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그리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꿈꾸는 이들에게 바친다
『대륙을 휩쓴 열정』
2012년 1월 17일, 중국 베이징 국립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국영 〈CCTV〉선정 ‘Car of the year(올해의 차)’ 시상식장은 웅장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마침내 시상자가 봉투를 꺼내들고 올해의 차를 발표하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CCTV〉 ‘Car of the year’, 감격의 대상 수상
2012년 1월 17일, 중국 베이징 국립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국영 〈CCTV〉선정 ‘Car of the year(올해의 차)’ 시상식장은 웅장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마침내 시상자가 봉투를 꺼내들고 올해의 차를 발표하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대상은 베이징시엔따이(北京現代.BHMC)의 제8대 쏘나타(YF쏘나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시상자의 발표가 끝나기 무섭게 무대에 자욱하게 깔린 안개를 뚫고 주인공인 YF쏘나타가 늠름한 자태를 드러냈다.
노란색 비상등이 번쩍거리는 가운데 YF쏘나타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석처럼 빛났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사회자가 차의 장점과 대상에 오른 이유, 그리고 심사 과정을 설명한 뒤 총경리(1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일컫는 중국식 명칭.)1인 나를 무대로 불렀다. 나는 개선장군처럼 힘차게 손을 흔들며 무대 위로 뛰어나갔다. 청중들의 환호와 박수에 손을 들어 화답한 뒤 나는 시상자와 악수를 나누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중국 최고의 국영방송사인 〈CCTV〉와 중국자동차공업협회를 비롯한 심사위원들 그리고 소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베이징현대는 중국 고객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준중형차와 SUV 차종에서 중국 소비자들의 호평이 이어졌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이제 고급차 부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영예의 대상까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YF쏘나타는 세계 선진 자동차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의 영광스러운 대상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품질을 높여 중국이 자동차 강국으로 발전하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춘지에콰이러(春?快??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방송 다음날이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2 중국에서는 설을 춘절(春節)로 부른다. 춘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는 등 한국과 설 문화가 비슷하다. 국토가 넓기 때문에 명절 기간이 보통 1주일 이상이다.)2인 것을 감안해 나는 ‘춘지에콰이러!’로 인사말을 매듭지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시상식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가운데 나는 YF쏘나타에 탑승한 채 퇴장했다. 나는 원래 뒷자리에 앉기로 했지만, 시상자 두 사람에게 뒷자리를 양보한 뒤 조수석에 앉았다. 나는 차창을 천천히 내리면서 청중과 카메라기자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했다. 한국과 중국 기업이 힘을 합해 일궈낸 영광스러운 순간을 13억의 중국인들이 지켜볼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베이징현대의 YF쏘나타가 고급차 부문에서 ‘올해의 최우수상’을 받은 것도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는데, 같은 시상식에서 전 차종을 망라해 선정하는 ‘올해의 차’가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큰 무대에서 두 번이나 상을 받는 것은 기라성 같은 글로벌 메이커들에게도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축하드립니다. 베이징현대 총경리(사장)님이시죠”
다음날, 춘절 연휴를 맞아 시장조사와 휴식을 겸해 대만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단아한 용모의 한 여성 승무원이 나를 알아보고는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남편이 자동차 마니아라 <CCTV>에서 방송한 시상식을 보았다”며 음료수와 와인을 가져와서 우리 일행을 챙겨주었다. 우리를 귀빈석 승객 중에서도 최고의 귀빈으로 대접해준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중국 대륙을 사로잡은 비결
2011년에 중국에서 출시한 YF쏘나타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좋은 품질로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것이다. 중국 최대의 인터넷 매체인〈소후(SOHU)〉에서 대상을 받은 데 이어 마침내 중국 최대 국영방송인〈CCTV〉에서도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베이징현대의 성공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 세계 20여 개의 유수 글로벌 기업들이 진출해 만든 합자 메이커와 30여 개의 토종 메이커 등 50여 개의 자동차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베이징현대가 판매량 4위로 질주한 것이다. 2003년에 5만 대를 생산하던 베이징현대는 2013년에는 100만 대 생산, 판매를 돌파하면서 ‘성공신화’를 달성하였다. 2012년 9월에는 12만 7,827대를 판매하면서 중국 시장 진출 후 역대 최대 월 판매실적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012년을 기준으로 중국 시장에서 자동차그룹들이 차지하는 점유율을 보면 현지메이커들이 29%, 폭스바겐이 20.5%,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10.5% 순이었다. 국가별 점유율은 중국이 29%, 유럽이 26.1%, 일본이 19.6%, 미국이 14.6%, 한국이 10.5%였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02년, 세계 최대 시장으로 급부상하던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그리고 2007년 일시 조정기를 거쳐 2008년부터 급성장하기 시작하였다. 현대자동차가 이처럼 중국에서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현지화 전략에 심혈을 기울인 덕분이다. 우리는 문화가 다른 중국 시장에 어떻게 접근해야할지를 연구하면서 철저하게 현지화 전략을 추구했다. 다른 메이커들은 구형 모델을 들여왔지만, 현대자동차는 중국 고객들의 취향을 반영한 새 디자인, 새 모델로 승부를 걸었다. 이처럼 우수한 품질을 중심으로 한 현대자동차의 경영철학이 성공의 기반이었다.
둘째, 신속한 시장 대응이 빛을 발하였다. 동반진출한 협력업체와 일사불란하게 소통하면서 생산속도를 높였고, 영업망을 전국으로 세분화해서 치밀하게 현지 거점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현대 속도’란 신조어까지 등장하였다. 미국, 유럽 등지의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현대로 발돋움하면서 확보한 경험을 중국 고객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마케팅을 펼친 것도 주효했다. 중국 고객들이 현대자동차의 우수성을 실감하도록 한 것이다.
셋째,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하는 가운데 문화와 스포츠 방면에서도 다각도의 마케팅을 펼쳤다.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네이멍구에서 사막화 방지 사업을 전개하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공모전을 열었다. 또 뮤지컬 ‘맘마미아(Mamma Mia)’와 ‘캣츠(Cats)’를 중국어로 번역해 소개하고 축구와 마라톤 등 각종 스포츠 행사를 후원하면서 중국인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중국 고객들은 후발주자였던 현대자동차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넷째, 생산현장 근로자들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근로자들은 시장의 호평으로 판매가 증가할 때 판매본부가 요구하는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주야 정규 근무시간이 각각 8시간임에도 불구하고 10~11시간을 생산에 임해주었다. 게다가 토요일, 일요일에 특근을 하고, 공급 부족 시에는 점심시간까지 쪼개 물량을 맞춰준 근로자들이야말로 숨은 공신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평불만 없이 회사의 발전을 위해 일한 중국 근로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성공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한중 합자기업인 베이징현대의 양측 임직원들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 일사불란하게 대응한 것도 큰 힘을 발휘하였다. 현장의 근로자들과 직원들이 현대자동차에 신뢰를 보냈고, 잠시 불협화음이 있더라도 언제나 베이징현대의 발전을 위해 힘을 합했다. 중국 측과 한국 측이 50대50 지분으로 협력한 베이징현대3는 양국이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동반자로 나아가는 데 발맞춰 기업 활동을 통한 모범적인 협력 사례를 만들고자 노력했고,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한다.
현대자동차 영업맨으로 시작해 37년을 함께한 영원한 동반자
내 고향은 경남 고성군 영현면이다. 경상대학교에 입학한 1970년, 갓 스무 살이 된 나에게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었다. 농촌 발전을 위해 일해 보겠다는 꿈이었다. 당시 농촌은 여건이 열악해 주소득원이라고는 쌀과 보리 농사뿐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 깊이 고민한 끝에 나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농촌 봉사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경남 진영의 단감단지를 벤치마킹해 고향에도 단감단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농외소득을 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긴것으로, 당시 경상대 축산학과 박구부 교수님의 자문을 받아 지리산 돌감나무 씨앗 한 가마니를 구입해 논에 파종했다.
그 다음에는 진영 단감 접순을 구해 접붙이기에 성공한 묘목을 한 주당 150원씩을 받고 고향 주변 마을에 나눠줬고, 마을마다 야산을 개간해 밤나무와 감나무를 심도록 했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ROTC로 군 복무를 마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농촌 지역사회 개발을 저해하는 요인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다시 고향으로 향했다.
그런데 고향에서 막상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참으로 막막했다. 아무런 기반도 없이 농촌의 부흥을 이끈다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농자금이었다. 농협의 문을 두드렸지만, 담보 없이는 융자조차 얻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농자금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로 낯선 서울로 향했다. 힘이 들더라도 사회경험을 쌓고 돈도 벌 수 있는 직장을 구해 3~5년 간 종자돈을 마련한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막상 서울로 올라왔는데도, 일자리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매일 신문의 구인난을 뚫어지게 살폈지만, 요즘보다도 더 일할 데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현대자동차에서 영업사원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노력한 만큼 인정해주는 ‘인센티브 급여제도’라는 광고 문구가 가슴에 와닿았다. 땀 흘린 만큼 수익을 올릴 수 있고, 많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관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전있는 정주영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나는 속으로 ‘바로 이거다!’ 싶었다. 응시자격도 대학의 전공 학과와 무관해 내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자동차 영업직은 수입이 많다고 소문이 나 경쟁률도 상당히 높았다. 입사를 위해 전력을 다했고, 용케도 합격했다.
1977년 7월, 나는 그렇게 현대자동차에서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의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농촌부흥의 꿈을 품은 농학도가 농촌이 아닌 현대자동차에서, 그것도 전공과 무관한 영업사원으로 출발한 것이다. 이후 나는 수습사원에서부터 사원, 주임, 수석주임, 대리를 거친 뒤 관리직으로 옮겨서는 과장, 차장, 부장대우, 부장, 이사대우,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 베이징현대 사장, 현대자동차 사장, 현대자동차 고문에 이르기까지 무려 17개의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동안 현대자동차에서만 오직한길로 37년을 일했다.
중국과의 인연은 2008년 1월 1일 베이징현대 판매본부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다. 국내 영업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중국 시장을 더욱 발전시키라는 게 경영층의 뜻이었다. 그렇게 중국과 인연을 맺은 나는 베이징현대 총경리를 거쳐 본사 사장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그 뒤에는 고문으로서 후방에서 현대자동차를 위한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현장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글로벌 시장에서 무한경쟁을 뚫고 성공을 향해 달려온 지난 37년간의 기나긴 여정이 미로 속을 지나온 듯 벌써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현업에 있을 때의 하루하루는 험난한 경쟁이 일상이었고, 언제나 도전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경쟁에서 확실하게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각오를 굳게 다지며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사력을 다했다.
그 사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 현대자동차는 비좁은 국내 시장을 벗어나 공격적으로 해외로 진출하였다. 해외 시장에서 우리의 약점을 메운다는 취지였다. 국내 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돌파구를 해외 시장에서 찾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글로벌 5위 업체로 떠오른 원동력이었다. 이런 진취적인 노력으로 현대자동차는 최근 미국 시장에서도 품질 부문 1위를 수상했다. 이제 품질에서도 세계인에게 호평 받는 수준이 된 것이다.
해외 시장에서 우리 현대차맨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각오와 현대차의 기술 및 품질을 전파한다는 마음으로 일한다. 50개가 넘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중국 시장에서도 현대차를 판매하는 것은 곧 대한민국을 알리는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다.
현대자동차의 모든 임직원들이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약진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을 펴내는 목적이다. 이 책은 비록 중국 시장에 국한된 내용이지만, 현대자동차는 중국 외에도 미국과 인도, 유럽, 러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각국의 기업과 협력관계를 맺고 외교적으로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에 진출했거나 중국 비즈니스를 희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현대차그룹의 성공 노하우를 전하는 것도 책을 내게 된 또 다른 이유다. 한중 합자기업으로 출발한 베이징현대의 경험은 중국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많은 성과를 내게 하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는 수많은 경쟁자가 있고 시장의 변화도 극심하다. 무작정 좋은 상품을 만든다고 해서 능사가 아닌 곳이 바로 중국이다. 상품 하나하나에 철학과, 정신과, 문화를 담는 게 필요하다. 또 종합적인 마케팅을 병행하여 기본부터 다져야할 뿐만 아니라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수도 없이 작성해서 전략을 세우고 과감하게 집행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도 필요하다. 아울러 뼛속까지 중국인으로 변해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현지화하고 중국인들과 소통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 같은 세부 사례와 실전 노하우를 공유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책의 발간에 부쳐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님과 정의선 부회장님,그리고 함께 땀 흘린 모든 선후배 동료들에게 감사인사를 올린다. 2008년 베이징현대에 부임한 이후 중국 대륙을 누비면서 성공신화를 함께 일군 중국 측 임직원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 책은 중국에 도착한 뒤 결심한 세 가지 각오 중 하나였던 일기쓰기의 결실이다. 내 가슴속에 각인되어 행동력으로 발휘하게 해준 ‘마음가짐’을 개척, 도전, 열정, 공감, 성취, 이렇게 5가지로 분류했다. 그리고 그 안에 지난 5년간 정리한 일기장에 담긴 고민과 전략들을 분류하여 실었다. 자료를 정리해준 아들 승익과 딸 혜원, 사위 민규,깊은 인연으로 책 기획에 많은 도움을 준 신우성 원장, 출간을 맡아준 도서출판 미래를소유한사람들에도 감사드린다.
베이징현대의 빛나는 성과는 한국과 중국, 중국과 한국의 모범적인 협력 사례가 되어 두 나라 국민들에게 길이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2015년 보라매 공원을 내려다보며
백효흠
대륙을 휩쓴 열정백효흠 저 | 미래를소유한사람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5년간 대륙 곳곳을 종횡으로 누비며 고객, 딜러, 직원들에게 쏟은 그 열정에 관한 기록이다.현대자동차가 이렇게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철저한 현지화 전략, 둘째, 신속한 시장 대응, 셋째, 문화, 스포츠 방면으로 확대한 다양한 마케팅, 생산현장 근로자들과 혼연일체의 노력, 마지막으로‘우리’로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성공신화의 원동력은 바로 대륙에 심은, 대륙을 사로잡은, 대륙을 휩쓴 저자의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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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효흠> 저13,500원(10% + 5%)
“저는 한국의 자동차 판매왕입니다!” 현대자동차가 대륙에서 성공한 특별한 ‘무엇’, 열정으로 대륙의 마음을 사로잡다 현대자동차가 중국에 처음 진출한 것은 2002년이다.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이 선점한 중국 시장에 북기그룹과 50대50 합자 형태로 베이징현대를 설립한 현대자동차는 ‘현대 속도’라는 신조어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