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나 “직업 작사가는 현실에 있어야 한다”
『김이나의 작사법』북 콘서트 작곡가 이민수, 가인, 조형우, 윤종신, 박효신 출연
자신만의 ‘작사법’을 솔직하게 적은 책 『김이나의 작사법』의 출간을 기념한 북콘서트가 지난 4월 24일, 광운대 동해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약 2천 명의 관객이 자리를 채운 ‘대단한’ 북콘서트였다.
김이나. 300여 곡의 노래를 작사한 스타 작사가. 그의 작품 목록만 봐도 화려한 이력에 다들 놀란다. 이선희 <그 중에 그대를 만나>, 아이유 <좋은 날>, 브라운아이드걸스 <아브라카다브라>, 박효신 <Shine your light> 등 이 노래들의 가사가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 2015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저작권료 수입 1위의 작사가에게 주는 상을 받았을 정도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곡을 쓴다는 것, 직업인으로서 작사가로 사는 김이나의 태도가 엿보이는 기록들이다. 작사가 김이나는 솔직하게 말한다. “모든 직업은 현실”이라고.
나는 간절함과 현실 인식은 비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이 간절할수록 오래 버텨야 하는데,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무모함은 금방 지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한쪽 눈을 뜨고 걷다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 그 기회를 알아보는 것도, 잡는 것도 평소의 간절함과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모든 직업은 현실이다. 그러니 부디 순간 불타고 마는 간절함에 속지 말기를. (15~16쪽)
자신만의 ‘작사법’을 솔직하게 적은 책 『김이나의 작사법』의 출간을 기념한 북 콘서트가 지난 4월 24일, 광운대 동해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약 2천 명의 관객이 자리를 채운 대단한 북콘서트였다.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자리한 ‘김이나의 음악친구’들이 쟁쟁했다. 작곡가 이민수, 가인, 조형우, 윤종신, 박효신. 행사는 1부와 2부로 진행되었는데, 1부는 ‘김이나의 음악 친구를 소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가인, 조형우, 박효신, 작곡가 이민수가 출연해 출간을 축하하고 작사가 김이나와의 인연을 얘기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2부는 본격적인 ‘김이나의 북토크’로, 윤종신의 진행으로 김이나의 작사 이야기, 작사법,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들려주었다.
큰 박수로 등장한 작사가 김이나는 “이렇게 큰 무대는 서본 적이 없어서 많이 긴장했다”면서 “『김이나의 작사법』이라는 책을 내 축하하는 자리인데 이렇게 큰 자리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며 참석한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특별히 “자랑스럽다”고 말한 김이나는 “책을 낸 것도 기적 같은 일인데 책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에 멋진 분들이 와줘서 자랑스럽다”고 기쁜 마음을 말했다.
음악친구들이 말하는 김이나
김이나의 첫 번째 음악친구는 가인이었다. “굉장히 많은 분들이 오셨다”며 밝게 인사했다. 둘은 개인적인 친분이 깊다. 많은 작업을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친구가 되었다. 이들의 대화는 그런 맥락에서 아주 편안하고 즐겁게 읽혔다. 책을 읽어봤느냐는 김이나의 질문에 가인은 “기사는 굉장히 많이 봤다”며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가인에게 물었다. 김이나는 가인에게 어떤 작사가인가?
가인: 제 또래 가수들 중 작사가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제 경우는 하나부터 열까지 저의 모든 사소한 것들을 다 아는 분인 것 같아요. 그런 얘기를 나누면서 제 곡에 대한 가사를 쓰시는 거죠.
가인의 곡 <그녀를 만나>가 그랬다. 수다를 떨고, 이렇게 길게 얘기해봤자 이번엔 별 것 없겠지 생각하지만 매번 새로운 가사가 나온다. 김이나는 “시쳇말 같지만 가인이는 진짜 제 뮤즈”라고 하며 일을 넘어 인간적으로 맺은 우정을 자신 있게 말했다. 이에 대해 가인 역시 “작사가일 뿐 아니라 프로듀서 못지않은 도움을 주는 분”이라고 말하며 ‘JYP의 박진영 같은 존재’라고 일컬었다. 김이나 그 자신이 책 가장 첫 머리에 “한 번도 내가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5쪽)고 했듯, 김이나는“아티스트라 부를 수 있는 건 가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가인을 통해 노래가 알려지고 사랑받게 된 데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가인은 함께 참석한 가수 조형우와 함께 듀엣곡 <Brunch>를 부르며 자리를 축하했다. 김이나는 “가인이가 이렇게 착한 눈빛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이 없다”면서 본인이 직접 이 노래를 신청했다고도 전했다.
두 번째 음악 친구는 박효신이었다. 등장 전부터 관객석이 술렁였고 박효신이 등장하자 엄청난 환호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이에 김이나는 “박효신 콘서트에 놀러온 느낌이 난다”며 웃었고, 무엇보다 초대에 흔쾌히 응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박효신과 김이나.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
김이나: 이 얘기를 꼭 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스물여섯 살 때 쯤, 직장인이었어요. 모바일 콘텐츠 회사에 있을 때 박효신 씨가 <좋은 사람>으로 활동하셨어요. 회사에서 새 브랜드를 런칭해서 타깃에 맞는 가수, 즉 박효신 씨의 신보와 협업하는 작업을 진행했어요. 저는 일개 직원이었죠. 저 포함 직원 분들이 세 명 정도 갔는데요. 보통 가수 분들이 녹음할 때는 굉장히 민감해요. 당연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너무나 친절하게 대해줬고, 함께 일하는 분들과도 친근하게 많은 얘기를 나누시더라고요. 낯선 사람들에게 모두 친절할 수는 없잖아요. 박효신 씨는 그때 봤을 때와 지금이 똑같아요.
박효신의 곡 <Shine your light>는 김이나와 함께 작업한 신곡이다. 박효신은 “김이나 씨의 가사나 여러 표현들이 노래와 무척 잘 맞았다”며 2년 정도 걸린 이 곡의 탄생 비화를 들려주었다. 또한 김이나를 “여러 가지를 쓸 수 있는 작사가가 거의 없는데, 김이나 씨는 매력적이고 대단한 작사가”라고 설명하며 <Shine your light> 공연을 선보였다. 이날 공연은 신곡 음원 공개 후 첫 무대여서 더욱 큰 의미가 있었다.
세 번째 음악친구는 가수 조형우와 작곡가 이민수였다. 잘 알려진대로 이민수 작곡가와 김이나 작사가가 함께한 히트곡은 상당하다. 아이유의 <좋은 날>, <너랑 나>,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식스 센스> 등이 있다. 먼저 낯을 많이 가린다는 이민수 작곡가는 “처음에 50명이라고 했는데 2천 명이라니, 이렇게 많이 오실 줄 몰랐다. 겁이 난다”고 말해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김이나는 이민수 작곡가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작사가로서 이민수와 함께 일 해보는 게 ‘이민수 사관학교’를 나오는 것과 같다”고 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이민수 작곡가의 디테일한 작업 방식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김이나: 여기는 영어가 나와야 하는데 한글 같은 영어여야 하고, 마지막에는 네 글자인데 두 글자처럼 들려야 한다, 는 식의 지시가 있어요. 장애물을 설치해놓은 기분이에요.
이민수 작곡가는 작사가뿐 아니라 가수에게도 아주 세심한 디렉(지시)을 한다. “본인이 구상하는 디테일을 만들어낼 때까지” 녹음을 한다. 길게는 닷새까지도 녹음을 한다. “작곡가들의 결정적인 능력치는 현장 ‘디렉('directiong'의 준말)에서 나타난다.”(55쪽)고 책에서 말했듯 곡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가 작곡가의 디렉인데, 이 부분에서 작곡가 이민수의 탁월한 실력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작곡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이민수 작곡가는 “좋은 작사가를 만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이나 역시 “작사가가 되고 싶다며 저를 찾아오시는데, 작사가에게 곡을 주는 것은 작곡가다”라며 서로의 작업에 대해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팀워크를 과시했다.
가수 조형우의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rain on me>와 <아는 남자> 두 곡이었는데 <아는 남자>가 김이나 작사, 이민수 작곡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모든 직업은 현실이다”
2부 순서는 윤종신의 진행으로 이루어진 김이나의 책에 관한 이야기였다. 윤종신은 먼저 “작사가의 콘서트에 이렇게 많이 오다니 대단하다. 김이나 작사가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며 놀라움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작사라는 것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는지 알게 됐다”는 것. “김이나 작가의 속 이야기, 가사를 쓰는 노하우들을 많이 끌어내겠다”고 다짐을 전하며 북토크를 시작했다.
윤종신: 가장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는 가사를 쓰는 작가입니다. 때맞춰 책이 나왔어요. 또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책 내겠다는 건 언제부터 계획하신 거예요? 진짜 놀랐어요. 가사를 쓰는 사람으로서 뿌듯했던 게, 이렇게 노랫말에 관심이 많구나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1등할 줄 알았어요?
김이나: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했죠. 그리고 괜찮은 편집자를 만났을 때 책을 내겠다고 생각했는데, 작년에 다행히 좋은 편집자를 만났죠. 잘 될 준비가 됐을 때 책을 내자고 생각했어요. 제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제가 가사를 쓴 어마어마한 가수 분들의 얘기를 했으니까요. 그렇긴 한데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좋아해주시긴 했어요. 저 기특하지 않아요?(웃음)
윤종신: 요즘 인터뷰도 많이 하고, 작업실에서 가사만 쓸 때와는 생활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변화가 부담되진 않아요?
김이나: 매일 달라요. 인터뷰를 안 하고 싶을 때가 대부분이긴 해요. 그동안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으니까 책을 냈을 때 할 이야기가 많았죠. 어떤 날은 정말 신이 나요. 차 문이 자동으로 열려요.(웃음) 매니저 분이 알람을 해주시고요. 그게 사람을 약간 이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래서 사람들이 붕 뜨는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일찍 성공했다면 저를 완전 망쳤을 것 같아요.
나는 한 번도 꿈을 위해 무모해진 적은 없다. 대학생이 되기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 졸업 직후부터 직장생활을 하며 경제적인 독립을 최대한 빨리 이뤘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내세울만한 점이다. 지극히 현실적이었기에, 작사가가 되겠다고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시상(詩想)’을 떠올리는 데 몰입하는 등의 행동은 해본 적이 없다.(12~13쪽)
윤종신: 책 내용에 대해 얘기를 해봐야할 것 같아요. 내용이 아주 현실적인 조언이 많아요. 김이나 작사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말이 통한다는 거예요. 작사가 분들 중에 작품에 대해 얘기할 때 현실을 배제하고 아직도 꿈에 젖어 사는 분들도 많고 작가적인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김이나 작가는 항상 현실 속에 있다는 점이 좋아요.
김이나: 글을 꾸며서 잘 쓸 수 있으면 안 그랬을 텐데, 그걸 못 써서 솔직하게 썼어요. 또 에세이가 아니라 작사에 관한 이야기였으니까요. 어떻게 해서 지금 이렇게 일을 많이 하고 있는지를 솔직히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렇게 썼죠. 오해를 좀 받았어요. ‘나는 작사가지 예술가라고 생각한 적 없다’고 말을 했는데, ‘작사가가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해되기도 하더라고요.
윤종신: 저도 그런 얘기를 같이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도 얘기하거든요. 매일 지하실에서 기타 연습, 작곡 연습만 하는 것보다 밖에 나가서 세상에 치이고 부딪쳐야 음악을 쓸 ‘거리’가 생긴다고요. 그런 얘기와 상통하는 것 같아요.
김이나: 소재뿐 아니에요. 작사가는 특히나 초반에는 돈을 못 벌잖아요. 히트곡이 하나만 있어서도 안 돼요. 고정 직업으로 삼고 싶으면 직장 생활을 계속 유지하지 않으면 작사가만으로는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윤종신: 작사를 할 때 원칙이 있나요?
김이나: 항상 얘기하는 게, 곡이 있어야 해요. 자주 말씀하세요. 누구 앨범을 하는데 얘기 좀 해봐, 하는 식으로요. 저는 곡이 없으면 상상이 안 돼요, 하고 말씀 드려요. 곡을 듣고 그 안에 있는 정서를 찾는다는 게 당연한 거겠지만 그런 면이 있어요.
윤종신: 음악 나오기 전에 가사의 소재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도 있잖아요?
김이나: 아주 가끔 있어요. 이 얘기를 써야지 정해놓은 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 같아요. 보통 곡에서 제일 많이 찾아요. 일단 곡이 있어야 하고요. 그 다음 가수가 있어야 해요. 거창한 원칙이라기보다 책을 쓰면서 내게 이런 원칙들이 있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윤종신의 곡을 받았는데 <으르렁> 같은 가사를 쓸 수는 없잖아요.(웃음)
윤종신: 김이나의 가사 쓰는 법을 추린 한 기사가 있었어요. 이에 대해 얘기를 해주세요. 첫 번째는 ‘도처에 가사가 있다’, 도처에 있나요?
김이나: 도처에 있죠. 모르는 척 질문을(웃음) 하세요. 일상적인 것들에서 많이 소재를 찾아내는 것 같아요.
윤종신: 가장 일상적으로 발견하지 않는, 황당했던 소재 발견은 뭐였어요?
김이나: 무슨 가사를 찾았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전단지를 보고 가사를 쓴 적도 있었고요. 샤워할 때 물 온도가 완벽해서 떠오를 때도 있고요. ‘행복하다’고 실시간으로 딱 느껴지는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 있잖아요. 그런 순간에서 느꼈던 것 같아요. 별 것 아닌 데서 오는 것 같아요.
윤종신: 두 번째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응시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힘든 건데요.
김이나: 힘들지만 꼭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자기 객관성이 글을 쓰는 데 있어서는 확실히 도움이 돼요. 사실 불가능하죠. 어떻게 나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보겠어요. 애초에 말이 안 되는 말인데요. 자주 예를 드는 것이 ‘여우와 포도’이야기예요. 저 포도는 안 익었네, 맛 없겠다, 하고 지나가는 심리 속에는 사실 먹고 싶지만 닿지 않아서일 때가 있다는 거죠. 사람들은 은근히 스스로를 많이 속이는 것 같아요. 저는 자주 그랬어요. 누군가 미워서 왜 미운지 생각하면 그 사람을 질투했더라고요. 질투였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더 이상 안 미웠어요. 그런 게 이해의 폭을 많이 넓혀주게 되고, 이야깃거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 정도의 객관성을 얘기한 거죠.
윤종신: 그 ‘질투’의 마음을 파고들어야 가사가 나오는 거죠. 그걸 그냥 지나가면 무딘 사람이 되는 거고요. 작사가의 미덕은 그냥 지나갈 심리를 조금 더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해요.
윤종신: 세 번째 ‘등장인물의 히스토리를 만들어라’라고 했는데, 그랬던 곡이 뭐가 있을까요?
김이나: 딱 떠오르진 않는데요. 어떻게 살아온 사람이었는지 가사에 다 나오진 않겠지만 조금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윤종신 씨의 곡 <본능적으로>의 남자 캐릭터만 보면 연애 경험이 굉장히 많은 남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잖아요. ‘보는 순간 알았다’ 하는 느낌은 말이에요. 그게 히스토리인 것 같아요. 거대한 이 사람의 일대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의 배경을 뜻하는 거예요.
윤종신: 가수를 보면 떠오르나요?
김이나: 상상하는 거죠. 이 사람은 어떨까? 하고요. 박정현 씨는 굉장히 성숙한 인간상을 기준으로 생각했고요. 조형우 씨는 무척 반듯하게 생겼지만 안 보는 곳에서 무서운 짓을 벌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상상했어요.(웃음)
윤종신: 네 번째 ‘감정을 잘게 쪼개라’는 무슨 뜻이에요?
김이나: 감정의 단계가 약간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완벽하게 사랑에 푹 빠질 때까지 각각 다른 단계로 나눌 수 있다면, 그 사이사이에도 단계가 무척 많은 것 같아요. 짝사랑이 약할 때와 짝사랑이 엄청 심각할 때의 얘기는 굉장히 다르거든요. 제가 쓰진 않았지만 <썸>이라는 노래는 막 좋아서 심각한 상태로 넘어가기 직전의 단계더라고요. 그런 구체적인 상황 설정이 되면 좋은 가사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윤종신: 다섯 번째 ‘그럴 듯한 문장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라’라고 했는데 이건요?
김이나: 특히 댄스곡을 쓸 때 그래요. 대개는 발라드 가사를 기준으로 가사라는 것을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댄스곡은 반복이 필요해요.
윤종신: 댄스곡 가사에는 최신 유행어나 신조어도 많이 들어가잖아요? <대.다.나.다.너>라는 곡의 가사를 쓰셨고요.(웃음) 재미있었던 가사였어요. 본인이 썼던 가사 중에 가장 가볍다고 해야 할까, 시류도 생각하고 썼던 가사가 있나요?
김이나: 진짜 없어요.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름대로 다 그 안에 나는 아는 진중함이 있거든요. 제가 못 쓴 건 있겠죠. 하지만 만들 때는 가볍게 쓰진 않아요.
윤종신: 여섯 번째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라고도 하셨어요.
김이나: 캐릭터 매칭에 있어 그래야 한다고 했어요. 이효리 같은 가수가 ‘그대는 나를 영원히 바라보지 않아’처럼 존재감 없는 여자로서 짝사랑을 하고 있는 내용이라면 말이 안 되잖아요. 설득력이 없다는 건 그런 이야기예요.
윤종신: 일곱 번째 ‘‘수사(修辭)’를 가지고 노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는 무슨 의미였어요?
김이나: 운동과 비유했거든요. 하체나 중심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로 다른 잔근육 운동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수사가 없이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줄 알게 된 다음에 형용사, 부사 같은 것들을 사용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윤종신: 여덟 번째 ‘때로는 후각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이건 무슨 말이에요?
김이나: 방금 한 ‘수사’이야기와 연결되는 얘기예요. 향수 향을 계속 맡다보면 코가 무뎌지잖아요. 가사 쓸 때 진한 표현을 많이 써야 할 때가 있는데, 진하게 하다보면 너무 과해져요. 뻔한 표현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는 거예요. 그럴 때는 일부러 정치 기사 같은 걸 읽어요. 그러면 마치 시향하다가 커피 향을 맡고 후각이 돌아오는 것처럼 건조한 글을 읽고 ‘후각을 되찾’게 돼요. 그럴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윤종신: ‘모든 직업은 현실이다’. 아까 했던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김이나: 특히 작사가가 그렇죠.
윤종신: 지금까지 한 조건 중에 가장 중요한 건 뭐예요?
김이나: ‘모든 직업은 현실이다’예요. 왜냐면 많은 분들이 작사가가 시인과 비슷하리라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물론 시인 같은 작사가도 있지만요. 책 제목이 『김이나의 작사법』인 이유가, 내 경우 법칙이 이렇다는 뜻이에요. 여러 줄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처럼 다양한 곡을 하고, 작품 수도 많고, 이런 작사가가 되고 싶다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했다, 는 내용을 적은 거예요.
윤종신: 작사가가 되고 싶은 분들을 위해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이나: 직업 작사가는 굉장히 현실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력만으로 오래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인 관계나 약속을 잘 지키는 것, 클라이언트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 이런 것들을 많이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이것이 나의 애장품이라면 이것이 최고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만드는 사람들이 여러 명인 작품인데 내가 생각한 것이 최고라고 어떻게 말을 하겠어요. 내 마음도 내가 객관화를 못하는데 말이에요. 물론 좋아서 고치기 아쉬운 것도 있죠. 왜 그런 것인지 설득을 하기도 해요. 그래도 바꿔달라고 하시면 바꿔야죠. 제가 가수가 아니니까요.
윤종신: 윤상 씨 얘기를 많이 하세요. 작사가로서의 나를 만든 계기가 윤상이라고 하셨어요. 왜 그런가요?
김이나: 곡을 만드는 게 멋있는 직업이라고 처음 생각하게 된 거예요. 아주 어렸을 때 좋아한 곡이 두 곡 있었는데 둘 다 윤상 작곡이었어요. 이걸 만든 사람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인지를 처음 했던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작곡가별로 노래를 들었거든요.
윤종신: 윤상 씨와 작업도 꽤 하셨죠? 몇 곡이나 했죠?
김이나: 5~6곡정도 한 것 같아요. 아이유 <나만 몰랐던 이야기>를 많이 아실 거예요.
윤종신: 저는 김이나 작사가를 잘 모르다가 아이유 앨범을 듣고 알았어요. 가사를 보는데, 이렇게 현명한 가사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 싶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고, 특히 여자 분들의 공감을 많이 끌어내는 가사를 쓴다고 생각했어요. 본인이 생각하기엔 왜 이렇게 사랑 받는 것 같아요?
김이나: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을 잘 만드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윤종신: 관찰을 굉장히 잘하는 것 같아요. 그게 작사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김이나: 정말 그래요. 물론 잘못하면 판단하게 되니까 확신은 하지 않지만 그런 면이 있다는 생각은 해요.
김이나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들
윤종신: 일단 책을 쓴 작가로는 어느 정도 성공을 한 것 같습니다. 다음 도전, 욕심나는 것들이 있나요?
김이나: 라디오를 해보고 싶어요.
윤종신: 얼굴이 예뻐서 화보 제의도 들어오고 하잖아요.
김이나: 원래 안 찍었어요. 사진 찍으면 뻣뻣해지거든요. 얼마 전에 찍었는데 의외로 잘 나왔어요. 그래서 다음에 한 번 더 찍을까? 하는 생각을 솔직히 해요.(웃음)
윤종신과의 대화가 끝나고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누구보다 바쁘고 걱정스런 20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김이나 작사가의 20대는 어땠나요?
김이나: 굉장히 정신없이 바빴고,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결혼은 28살에 했어요. 다니던 회사 팀장님이셨어요.
좋은 편집자라는 단어를 머릿글에 쓰셨는데요?
김이나: 형식적인 말 하는 걸 진짜 안 좋아해요. 실수한다 싶을 만큼 솔직한 편이에요. ‘좋은 편집자’라는 단어는 진짜 괜찮다고 생각해서 굳이 넣은 거예요. 편집자는 ‘편집자에 감사한다, 누구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가급적 쓰지 말라고 했어요. 개인적인 이야기가 되어 버리니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썼어요.
만약 작사가가 아니었다면 무슨 직업을 갖고 살았을까요?
김이나: 실장 쯤 승진해있지 않을까요. 잘했을 것 같아요.(웃음) 직장인으로서 팀장 선까지는 잘 지냈을 것 같아요.
윤종신은 마지막으로 “사실 김이나 작사가와 할 얘기가 많은데 짧게 느껴졌다”면서 “개인적으로 김이나 작가에게 듣고 싶은 얘기도 많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알고 싶은 게 갈수록 많아지는 사람” 김이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다. 김이나는 “앞으로도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어떤 가수의 멋있는 가사를 쓰는, 열심히 하는 좋은 일꾼으로 살고 있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김이나의 작사법김이나 저 | 문학동네
『김이나의 작사법―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은 작사가 김이나가 작사가 지망생과 음악업계에서 일하길 꿈꾸는 젊은이들은 물론, 글쓰기와 창작을 지망하는 이들, 그리고 지금껏 자신이 작사한 노래를 들어준 수많은 청자들을 향해 쓴 책이다. ‘좋은 일꾼으로서의 글쓰기, 팔리는 글을 쓰기 위해 10년간 분투한 자신의 생존기’를 각 곡의 작사 테크닉, 그리고 아티스트들과의 작업과정에서 일어난 잊지 못할 에피소드들과 함께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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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김이나> 저14,2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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