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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새오 새우젓이애오 평등한 덕질 부탁해오

개인으로서 상대방에게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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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똑같은 새우젓이었는데 간택 받은 대하가 되더니, 갑자기 “어디서 온 몇 살의 누구” 같은 식으로 구체화되어 오빠를 독차지하는 것을 보는 기분은 엄청나게 이상하다. 이는 단순한 질투라기보다는 모두가 공평하게 손을 뻗어 높이 높이 하늘에 띄워보낸 예쁜 풍선의 끈을, 누군가 덥석 잡아버린 것에 가깝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그런 새우젓들의 노동과 헌신과 소비로 굴러간다. 그러니 부디, 극소수의 새우젓을 낚아 올려 이름을 주고, 평등한 덕질을 파.괘하고, 개인 대 개인으로 대면시키는 기획 좀 하지 말자. 새우젓은 이름에 걸맞게, 평등하게 익명화된 존재로 남아야 한다.”

 

얼마 전 친한 언니가 콘서트에 가기 전, 들떠서 손톱은 뭐할까 머리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봤자 걔가 널 보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언니는 내 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받아쳤고 주변 사람들이 납득하면서 결국 그 말이 무례함을 입증했지만, 이런 식의 면박은 빠순이들에게 숨 쉬는 것처럼 흔하다. “그렇게 해봤자 걔가 알아주냐?”, “걘 너 알지도 못해.” 저기요, 그러는 너야말로 알지도 못하는 사랑에 대해서 나불대는 그 입을 다물라. 밤샘을 하고, 포토카드를 뽑으려고 통장을 박살 내고, 눈에 핏발이 서도록 키보드 배틀을 뜬다고 한들 오빠가 알아주냐니, 오빠가 나를 모르는 게 정상이다 이것들아! 몰라야 하고!

 

상대에게 보내는 사랑과 들이는 품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자연발생적이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자신이 해준 만큼의 대우나 반응을 기대하게 되고, 이 경우 높은 확률로 상대나 자신을 상처 입히게 된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런 마음은, 상대가 원하지 않는 호의를 베풀어놓고 억울해하는 헛발질로 빠지기도 한다. 빠순이의 사랑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개인으로서 상대방에게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빠순이는 그저 새우젓 중의 하나로, 빽빽한 면봉통의 면봉 중 하나로, 눈이 마주쳤다는 착각으로 가슴 벅차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콘서트를 앞두고 치장에 몰두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해쓱한 새우젓이나 컬러풀한 면봉이 되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에 띄려는 목적은 아니다. 개인으로서의 빠순이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어디서 살며, 무슨 직업과 직함으로 불리는지, 월 얼마를 버는지, 꽃길을 만드느라 흙투성이가 되서 어떤 노동을 하는지 오빠는 전혀 알 필요가 없다. 아니, 오히려 몰라야 한다. 빠순이는 오빠가 가급적 ‘나’라는 존재를 모르도록 스스로를 ‘엄호’해야 하며, 그런 경계가 없으면 ‘사생’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덩어리로 존재하는 빠순이에게도 가끔 볕들 날이 찾아온다. 그렇다. 듣는 것만으로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이 빨리 뛰는 그 이름, ‘계’. “계 탄다”는 말은 우연히 오빠를 만나거나, 소규모 행사에 당첨되거나, 오빠에게 지목 당하거나 하는 등 개인으로서 거리를 좁힐 수 있는 행운의 순간을 폭넓게 아우르는 말이다. “덕계못(덕후는 계를 못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드문 확률이지만, 계는 존재한다. 이것은 밤낮 없는 투표와 스트리밍, 키보드 배틀, 기나긴 기다림과 방송국 스텝들의 천대를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한다. 대가를 바라고 하는 팬질이 아니지만, 너무 추워서 발이 없어질 것 같은 순간이면 성냥팔이 소녀의 작은 불꽃처럼 슬그머니 당겨보는 희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와들와들) 언젠가는 계를 타겠지…?”


그런데 이 계라는 것이 참 미묘하다. 내가 되면 계지만 남이 되면 그냥 ‘배찢(질투가 나서 배가 찢어짐)’이니까. 어디까지나 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계는 필연적으로 상대적 박탈감과 회의를 불러온다. 소수의 계 탄 팬들만 행복을 독점하고, 나머지는 완벽하게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니, 지불한 만큼 판타지를 누릴 수 있는 가장 평등하고 행복해야 할 덕질에서마저 고통을 받는다니 이게 무슨 소리요 사장 양반?


얼마 전 보이그룹 VIXX의 팬 사인회에 사진과 미니 등신대 등의 선물도 금지한다는 공지가 떴다. 원래 선물을 금지하던 회사였지만 사진이나 화관, 미니 등신대 정도는 허용했다. 그런데 그런 선물의 기회는 주로 ‘고퀄’의 사진을 찍는 일부 홈마(홈 마스터, 팬페이지 운영자)호 한정되고 그런 선물을 줄 수 없는 팬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며 원칙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혈압 오른 분은 잠깐 나가서 맨손 체조 한 번 하고 오자. 오래오래 덕질하려면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이다. 저 발상은 요약하자면 “선물을 주는 팬들은 오빠가 반응하고 알아보는 ‘계’를 타니, 이런 차별을 막기 위해 선물 자체를 금지하자!”라고 할 수 있다. 뭔가 굉장히 국가 수뇌부스러운 해결책인데, 그렇게 팬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걱정하시는 회사가 왜 앨범에 무작위로 들어가는 포토카드는 골드니 블랙이니 신나게 만드는지…?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개인의 시간과 노력, 재능을 갈아 넣은 선물을 주었을 때 오빠가 반응하는 것은 차라리 성과에 가깝다. (물론 사인회에 당첨된 것 자체가 대형 계지만) 그 찰나를 위해서는 수천, 수만 배에 달하는 시간의 준비가 필요했을 테니까. 왜 옛말에, 천 번을 흔들리며 찍어야 한 장의 인생 사진이 나온다고…아 그런 말 없다고? 없으면 말고. 여하튼, 누군가 노력해서 성취한 것에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 만약 그런 것에 박탈감을 느낀다면 잠시 덕질을 내려놓고 어디 요가 학원 같은 데 가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다음, 자존감에게 안녕하냐고 물어보길 추천한다.


진짜 박탈감은, 앞서 말했듯 순전히 운에 좌우되는 계에서 온다. 그것도 지나가다 우연히 만났다거나 할 때가 아니라, 철저하게 회사의 기획에 의했을 때! 회사는 툭하면 이벤트를 한다. 대부분의 ‘계’는 새우젓들의 노동력과 통장을 착취하고자 할 때 미끼로 등장한다. 뮤비 조회수 얼마 이상 달성 시 추첨을 통해 폴라로이드 증정…, 얼마 이상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친필 사인 증정…, 랜덤 포토카드, 추첨을 통해 멤버들과의 기념 사진…, 댓글을 남겨주시면 추첨을 통해 멤버가 집으로 찾아갑니다…, 멘션에 답해드립니다…. 방법도, 상품도 가지가지지만 불변의 진리는 “나는 아니”라는 것 정도? 다들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어쩜 그렇게 천문학적인 확률을 뽑고 당첨되는 사람들이 있는지. 최악은 1대 1과 같은 상황이다. V앱에서 빅뱅이 진행했던 팬의 집에 찾아가는 이벤트 같은 것들 말이다. 광탈(광속으로 탈락)한 새우젓들에게는, 손가락 빨며 그 현장을 지켜보는 역할밖에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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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tvN


분명히 똑같은 새우젓이었는데 간택 받은 대하가 되더니, 갑자기 “어디서 온 몇 살의 누구” 같은 식으로 구체화되어 오빠를 독차지하는 것을 보는 기분은 엄청나게 이상하다. 이는 단순한 질투라기보다는 모두가 공평하게 손을 뻗어 높이 높이 하늘에 띄워보낸 예쁜 풍선의 끈을, 누군가 덥석 잡아버린 것에 가깝다. 오빠와의 시간은 짧고, 너무나 한정되어 있는데, 왜 그 시간에 궁금하지도 않은 생판 남을 보고 있어야 하느냔 말이다. 그런 순간은 대개 너무 생생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정보들도 뇌리에 새겨진다. 불특정 다수의 ‘팬’이 아닌, 명료한 개인은 곧잘 ‘여자’로 치환된다. 그래! 새우젓들이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장면 중 하나! ‘여자’를 대하는 오빠를 봐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괴로움이요, 그 사이 나머지 새우젓은 철저히 바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불쾌함이 두 번 고통이다. 장담하는데, 그런 걸 돈 내고 혹은 소중한 시간을 써가며 보고 싶은 팬들은 없다.


한편으로는 노동력이나 통장 착취의 목적이 아니라, 그게 진짜 팬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벤트를 하면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번거로우니까.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그만큼 ‘안이하고’ 편리한 기획도 없다. 좀 더 많은 새우젓들이 공평하고 행복하게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는 없는 것일까? 소수의 팬들만을 위한 기획은 많은 새우젓에게 고통을 안길 뿐이다. 신인그룹 iKON의 프로모션을 예로 들어보자. 아이콘은 10월 데뷔 콘서트에서 멤버가 한 명씩 팬을 뽑아서 노래를 불러주고, 짝을 지어 게임을 진행했다. 그 시간은 총 90분으로 계획되었던 콘서트에서 20분을 훌쩍 넘겼고, 달아올랐던 콘서트 분위기는 찬물 끼얹은 꼴이 되었으며, 화가 난 팬들이 발을 구르거나 우는 일이 벌어져 기사까지 났다. 이런 이벤트를 기획한 사람이 무려 3대 기획사의 수장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모두가 그것을 ‘에러’라고 지적하는 상황에서 “데뷔 콘서트에서 에러가 그거 하나였다면 다행인 일 아닌가”라고 대답한 무심함은 더 문제적이다. 소비자의 마음을 새우젓 눈알만큼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식의 팬 이벤트는 그 후에도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고 한다.


노오오오력만으로는 안되는 것투성이인 현실에서 덕질은, 신기루와 같지만, 어느 정도는 성취하고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소처럼 일해서 앨범을 사고 기계처럼 투표하면 순위가 올라가고, 신청곡을 많이 보내면 라디오에 나오고, 예쁜 사진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영업을 가면 입질도 온다. 악플을 열심히 캡쳐해두면, 맘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회사가 어느날 돌연 고소미를 먹일 때도 있다. 그럴 때의 새우젓들은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으쌰으쌰 연대하며, 혹시 상대가 놓친 떡밥이 있지는 않을까 살뜰히 챙겨주고, 월척을 낚으면 그 행복을 공유하고자 부랴부랴 프리뷰부터 올리기도 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그런 새우젓들의 노동과 헌신과 소비로 굴러간다. 그러니 부디, 극소수의 새우젓을 낚아 올려 이름을 주고, 평등한 덕질을 파.괘하고, 개인 대 개인으로 대면시키는 기획 좀 하지 말자. 새우젓은 이름에 걸맞게, 평등하게 익명화된 존재로 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새우젓 뿐만 아니라 오빠에게도 고통이 될 지니. 복불복일 수밖에 없는 포토카드도 멤버별로 다 넣어주면 참 좋겠지만, 그런 혜자로운 일은 애초에 기대도 안 할테니…진짜 팬들을 위한다면 모두 공평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안무 연습 영상이나 방송 출연, 셀카 같은 거나 많이많이 풀어주길 바란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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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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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진송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문충이(文蟲)가 되고 싶은 그냥 식충이. 뭐든지 재미 있어야 하지만 재미의 기준은 내 마음. 읽고 쓰고 덕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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