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성석제의 결핍과 호기심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글을 쓰는 소설가 장편소설 『투명인간』 펴내
자연은 모를 게 정말 많거든요. 농촌 사람들이라고 해서 생명의 본질에 대해서 다 아는 게 아니죠. 알면 알수록 궁금한 게 더 많아집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아는 만큼 더 알 게 많아져요. 그런 것들이 아마 제 안에 있는 호기심의 탱크 사이즈를 많이 키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소탈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그는 단어 하나 하나를 신중히 찾아낸다. 질문자의 속도와 답변자의 속도가 다른 이유다. 물음을 던지고, 그 답을 기다리는 동안, 진심으로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묘한 진공이다. 성석제는 호기심을 물씬 느끼게 만드는 종류의 인터뷰이다.
김태훈 :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글들을 참 많이 듣고 읽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은 6월 말에 나올 새 작품에 대한 소개를 간단하게 해주세요.
성석제 : 제목은 『투명인간』이고요, 장편소설입니다. 2013년 <창작과 비평>이라는 여름호부터 연재해서 올해 봄까지 4회 연재되었고요. 한 회 분 정도를 더 써서 막 탈고를 했습니다.
김태훈 : 이 작품이 꽤 오래 전부터 준비되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투명인간』을 읽어보게 되면 굉장히 많은 디테일들이, 물론 선생님 작품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만, 그런 부분을 봤을 때 꽤 오래 전부터 준비된 것 같습니다.
성석제 : 연재 시작하기 3~4년 전에 연재 의뢰를 받았어요. 그때부터 뭘 쓸 건지를 틈틈이 생각했으니까, 시간상으로는 꽤 오래 생각하고 숙성시켜온 거죠. 물론 그 사이에 다른 소설도 썼지만, 그러면서 머릿속에서 이 소설만의 디테일이 쌓여갔죠. 사실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축되고 숙성되는 그런 시간이 직접 쓰는 시간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이제까지 이십여년 간 소설을 써오면서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한 소설을 준비한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큰 틀을 짜고 내용과 세부를 채우는 데에 그 시간이 걸린 거죠.
김태훈 : ‘투명인간’이라는 소재가 굉장히 재밌습니다.
성석제 : 말 그대로라면 속이 비쳐 보이는 인간이라는 말인데요. 원래 투명인간은 보이지 않는 인간을 말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투명인간이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조응하는 단어는 아닐 수 있지만, 보이지 않게 된 사람이라는 문맥에서는 같다고 할 수도 있죠.
김태훈 : 의미론적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이 소설 『투명인간』의 주제와 더 잘 어울리는 단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석제 :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투명인간이라는 말을 가끔 쓰지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안 보이는 사람처럼 취급할 때 ‘투명인간’이라고 하죠. 그 경우에도 ‘비쳐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굳어져 있죠. 그래서 제목을 정할 때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기보다는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투명인간’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투명인간』을 쓰기 까지, 경험한 것들
김태훈 : 소설의 첫머리에서 묘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의 문장 자체는 굉장히 경쾌하게 진행이 되는데, 보이지 않는 사람이 죽음과 맞닿아 있는 다리 위에서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잖아요. 그러니까 문장이 가지고 있는 가벼움과 그것이 다루고 있는 주제의 무거움이 묘하게 충돌하면서, 굉장히 인상적인 인트로를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선생님께서 독자들에게 처음부터 던져주려고 했던 이미지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성석제 : 우리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잖아요. 좌절과 불행의 밀도가 높아졌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 현상에 대해 소설에서 이야기할 때 무겁죠. 우선 쓰는 사람의 마음부터 무겁죠. 소설의 문장도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요. 그리고 그런 것들은 느리게 둘러가야 하거든요. ‘경쾌하다’는 것과는 반대로 무겁게 서술을 할 수밖에 없는데, 제가 타고난 기질은 그러지 못하거든요. 호기심이 많고 가벼운 쪽이에요. 이런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어떤 식의 문체를 쓸까 생각했었는데요. 이 글에는 여러 사람의 시선이 들어 있습니다. 주인공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을 화자로 해서 주인공을 보여주고 주인공은 마지막에 충분히 발언할 기회를 주자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등장해서 자기 인생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과장이나 왜곡이 심할 수 있으니까요. 객관적이지 않으니까 이야기의 신빙성이며 설득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사람이 여러 시각,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죠. 그들 나름대로 편견이 있을 수도 있고 객관적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들이 말을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는 말보다는 무겁지만 문장보다는 가볍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소설을 끌고 가기로 했을 때, 무거운 내용이지만 가볍고 구어체적인, 세부가 살아나는 분위기가 생길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김태훈 : 결국은 문장이 작가가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의 문장은 굉장히 가볍게 다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가벼운 문장들이 계속 중첩될수록 다루고 있는 소재에 대해서는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마포대교를 설명하면서 그 안에서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저는 굉장히 건조한 문체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사람의 죽음을 방지하기 위한 그 방법들이 따스한 온기는 별로 담고 있지 않은 채 사회적인 틀로써만 인간을 대하고 있는 듯한, 그런 부분들이 더 와 닿을 수 있게 묘사가 된 것 같습니다.
성석제 : 일종의 전시적인 행정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볼 때 보통 사람들이라면 ‘실제로 어떤 사람이 생사를 결정하는 순간에 이런 복잡하고 자화자찬 격인 설명을 달고 있는 장치들이 과연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을까’ 하고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죠. 조금 더 냉정한 사람이라면 예산 낭비라고 비판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장치들에 대해 묘사를 하다보면 묘사하는 대상이 갖고 있는 속성, 분위기가 문장에 배어드는 것 같아요.
김태훈 : 그래서 소설 전체를 통해서 인간 자체에 대한 의미는 상실된 채 기능에 대한 의미들만 남아있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성석제 : 서술자,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입장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런 그런 식의 기능주의적인 사고, 필요하면 갖고 불필요하면 버리는 식의 사고와 삶을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가지게 된 입장이 들어가 있는 거죠. 그런 가정이 있었을 거예요.
김태훈 : 『투명인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사회적인 사건 혹은 개인적인 일화가 있었나요?
성석제 : 소설에도 나오지만 제가 한동안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요. 한강변에 있는 자전거 도로를 많이 이용했죠. 다리도 여러 번 건너 다녔고요. 소설의 첫 대목과 비슷한 상황을 여러번 만났죠. 다리 위에 올라서니까 어떤 남자가 건너편에 인도에 서 있는 게 보이는데 보고 있자니 내가 굉장히 불안한 겁니다.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사람을 투명인간처럼 대해요. 그 사람 역시 맞은편에 자전거를 세운 채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이며 지나가는 차,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아요. 그 사람은 뭔지 모를 자신의 문제에 골몰해 있었던 겁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며 캠페인이 주렁주렁달린 다리 위에서 말이죠. ‘저 사람이 저기 서 있는 순간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를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사람처럼 우두커니 다리 위에 서서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한 번은 강변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데 강에서 배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빠르게 다가와요. 보니까 구급차도 오더라고요. 누군가 투신을 한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처리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경찰관도 있고 소방대원들도 있고 구경하는 사람도 있는데,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서 그런지 과정이 쉽게쉽게 처리하도록 정해져 있더라고요. 심리적으로는 그 사람들 역시 그런 일을 다루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거예요. 심적인 부담을 덜어내려고 일부러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별 것 아닌 것처럼 남의 일처럼 건조하게 처리하는 걸 본 적이 있죠. 실제로 투신한 사람은 흰 천으로 덮여 있어서 보지 못했고, 그 사람의 유품이 비닐에 담겨 있는 걸 봤는데요. 그 안에 라이터와 통장이 들어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날은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죠. 처음 그런 걸 봤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소설을 쓰기 전에 제가 직접 경험한 일들입니다.
김태훈 : 왜 죽은 사람에게는 항상 천을 씌울까요. 저는 그게 늘 궁금해요.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사람이고 숨을 거뒀다고 해서 지금의 우리와 외형적인 측면에서 달라진 것도 아닌데, 천을 씌워서 세계를 나눠버리는 듯한 행동으로 보이거든요.
성석제 : 그건 죽은 사람을 위한 장치일까요, 산 사람을 위한 장치일까요?
김태훈 : 제가 가장 고민했던 부분도 그거예요. 저것은 죽은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산 사람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한 것일까, 우리가 언젠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애써 감추려고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석제 : 장례식 같은 의례는 산 사람들을 위한 장치죠. 그리고 산 사람들이 그 의례를,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 번거롭기까지 한 의례를 거치면서 적응을 하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슬픔을 여러 사람과 나누면서 위로를 받는 장치죠. 이미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그토록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이유는 없을 겁니다. 그런 복잡하고 연극적인 장치와 과정을 겪으면서 또 생각하게 되는 거죠. 돌아가신 분에 유비되는 자신의 남아있는 삶에 대해서. 그런 장치들이 우리에게 많이 있죠. 의식이나 규례라든지 하는 식의 규범으로도 남아있고요. 옛날에는 장례를 치를 때 망자와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상복을 어떤 것을 입을지, 얼마동안 상을 치를지도 정해 두고 지키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조선 후기의 예송논쟁이죠. ‘왜 이런 것까지 따지고 지키게 할까, 안 그래도 충분히 슬프고 힘들고 아플 텐데’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슬픔과 고통을 잊게 할 수도 있죠.
법대생이 어떻게 소설가가 됐을까
김태훈 :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셨다가 작가가 되셨습니다. 법대를 다니다가 소설가로 삶의 방향을 바꾸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성석제 : 아마 그 질문은 백 번 이상 받았을 겁니다(웃음).
김태훈 : (웃음) 먼저 법대에 들어가신 이유부터 듣고 싶어요.
성석제 : 법대에 들어간 게 아니고요. 제가 들어갈 때는 계열이었어요. 법학, 행정학, 정치외교학, 신문방송학, 이렇게 네 과가 속해있는.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전공을 선택해야 했는데, 신문방송학을 선택하려고 했었는데요. 기질에도 맞고 1학년 때 같이 놀던 친구들이 신문방송학과를 가겠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늘 농담처럼 얘기합니다만, 전공을 정하는 날 법학과는 수업시간에 출석을 잘 안 부른다는 얘기를 듣고 그만 법학과를 신청했지요(웃음). 실은 제가 장남이고 가족들의 기대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데다, ‘잔소리를 덜 들으면서 잘 놀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우연성과 필연성, 개연성이 작용해서 1지망으로 법학과를 쓰고 2지망, 3지망을 신문방송학을 썼습니다. 그때는 성적순으로 뽑을 때였는데, 지망생이 많은 학과는 커트라인이 높았죠. 그래서 저는 아마도 법학과에 배정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해에 교수님들이 회의를 해서 ‘성적순으로 전공을 결정한다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결론을 내고 원하는 대로 배정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법학과로 가게 된 거지요.
김태훈: 정말 출석을 잘 부르지 않던가요?
성석제: 아뇨. 그건 사법시험 일차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이차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미리 허락을 받았을 경우에나 해당되던 거였어요. 시험도 중간고사 기말고사 말고도 쪽지 시험 같은 걸 자주 보고요(웃음). ‘내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때가 1980년, ‘민주화의 봄’일 때라서 수업을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5월에 광주항쟁이 있었고 그 무렵에 휴교령이 떨어졌었죠. 그렇게 한 학기가 그냥 흘러가버렸습니다. 2학기가 되었을 때는 ‘나 같은 자유주의자 기질이 강한 사람에게 법학은 나는 믿지 않는 종교의 신에게 경배하는 일이나 마찬가지겠구나’하는 생각을 했고요. 그때부터 군대에 갈 생각을 했고 군대에 다녀온 뒤에는 복학생의 관록으로 그럭저럭 버티다 졸업했지요.
김태훈 : 제가 보기에는 학문 자체보다도 과의 분위기, 시험이라는 강박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성석제 : 그때는 제가 문학을 평생 동안 할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장래희망이라는 건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짐작하는 나의 미래는 그냥 교양 있는 독서인, 시민, 그리고 직장인. 그런 정도였죠. 책 읽고 가끔 오페라나 전시회를 보러 갈 수 있으면 좋겠고, 그런 식의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생각했죠. 예술가가 되어서 세상에 없던 무엇인가를 내놓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학을 시작했을 때도 시를 썼어요.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 소설 쓰는 경우는 꽤 있습니다. 그런데 시를 쓰는 경우는 많지는 않을 거예요. 시의 문장은 굉장히 뜨거우면서 변동하고 변하게 만드는 것이고, 법의 문장은 차가우면서 압축이 되어 있죠. 시를 쓰면서 법학을 공부한다는 건 고행이나 다름없었죠. 두 가지가 서로 상충하니까요.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 법학을 공부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했죠. 소설을 쓰며 행위를 해석하고 정의를 내려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법을 공부한 게 확실히 유익하게 작용하죠.
알면 알수록 알 게 더 많아진다
김태훈 : 선생님께서는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정통한 지식들을 많이 갖고 계시잖아요. 박물관식 지식이라고 할까요. 다양한 호기심과 다양한 취미를 갖고 계신데요. 그런 작가들이라고 한다면 일본의 ‘다치바나 다카시’나 영국의 ‘빌 브라이슨’ 같은 작가들을 꼽을 수 있는데. 그런 다양한 호기심과 지식들을 추구하셨던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성석제 : 글쎄요. 박물관식 지식이라는 건 너무 과찬이고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궁금한 게 많았습니다. 지금도 궁금한 게 남아있고요. 방향은 조금 달라졌지만. 궁금하면 해결해야 돼요. 그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쓸 거리가 쌓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 데는 농촌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게 많이 작용했을 거예요. 자연은 모를 것투성이니까요. 어릴 때부터 도시 생활을 했고 TV 같은 문명의 매체를 접했으면 그런 호기심 자체가 소진됐을 수도 있습니다.
김태훈 : 고향이 경북 상주시죠?
성석제 : 맞아요. 시골이라서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그렇다고 금방 TV를 볼 수 있었던 건 아니고요. 농가에서 쉽게 살 수 없는 고가품이니까요.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게 책, 신문, 라디오, 이런 것들이었죠. 특히 저한테는 무협지라는 게 있었죠. 아버지 친구가 무협지 대본소를 하시는 분이 있었어요. 사람에게 상상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매체들, 라디오와 책, 문장 같은 것이 내 기질을 결정한 것 같아요. 내가 모르는 세상을 내 존재와 연결하려 할 때 호기심이 더 발달하게 되죠. 커서도 아이 때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웃음) 뭔가 신기한 게 있으면 덤벼들어서 들여다보게 보게 되고, 여행 같은 걸 많이 하게 되기도 하고요.
김태훈 :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결핍들이 있었던 공간이었네요. 상상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해내야 하는. 활자가 하나 주어졌을 때,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그런 습관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무언가를 보면 궁금증을 갖는 욕망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성석제 : 그리고 아주 중요한 건 자연이죠. 자연은 물을 게 정말 많거든요. 농촌 사람들이라고 해서 생명에 대해서 뭘 알겠습니까. 알면 알수록 알 게 더 많아지죠. 궁금한 게 더 많아집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아는 만큼 더 알 게 많아져요. 그런 것들이 아마 제 안에 있는 호기심의 탱크 사이즈를 많이 키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를 거기에서 태어나고 자라게 해 준 우리 부모님이나 조상들, 운명이란 게 있다면 그런 운명에 대해서도 언제나 감사합니다. 결국 그런 자연 속에서 살 수 있게 해 준, 그 자연이 참 고맙죠.
김태훈 : 자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어떤 거였나요?
성석제 : 권태를 모르는 순환이죠. 그리고 측량할 수 없는 거리. 아득한 은하라든지 별이라든지. 그리고 성장하는 것. 나 모르게 생장하는 것. 내가 인식할 수 없게끔 각각의 개체가 살아가고 있는 것. 나무가 싹을 틔우고 자라고 어느새 보면 커져 있고 잎이 무성해져 있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경이롭죠.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글을 쓰는 소설가
김태훈 : 다작 소설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생님의 창작력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계속 있을 것 같아요.
성석제 : 다작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령 10년 농사지은 사람과 20년 농사지은 사람이 있으면, 20년 농사지은 사람이 다작인가요? 농사 짓는 땅이 넓은 사람, 종류가 많은 사람이?(웃음) 저는 소설이 예술가나 장인적인 충동에 좌우된다기보다는 농부의 무실역행에 가까운 노동으로 써지는 것 같아요. 농부는 농사를 ‘짓는다’고 하죠. 작가의 작 자도 짓는다는 작(作)이긴 하죠. 씨를 뿌리고 풀을 뽑아주고 수확을 하는 것들은 농부가 하지만, 농작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은 농작물 그 자체가 하는 거죠. 농부는 도와줄 뿐이죠. 의사가 우리 병을 낫게 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의 몸이 스스로 낫는 것처럼.
저는 소설을 쓸 때 ‘이건 안 쓰면 안 되겠다, 꼭 쓰고 싶다’ 이런 충동에 의해서 쓴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소설이 생성되는 쪽을 선호해요. 이야기의 싹을 고르는 건 저지만 그것이 자라고 가지를 뻗고 세부를 만드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야기가 소설이라는 형태로 변화되기까지 농부처럼 제가 도와주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아요. 농부들은 논밭에서 할 일이 없어도 아침이면 삽을 메고 집을 나서서 논밭으로 간다지요?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도 있죠. 저도 쓸 일이 없어도 늘 소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에 키보드를 타고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것일지도 몰라요.
김태훈 : 마치 계절의 순환 속에서 농부의 힘을 빌어서 곡물들이 커 나가듯이, 하나를 비우고 나면 계절의 순환처럼 또 다른 쓰고 싶은 마음과 이야기들이 마음속에서 자라고 그걸 작가가 도와줌으로써 또 한 번 책이 나온다는 말씀이시군요.
성석제 : 그게 가장 이상적인 것이죠. 솔직히 말하면 대개는 마감 때문에 쓰게 됩니다(웃음).
김태훈 : 저는 그 이야기가 가장 진솔하게 와 닿네요(웃음). 최고의 작품의 충동은 마감이라는 이야기를 어떤 작가분이 하신 적이 있는데요. 저도 사실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나면 정리를 언제나 마감 시간에, 때로는 한 시간 두 시간 늦게 보내서 담당자에게 욕을 먹고는 합니다(웃음).
성석제 : 어떤 작가는 마감을 넘기고 나서야 소설을 쓰기 시작할 수 있다고도 해요. 그 전에는 써지지 않는대요(웃음).
자연이 곧 예술이고 종교일 수 있다
김태훈 : 선생님이 가장 최근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성석제 :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자연과 과학입니다. 종교나 예술, 신화와 버금가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자연 현상, 위대한 과학적 업적, 발견, 이런 것들이죠. 얼마 전에 내셔널지오그래픽이라는 채널에서 <코스모스>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었죠. 거기에 한동안 빠져 있었습니다. 관련된 책들도 찾아 읽고요.
김태훈 : 최근에 가장 많이 화제가 됐죠. 450억 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간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칼 세이건의 원작을 다시 한 번 영상으로 제작했죠.
성석제 : 칼 세이건의 소설 『코스모스』는 대학시절인 80년대에 읽었거든요. 그때도 굉장한 붐이 일었었죠. 쉽고 재미있게 쓰여 있어서 문외한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었어요. 그때 깨달은 것은 ‘뛰어난 저자는 쉽고 재미있게 쓴다, 뭘 모르기 때문에 힘들게 쓰고 어렵게 쓰고 현학적으로 쓴다’는 편견을 갖게 됐죠(웃음). 그리고 ‘내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총합으로 엮일 수가 있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뉴튼이 말한 대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세상을 다시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쉽게 문장을 쓴다는 건 참 중요해요. 칼 세이건 덕분에 좋은 책은 쉬운 문장으로 쓰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요. 심지어 철학까지도. 제가 대학 다닐 때 잔디밭에 앉아서 햇빛 쬐고 있을 때 아저씨들이 다가와서 비밀스러운 검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서 사라고 해서, 월부로 산 것 중에 ‘철학 전집’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김태훈 : 책 좋아하는 집안에서는 하나씩 꼭 사뒀던 전집이죠.
성석제 : 키에르케고르, 칸트, 니체, 이런 사람들의 주요 저작들이 실려 있었는데요. 그때 한창 젊고 머리가 잘 돌아갈 때인데도 읽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월부 책값이 너무 아까웠지만 결국에는 ‘철학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그래서 철학이구나, 아무나 철학하는 게 아니구나’ 하고 포기를 했는데요. 나중에 어떤 계기로 길이가 짧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요. 너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영어로 씌어져 있었어도 사전을 조금 찾아보면 금방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쉬웠어요. 그 책의 저자가 ‘철학전집’에도 들어 있었어요.
김태훈 : 번역에 문제가 있는 책들이 많죠.
성석제 : 맞아요.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의 문학도 대단히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발전을 했지만 문장 역시 마찬가지거든요. 공부를 많이 했으나 우리 말, 우리 문장이나 문학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분들이 번역한 것과 그렇지 않은 분들이 번역한 건 많이 다릅니다. 잘 몰라서라기보다는 전달하는 방식이 다른 거죠. 우리 세대가 그 전 세대의 사람이 번역한 저작물, 번역 문장을 이해 못한 게 어떻게 보면 당연했던 거죠. 어쨌든 좋은 저자들, 많이 알고 쉽게 흥미롭게 쓰는 많은 저자들 덕분에 우리가 사는 세계를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죠.
김태훈 : <코스모스>라는 13부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어떤 것이었나요?
성석제 : 벌써 거의 다 잊어버렸습니다만, 광합성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식물의 광합성 시스템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해서 응용할 수 있다면 화석 연료가 전혀 필요 없다는 이야기였어요. 광합성 작용은 완전히 친환경적이기도 하죠. 우리가 화석연료 고갈이라든지 환경오염, 경제 문제, 이런 것 때문에 굉장히 고통 받고 수많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 일상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풀 나무들이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광합성의 시스템만 활용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지요. 그런데 아직까지 인간이 그걸 못하고 있는 거죠.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면서도. 특히 먼 우주, 초신성 폭발, 몇 억 광년 떨어져 있는 우주를 허블 망원경으로 찍어서 보여주는 것을 보고 ‘법열’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어요. 자연의 엑스터시(ecstasy)죠. 자연이 곧 예술이고 종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죠.
과거 사람들의 감각, 삶을 느껴보는 소설
김태훈 : 짧은 시간동안 들은 얘기로 제가 정의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선생님은 그냥 놀이하는 인간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글이라든지 다른 여러 가지 활동들도 그렇고요. 최근에 젊은 친구들을 만났을 때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놀이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세대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최근의 사회 분위기 혹은 젊은 친구들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해요.
성석제 : 그 전부터 있던 단어인데 제가 의식을 못했던 것 중에 하나로 ‘몰입식 교육’이라는 게 있더군요. 아이들을 공부시킬 때 좁은 공간에 집어넣고 집중적으로 압박을 하고 심지어 밤을 새게 하면서 공부를 시킨 끝에 단기적인 효과를 얻어낸다는 것 같아요. 몰입이라는 단어와 교육이 결합되니 교육의 의미가 그렇게 천박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어요. 공장식 가축 사육, 기업식 농업처럼 최대한의 효율, 경제성을 위해서 자라나는 청소년에게조차 그런 방식을 강요하지 않았나,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방식의 비인간적인 교육의 결과가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성을 배제하고 다수의 길들여진 인간형, 또는 소수의 괴물을 낳는 것 같기도 해요.
지금 전반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몰입된 형태의 문화, 삶의 방식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아요. 스마트폰 같은 게 대표적이죠. 길을 걸을 때나 차를 타고 가거나 지하철 안에서, 심지어 운전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보잖아요. 빠져 있죠. 자전거 타고 가면서 카톡 메시지를 보고 웃고 답을 보내는 묘기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스마트폰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기 일인가요? 필요한 것인가요? 엔터테인먼트이든 뉴스든 무엇이든 간에 자기 것이 아닌 대리 체험이거나 남의 이야기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김태훈 : 자기 이야기, 자기 삶보다 남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성석제 : 시뮬레이션이 아닌 자기의 진짜 삶이나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하는 것들은 직접 경험하는 게 번거롭고 귀찮고 심지어 낯설고, ‘꼭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절차, 의무, 삶 그 자체를 인스턴트 음식을 사먹는 것처럼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안에 다 있는 것 같지요. 자기 인생을 자기 나름으로 살고 희로애락을 경험할 절박한 필요나 욕구가 없어진 겁니다. 요리하고 음식을 만들어서 영양을 섭취하고 소화시키는 게 번거로우니까 영양제 알약 먹고 링거 맞는 거나 같애요.
자기가 원하는 것, 즐겁게 해주는 것만 빼내서 취하고 나면 나머지는 다 귀찮고 의무적이고 그러니 싫어지고 하는 거죠. 관심이 없어지요. 그 역시 자신의 일부이고 삶의 일부인데.
지금 세대의 삶과 다른 세대의 삶, 어느 편이 가치 있는 삶인지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죠. 삶을 가치로 환산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조차 모르겠어요.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겠죠. 중요한 건 그것이 자기 자신이 주체적으로 결정한 것인가 하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몰입식 교육을 지나치게 많이 받은 나머지 나도 모르게 나 아닌 다른 사람이나 시스템, 가치관에 의해 이렇게 만들어진 건 아닌지, 내 인생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며 시스템이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고 스스로 판단한 바를 따른다면 상관이 없겠지요.
김태훈 : 다시 선생님의 새 책으로 돌아와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투명인간』이 지금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시기에 이 이야기를 끄집어내자고 생각하셨을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성석제 : 『투명인간』 한 권에 들어있는 시간 단위는 굉장히 깁니다. 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니까 50년 가까운 시간이죠.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서 이야기되고요. 결국 이 장편소설에 들어있는 것들은 긴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여러 가지 이야기입니다. 삶에 관한 이야기인 거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노력하고 헌신하고 억압받고 희생하고 싸우고 피 흘리고 웃고 우는, 어쨌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인 거죠. 소설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 지금도 형태와 사람을 바꾸어서 계속 벌어지고 있어요. 우리가 살아있는 한 삶의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해요.
우리는 ‘압축 성장’을 하면서 너무 많은 걸 버렸어요. 우리 삶의 디테일은 어디로 갔을까요. 가령 60년대, 70년대에 있었던 극장, 음식, 골목, 건축물, 그런 것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일부는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겠죠. 그런 것들을 있던 그대로 복원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거나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소설 속에서 쉽게 재현을 해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같이 느낄 수 있는 거죠. 그 시절을 안 살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하라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의 감각, 삶을 느껴보라는 거죠. 소설에 묘사되어 있는 인간의 숭고함, 아름다움, 슬픔과 기쁨, 희비극을 통해 같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모색해볼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 같이 살아간다는 느낌, 공감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가장 공을 많이 기울였습니다.
김태훈 : 또 한 편의 책을 세상에 내보내시고 나서 무엇을 하고 싶으실까 궁금해집니다.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가실 건지, 여행을 가실 건지, 또 다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무언가를 하실 건지.
성석제 : 글쎄요. 당장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고요. 마치 겨울잠을 자듯이 지금까지 쓴 소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한동안 다른 생각, 뭔가 다른 짓을 하겠죠. 낯선 세상으로 여행을 간 것과 비슷한 상태 속에 저를 처해 있게 만들 겁니다. 그 세상이 뭔지 이해해 보려고 더듬이를 들이대고 대화하고 걷고 부딪치고 넘어지고 냄새 맡고... 한참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저를 찾아오겠죠. 아마 그럴 겁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계속 되풀이 되어 온 일이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되겠죠.
김태훈 : 긴 시간 동안 재밌는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짧지 않은 인터뷰를 마치고 스튜디오를 나서는 그를 쳐다보며 여전히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약간의 무력감이 들었다. 그것은 그가 가졌던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충족해온 시간에 비해, 인터뷰의 시간이 턱없이 짧음에서 오는 간극이었을 것이다. 소설가 성석제는 한 번의 인터뷰로 담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작가였다.
기획: 엄지혜 기자
정리: 임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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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칼럼니스트. 듣고, 보고, 읽고를 통해 세상을 생각해본다. 삐딱한 편견으로 40여 년을 살았고, 그 편견을 깨기 위해 나머지 시간을 쓰려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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