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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투명인간'이라기엔 너무 평범한 남자 이야기

각박한 이 세상, 바보같이 아름다운 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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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이야기꾼, 소설가 성석제가 『투명인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 7월 18일, 합정동에 위치한 ‘인문까페 창비’에서 독자들과의 낭독회를 가졌다. 예스24가 단독으로 준비한 그날의 만남을 전한다.

작가만남-성석제

 

『투명인간』 평범한 한 남자가 투명인간이 된 이유는?


성석제 작가의 새로운 이야기 『투명인간』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남자, 좀처럼 낯설지 않다. ‘나인가?’ 싶다가도 ‘나와 아주 가까운 그이인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가 성석제의 모습도 언뜻 스치는 것 같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작가와 비슷한 시기에 나고 자랐을 한 세대가 연상된다. 『투명인간』 안에 기록된 시간은 그들이 끌어안고 살아온 경험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담긴 감성은 아직까지도 그들 가슴에 굳은살처럼 박혀있는 까닭이다.

 


소설가 성석제는 『투명인간』의 주인공 ‘김만수’를 통해 그들의 정체를 설명하려 한다.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위아래로 치이고, 이십 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니다가, 부모님 손에 이끌려 고향을 떠나게 된 만수. 그리고 그와 아주 흡사한 궤적을 남기며 살아온 다수의 인물들. 다른 듯 닮아있는 그들의 삶은 도시 생활이 시작된 이후에도 같은 길을 걷는다. 자신을 위해서든 가족을 위해서든, 먹고 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던 시절이 이어졌다. 그 시간이 모두 지나간 뒤에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따위의 행복한 결말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만수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는 왜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투명인간이 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성석제 작가의 낭독회에 함께한 박준 시인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박준 시인 : 『투명인간』을 읽으면서 제 주변의 인물들을 한 명씩 다 떠올려 봤어요. 그리고 ‘나는 어떻게 그 사람들을 투명인간화 시켰나’ 혹은 ‘나는 어떻게 그들과의 관계를 죽였나’를 떠올려 봤습니다. 아마 『투명인간』의 독자 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으셨을 것 같아요.

 

누군가에 의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 누군가에 의해 관계의 끈이 끊어져버린 사람. 시인의 말에 의하면 아마도 김만수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유일하게 김만수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투명인간도 그러한 존재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궁금하다. 김만수는 왜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그래서 작가에게 다그쳐 묻는다. 그는 어쩌다가 투명인간이 되었느냐고. 그러자 슬슬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하는 작가는, 김만수가 견뎌낸 시대와 그 순간의 김만수에 대해 말한다.


『투명인간』에 빼곡하게 담긴 그 이야기들은 김만수만의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이들의 것이다. 성석제 작가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시인 박준은 소설가 성석제를 통해 김만수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작가만남-성석제


그 시절의 서울살이, 나는 입을 다물었다


박준 시인 : 『투명인간』 작가의 말을 보면 ‘갑장산 아래에서’ 썼다고 적으셨어요. 갑장산은 선생님의 고향인 상주에 있는 산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외에도 선생님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고향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곳에서 어떤 유년을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성석제 : 소설을 쓰다가 기운이 떨어지고 더 이상 쓰기가 힘들어질 때 고향을 가는데요. 고향이라는 게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곳이니까, 나는 그곳을 떠났지만 늘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에요. 갑장산이라는 이름은 가장 어른 산이라는 뜻인데요, 주변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는 거죠. 제가 나고 자란 지대에서는 갑장산 꼭대기가 보였어요. 아침에 도랑으로 가서 세수를 마치고 고개를 들면 산의 꼭대기가 보였죠. 여름이면 친구들하고 산 계곡에 가서 더위를 식히곤 했고요. 제 어린 시절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메산골 ‘개운리’에서 태어나 이십 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던 만수의 이야기는 작가의 유년시절과 매우 닮아있었다. 온 가족의 서울 상경으로 익숙한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 생활에 적응해야 했던 일까지도. 그 ‘(일생일대의) 사건’이 미친 영향이라면, 성석제 작가가 독자들에게 직접 들려준 다음의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다.

 

새로 전학 온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깔보이게 되는 표면적인 이유는 사투리 때문이었다. (중략)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물자 표준말을 배우는 게 더 어려워졌다. 알고 보니 시골서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표정도 없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 평상에 누워 있거나 걷거나 쓰레기를 뒤지거나 길바닥에서 뭔가를 늘어놓고 노는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말이 없었다. 아침마다 군대처럼 제복을 입고 줄을 지어 공단으로 출퇴근하는 청년과 처녀들 역시 몸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말없이 떼 지어 몰려다니는 사람들은 언제든 잡아먹힐 수 있는 가축이나 물고기 떼처럼 무기력해 보였다. (투명인간』 138~139쪽)

 

성석제 : 처음 서울로 전학 왔을 때 방금 낭독한 내용과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거의 1년 동안 학교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투리를 쓰면 사람이 약해 보이고, 순진해 보이고, 그래서 강한 도시 아이들에게 잡아먹힐 것 같은 공포가 있어서였어요(웃음). 약간 표준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죠.

 

지금의 가리봉동에서 서울살이를 처음 시작했다는 작가는, 그 시절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풍경을 『투명인간』에서 재현하게 된 계기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성석제 : 지금 그 지역에는 중국에서 오신 분들이 많이 살죠. 작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즈음에 지은 것 같은 낡은 집들이요. 그 집들은 지을 때도 허술하게 지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시에도 물이 새거나 부서지고 깨진 채로 있는 집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저는 그곳을 지나 학교를 오가면서 길가에서 누워있는 사람들, 제복을 입고 바쁘게 출퇴근하는 무표정한 사람들, 시장에서 장사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곤 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런 풍경에 대해서 되도록이면 안 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어쩐지 저한테는, 뭐랄까요, 어린 마음에도 뭔가 세련되지 않고 가난하고 헐벗은 풍경으로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단 한 번 그런 배경으로 썼던 단편소설이 있는데요. 「첫사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에 수록)이라는 소설이었어요. 이후에는 되도록 안 쓰려고 했었는데 이번에 『투명인간』을 쓰면서 그때의 풍경을 많이 가져다 썼어요.

 

작가만남-성석제

 

등단 계기는 기형도 시인의 충고


박준 시인의 질문은 유년 시절에서 청년 시절로 옮겨갔다. 성석제 작가가 간직하고 있는 대학생 때의 기억 속에는, 기형도 시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군부대에서의 병영 체험에서 기형도 시인을 처음 봤다고 이야기한 성석제 작가는 “어딘지 모르게 순진하다는 느낌을 주는, 노래를 무척 잘하는 친구”였다고 말하면서도 “아그리파를 닮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친구”였다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로 두 명의 시인과의 인연을 꼽았다.

 

성석제 : 대학교 2학년 때 교양 국어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신대철 선생님께 배웠는데요. 선생님께서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를 내셨을 때였습니다. 그 분을 만나서 저는 시인으로서의 신대철, 인간으로서의 신대철에게 큰 감명을 받았던 것 같아요. 연세 문학회는 기형도가 자신이 거기 가입되어 있다면서 놀러가자고 해서 따라갔던 거예요. 처음에는 서클 룸에 바둑판이 있고, 내기 바둑을 두면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죠(웃음). 그러다가 토론회에 참석하게 됐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습작을 여러 사람이 읽고 비평을 하는 식이었는데요. 잘 썼다는 말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명예훼손에 가까운 말로 글 쓴 당사자를 통곡 직전까지 몰고 가는 분위기였죠(웃음). 그런데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선배들이 고생했다면서 술을 사줬어요. 그 부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웃음). 이런 모든 것이 저를 문학의 길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성석제 작가는 내기 바둑과 술과 사람들이 좋아서 문학회에 남게 되었다고 농담을 던졌지만, 사실 그가 작가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는 바로 기형도 시인이었다. 기형도 시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등단하게 되었다는 그의 말에서, 친구를 향한 고마움이 묻어냈다.

 

성석제 : 문학을 해보겠다고 생각한 건 군대에 다녀온 후부터였습니다. 그 무렵부터 기형도는 기성 시인에 가까운 수준의 작품을 쓰고 있었죠. 그러면서 저한테 너도 결정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문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아니면 문학회만 할 것인지 결정하라는 거예요. 당시 친한 친구들이 모두 문학회 출신들이었는데, 제가 문학을 하지 않으면 그들과 멀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심심하고 외로워서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시를 한 번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어깨너머로 습작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를 계속 쓰려면 데뷔를 해야 한다’는 기형도의 충고에 따라서 등단도 하게 됐습니다.

 

작가만남-성석제

 

성석제 작가는 『투명인간』의 후반부를 낭독하는 것으로 독자들과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번 작품과 만나고 헤어졌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성석제 : 대부분 원고를 마무리하면 소설이 마음에서 떠나가게 됩니다. 떠나보내는 거죠. 그래야 다른 소설에 대해서 생각하고, 몸과 정신을 갱신해서 새로운 것을 쓸 수가 있는데요. 『투명인간』을 쓰는 동안에는, 아시다시피 많은 사건들이 생겨서,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창작과 비평>에 연재할 때는 전체 분량의 1/4 정도 되는 분량으로 썼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이 고통이 가라앉아야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언제일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좀 벌려고 1년쯤 딴 생각을 했었는데요(웃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글을 다시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보니 『투명인간』에 너무 많은 자본을 투입한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 떠나가지가 않습니다. 소설 속의 인물들, 그 사람들이 있었던 장소, 말, 생각, 그들이 겪었을 경험들. 그런 것들이 아직 남아있어요. 그것들을 떠나보내야 다른 걸 쓸 수가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마 제가 떠나보내는 것보다 이 소설이 저를 떠나보내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는데요. 찬바람이 불면 조금 달라질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찬바람이 불기까지 오래 걸린다면 찬바람이 부는 데를 찾아가서라도 소설이 저를 떠나보내도록 해 볼 생각입니다.

 

성석제 작가의 뒤를 이어 마지막 인사를 전한 박준 시인은, 독자들에게 우리 안의 김만수를 돌아볼 것을 주문했다. 그는 『투명인간』 속의 김만수가 그러하듯, 정직하고 바보같이 선하고 염치가 있는 사람임에도 드러나지 않는 이들이 굉장히 많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투명인간』을 읽는 동안은 자신 주변에 있는 그들을 떠올려 보고, 그들에게 한 번의 따뜻한 눈빛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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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저 | 창비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성석제가 2년 만의 새 장편 『투명인간』으로 돌아왔다. 한 남자가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다. 그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투명인간이다. 그의 이름은 ‘김만수’. 그는 왜, 어떻게 투명인간이 된 것일까. 소설은 시간을 되돌려, 그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대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가진 것 없고 잘난 것도 없지만 미련스러울 만치 순박하고 헌신적으로 가족과 삶을 지켜나가는 만수, 그러나 그는 끝내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어쩌면 오늘을 살아온 수많은 평범한 이들의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끝까지 만수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김만수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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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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