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카피라이터에게 필요한 건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카피라이터 김민철은 평범한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평범함을 특별하게 만드는’ 감각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모든 요일의 기록』은 ‘평범한 사람이 나를 만들어가는 평범한 이야기’라는 것. 아마도 많은 이들은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11년째 롱런 히트 중인 카피라이터의 이야기가 단지 평범할 뿐이라니, 가당치도 않다고 여길지 모른다.
물론 저자의 화려한 이력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의심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녀는 ‘인문학으로 광고하는’ 박웅현 CCO와 함께 11년 동안 TBWA KOREA에서 근무하며 인상적인 카피들을 써왔다. SK텔레콤의 ‘사람을 향합니다’ 네이버의 ‘세상의 모든 지식’ e편한세상의 ‘진심이 짓는다’ SK이노베이션의 ‘혁신을 혁신한다’ 등이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그러니 『모든 요일의 기록』에 담긴 카피라이터 김민철의 이야기는 기발하고 독특한 ‘남다른 무엇’일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저자는 자신의 시간이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을 듣고 『모든 요일의 기록』을 되짚으니 수긍이 가고도 남았다. 책에 기록된 순간들은 단 한 줄의 카피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차곡차곡 쌓여 온 ‘토양’이었기 때문이다.
한 순간의 선택 속에는 그보다 훨씬 앞선, 무수히 많은 시간들이 담겨있다. 한 줄의 글이 탄생하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민철 카피라이터의 작품 속에도 그녀의 지난 시간과 오래 전의 그녀가 녹아있다. 『모든 요일의 기록』은 그 모든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한 권의 일기와도 같다.
“유독 ‘기억’과 관련된 머리는 평균 이하임이 확실”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사로잡은 순간들을 온 몸으로 붙들어두었다. 사랑하는 시 한 편을 외우는 일도 만만치 않은 그녀이지만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알려준 오독의 즐거움은 잊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의 작품 속 한 문장을 늘 외우고 있는 건 아니지만 덕분에 “회사 가는 일까지 즐거워졌던 아침”을 기억한다.
가슴으로 기억하기 위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솔직하게 반응하다보니 남다른 능력도 생겨났다. 평범한 순간조차 특별하게 만드는, 예민한 감각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녀는 여행지의 흔한 길거리 공연에서도 ‘골목마다 감춰져 있는 프리마돈나’를 발견하고, 야외 공연장을 둘러싼 새와 바람의 소리에서도 음악을 듣는다. 오래된 카메라로 들여다보는 빛바랜 벽, 긴 세월을 살아낸 노인들의 얼굴에서는 “시간의 색깔”을 발견한다.
그 경험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그때 자신의 감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녀는 여전히 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모든 요일의 기록』 역시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책 속에서 그녀는 말한다. “잘 살아야 잘 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래서 『모든 요일의 기록』에 담긴 이야기는 카피라이터이기 이전에 평범한 사람으로서 김민철이 잘 살기 위해 간직해온 것들에 대한 것이면서, 동시에 카피라이터로서 그녀만이 가진 비결에 대한 것이다.
카피라이터에게 필요한 건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읽고 듣고 찍고 배우고 쓰는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카피라이터로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카피라이터라고 하면 반짝반짝 아이디어가 빛나는 사람이나 재기발랄한 사람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런 것과는 정말 거리가 멀어요. 그래서 제가 카피라이터로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까,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말하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여행을 하고 책을 읽는 것이 카피를 쓰는 데 어떤 도움이 되냐고 물어 오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인풋만큼 반드시 아웃풋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유독 ‘기억’과 관련된 머리는 평균 이하임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지나간 순간들을 어떻게 간직하고 활용하시나요?
글로 기록되어 있는 것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요. 대신 이상하리만큼 잘 기억하는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그때 내가 어떤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그때 상대는 어떤 말을 했는지, 그런 분위기나 감정들은 잘 기억해요. 그리고 그 순간들을 글로 남기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 대부분의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흩어져 버리잖아요. 그런데 글을 쓰면, 제가 쓴 글을 기억하지는 못해도, 그것에 대해서 썼다는 사실은 기억할 때도 많거든요.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과 감정에 대해 배우게 된다고 적으셨어요.
(일을 하다 보면)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들에게 말을 걸어야 될 때가 있어요. 난감한 순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 있는 건, 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광고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에서 배우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카피라이터라서 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인간이기 때문에 소설을 통해서 인간을 배우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제가 읽고 듣는 것들이 모두 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듯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를 할 수 있는 토양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카피라이터에게 필요한 건 인간을 알고 이해하는 능력일까요?
그렇죠. 저는 책이나 소설, 음악을 통해서 그것들을 배우는 거고요. 어떤 카피라이터들은 직접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책을 읽지 않는 카피라이터도 있어요. 굉장히 다양하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했던 거예요.
알베르 카뮈와 김화영이 가르쳐 준 ‘지중해’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과 책의 관계에도 때와 환경과 감정의 궁합이 맞는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랑스로 떠나시려다가, 김화영과 알베르 카뮈의 책을 읽고 미련 없이 포기하셨잖아요(웃음).
미련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아직까지도 ‘그때 떠났어야 했다’고 생각하곤 해요(웃음). 그런데 당시에는 ‘계획했던 것처럼 1년씩 떠나있을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됐어요. 그래서 20일 정도 짧게 여행을 다녀왔죠. 여행 마지막 날에는 ‘이걸로 충분하다’는 감정까지 느끼면서 미련 없이 돌아올 수 있었고요. 그런데 여행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어느 순간 ‘이만하면 됐다’고 느껴서 돌아오게 되지만, 지나고 보면 다시 가고 싶죠.
당시에 『행복의 충격』 『결혼, 여름』 『안과 겉』 『이방인』 『시지프 신화』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셨나요?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법정에 서서도 끝까지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우리처럼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그런 것도 같다고 거짓말하지 않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지금 여기의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의식을 놓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생각해보게 됐죠. 『시지프 신화』의 시지프는 굴러 떨어지는 돌을 다시 언덕 위로 올려야 하는 형벌에 처한 사람이잖아요. 남들이 보면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굴러 떨어지는 돌을 보고 다시 묵묵히 올라가는 순간을 살고 있어요. 그 스스로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왜냐하면 그 순간에 주인이 되어서 살고 있으니까요. 그 마음가짐은 누가 빼앗아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에게 형벌을 내린 신도 그 마음까지 빼앗아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 ‘발견’이 일상에 변화를 일으켰나요?
저는 지금도 출근하는 걸 되게 싫어하는데요(웃음). 그런 걸 읽으면서 어느 순간 회사에 출근 하는 게 괜찮아졌어요. 지중해를 산다는 것이 물리적인 공간으로써의 지중해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많이 느꼈거든요. 실질적인 공간으로써의 지중해가 아니라 정신의 지중해가 더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떠남의 이유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되셨군요. 육체적으로 벗어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걸 깨달으셨고요.
그렇죠. 그런 답을 내린 거죠. 그게 저의 결론이었던 거예요. 사실은 모든 직장인들이 매일 그런 마음과 싸우잖아요. 벗어나고 싶은데 회사에 가서 돈은 벌어야 하고. 저도 똑같아요. 카피라이터도 회사원이니까, 같은 고민을 하는 거죠.
“모든 독서는 기본적으로 오독이지 않을까?”라는 물음 앞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오독이 주는 즐거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런 경험은 다들 있지 않을까요.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읽은 책이 너무 좋았는데, 다음 날 술이 깨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왜 그렇게 내가 좋아했는지 모르겠는 거죠. 여행지에서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집에 돌아와서 봤을 땐 별로일 때도 있고요.
카피를 쓰실 때에도 그런 경험을 하신 적 있나요?
그렇죠. 그런 순간은 꽤 많은 것 같아요. 정말 괜찮다고 생각한 카피였는데, 다음날 아침 회의실에서 말하려고 하면 어제 굉장히 좋다고 느꼈던 이유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웃음).
말이 지겹고 글이 구차하다 느껴질 때는…
음악과 관련된 경험들은 많은 이들이 부러워할만 합니다. 특히 리스본에서의 크리스마스는 거리의 연주자들과 평범한 할머니가 함께 한 공연으로 특별해졌죠.
외국 여행을 가면 거리에 뮤지션들이 많잖아요. 어쩌면 그 할머니도 그런 뮤지션 중 한 명이었을 거예요. 저는 그 분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요. 그런데 같은 순간을 보더라도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이 있고, 저처럼 그 순간에 나에게 와 닿은 무언가를 곱씹어보거나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왜 나는 지금 저 사람이 좋은 걸까’ 하고 계속 생각해 보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순간이 특별한 게 아니라 사실은 모두가 다 겪는 일인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순간을 잡아내려고 하는 훈련이 되어있는 것 같고요. 스스로를 훈련시키려 했던 것 같기도 해요. 음악회에 가서도 ‘저 음악에 대해서 느끼는 나의 감정은 무엇일까’ 계속 생각하는 거고요.
오래된 카메라, 오랜 세월을 이겨낸 벽, 오랜 시간을 살아낸 노인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간의 더께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는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지 않고 새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누군가가 직접 만들었거나 사용했던 물건처럼 이야기가 덧입혀 있는 것들을 유독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노인 분들을 볼 때면 궁금하다기보다는 그냥 좋아요. 살면서 좋든 싫든 꼭 겪어야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한 번 통과해 나간 느낌 같은 게 있는 것 같고, 그걸 제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쨌거나 시간이 쌓일수록 모든 사람한테는 각각의 분위기라는 게 생기는 거잖아요. 젊은 사람들은 그 분위기가 바뀔 여지가 많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고정된 경우가 많단 말이죠. 그렇게 끊임없이 바뀌면서 결국 만들어진 그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요.
“말이 지겹고, 글이 구차하다 느껴질 때 아무 생각 없이 흙을 만질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큰 위로였다”고 적으셨습니다. 말과 글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카피라이터의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으세요?
그렇게 거창하게 느낀다기보다는 카피라이터는 기본적으로 머리를 많이 쓰는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머리를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죠.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정신을 움직이는 게 에너지 소모도 많고 더 피곤하니까 셔터를 내리고 싶은 거예요. 개인적으로 손을 움직이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흙을 빚으면서 ‘뭐가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그래서 쉽사리 나가떨어지지 않고, 묵묵히 계속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으신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 간 카피라이터로 살아오신 순간들도 마찬가지였을까요?
제가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박웅현 CCO님과 사수 한 분이 공통적으로 가르쳐 주신 게 있었어요. ‘이건 일이다’라는 거였죠. 박웅현 CCO님이 자주 하시는 말 중 하나가 ‘모든 사생활은 모든 사회생활에 우선한다’라는 거예요. 회사 일보다 더 중요한 건 개인의 삶이라는 의미죠. 저는 처음부터 광고 꿈나무가 아니었어요. 막연하게 ‘나는 책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하고 그림 보는 것도 좋아하니까 카피라이터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입사 시험에 응시했는데 운이 좋게 붙었던 거죠. 그래서 광고를 통해서 이름을 알리고 싶다거나 그런 욕구는 지금도 없고 예전에도 없었어요. 그냥 ‘나는 평범한 회사원인데 운 좋게 이런 일을 하게 됐구나’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요일의 기록』, 지금 이곳에서 충실하게 살아나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도 박웅현 CCO님과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작가님에게 있어 박웅현 CCO님은 어떤 인연인지, 그 분과 함께한 ‘인문학으로 광고하’는 작업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저한테는 진짜 은인이시죠. 정말 고마운 분이에요. 10년 동안 같이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저는 걸음마부터 시작해서 달리는 법까지 전부 그 분께 배웠어요. 박웅현 CCO님께서는 “내가 출제했지만 내가 떨어졌을 시험을 김민철이 통과”했다고 말씀하시지만,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 분께서 저한테 맞는 문제를 내주신 거죠. 책과 음악처럼 제가 기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문제를 내주셨기 때문에 손쉽게 풀 수 있었던 거예요. 만약 그때 박웅현 CCO님이 갑자기 신입사원을 뽑겠다고 마음먹지 않으셨다면, 광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데려다가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카피라이터가 못 되는 거였어요. 될 수가 없었죠. 저는 진짜 운이 좋았던 건데, 그 운도 박웅현 CCO님께서 만들어주신 거였어요. 인문학으로 광고하는 것도, 그 분께서 그렇게 하시니까 자연스럽게 보면서 배우게 됐고요. 제가 읽고 보고 경험하는 모든 일들을 응원해주시는 분이기도 해요.
더 이상 스스로를 위로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카피라이터가 되었다고 하셨어요.
카피라이터가 되기 이전의 글쓰기와 지금의 글쓰기는 낮의 글쓰기와 밤의 글쓰기처럼 달랐던 거죠. 전자가 밤처럼 어둡고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글쓰기였다면, 후자는 나라는 사람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는 해야 될 말과 방향이 정해져 있는 세계인 거예요. 물론 그것을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는 다시 나라는 사람을 통해서 나오는 거지만, 그건 명백한 세계인 거죠. 지금의 글쓰기를 익히면서는 사람 자체가 많이 바뀌었어요. 매우 어두운 사람에서 조금 밝아지기도 했고, 그러면서 밤의 글쓰기를 조금 내려놓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어둠에 대해서 감정이 예민하게 반응했다면 이제는 밝음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거죠.
“쓰지 않을래야 쓰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에 대해 적기도 하셨는데요. 작가님으로 하여금 쓰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때그때 나의 감정이 가장 큰 이유이겠죠. 그걸 잊어버리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기록해 놓고 잊어버리곤 해요(웃음). 이번에 『모든 요일의 기록』을 쓰면서 제가 뭘 느끼고 살았는지 알기 위해서 옛날 일기들을 봤는데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웃음) 기록은 꾸준히 해놨더라고요.
『모든 요일의 기록』을 쓰면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을 다시 손에 쥐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건 어떤 의미인가요?
어느 순간부터는 어떤 감정에 대해서 쓰는 게 구차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뭘 그렇게까지 쓰나, 싶었던 거죠. 글을 쓴다는 게 다시 어둠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왜 나는 글만 쓰면 자꾸 어두워지지’라는 생각에 감정을 쓰지 않으려고 한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모든 요일의 기록』을 쓰면서 ‘이 정도는 써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어둡지 않고 가볍게 쓸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됐고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도 신기했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모든 요일의 기록』을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한 가지 생각을 계속 했어요. ‘내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데, 이 책을 독자들이 왜 읽어야 하지’라는 생각이었죠. 그러다가 책이 나오고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알게 됐어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던 것 같아요. 나라는 사람의 주인은 나잖아요. 지금의 내가 비루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유로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자신이고, 다시 다독이면서 뭔가를 기대하지 않고 묵묵히 계속해 보는 것도 나일 거예요. 결국은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금 여기에서 충실하게 살아나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던 것 같아요.
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 저 | 북라이프
역사 속 위대한 크리에이터들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창조는 ‘노동’이라는 것을. 이는 크리에이티브의 최전선에 있는 카피라이터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국내 최대의 독립 광고 대행사인 TBWA KOREA의 10년차 카피라이터 김민철은 조금 더 독특한 스토리를 보여준다. 스스로에 대해 “같은 구절을 수백 번 읽어도 고스란히 잊어버리는 능력이 있다. 과장이 아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쓴 카피 한 줄도 못 외우는 카피라이터”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 모든 악조건을 성실함,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실한 ‘기록’으로 극복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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