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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아라! ##쨩!

아이돌 취업 잔혹사인,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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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은 그룹이 데뷔하기도 전에 어떻게 아이돌이 만들어지는지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모든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투표를 통해 시청자에게 멤버 감별의 권력을 부여한다. 이미 누구를 뽑고 떨어뜨릴지 다 정해놓았으면서, 대중의 눈은 언제나 옳다며 짐짓 뒤로 물러서는 척하는 것이다.

한동안 <살아남아라! 개복치!>라는 모바일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개복치를 키우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포맷이지만 이것이 결코 녹록치 않다. 게임 속에서 개복치는 바람 앞의 낙엽처럼 죽어나가기 때문이다. 물 위로 뛰어올랐다가 떨어진 충격으로, 자기보다 큰 물고기를 본 충격으로, 아침 해가 너무 강해서…(이방인입니까?) 사인은 기상천외하다. 이 모든 지뢰를 피해 무사히 엔딩에 도달하면? 자연사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아프게 되지 마세요 개복치쨩. 생존이 지상 과제인 상황은 게임의 설정이기만 해도 충분한데, 이제는 사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서바이벌이 되어버렸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이 위기는, 현실이 아무리 시궁창 같아도 그런 것과는 하등 상관없다는 듯 살아야 하는 아이돌에게도 닥쳤다. 일종의 아이돌 취업 잔혹사인,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 이야기다. 


본래 아이돌은 그 어원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어디까지나 우상에 가까운 존재였다. 화장실도 안 가고 여자도 안 만나고, 털도 안 나고 욕도 할 줄 모르는.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공개 오디션이나 서바이벌이 필수코스가 되었는데, 비유하자면―본 적 없는 요리를 줄줄이 내오던 주방이 어느 날 갑자기 오픈 키친을 선언하더니, 이제는 아예 재료를 몽땅 내놓고 원하는 것을 고르면 볶아주겠다고 말하는 느낌? 시청자들은 그룹이 데뷔하기도 전에 어떻게 아이돌이 만들어지는지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모든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투표를 통해 시청자에게 멤버 감별의 권력을 부여한다. 이미 누구를 뽑고 떨어뜨릴지 다 정해놓았으면서, 대중의 눈은 언제나 옳다며 짐짓 뒤로 물러서는 척하는 것이다. 아아, 시청자 투표. 말만 들어도 혈압이 오르고 동공이 확대되며 심박이 상승한다면 당신은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인 서바이벌 덕후이자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일 확률이 높다. 


현재 JYP의 걸그룹 서바이벌 <식스틴>이 방영 중이다. 16명의 연습생들이 7명의 멤버에 뽑히기 위해 경쟁하는데, 이들은 미션 수행 여부에 따라 ‘메이저’와 ‘마이너’로 양분된다. 매회 마이너 그룹에서 한 명이 탈락하는 형식으로 벌써 3명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붙는 사람보다 떨어지는 사람이 더 많은 서바이벌, 아직도 6명이 더 탈락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마치 취업 3종 세트, 6종 세트, 9종 세트를 방불케 한다. PR, 화보 촬영, 팀 미션 등이 지금까지 거쳐 온 관문이며 중간중간 다이어트라든가 인성 같은 지뢰가 터진다. 앞으로도 무수한 위험 요소를 건너야 7인조 걸그룹 트와이스에 “취뽀”할 수 있다. 지켜보는 팬덤의 속은 시커멓게 탄다. 살아남아라, 뫄뫄 쨩! 일관된 매뉴얼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16명의 궁녀 중 7명의 빈을 간택하는 듯한 태도를 유지하는 박진영은 미소를 띠며 말할 뿐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스똬가 된다. 아 유 어 스똬?”


엔터테인먼트 산업, 그 중에서도 아이돌 산업은 거칠게 말하면 사람 장사다. 매력과 꿈을 팔고 소비자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지갑과 순정을 연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그 중에서도 열정과 노력을 판다. 태초의 <악동클럽>에서 가장 최근의 <노 머시>까지, 연습생들은 자신의 능력만큼이나 ‘간절함’과 ‘진실성’을 입증하기를 요구 받았으며 그것은 자신을 가혹하게 채찍질하고 고난을 묵묵히 견디는 행동 등으로 드러난다. <열혈남아>에서는 연습생들이 뜬금없는 해병대 캠프를 얼마나 군소리 없이 수행하는지가 평가의 기준이 되었고 <WIN>에서는 미성년자인 연습생들은 몇날며칠을 잠도 자지 못하고 곡을 써냈다. 그뿐인가. 무대 밖의 일상이 공개되고 시청자 투표가 개입하면서 평소의 ‘행실’도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울고 고통 받더라도 마이너스 감정을 적절하게 노출할 줄 알아야 하고, 팀을 우선시하는 아이돌의 미덕을 어필해야 하며, 야망을 드러낼 때는 신중해야 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외친다. “노력하라, 안주하지 말고 꿈을 위해 치열하게 달려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니!” 연습생과 기획사의 권력 구도, 열악한 환경, 극소수만 살아남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실체 같은 것들은 이 아름다운 열정팔이의 현장에서 페이드 아웃된다. 물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획사만이 연습생 서바이벌을 하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 자체가 성공의 프리패스일 수 있다. 이는 올라타기만 하면 성공이 보장된다고 몰아치는 명문대-대기업 코스와 별 다를 게 없다. (가끔 터지는 창업 신화나 중소기업의 기적은 EXID나 크레용팝의 잭팟에 비교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구조적 문제는, 은폐된다.


연습생 서바이벌의 원조이자 톡톡히 재미를 본 YG 엔터테인먼트의 최근작인 <Mix&Match>는 상당히 기형적인 기획이다. 6명의 연습생 중 세 명은 이미 합격이 확정되었고, 나머지 3명은 새로 들어온 연습생 3명과 경쟁해야 했다. 그런데 새 연습생 3명은 기획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트레이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불공정 경쟁이었을 뿐 아니라, 서바이벌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장기말로 동원된 것이 뻔히 보였다. 매 미션마다 가상의 탈락자가 발생했고 눈물바다가 되었다. 최종 결정은 투표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연습생들은 팬미팅에서 자신의 고유 번호를 강조하며 반장 선거에 나온 것처럼 ‘소중한 한 표’를 부탁했고 어떻게든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려 했다. 편집은 편파적이었고, 결국 모두의 예상대로 기존의 연습생 3명과 분량이 가장 많았던 새 연습생 1명이 추가로 그룹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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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데뷔한 몬스타엑스 역시 서바이벌 프로그램 <노 머시>를 거쳤다. ‘자비가 없다’는 뜻의 프로그램명처럼 연습생들은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다. 그 번호는 평가를 거칠 때마다 자신이 받은 순위로 연습생들 사이의 서열이자, 드래곤볼에 나오는 스카우터처럼 능력을 단번에 가시화하는 지표였다. “내 뫄뫄는 언제나 내 마음의 1번!”이라는 아이돌고라스의 정리를 파.괘한 익명의 등수 표기를 생각해낸 기획자는 자신의 머리를 세게 때렸으면 좋겠다. 그것은 무대가 연예 기획사라는 차이만 있을 뿐 보편적인 교육 과정을 거친 이들에게 익숙한 방식이었고 (전교 1등, 이과 1등, 외국어 1등급…) 그래서 매우 진부했으며 아이돌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노 머시>는 가장 인기 있고 실력이 좋았던 연습생 중 한 명을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누락시킴으로써, 다시 한 번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사실을 ‘인증’했다.


<식스틴>은 좀 더 문제적이다. 여기에는 보이그룹과 걸그룹이라는 차이점 외에 젠더 권력과 기획사가 JYP라는 특징이 개입한다. 박진영은 남성이자 프로듀서로서 가지고 있는 권력을 감출 생각이 없다. 평가의 기준은 늘 주관적이며 연습생들은 그 모호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그렇다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것이 ‘보여서는’ 안 된다. 그는 오히려 노력이 강조되는 멤버들을 부자연스럽다고 싫어한다. 이것은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차이일 수도 있는데, <식스틴>에서 요구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무 것도 모르는 소녀의 얼굴로, 박진영의 마음을 훔칠 줄 아는 재능이다. 야망이나 간절함은 필요 없다. 타고난 매력으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욕망이 없음에도) 반짝반짝 빛나면 된다. 소속사 가수들의 조언도 모두 박진영을 만족시키는 데 맞추어져 있어서 <식스틴>은 그 자체로 거대한 하렘으로까지 보인다. 예능 캠프에서 닭싸움의 상품이 ‘박진영 PD와의 데이트권’이었을 때는, 침착하게 112를 누를 뻔했다. 뫄뫄쨩, 도망쳐! TV 화면이 아청빛으로 물들고 있어!


이토록 천진한 매력에 집착하면서도 프로그램은 자극적이고 야만적이다. 마이너 멤버가 미션을 통해 메이저로 승격될 경우, 그 자리에 있던 멤버를 호명하고 목걸이를 직접 뜯어내는 설정은 ‘의자 놀이’를 연상케 한다. (내가 앉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밀어내야만 하는 생존 게임, 공지영 작가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처한 사회의 현실을 ‘의자 놀이’로 표현했다.) 잔인함을 표방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지만 결국 목적은 멤버들의 매력을 극대화하고, 성장 서사를 끼얹어 팬들에게 “내가 키웠다”는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다. 구름 위에 있던 아이돌을 끌어내려 관리와 지지가 필요한 존재로 만든 것까지는 좋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진흙탕 싸움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식스틴>은 계급을 생산하고, 그에 따른 차별대우도 거리낌이 없다. 메이저와 마이너는 숙소에서부터 이동 수단, 먹는 음식까지 모든 대우가 극명하게 갈리며 자막에는 항상 어디 소속인지가 뜬다. 메이저 멤버들이 소속사 선배와 외식을 할 때 마이너 멤버들은 숙소에서 배추를 찢어 먹거나, 각각 벤/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비교하여 보여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성공이라는 미끼로 청춘을 유혹하고 계급화하는 방식과 똑 닮아있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같은 급훈 말이다. 어디까지나 예능으로서의 재미를 추구한 일시적인 연출이라고? 그러면 재미가 있었어야지~적어도 불쾌감은 주지 말았어야지~. 무명의 걸그룹이 죽 두 그릇을 다섯 명이 나누어 먹고, 7년 간의 연습생 생활 끝에 서바이벌에서 탈락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차별의 재생산과 노골적 전시는 전혀 재미있지 않다.


9명의 마이너와 7명의 메이저로 시작한 프로그램은 이제 6명의 마이너와 7명의 메이저로 줄어들었다. 마이너 멤버 수가 정해진 자리보다 적어졌다. 메이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안심할 것이고 마이너에 머물러 있는 이들은 점점 더 높아지는 탈락의 확률에 초조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것이 연예인 걱정이라지만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연예인이 되기 위한 데뷔 전쟁(이라고 쓰고 취업 전쟁이라고 읽는다)으로, 연습생들은 기획사나 시청자와의 관계에서 철저한 ‘을’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사회가 경쟁을 조직하고 결과의 원인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도식을 고스란히 모방하며 열정과 청춘을 착취하고 있다.  세기 초의 <동거동락>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야 살아남는 것이 형식상의 설정이었지만, 길지 않은 인생의 일부를 배팅하는 연습생 서바이벌은 그야말로 진짜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합격과 탈락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이전에도 존재하는 시스템이지만, 이것을 쇼로 만들어 팔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은 회피하는 것은 다른 층위의 문제이다. 아이돌 산업은 사람 장사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잔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엄격한 ‘상도덕’이 요구되며 자신들이 팔고/소비하는 상품을 존중해야 한다. 사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가장 큰 목적은 대중들의 평가가 아니라 데뷔 전 인지도와 팬덤을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만 상상력과 성의가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방향의 접근도 가능하다. 엔터테인먼트의 특징인 “나는 제대로 안 하지만 남 평가하는 재미” 때문에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상대적으로 흥하고 있지만, 그런 점에서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 윤리적일 필요가 있다. 가증스러운 쇼를 소비하길 거부하는 것이다. <식스틴>의 낮은 시청률은 이러한 윤리적 실천이라기보다 그저 기획의 부실함으로 인한 ‘노잼’의 문제로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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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진송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문충이(文蟲)가 되고 싶은 그냥 식충이. 뭐든지 재미 있어야 하지만 재미의 기준은 내 마음. 읽고 쓰고 덕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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