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남자』 스릴러란 무엇인가?
decca의 미스터리 탐구 제2강의
스릴러의 쾌감은 수수께끼의 해결과 거리가 멀다. 두근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 미스터리의 영웅은 탐정이지만, 스릴러의 영웅은 사건에 휘말리는 희생자이다. 스릴러의 강력한 상업성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 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 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영국추리작가협회(CWA)에서 수여하는 골드대거상 수상작이 지난 9월 말 발표됐다. 수상작에 대한 관심은 여느 때보다 뜨거웠다. 스티븐 킹과 로버트 갤브레이스(조엔 K. 롤링) 같은 괴물급 작가의 작품이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에드거상에 이은 스티븐 킹의 2연패를 바라는 사람이 적지 않았겠지만, 골드대거의 영예는 호주 출신 스릴러 작가인 마이클 로보텀의 <Life or Death>가 차지했다.
수상을 기다렸다는 듯이 국내에 출간된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2008년 작품이다. 임상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이 등장하는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마이클 로보텀에게 호주 최고의 범죄문학상인 네드 켈리상을 안겨주었다.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전형적인 스릴러의 골격을 지녔다. 시리즈 전작에서 뭔가 큰일을 겪은 듯한 조 올로클린은 런던 생활을 청산하고 브리스틀에서 겸임교수로서 새 삶을 시작한다. 그는 파킨슨병 환자로 수시로 손이 떨리고 몸이 굳는 신체적 결함을 지녔다. 이야기는 조 올로클린이 경찰의 요청으로 현수교에서 투신자살하려는 중년 여인을 설득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시작된다.
벌거벗은 채 빨간 하이힐만 신은 여인은 휴대폰을 붙잡고 위태롭게 다리 위에 서 있다. 조는 다가가 자살을 막으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뛰어내린다. ‘당신은 이해 못 해.’라는 한 마디를 남긴 채. 조는 가까스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죽은 여인의 딸이 그를 찾아오면서 사건은 뒤바뀐다. 죽은 이는 고소공포증이 있었고 그런 모습으로 자살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심리학적으로 자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조는 경찰을 설득하려 하고, 이어 똑 같은 형태의 두 번째 범죄가 일어난다.
스릴러는 전 세계 대중소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도로 상업화된 장르소설이다. 전 세계 미스터리라는 꼬리표가 붙은 최신 작품들은 (일본과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모두 스릴러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미스터리 장르를 즐기는 독자들에게 이 거대한 덩어리는 여전히 불분명해 보인다. 스릴러는 무엇인가? 미스터리와는 어떻게 다른가?
아마존닷컴에서, 미스터리 장르는 세 가지 대분류로 구분된다. 미스터리(Mystery), 서스펜스&스릴러(Suspense&Thriller), 작법서(Writing). 반면 국내 시장은 ‘추리소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용어가 적당히 섞여 있다.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을 만큼 시장이 작은 까닭이겠지만, 그래도 각각은 동의어가 아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먼저 ‘추리소설(推理小說)’과 ‘미스터리 소설’은 그 영역이 거의 일치한다. 그다음 ‘미스터리’는 장르의 총칭과 서브 장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스릴러’는 미스터리 장르의 서브 장르이다.
이들 용어의 위계를 간단한 등식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추리소설=미스터리(총칭)>미스터리, 스릴러’.
그렇다면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차이는 무얼까? '링컨 라임 시리즈'를 탄생시킨 뛰어난 스릴러 작가이자, 고전 미스터리에 대한 남다른 조예를 지닌 제프리 디버는 평소 이런 질문을 많이 시달렸는지, 북리포터(Bookreporter)와의 인터뷰에서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차이를 명쾌하게 제시했다.
“서스펜스&스릴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고전적인 미스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죠.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다시 말하면, 미스터리는 독자와 주인공이 풀어 나가는 퍼즐입니다. 스릴러는 독자와 주인공이 앞자리에 앉아 즐기는 롤러코스터죠.”
미스터리가 이미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고 흐트러진 질서를 되돌린다면, 스릴러는 앞을 향해 내달리는 진행형의 서사 구조를 갖는다. 『산산이 부서진 남자』를 대입해 보자. 조 올로클린이 휘말린 건 지나간 사건이 아니다. 눈앞에서 진행 중인 선정적인 자살 사건은 그가 사건에 발을 들였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의미를 얻고 시시각각 변화한다. 스릴러의 쾌감은 수수께끼의 해결과 거리가 멀다. 두근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 미스터리의 영웅은 탐정이지만, 스릴러의 영웅은 사건에 휘말리는 희생자이다. 스릴러의 강력한 상업성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마이클 코넬리 저/조영학 역 | 알에이치코리아(RHK)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마이클 코넬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장르소설 작가 중 한 명이다. 범죄 전문 기자로 단련된 그의 글은 스릴러 장르와 어우러져 높은 시너지를 일으킨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부패한 변호사가 악랄한 범죄자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동명의 영화도 있으니, 함께 보면 좋다.
아들
요 네스뵈 저/노진선 역 | 비채 | 원서 : The SON (S?NNEN)
영어권 일색이었던 스릴러 시장에,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는 북유럽 스릴러라는 새로운 흐름을 일으켰다. 수없이 소개된 북유럽 작품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첫손에 꼽히는 건 역시 작품이 가진 힘 때문일 것이다. <아들>은 해리 홀레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 얼론으로, 속죄의 의미를 되짚으며 작가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다.
오리온
디온 메이어 저/강주헌 역 | arte(아르테)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디온 메이어는 아프리칸스어라는 소수 언어로 스릴러를 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전 세계 28개국 이상 소개됐다. <오리온>의 주인공은 나락으로 떨어진 전직 경찰 자토펙 판 헤이르던이다. 1인칭의 과거와 3인칭의 현재가 교차하며, 사건은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1970년대 남아공 시절까지 거슬러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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