 실험이 이뤄지는 극지환경 연구센터에서 발견된 두 남녀의 시신(『차가운 밀실과 박사들』), 천재 수학자가 머무는 삼성관에서 갑자기 사라진 거대한 청동 오리온 동상(『웃지 않는 수학자』), 공과 대학에서 일어난 네 건의 밀실 살인(『시적 사적 잭』) 등, 확실히 기존 미스터리와는 결과 느낌이 다르다.
재미있는 것은 탐정 역할을 담당하는 사이카와 소헤이 교수가 동기를 대하는 무관심한 태도이다. 어차피 천재의 범죄나 그 해결은 일반인이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는 법. 원념과 저주가 얽힌 끈끈함이나 사회의 어두움을 고발했던 구질구질함은 한없이 개인적이고 모호한 철학적인 동기로 변화한다.
교고쿠 나쓰히코로부터 촉발된 일본 미스터리의 새로운 지점은 모리 히로시와 세이료인 류스이를 거쳐 니시오 이신과 마이조 오타로, 사토 유야 등으로 이어진다. 이들에 이르면 미스터리 장르는 조각조각 흩어지고 전기적(傳奇的) 요소나 서브컬처와 결합하면서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된다. ‘범인(who)’에서 ‘방법(how)’ 그리고 ‘동기(why)’로 나아간 미스터리 장르가 ‘뭐지?(what?)’라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잘린머리 사이클
니시오 이신 저/현정수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미스터리 라이트노벨 계열 중 첫손에 꼽히는 작품. 아직까지도 일본 대중문학의 새로움으로 인정받는 니시오 이신, '헛소리 시리즈'의 출발점이다. 젖은 까마귀 깃 섬으로 초대받은 천재들이 한 명씩 머리가 잘린 채 살해당하고, 천재 해커 쿠나기사 토모와 헛소리꾼 이짱이 수수께끼에 뛰어든다. 반전과 현학, 철학과 농담이 난무하는 뉴 웨이브 미스터리.
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저/박춘상 역 | 한스미디어
이공계 미스터리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모리 히로시의 SM시리즈 제1권. 천재 공학 박사 마카타 시키는 14살에 부모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외딴섬에 세워진 최첨단 연구소에 갇혀 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건축학과 교수 사이카와 소헤이와 니시노소노 모에. 그들의 앞에 나타난 건 사지가 잘린 채 웨딩드레스를 입은 마카타 시키의 시체였다.
쓰쿠모주쿠
마이조 오타로 저/최혜수 역 | b(도서출판비)
지나치게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얼굴만 보여도 남들이 기절해버리는 명탐정 쓰쿠모주쿠. 그가, 창세기와 요한묵시록을 모방한 살인 사건에 도전한다. 메피스토상 2회 수상자인 세이료인 류스이가 구축한 세계관의 스핀오프격인 <쓰쿠모주쿠>는 이야기 밖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문제 작가 마이조 오타로의 진가가 드러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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