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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문학에는 만 시간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성석제, 소설학교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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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시간의 법칙은 문학에는 별로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학이라는 건 집을 만들어나가듯이 뭔가를 계속 축조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감정적 생산물이라서, 그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경우에 독자와 같이 공명하는 거죠. 많은 독자와 공명하고 공감하는 작품이 나쁜 작품일 리 없습니다. 그것은 대중성하고 또 다른 문제입니다. 많은 독자가 공명하는 작품을 대중적이라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오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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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중독되어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소설가 성석제.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었다. 지난 30일, 예스24와 문학동네가 함께하는 ‘소설학교 프로젝트’의 주인공으로 초대받은 성석제 작가는 소재를 발굴하는 방법과 작품을 쓰는 과정, 소설가로서의 고민 등을 솔직하게 공개했다. ‘이 소설이 정말’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날의 강연은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자리를 가득 메운 독자들은 소설의 의미와 소설가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제가 쓴 소설의 제목에는 유난히 인간이라는 말이 많습니다. 『이 인간이 정말』도 그렇군요. 『인간의 힘』이라는 장편소설도 있었습니다. 「소설 쓰는 인간」이라는 단편도 있었고요. 얼마 전에 나온 『투명인간』이라는 소설도 제목에 인간이 있군요. 인생이라는 말도 많이 들어갑니다. 『재미나는 인생』 같은 제목도 있었고요. 그런 제목을 쓸 때마다 속으로는 지겹다는 생각도 들 정도인데, 계속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의식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데요. 제가 워낙 사람이나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고, 거의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작가는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이야기의 단초를 발견한다고 했다. 영화를 볼 때나 여행을 할 때, 또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수첩에 적어놓곤 한다는 것. 종종 그것들은 작품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주변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잠정적인 소재인 셈이다. 스스로 ‘중독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몸에 배어버린 그 과정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동네 형들로부터 다양한 경험과 허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대학생이 된 후에는 선배들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배웠다. 그 시간들은 작가로 하여금 “세상에는 내가 잘 모르는 인간들이 있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고, 왠지 모를 존경과 경외심을 품게 했다. 그렇게 30대 중반까지 이어진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은 소설을 쓰는 밑천이 됐다. 

 

“모든 사람의 인생이 한결같고, 오늘이 내일과 같고, 이름만 다를 뿐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면, 소설은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소설이 형성되지도 못하고, 자라지도 못하고, 흐르지도 못하고, 그러다 보면 아마 세상도 재미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어찌됐든 우리에게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품고 있는 사랑, 미움, 근심, 경외감, 두려움 같은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있습니다. 그 감정들은 많은 사건을 파생시키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인간을 풍요롭게 합니다. 인간관계 역시도 그렇게 만듭니다.”

 

이어서 그는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그리고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사람 사이에 있는 일들이 다 기록되지는 않습니다. 다 이야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상정하고 기록하고 상상해내서 보여주는 사람들이 소설가들입니다. 그것(소설)을 읽지 않으면 사람에 대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잘 모르게 될 겁니다. 사람이 뭔지, 나 자신이 누구인지, 내 이웃이 어떤 사람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수도 있고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죠. 그래도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굳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소설을 읽음으로써 그만큼 삶의 질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과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아주 평면적이고, 이면도 없고, 보이는 그대로라면, 소설도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소설이 있는 것이고, 소설을 읽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겁니다.”

 

 

소설가는 맛만 보고 먹어본 것처럼 쓴다

 

하나의 생각이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되기까지, 소설가들은 어떤 과정을 거칠까.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그토록 생생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아마도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일 텐데, 이에 대해 소설가 성석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짧은 소설이나 단편 소설을 쓸 때는 줄거리가 먼저 한 눈에 들어오죠. 시작과 끝이 정해집니다. 요즘은 단편 소설도 예전보다는 훨씬 길어져서 한 눈에 장악이 되지 않을 때도 있는데요. 그럴 때는 이야기나 캐릭터만 잡아 놓고 시작합니다. 쓰다 보면 달라지기도 합니다. 어떤 캐릭터가 힘을 얻어서 사건이 달라지고, 그러면서 캐릭터가 달라지고, 이야기 전체가 달라지고, 줄거리도 당연히 바뀌고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되는데, 어시장에서 문어 같은 걸 만질 때의 기분이랄까요, 이게 나중에 어떤 요리로 변할지 저도 잘 모르는 그런 상황이 됩니다. 대개는 쓰면서 바뀌는 쪽을 좋아합니다. 쓰다 보면 고정된 캐릭터나 줄거리 같은 게 지겨워지거든요. 그 틀에 맞추다 보면 저 자신이 지겨워집니다. 그것들이 우연하게 변화하고, 돌발적인 사건과 대사 같은 것에 의해서 방향이 틀어지고, 그러면서 헤매기 시작하고, 그런 것들이 제 건강에는 좋은 것 같습니다. 쓰면서 스릴 같은 걸 느끼게 되거든요.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야기여야 지겹지가 않습니다.”

 

또한 작가는 이야기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모든 것을 경험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도 아니라고. 

 

“저는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접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때 기분이 어떨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그런 걸 상정하면서 소설을 쓰게 됩니다. 직접 경험하고 싶은 마음을 소설 쓰는 에너지원으로 삼게 되는데요. 어차피 경험을 많이 한다는 게 힘듭니다. 모든 경험을 다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맛을 볼 정도는 경험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가는 맛만 살짝 보고 다 먹어본 듯이 쓰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재미있고요. 거기에서 재미를 느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이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는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야기 때문에 고민하는 이도 있다. 그들은 작가에게 ‘소설과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처음 소설 쓸 때 저는 ‘내 이야기를 쓰면 너무 재미가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사실 많은 경우에, 작가의 첫 번째 작품은 자전소설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작가의 데뷔작이 대표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저도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주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왔다고 생각합니다. 저에 관해서 쓸 만한 이야기가 그다지 없고, 그것이 남들한테도 크게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쓰다 보면 저의 경험과 관점이 들어가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결국은 저 자신의 이야기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제 소설이 저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소설을 쓰는 일이 직업이 되면 자전소설은 벗어나야 됩니다. 자전소설은 두 번 쓰면 됩니다. 데뷔작 쓸 때 한 번 쓰고, 이후에 꼭 쓰고 싶다면 죽기 전에 한 번 쓰면 됩니다. 그 사이에는 남의 이야기를 써야죠. 자기 이야기는 나중을 위해서 남겨놔야 되니까요. 소설과 자신을 분리하려고 한다면 ‘나는 작품을 한 번 쓰고 말 사람이 아니다’라고 자신을 계속 설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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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시간의 법칙, 문학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즉석에서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성석제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은 작품 이면에 감춰진 의미에 대해 물었고, 그와 같은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은 조언을 구했다. 그 내용을 간추려 전한다. 

 

지금 한국 문학이 무엇을 잘하고 있고 또 무엇을 못하고 있는지,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공동체의 문학이라는 것은 자라나고 있는 숲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다 자랐을 때는 훌륭하다거나 우거졌다거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자라고 있을 때는 어떻게 될지 잘 모릅니다. 생성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판단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잘 모르겠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고요. 제 느낌에는 1990년대가, 경제 상황과 맞물려서, 한국 문학의 황금기였던 것 같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생겨났고 각자 다른 화법과 문체, 이야기를 가지고 다양한 작품을 쏟아냈죠. 특히 소설 쪽에서는, 수십 년에 걸쳐서 일어날 양적 질적 성장을 90년대에 해낸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굉장히 풍요로웠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떠냐고 물으시면, 모르겠습니다. 90년대가 그렇듯이 지나봐야 알겠습니다. 지금 생산력이 왕성한 작가들이 할 몫이고, 그리고 독자들이 중요합니다. 당연히 문학작품은 독자의 질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소설은 독자 없이는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자랄 수도 없고요. 

 

순수문학을 꿈꾸고 있는 학생입니다. 저와 같은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의 논쟁이 처음 있었던 건 1960년대죠. 그만큼 해묵은 논제인데요.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되겠지만 이제 와서 소설에서 장르, 순수성, 작품성을 따지는 건 제 생각에는 그다지 큰 의미는 없어 보입니다. 자신이 잘 쓸 수 있는 방식으로 작품을 쓰면 그만이죠. 순수문학이다 참여문학이다, 좋은 문학이다 나쁜 문학이다, 판단하는 건 독자와 평자의 몫이겠죠.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어떻게 하면 그걸 잘 쓸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거기에 에너지를 기울여야 될 것 같고요. 제가 드릴 말씀은, 빨리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저도 독자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뭔가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빨리 읽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회를 자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소설 쓰기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런 법칙은 문학에는 별로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학이라는 건 집을 만들어나가듯이 뭔가를 계속 축조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그걸 해나가는 사람의 정성, 감정, 상태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감정적 생산물이라서, 그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경우에 독자와 같이 공명하는 거죠. 많은 독자와 공명하고 공감하는 작품이 나쁜 작품일 리 없습니다. 그것은 대중성하고 또 다른 문제입니다. 많은 독자가 공명하는 작품을 대중적이라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오해예요. 많은 사람이 공명하고 공감하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작품을 쓰려면, 어쨌든 써야 됩니다. 시작을 하지 않으면 안 되죠. 일단 초고를 써야 되는데, 그건 밑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소설을 쓰는 건 밑그림이 만들어지고 난 이후부터 시작되죠. 그러면서 소설 쓰는 고통을 알게 되는데, 그걸 즐길 줄 알아야 진짜 소설가가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투명인간』을 읽으면서 거대한 대한민국,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투명인간’을 어떻게 정의 내리셨는지 궁금합니다. 

 

투명인간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죠.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인간도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허구 속의 투명인간도 있고,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투명인간도 있고요. 이 세 가지가 다 소설 속에 녹아들 수 있도록 나름대로 설정을 한 게 지금 소설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투명인간이라고 부르는 사회적 약자들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어디 있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없는 거죠. 존재하지도 않는 겁니다. 죽었는지도 모르죠. 존재하고 있으나 안 보이는 건지도 모르고요. 그런 여러 가지 함의가 있습니다만 지금으로서는 그냥 읽으신 대로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쓰실 때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번 소설에서는 이런 걸 써야겠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나중에 소설을 읽었을 때 저 또는 독자들이 느끼는 요소들이 있다는 걸 부인하지는 못합니다. 스며드는 것 같다고 할까요. 나를 둘러싼 사회적 상황, 시대적 상황, 의미, 가치관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아요. 결국은 저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고 정치적 상황, 역사적 상황의 외부인일 수 없죠. 그런 것들이 이야기나 단어 속에 배어들기도 합니다. 그런 총체적인 결과물이 소설 작품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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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간이 정말성석제 저 | 문학동네
5년 만에 펴낸 신작 소설집 『이 인간이 정말』에는 바로 이러한 재미를 담고 있는 작품 여덟 편이 실렸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발표한 단편들을 모았다. 『이 인간이 정말』에 담긴 작품들에는 삶을 송두리째 흔들 만한 대단한 사건도, 비범함을 지닌 영웅과 누군가를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악인도 없지만, 사소하고 미미하고, 그래서 평범한 이 순간들에는 인간의 맛이 진하게 배어 있다.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차지고 따뜻한 밥 한 숟갈이 허기진 배를 채워주듯, 그렇게 세상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작가 성석제의 오래된 기억, 그것이 그의 이야기가 가진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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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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