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철 “그때만 알았던 것들이 있죠”
『좋아서 웃었다』 펴내
사람들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지금은 마치 모든 것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그때도 그걸 알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처럼 생각하는 거죠. 그 말도 맞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거꾸로 생각해요. 그때는 그때만 알았던 게 있어요. 오히려 지금은 그때 알았던 걸 몰라요.
<GQ Korea>의 에디터 장우철이 두 번째 에세이 『좋아서 웃었다』를 출간했다. 책의 부제는 ‘오늘, 편애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 지난 200일 동안 그의 시선과 마음이 머물렀던 순간들을 찍고, 써서, 남겨놓았다. 어떤 날은 오래된 기억을 환기시켰고, 어떤 날은 일상에서 스쳐가는 것들이 ‘그냥 좋아서’ 바라봤다. 덩그러니 한 장의 사진만 남겨놓고 말을 아낀 하루도 있었다. 창문을 타고 넘어 들어온 햇살, 그 아래 놓인 이불, 그 곁에 있는 꽃과 그릇, 오래된 음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있다.
책장을 넘기며 남다른 그의 감성에 놀랐고,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것이 그만의 것이 아니라서 놀랐다. 투박하다거나 평범하다는 말 안에 가둬둘 수 없는, 누구와도 같지 않은 하루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있다는 걸, 그가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예상됩니다’라는 익숙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던 날, 그러니까 지난 19일, 그를 만나러 가는 동안에도 특별할 것 없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든지 뺨의 감각이 없어지고 있다든지 하는. 물론 장우철이라면 이렇게 뻔한 말들을 늘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나요?’ 돌아온 대답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역시 그에게는 남다른 감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분명 장우철의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팍팍한 일상이라는 게 있을까요?
오늘은 어떤 하루였나요?
오늘 제가 인스타그램에도 잠깐 올렸는데, 아침에 너무 기온이 쌀쌀하니까 얼음으로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요. 그런데 제가 올해 1월 1일에 계획이 있었거든요. 눈을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연말에 잠깐 갔던 전북 진안 쪽을 가고 싶었어요. 당시에 눈이 와서, 아마도 응달이나 산 밑에는 남아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눈 보러 1월 1일 아침에 무조건 일찍 일어나서 가야지’ 생각을 했고, 어머니가 끓여 주신 국을 먹고 아직 어두운데 차를 운전해서 진안으로 갔어요. 그러다가 결국 눈이 나왔고, 제가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을 했죠. 계곡에 내려가서 세수를 했어요. 그때 그 차가운 느낌하고 오늘 아침에 느낀 차가움하고 비슷했어요. 그래서 뭔가 1월 1일 같기도 한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대부분 일상은 평범이라는 단어와 한 쌍으로 쓰이잖아요. 그런데 작가님에게는 매일 특별한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말씀을 들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저는 ‘누군가 평범한 사람이 있고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식의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고요. 누구나 다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평범하고요. 그런 것들이 저는 참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그런 모습이 아닌 것을 보게 됐을 때, 그것마저도 ‘아 새롭구나’하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왜 아니야? 왜 내가 생각했던 모습하고 다르지?’ 이런 식의 느낌들이 대중들에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게 참 이상해요. ‘누군가는 평범하게 무리 지어 있고 평범하지 않은 누군가가 따로 있는 걸까’ 생각해 보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그런 것들이 있는데, 다만 저는 그것들을 모아가지고 책으로 내놨으니까 조금 더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 있어요. 그런 건 그냥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요. 더 예쁜 것도 있고 덜 예쁜 것도 있는 것처럼, 그런 거죠. ‘다 평범한데 당신은 특별합니다’라는 건, 저는 되게 부끄러운 이야기인 것 같아요.
추운 날씨만으로 과거의 어떤 순간을 떠올리시는 걸 보면, 남다른 감각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요.
누구하고도 다르겠죠. 저는 저니까요. 오늘도 그냥 그 날이 생각났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날 특별하게 볼 테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지 말아야지’ 할 수도 없잖아요.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평상시에 사물을 대하거나 날씨를 대하는 데 있어서 조금 더 생각해 보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사람들이 팍팍한 일상이라고 말할 때 ‘정말 그 사람들에게 일상이란 게 팍팍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어요. 그런 사람도 즐기면서 맛있는 걸 찾아서 먹기도 하잖아요. 누구한테 기분 나쁜 얘기 들었으면 기분 나빠하기도 하고, 꽃을 샀으면 기뻐하고, 그런 게 다 일상이잖아요. 그런 걸 오로지 팍팍하다는 말로만 단정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서문에도 썼듯이 당신 옆에도 지금 꽃이 있고 예쁜 종이컵이 있어요. 그걸 보려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던 거지, 제가 갖고 있는 게 특별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미 옆에 있는, 내가 좋아하고 있는 것들을 돌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한 번 더 다시 보고 싶은 시간을 갖는 게 저한테 조금 더 습관이 되어 있는 것뿐이에요.
보통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물으면 대답의 주가 되는 건 사건이고 감정은 곁들여지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좋아서 웃었다』의 이야기는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제가 글을 쓸 때 약점이기도 해요. 저는 정말 이야기에 약해요.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잘 하는데, 하필 글로 쓰려는 순간 혹은 영화나 소설을 대하는 순간에는 이야기를 정말 잘 못 알아들어요. 영화를 볼 때도 중간 중간에 혹은 끝나고 나서 계속 옆 사람들한테 물어봐야 돼요.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자면 저는 좀 이야기를, 더군다나 쓰는 것에 있어서는 잘 못해요. 기억에 있어서도 어떤 일이 있었다고 기억하지 않고 그때의 인상 같은 것들이 확실히 더 중요하게 남아있는 것 같고요.
책 속의 어떤 글들은 시(詩)처럼 느껴졌어요.
운문형 인간과 산문형 인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확실히 산문형 인간이 아니거든요. 어쨌든 시라는 형식에 더 습관이 되어 있어요. 소설을 읽는 것보다 시집을 읽는 걸 훨씬 좋아하고, 소설을 써 본 경험은 없지만 시를 써 본 경험은 있고, 그런 식의 배워온 시간이 있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에세이고, 이건 일기고, 그런 식으로 제가 쓴 글을 규정한 적은 없어요. 어떤 분들은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썼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게 저예요’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제 눈에는 더 좋아 보이고 잘 읽히니까 그렇게 쓴 거예요.
시를 쓰신 적이 있다고요. 문청 시절을 보내셨던 건가요?
꿈꾼 적은 없고요. 대학교 때 시 쓰는 동아리 이런 거 있잖아요. 시를 빙자해서 낮이고 밤이고 술을 먹는 모임. 거기에서 스무 살들끼리 겉멋이 들어가지고 다른 시인이 했던 말들을 마치 우리의 말인 양 하고 그러잖아요. 그런 식의 무드에 휩쓸려 다니던 시절이 있었던 거죠. 거기에서 걸러져 가지고 있는 게 있고요. 그런 치기까지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좋아하던 시인이 한 사람은 남았을 거고 ‘나는 이런 시들을 좋아해’라는 건 가지고 나왔겠죠. 그런 식으로 저한테 영향을 주는 게 있는 거죠. 시라는 매체가 주는 감이라든지, 저한테 소설이 아직까지 주지 못하는 그런 부분이 당연히 있죠.
말씀하신 것처럼 ‘운문형 인간’에 가까우신 것 같은데, 시를 계속 쓰지는 않으셨네요.
옛날에 시 동아리에서 합평을 할 때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쟤는 시작(詩作) 메모로 쓴 게 훨씬 더 좋다’는 거였어요. 저는 시는 못 써요. 1행이나 1연은 쓸 수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시가 가져야 하는 완결성에 있어서 저는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아요. 책에서 쓴 글이 시처럼 보인다고 말씀해 주시는 건 저한테 굉장한 칭찬으로 들리기는 합니다만 사실 마음속에서는 너무 너무 부끄러워요.
『좋아서 웃었다』는 다시 1년을 던져주는 책
집필을 시작하시기 전에, 어떤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오히려 그건 책이 나온 다음에 느꼈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책을 받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 전까지는, 솔직히 이야기하면 약간 의심이 있었어요. 첫 책 『여기와 거기』를 굉장히 공을 들여서 만들었거든요. 『좋아서 웃었다』는 그만큼 공을 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했었어요. 왜냐하면 『여기와 거기』를 만들 때는 하나도 (내려)놓은 게 없어요. 사진도 잘 찍는 사람이어야겠고, 냉정하기도 해야겠고, 솔직하기도 해야겠고,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는 냉철하기도 해야겠고, 하지만 뭔가 푸근한 면도 보여줘야겠고… 그때는 그게 에디터이고 그게 나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게 다 모여있는 책이다 보니까, 제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많이 비웃어요. ‘풉’ 이러는 거 있잖아요. 제가 보기에도 그럴 만한 요소들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의 민망함은 있을지언정, 그것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고 추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좋아서 웃었다』에서는 많이 달라졌나요?
조금 더 수월하다면 수월하게, 쭉 흘러가는 느낌으로 구성됐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책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전 책에 비해서 공을 덜 들였다’는 생각을 하게 됐었던 건데요. 책을 처음 읽으면서 제가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글을 읽으면서 턱턱 걸리지도 않았고, 어깨의 힘을 조금 빼고 썼다고 할까요. 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이 책에 이런 미덕이 있구나’라고 스스로 생각한 순간이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는 괜찮았죠.
<GQ Korea>의 기사와는 또 다른 문체를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죠, 당연히. 포맷이 바뀌면 원고도 바뀌어야죠. 저는 수정, 첨삭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예로 들면, 내가 사람들한테 어떤 것들을 내보내는데 왜 카메라 회사가 만들어낸 규격대로만 사진을 찍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내 것을 보여주는데, 내 솔직함으로 내 꿈과 생각대로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때그때 마음이 바뀌면 당연히 글도 바뀔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잡지에 실린 글들이 호흡도 빠르고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는 느낌이라면, 이번 책에 실린 글들은 호흡도 느리고 여백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작가가 확연히 다른 두 개의 문체를 가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한테 그건 되게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이를테면 기사 원고는 마감 때 막 쓰잖아요. 그리고 빽빽한 기사 형태의 글은 제가 굉장히 어려워하는 글이에요. 저는 기사 쓰는 걸 굉장히 어려워하는데요. 어느덧 제가 쓰는 투가 생기다 보니까 조금 수월해진 면은 있지만, 여전히 취재 기사를 쓰는 형식을 굉장히 어려워해요. 제가 취재 기사를 굉장히 고민해서 잘 썼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제 기사도 잡지 기사의 일반적인 톤이나 사람들한테 권장할만한 톤하고는 조금 달라요. 그래서 저를 모범 삼아서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기에는 굉장히 이상한 답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GQ>에서 해 온 색깔이 있고 제가 보낸 시간이 있으니까 스타일이 생겼을 뿐이지, 기사답게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렇게 보면 회사에서 저는 일을 하고 있는 거고요. 이건 제 작품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달라요.
『좋아서 웃었다』는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 같고 <GQ>에 실린 기사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려서 끝마친 원고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간은 말씀하신 것과 비슷했을 수도 있어요. 기사 원고를 쓰는 데 들이는 시간이 더 짧은 건 맞아요. 사실 이 책은 굉장히 두고두고 썼다고 말하는 게 맞아요. 책을 쓰면서 글을 고치기보다 그 날을 진짜 겪으려고 했어요. 그게 제 태도 중에 있었던 것 같아요. 1월 10일의 글을 10월에 쓴다거나 하는 식으로 미루거나 당기거나 하면서 썼지만 정말 거의 1년 동안 썼어요. 그래서 9월 27일에 생각난 것들을 메모라도 해두었다가 9월 27일에 넣으려는 마음이 있었어요. 9월 26일에 넣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정말 1년 동안 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죠. 특히 그 마음이 진해졌을 때가 지난 해 가을 추석 즈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책에서 그 부분을 보면 제가 어떤 기분으로 이런 글을 썼는지 기억이 나요. 어떤 식으로든 더 집중하려고 하면서 뭔가를 했던 기억이요.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독자인 저에게는 『좋아서 웃었다』가 다시 1년을 던지는 책이에요.
책 속에 담긴 건 굉장히 개인적인 기록인데, 구구절절 앞뒤 상황을 설명하지도 않았어요. 독자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이해하거나 감정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을 수 있는데, 그런 데에 연연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그 마음은 맞아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모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는 기분이 있었어요. 그게 저예요. 제가 어떤 에세이를 느끼면서 제일 싫어하는 느낌이 있어요. ‘당신도 이런 일이 있지 않나요?’라는 식의 투예요. 저는 일상의 어떤 순간에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저는 책을 쓰는 게 누군가를 향해서 제 손을 잡으세요, 라고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태까지 감동을 느꼈던 글들도 저한테 ‘나처럼 해봐요 이렇게’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어요. ‘나도 이 사람처럼 공감했어, 이 사람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하는 식으로 감동을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런 식의 사기를 쳐요? 그건 제 언어로 이야기하면 사기 치는 거거든요. 그럴 수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이 글을 바치는 거예요, 여기를 추천해요, 같이 읽어보세요’ 이런 마음은 조금도 없었어요. 그게 어떤 독자에게는 쌀쌀맞다 앞뒤가 없다 등 여러 가지로 느껴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어쩔 수 없죠. ‘아니에요, 저는 당신에게 따뜻한 마음을 드리고 있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저는.
과거는 나의 힘
한편으로는 작가님의 감성을 알 듯 모를 듯 해서 조급증이 나기도 했어요(웃음).
그건 제 태도하고 관련이 있는 건데요. 솔직하게 쓰고 계절을 겪으면서 쓰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많이 덜어내는 쪽으로 가게 됐어요. 일기는 써놓고 나서 일기장을 닫으면 고칠 수도 없고 편지를 써도 버리면 끝이지만, 저는 이걸 써놓고 나서 계속 보게 되잖아요. 어제 써 놓은 편지가 오늘 아침에 마음에 들 확률이 적듯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뭔가를 더하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이건 이야기 안 하는 게 맞아, 라는 식으로 가게 됐죠. 그게 제 나름대로 사기를 덜 치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하다 보니까 빼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코스모스를 봤을 때 당연히 여러 기분이 들었죠. 그렇지만 내가 모르는 독자들에게 전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 이야기를 하는 건 오히려 더 거짓말 같았어요. 그럴 때 사진이라는 건 굉장히 유용하죠. 말로 뭔가를 괴롭히지는 않잖아요. 그냥 시각적 이미지만 주니까 받아들이기가 조금 더 수월한 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진의 도움을 많이 받은 편이고요. 그러다 보니 언어와 말은 될 수 있으면 덜어내는 쪽으로 갔던 것 같아요.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다 보면, 문득 ‘말과 글이라는 게 쓸데없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쓸데없이 많은 글이 있고 쓸데없이 많지 않은 글도 있죠. 다만 제가 글로 써서 저를 표현하고자 할 때는, 저는 긴 글은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알아요. 제가 긴 글을 잘 못 쓰는 스타일이라고 해서 ‘나는 긴 글을 싫어해’라고 이야기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그런데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자기를 규정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딘가에 글을 쓸 때 ‘저는 이게 싫고 이게 좋습니다’ 하고 단정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거죠. 그것이야말로 자신한테 솔직하지 못한 방식인 것 같아요. 제 입으로 이야기하기 조금 민망하기는 하지만, 제가 이 책에서 독자로서 좋았던 부분이 있었어요. 확신이라는 말을 쓸 때마다 제가 ‘쓸데없다’는 표현을 수식으로 달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쓴 건데요. 정말 좋았다는 확신이 들 때면 쓸 데 없는 확신이 들었다거나 헛된 느낌이었다고 썼더라고요. 독자로서 저는 그게 좋았어요. 왜냐하면 그게 나라는 걸 저는 알거든요.
‘사실 필요한 말들은 이렇게까지 많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는 없으세요? 단 몇 줄의 문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고, 많은 설명들이 부질없다고 생각될 때가 있잖아요.
정말 공들여서 찍었다고 생각하는 사진들인데 모아놓고 보면 ‘이게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건가?’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제가 지금까지 좋아한다고 생각한 사진작가들의 작품들하고 언뜻 뭔가 통해야 될 것 같은데, 아닌 거예요. 감상자로서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이런 사진이 실린 사진집이 있었으면 내가 샀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거예요. 물음표가 생기는 거죠. 글도 마찬가지인데요. 저는 그렇게 물음표가 생기는 순간이 좋아요. 내가 조금 더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떤 영화를 대하든 음악을 듣든 ‘이게 뭐지?’ 싶은 부분이 있을 때가 너무 좋아요. 저를 모르게 만드는 것, 또는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른 걸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훨씬 더 많은 쾌락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야만 하고요.
요즘 많이 하는 생각들은 것들은 무엇인가요? 이따금씩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나요?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세월호예요. 문득 문득 계속 생각하는데, 저를 감성적인 상황으로 이끌어가는 주제는 아니고요. 지금이 책을 낸 시점이기도 하고 연말연초 기분이 있다 보니까, 저한테는 ‘돌아보려는 마음’이 조금 더 큰 주제인 것 같아요. 연연한다는 말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쓰이는데, 저는 과거에 연연해요. 저한테는 과거가 너무 중요해요. 단적으로 비교를 한다면 저한테 미래는 하나도 안 중요해요. 나중에 무엇을 하겠다든지 어떤 사람이 되겠다든지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식의 에너지보다, 과거를 살피는 마음이 훨씬 더 좋은 에너지가 돼요. 예를 들면, 지난해 갔었던 여행지를 다시 떠올려보는 마음이나 그때 누나하고 했던 이야기들을 더 잘 떠올려 보려는 마음, 엄마가 떠 주신 옷을 보는 마음, 그게 훨씬 더 큰 에너지가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새삼스럽게 무언가를 더 보게 되는 게 있어요. 문득 ‘이게 어쩌다 나한테 와서 이렇게 되었지’라는 마음이 드는 건데, 요즘에는 부쩍 더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은 알지 못하는, 그때만 알았던 것들이 있죠
『좋아서 웃었다』에는 작가님의 취향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도 과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세요?
과거로부터 많은 면들이 오죠. 드리스 반 노튼이라는 디자이너를 좋아하는 방식도 지금하고 10년 전하고는 너무 너무 다른 거거든요. 저는 그 사실 자체를 재미있게 생각해요.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옛날부터 좋아했어’ 라는 이야기는 저하고 안 맞는 거예요. 물론 좋아한 건 옛날부터였지만 그때 좋아하는 것하고 지금 좋아하는 것하고 너무 다른데, 그건 ‘옛날부터 좋아했어’라는 문장으로는 표현이 정확하게 되는 게 아니에요.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사기 치는 거예요.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 제가 제일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드리스 반 노튼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아요. 그런 게 제가 확고한 취향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면일 수도 있고요. 혹은 ‘이 사람 취향을 잘 모르겠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일 수도 있는 거죠. 솔직한 제 마음은, 계절이 오듯이 바뀌는 제 기분이나 취향이나 관점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싶고, 의심하고 싶고, 호기심을 갖고 싶다는 거예요.
책의 부제가 ‘오늘, 편애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입니다만,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에디터로서 혹은 이 책을 쓴 사람으로서 조금 더 사람들한테 보였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취향보다는 관점이에요. ‘나는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만 좋아하고 이건 싫어’ 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에디터는 그런 사람이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디올의 옷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의 입장에서는 인터뷰하는 여배우한테 디올 옷을 안 입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그 여배우에게 디올 옷이 너무 잘 어울리는데 그걸 선택하지 않는 건 굉장히 잘못된 거예요. 그럴 때 필요한 건 관점이에요. 그걸 가진 사람이 에디터라고 생각하고, 그게 제가 에디팅을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물을 보는 느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책에서 의도적으로 줄을 바꾸기도 하셨어요. 때로는 질서를 깰 때 글의 맛이 더 산다고 느껴질 때도 있죠. 그런데 에디터로서 글을 쓸 때는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네, 당연히. 책에서 행을 바꾼 부분에 대해서는 서문에도 잠깐 썼는데요. 매거진에서 하던 게 너무 답답해서 그렇게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이게 저한테 더 맞기 때문이에요. 저한테 더 솔직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쓰면 ‘이 사람 멋 부린다, 시 쓰고 싶은가 봐’ 그런 이야기를 듣기도 하죠. 그런데 그 말이 맞아요. 저 멋 낸 거예요. 그리고 어떤 부분은 시처럼 읽히게 하고 싶었고요. 또 어떤 부분은 제가 독자로서 읽을 때 읽기 싫기도 한데, 그나마 이렇게라도 해 놓으면 제가 스스로 느끼기에 나은 거예요.
『좋아서 웃었다』에서 사진과 글로 남기신 부분들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그 자리에 있는 모습 그대로가 너무 좋았던 것들을 담으신 건가요?
그렇게 딱 나눌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계속해서 봐왔던 것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제일 좋을까’라고 생각해서 제일 예쁜 곳에 놓고 찍은 사진도 있죠. 그렇게 찍으려고 했는데 설거지감에 쌓여 있는 게 더 예쁘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 사진을 찍었어요. 그게 더 예쁘면 바꾸는 거죠. 표현하는 데 있어서 더 좋은 앵글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후회한 부분도 당연히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때만 알았던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지금은 마치 모든 것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그때도 그걸 알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처럼 생각하는 거죠. 그 말도 맞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거꾸로 생각해요. 그때는 그때만 알았던 게 있어요. 오히려 지금은 그때 알았던 걸 몰라요. 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 순간들을 되게 좋아해요.
좋아서 웃었다장우철 저 | 허밍버드
오늘, 나를 웃게 하는 것들에 대한 캘린더 형식의 기록
오늘 유독 좋아진 물건과 꽃, 나무, 풍경, 장소……. [GQ Korea] 에디터 장우철, 그가 홀로 꺼내 보며 비밀처럼 웃던 일들을 성심껏 매만지고 찬찬히 걸러, 1년 365일 중 약 200일을 캘린더 형식으로 나날이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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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