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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제주도”

현기영 등단 40년 기념 중단편집 출간, 현기영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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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작가가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해온 것이 올해로 40년이다. 그는 스스로 ‘제주 4.3의 영령을 진혼하는 무당’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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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부락 출신 공비들의 나타나 입산하지 않는 자는 반동이라고 대창으로 찔러 죽이고, 낮에는 함덕리의 순경들이 스리쿼터를 타고 와 도피자 검속을 하니, 결국 마을 남정들은 낮이나 밤이나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순이 삼촌』 , 75쪽)

 

현기영 작가가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해온 것이 올해로 40년이다. 이를 기념해 『순이 삼촌』, 『아스팔트』,『마지막 테우리』 세 권이 ‘현기영 중단편 전집’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그 중, 단편 「순이 삼촌」은 현기영을 이른바 ‘4.3 작가’로 불리게 한 작가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1978년 <창작과비평>에 발표하고 이듬해인 1979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주인공이 친척 아주머니인 ‘순이 삼촌’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의 삶을 들여다보며 제주가 겪어야만 했던 참혹한 사건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알려진 대로 현기영 작가는 20년 간 교사생활을 했다. 영어 과목을 가르치며 글을 썼다. 주말과 방학에 집중적으로 써서 나온 것이 『순이 삼촌』이었다. 제주 4.3 항쟁을 다룬 이 소설을 쓴 현기영 작가는 1979년 11월 중순, 신군부가 정권을 잡게 된 당시 이 작품의 불온성을 이유로 근무지인 학교에서 군 보안사령부로 끌려가게 된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도 군인을 보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작가에게는 두고두고 아픈 기억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4.3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반드시 해야 했던 이야기였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은 사건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제주 4.3의 영령을 진혼하는 무당이라고 생각한다”며 ‘4.3 작가’로 불리는 것을 이제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봄비가 추위를 한 뼘 씩 밀어내는 무렵, 소설집 『두 번의 자화상』을 출간한 전성태 작가의 진행으로 현기영 작가와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로 75세, 등단 40주년을 맞은 작가 현기영은 소설가 헤밍웨이를 연상시키는 중후한 외모로 줄곧 열정적이고 힘 있는 목소리를 독자에게 들려주었다.

 

그 녀석, 기특하다


전성태 작가는 먼저 “날씨가 흐린데 자리에 와주셔서 고맙다”는 말로 인사를 전했다. 그는 “현기영 선생님 40주년을 기념해 책이 세 권 나왔는데, 행사를 꼭 함께 하겠다고 자원했다”고 말하며 현기영 작가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을 표현했다.


가장 먼저 현기영의 문장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전성태 작가가 현기영 작가의 소설 「겨우살이」(소설집 『아스팔트』에 수록)의 한 부분을 낭독했다. 화자는 중학교 선생님이고, 유신시대가 시작되는데 아직 작가가 되지 않은 사람이다. 오랜 기간 선생님으로 근무했던 현기영 작가의 자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곧 철거될 집에 사는 제자의 집을 방문했다 돌아 나오는 대목이다.

 

아무튼 그날 나는 집중적으로 격심한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내 문학적 소신에 변화가 생긴 것이 사실이다. 개헌 투표일이 노는 날이라고 여관방을 잡고 앉아 신춘문예용 단편을 끄적거릴 생각이나 하고 있던 자신이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겨우살이」, 198~199쪽)

 

함께 자리한 현기영 작가는 “지적, 문학적 동질감을 갖는다. 고맙다”는 말로 행사에 자리한 독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전성태 작가는 현기영 작가에 대해 “선생님을 뵌 게 1996년 무렵, 제가 작가가 되고 선생님이 막 쉰이 넘었을 때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드물게라도 뵙고 지냈다. 선생님을 만났을 때 설레던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원로 선배님들을 만나면 어려운 면도 있는데 현기영 선생님은 아주 편한 분이다. 술도 많이 마신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처럼 기개를 펼쳐 세상에 싫은 소리도 하신다”며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전해주었다.

 

전성태 작가가 물었다. 등단 40주년을 기념한 중단편 출간에 대한 현기영 작가의 소회가 어떤지 궁금했다.

 

현기영: 제가 젊었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은 그렇지 않다고, 갑자기 ‘당신 문단 생활이 올해로 40주년이다’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40년. 참 어마어마한 세월이지 않나? 등단 40주년을 기념해 이렇게 책을 개정, 재출간 해준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개정판을 내기 위해 원고를 훑어보았는데 40년 동안의 정신적 궤적이 있었다. 젊은 시절 치기도 있고, 나름대로 정열도 있었고, 기특하게 용기도 냈더라. 그 녀석,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늙은 입장에서 보니 좀 낯설었다. 옛날 사진첩을 보면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낯설지 않나? 마치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썼던 젊은 나에게 열정과 용기를 배우려고 한다.
 
작가는 또 개정되어 나온 책에 대해 “『순이 삼촌』의 표지를 보고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게 돌담이다. 돌담 구멍 사이로 불빛이 보이게 만들었다. 이걸 이해하면 느낌이 배가 된다. 출판사에 고맙다”고 말해 책을 감상하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기도 했다.

 

현기영 작가가 등단했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다섯이었다. 일찍부터 작가의 꿈을 키워왔던 그에게는 습작기가 꽤 긴 편이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니었을까?

 

현기영: 그렇다. 하지만 일생을 글만 쓴다는 게 지루한 일이고, 똑같은 작품 세계를 보인다는 게 재미가 없다. 그렇게 많이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웃음) 한 50세에 데뷔하고도 좋은 작품이 나온다. 50세가 중요하다.

 

2011년 80세의 나이로 별세한 소설가 박완서는 노년에도 변함없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작가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도, 작가를 그만두기에 적당한 나이도 없다. 작가에게 쌓이는 이야기들은 작가의 열정으로 언제나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다. 현기영 작가에게서 그와 같은 열정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새롭게 출간된 중단편 전집 세 권에는 모두 3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있다. 전성태 작가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저도 곤란하다는 걸 알지만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드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하자 현기영 작가는 「마지막 테우리」를 꼽았다. ‘테우리’란 제주도 말로 ‘목동’을 뜻한다. 그에게 작품 낭독을 요청했다. 제주도의 풍경이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지듯 읽히는 대목이었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아 오름 능선이 뚜렷해지는 절기였다. (중략)한라산 기슭의 높은 지대라 바람은 늘 강하게 불었다. 그 총각이 바람에 물결 일으키는 풀숲에 잠겨 홀로 들판 이리저리 옮아다니는 모습이 선연히 떠올랐다. 마치 물 위에 등지느러미를 조금 내놓고 물살을 헤치는 작은 물고기처럼. (「마지막 테우리」, 11쪽)

 

현기영: ‘테우리’에 대해 쓰려고 몇 번 취재를 갔다. 테우리막(테우리들이 쉬던 곳)에서 잠을 자진 않았지만 목장 지대에서 비박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성태 작가는 “작가가 얼만큼 전문가가 되어야 하느냐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할 때 이 소설을 말하곤 한다”며 작품에 담긴 깊고 섬세한 묘사에 대해 말했다. “이 소설 때문에 제주도를 꼭 가을에 가고 싶다”고 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 참 좋다는 작가는 “이 문장이 소설 전체를 안고 가슴에서 소설 밖으로 탁 뛰쳐나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며 그 문장을 낭독해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그렇게 한시간쯤 내려간 곳에 그 마을이 나왔고, 거기에서 현태문이 임종의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었다. (「마지막 테우리」,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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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제주도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좋아하고, 제주도에 방문한다. 전성태 작가는 그러나 “관광지로 제주도에 갔을 때와 선생님을 따라 제주를 갔을 때 완전히 다른 제주를 느꼈다. 오름이나 초원의 풍경들은 사실 제주의 가장 깊은 속살이고 제주의 맛이다. 문학을 만나 그렇게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하며 현기영 작가가 제주도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어디인지 물었다.

 

현기영: 오름을 참 좋아한다. 제주도에 오름이 300여 개가 있는데 한라산이 모(母)화산이라면 300여 개의 오름은 자(子)화산이다. 모두 분화구가 있다. 그곳에 올라서면 저뿐 아니라 여러분도 「마지막 테우리」 같은 풍경 묘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에 가면 초원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억새가 하얗게 펼쳐진다. 하늬바람을 맞아 군무를 춘다. 그것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없이 눈물이 글썽거린다. 제주는 또한 해변이 아름답다. 현무암과 푸른 바다가 만나서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모습이 장관이다. 하늘이 그렇게 클 수가 없다. 그곳에 있으면,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도 썼지만, 세계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눈물을 글썽거린다는 작가. 현기영 작가는 윌리엄 워즈워스를 말했다. 시 「수선화(Daffodils)」에서 시인은 호수 주변을 헤맨다. 호수는 바람이 불어 잔물결 치고 햇볕에 반짝이고 있다. 이때 그보다 더 환희의 춤을 추고 있는 것은 호숫가에 가득 피어 있는 수선화였다. 시인이 시 마지막 대목에서 이따금 그 장면이 떠오르면 수선화와 함께 춤을 춘다고 노래한 대목을 들어 “살아있다는 쾌감, 희열, 그걸 받게 될 때 눈물이 난다”고 현기영 작가는 전했다.

 

현기영 작가는 젊은 시절,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라산을 찾아간 적이 있다. 가난때문이었다. 그는 교사로 근무하면서도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칠 때 갖게 된 이중적 생각에 대해 작품에 쓴 적도 있다. 가난한 학생들을 보면 애착이 가면서도 화가 나는 것이다. 가난한데 공부도 못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선생님의 솔직한 마음이다. 전성태 작가가 이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의 젊은 시절, 뭔가가 꺾이려고 했을 때 본인이 그 시절을 넘어온 마음의 풍경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현기영: 아시다시피 1948년 4.3 항쟁 때 3만여 도민, 도민 인구의 1/9이 희생당하고 그때 생긴 후유증을 쭉 겪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겪은 것이지만 내게도 후유증은 있었다. 말을 많이 더듬었다. 또 가난했다. 아직도 우울증 같은 게 있어 탈출하고 싶다. 소설에도 나오는데 고향이라는 건 내게 행복과 출세의 반대 개념이었다. 벗어나야 할 것 같아서 가차 없이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버님이 장애물로 딱 버티고 계셨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집 한 채만 남았는데, 서울로 가려면 공부하는 한 달 동안이라도 자취를 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고2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서울 가는 여비를 마련했다. 그걸 아버님이 노름으로 써버리셨다. 그래서 시험 보러 서울을 가지 못했다. 불효막심한데, 아버지를 향해 단식투쟁을 했다. 그렇게 대학을 갔는데 아버님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잘못했다고 편지를 썼는데도 거리가 멀어져버리니 안 됐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 생활을 시작했지만 아시다시피 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제주도다.

 

현기영 소설의 테마 ‘제주도’, 제주도의 강렬한 기억이 담긴 그의 대표작 『순이 삼촌』의 낭독을 작가에게 청했다. 작가는 “이 작품 때문에 끌려가서 매를 맞고 감옥에 있는데 친구들이 이 책을 넣어줬다. 얼마나 보기 싫었는지 모른다. 이런 못난 자식을 낳았나, 싶어서 보기만 해도 치가 떨렸다. 이것 때문에 얻어맞았으니까 말이다. 감방에 함께 있던 대학생에게 줘버렸다”며 작품에 관한 특별한 기억을 들려주고 나서 낭독을 했다.

 

그 시간이면 이집 저집에서 그 청승맞은 곡성이 터지고 거기에 맞춰 개 짖는 소리가 밤하늘로 치솟아오르곤 했다.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중략)아,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에서 터져나오던 곡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낮에는 이곳저곳에서 추렴 돼지가 먹구슬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소리에 온 마을이 시끌짝했고 오백위(位) 가까운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순이 삼촌, 60쪽)

 

집단 죽음에 대한 기억. 역사에 새겨진 민중의 아픈 상처. 우리가 세월호를 떠올린 것은 자연스러웠다. 현기영 작가는 행사가 있기 얼마 전 <경향신문> 칼럼(4월 9일자 “망각은 불의에 굴복하는 것”)을 통해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었다. “우리는 대답을 얻을 때까지 계속 질문할 것이다. 더 이상 부당하게 국가에 의해 버림받고 짓밟히고 진압당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국민이 아니라 국민의 국가가 되도록 역전시켜야겠다. 국가에 순종하기 쉬운 약한 국민이 아니라 항상 질문하고 비판적인 건강한 국민이 되어야겠다고 우리는 다짐한다”고 적은 작가는 “아직 피어나지 못한 꽃봉오리”인 학생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살아있는 자는 그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는 그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망각을 경계하고 ‘잊지 말자’고 강조했다. “세월호를 잊는다는 것은 그와 비슷한 대형 사고?사건이 다시 반복해서 발생한다는 걸 뜻한다. 잊는다는 것은 불의에 굴복하는 것, 정의를 세우기 위해 우리는 망각에 저항해야 한다. 망각의 정치, 망각의 세태에 저항해야 한다”는 작가의 꾹꾹 눌러쓴 글이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전성태 작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이 있었다. 이 사회의 기억을 기록한다는 소명이 작가에게 있는데 그것도 썩 여의치 않은 상태로 1년을 보냈다”며 허망한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작가로서 갖는 무기력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사회가 역사적 상흔에 대한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게 아닌지, 현기영 작가에게 생각을 물었다.

 

현기영: 세월호 1주기 즈음하여 애도의 분위기는 가져야 할 것이다. 세월호는 인양되어야 한다.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서도 인양해야 한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9명의 시신도 찾아야 한다. 세월호의 침몰이 이 사회의 미래를 점치는 것 같다. 그 위험천만한 선박이 한국 사회를 은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위험사회라는 것이다. 다시는 이런 불행이 없기를 바라면서 세월호를 인양해서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기영 작가의 작품을 말할 때, 제주 4.3 항쟁이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세상이 모두 침묵할 때 현기영 작가는 작품을 통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고, 질문했다. 작가 개인으로서는 그 자체로 트라우마를 치유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세월호는 현재진행형이다. 전성태 작가는 “살아남은 자들이 기억으로부터 다른 생명의 징후들로 옮겨갈 때 필요한 것들은, 확실히 기억해주고, 진실을 밝혀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여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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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싸웠다


전성태 작가가 최근에 펴낸 소설집 『두 번의 자화상』을 말하며 전성태 작가는 현기영 작가의 작품 「아스팔트」와 자신의 소설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작가 안에서 부스러지는 느낌들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이 작품들은 작가가 많이 묻어나는 글쓰기였기 때문이다. 실패, 슬럼프의 과정에 놓인 작가 개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현기영 작가는 힘들었지만 그 길만이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기영: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문학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소통의 무기는 말인데 말더듬 때문에 이게 제대로 안 됐다. 백일장에서 상도 타고 그랬다. 그때부터 말 대신 글을 단련했다. 글 쓰는 것 외에 다른 삶을 생각한 적이 없다. 본격적으로 문학을 하던 1980년대는 문학하기 좋은 때였다. 문학으로 싸웠기 때문이다. 80년대가 끝나고 나니 대항해서 싸울, 타깃이 없어졌다.

 

이에 대해 전성태 작가는 “본인이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동기 부여가 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인데 요즘 젊은 작가들은 그런 각오를 더 많이 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인 것 같다”며 현기영 작가에게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지 물었다.

 

현기영: 심사 때문에도 읽기도 하는데, 1990년부터 30년 가까이 사실주의가 외면당하고 순수문학이라 일컬어지면서 소설이 왜소화된 경향이 있다고 본다. 한 세대가 지나고 다시 사실주의를 갈구하는 세대가 나타났다. 언어실험을 했던 한강, 성석제 같은 작가들이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소년이 온다』와 『투명인간』 같은 작품들이 그렇다. 인간의 삶이라는 건 개인으로서의 일상생활도 중요하지만, 그 개인이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는가. 이 작품들에서 새로운 것을 보았다. 소비사회에 밀리고, 잊힌 사람들을 그렸다. 중요한 작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소비사회에 날카롭게 저항해야 한다.

 

현재,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는 현기영 작가에게 독자들의 질문이 계속됐다.

 

질문1: 현기영 작가에 대한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이다. 40년 동안 소설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과 가장 어려웠던 점에 대해 말해 달라.

 

현기영: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역시 제주 4.3이다. 사실 4.3에 대한 이야기를 쓴 건 소설 전체의 1/3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다른 얘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4.3작가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 말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순이 삼촌』을 쓰고 난 후 보안사에 끌려갔다 와서 1980년 한 해를 아무것도 못하고 지냈다. 고문당했고, 작품을 쓰지 말라고 하니 쓰지도 못하고 밤낮없이 술을 마셨다. 한 번은 낮에 술을 마시고 방에 누웠다가 백일몽을 꾸었다. 하얀 소복의 여인이 빗속에 나타나서 내게 호령했다. 일어나라며 빗속에서 손을 내밀었다. 그게 내가 창조한 인간 ‘순이 삼촌’이더라. 그 후 다시 쓰게 됐다.

 

또 한 번 4.3 이야기를 떠나려고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썼는데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과하려다 보니 4.3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이 나온 후 독자들이 아니나 다를까 4.3 소설이라고 했다. 이후 제주도민들이 4.3에 대해 본격적인 대응을 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내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떠나려고 했는데 또 꿈을 꾸었다. 보안사에서 당한 것과 똑같은 식으로 고문을 당하는 꿈이었다. 고문 주체가 군인들이 아니라 4.3 영령들이었다. ‘이 새끼가 경쾌하게 4.3을 떠난다고? 네가 뭘 한 게 있다고 떠난다고 하느냐, 매우 쳐라’하더라. 식은땀을 흘리면서 잠에서 깼다. 결국 4.3은 못 떠나겠다고 생각했다. 억압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는 4.3의 영령을 진혼하는 무당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못하겠더라. 얻어맞고 나온 후에는 오랫동안 군인만 보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막내아들 뻘 되는 군인만 봐도 가슴이 덜컹했다. 봉기에 대해 잘 쓰지 못한 게 제일 어려운 점이었다.

 

질문2: 1980년대에 문학적 타깃이 사라졌다, 그 이후 타깃이 수면 아래로 숨었다고 했는데, 명백한 적이 사라진 시대에 작가가 생각하는 적, 시대적 문제점은 무엇인가?

 

현기영: 『누란』이란 장편에서 그런 것을 문제 삼아보았다. 80년대 문학이 겨냥했던 적이 갑자기 사라지고 소비사회가 되었다. 『누란』에서는 소비를 안 하는 주인공이 백화점에 들어가면 환청을 듣는다. 자본주의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니고 반(反)소비주의, 혹은 자연주의다. 사실 모든 문제점은 도시에 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망각한 데서 문제가 온다. 학생들 야외활동을 수족관, 놀이동산 등에서 시킨다. 자연을 접하지도 못한다. 이것은 오래 갈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도시가 싫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주민들이 많아졌다. 특히 제주가 그렇다. 물론 그곳에서도 소비를 하지만 적게 소비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자연 친화적인, 인본주의적인, 왜곡되지 않은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본연의 인간을 겨냥하면서 그를 격려하는 글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도시에 살며 정치와 사회에 대한 글을 쓸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풍자와 유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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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삼촌 현기영 저 | 창비
‘4ㆍ3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는 데 집중해왔던 현기영의 중단편전집(전3권)이 출간되었다.비록 과작이기는 하나 빼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 현기영 소설의 정수를 일목요연하게 맛볼 수 있는 이 전집은 작가의 등단 4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그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든 명편들은 여전히 변함없는 감동을 자아내며 작가의 강직하고 사려깊은 문학적 삶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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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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