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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희 “번역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말 공부”

『인생의 양식』 『두번째 봄』 번역가 공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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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사 크리스티의 책을 옮기면서 공경희 번역가는 애거사 크리스티를 다시 만났다. 애거사는 19세기 사람이자 대작가임에도, 그의 글을 우리말로 풀면서 그 오래 전 사람과 자신이 사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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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호칭을 갖고 있는 애거사 크리스티는 추리소설만 썼던 것은 아니었다. 이른바 자전적인 이야기도 썼다. 다만 그것은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이름이 아닌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을 통해서였다. 『두번째 봄』은 특히 그가 자서전에도 드러내지 못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번역가 공경희는 “이 소설은 그녀의 자서전보다 더 깊고 촘촘하게 그녀의 인생을 엿보게 한다”고 표현했다. 번역가 공경희는 그런 애거사 크리스티의 모습에서 대작가라기보다 인생의 좋은 선배를 만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쓴 일반 소설들(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을 번역하고 있다. 지난 4월 8일, 서울 상수동 이리카페에는 번역가를 꿈꾸거나 번역가가 궁금한 많은 독자들이 모였다. 애거사 크리스티 신간 『두번째 봄』 출간 기념 번역가 공경희와의 만남이 있었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두번째 봄』을 통해 가족과 사랑이 전부였던 사람이 가정이라는 둥지에서 밀려났을 때의 마음을 생생히 그린다. 사랑만 꿈꾸는 미숙함을 벗고 성장하려면, 죽음과도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인생의 이치를 자신의 삶으로, 이 소설로 말한다. 그 진솔함과 간절함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두번째 봄』, ‘옮긴이의 말’ 중에서, 415쪽)

 

공경희가 말하는 번역

 

애거사 크리스티의 책을 옮기면서 공경희 번역가는 애거사 크리스티를 다시 만났다. 애거사는 19세기 사람이자 대작가임에도, 그의 글을 우리말로 풀면서 그 오래 전 사람과 자신이 사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번역자는 원작자와 독자를 잇는 다리라고 생각했었는데, 해보니 원작자와 다리위에서 만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만큼 공감 능력이 커졌다.

 

그는 애거사의 스페셜 컬렉션 6권 가운데 충격적으로 좋았던 작품을 꼽았다. 『봄에 나는 없었다』. 내용은 이랬다. 잉글랜드에서 잘 살고 있던 중년의 여성이 바드다드에 있는 딸에게 간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선로에 홍수가 나서 3~4일 사막 지대의 숙소에서 묵는다. 묵는 동안 책도 다 읽고 할 것이 없었다. 여학교 때의 친구를 우연히 만나면서 아무 할 것도 가운데 자기 삶을 생각해본다. 일부러 자기에 대한 생각을 안 하고자 하나 생각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그런 며칠 동안의 중년 여성의 생각과 상황을 다룬 소설이 『봄에 나는 없었다』였다.

 

“중년의 중산층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그 여성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외면하고 싶은 생각에서 나를 본 순간, ‘어, 나네’라는 공포심 비슷한 생각도 들었다. 번역자는 제일 앞에서 원작과 만나고 제일 먼저 느끼는 공감의 힘이 독자에게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번역의 원동력이라고 본다.”

 

공경희가 보기에 번역에는 2개의 문화가 들어가 있다. 첫째는 언어문화다. 일례로 고양이 소리만 놓고 봐도 다르다. 우리는 ‘야옹’이라고 그 소리를 표현한다. 우리가 영국에서 고양이 소리를 들으면 야옹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도, 같은 음성을 들어도 영국인들은 다르게 표현한다. 둘째는 어휘문화다. 그는 우리말 어휘가 한정돼 있어서 영어의 풍부한 질감을 담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이 방송에 나와서 한국말을 잘하더라. 어색하긴 해도 우리가 평소에 쓰는 어휘가 얼마나 작으면 (외국인이) 저렇게 잘할까 싶기도 하더라. 우리가 쓰는 어휘나 표현이 굉장히 한정돼 있다. 예전에 번역을 할 때는 책은 아름다운 우리말, 바른 우리말 생각을 많이 했다. 법정스님의 책을 보면, 다시 태어나도 아름다운 우리말 때문에 우리나라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요즘은 가독성을 고려했을 때 지향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 고민이 많다.”

 

서양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기에 신경을 많이 쓰는 이유 중 하나는 책을 통해 어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 어휘는 SNS 등의 영향으로 하향평준화가 되는 것 같다는 것이 공경희 번역가의 분석이다. SNS를 선뜻 봐서는 무엇을 전공했고,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것. 작가나 번역자, 편집자, 교열하는 사람 등은 우리말을 풍부하게 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는데, 그는 10~20년 전에 번역할 때와는 또 다른 고민들이 생겼다.

 

문화적인 문제는 이렇다. 공경희 번역가가 과거에 번역을 처음 할 무렵에는 책에 ‘이혼’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많은 독자들이 ‘나와는 다른’ ‘현실과는 괴리된’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한때는 ‘동성애’나 ‘죽음’ 등의 단어가 나오면 그 책이 외면을 받기도 했단다. 그런 문화적인 차이가 있는 상태에서 번역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싱글마더’가 단순히 ‘미혼모’인가?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으면 미혼이든 비혼이든 이혼한 경험이 있든 영어의 싱글마더에 담긴 애환을 우리말로는 다 담지 못한다. 노처녀라고 하면 ‘B사감’(『B사감과 러브레터』)이 주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골드미스라고 했을 때 이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가의 문제 등이 있었다. 우리가 문화적으로 트여 있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고 한정돼 있는 측면도 있다. 현상으로 나타나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적합한 단어가 만들어지지 못한 경우도 있다. 트랜스젠더를 언제까지 트렌스젠더라고 표현해야 할지, 게이를 호모라고 부르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시대가 다변화되고 다층화 되면서 나와야 할 단어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특히 번역자를 꿈꾸는 분들이라면 해야 할 일이 많다.”

 

번역가들이 중요한 이유는 일본의 경우만 봐도 충분하다. 일본의 번역자들은 사회가 대변혁을 일으킨 시기, 자신들만의 단어와 언어를 만들어 사회 전반에 공유했다. 영어의 ‘소사이어티’를 사회라는 말로 만든 사람이 메이지유신 이후의 번역가들이었다. 즉 번역가들이 서구의 언어를 자신들에게 맞게끔 만들어냈다. 공경희가 보기에 번역가의 역할은 시인과도 같다. 그만큼 언어에 대해 벼리고 벼리면서 언어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번역가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외국어를 잘한다. 그래서 많은 번역물이 독자들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번역에 오류가 없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인물의 심정, 심리, 상황, 캐릭터를 어떻게 담아낼지, 언어를 우리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할 수 없는 것이 번역이 아닌가 싶다. 번역된 소설을 보면서 소설가가 말하려고 했던 것을 따라가는 태도가 중요한 것처럼 번역자 입장에서도 실수도 줄이고 원작자의 뜻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십 년 이상 번역을 하면서 지루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한 텍스트 텍스트가 워낙 만만치 않아서.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다들 그렇게 번역한다. 애정을 가져주면 번역자도 신나서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Q&A

 

독자와 번역가가 만나는 자리가 흔치 않은데, 독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이십여 년 이상 번역을 했는지, 무엇을 지표를 삼아서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원작자보다 나은 점이 나는 텍스트가 있다(웃음). 내 자신이 모순덩어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나, 모순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무슨 말이냐면, 텍스트에 있는 인물과 상황을 알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매일매일 작업을 해야 하니까, 오늘도 내일도 혼자 한다. 굉장히 외롭다. 어린이 그림책을 가장 먼저 번역한 이유는 당시 임신을 한 상태였는데 태교도 못하니 그림책이라도 번역하면 어떨까 싶었다. 요즘 바람은 손주가 생겨서 어린이 그림책을 보여주면 좋겠다 싶다(웃음). 독자들은 변하나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텍스트에 집중해서 가늠한다. 나는 만나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잡지를 읽으며 지하철이나 식당에서는 다른 사람을 보면서 상상을 한다. 남이 말하면 귀를 쫑긋하게 된다. 프리랜서 번역자는 작업의 문제뿐 아니라 번역자로서의 삶과 라이프스타일, 이 막막함과 즐거움을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번역은 ‘혼자 놀기’의 진수라고 본다. 머릿속은 시끄럽다. 약간 다중이 같다. 번역의 이면에는 안개를 헤쳐 가는 것처럼 외로움이 있다.

 

작업 스타일이 궁금하다. 마감 시간도 있을 텐데, 서재에서 하는지, 카페에서 하는지. 앞으로 번역이 아닌 글을 쓸 계획은 있는지. 

 

나는 오래전부터 집에서 작업을 했다. 생활과 작업이 한데 엮여서 작업실과 같은 정해진 공간에 가면 답답함도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러 가기 전에 컴퓨터를 일단 켠다. 다른 집안일을 하면서 짬을 내 컴퓨터 앞에 가서 내 일을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출퇴근이 없다(웃음). 내가 약간 강박적인데, 외국에 가서 살 때도 거기 가면 원작을 볼 수 있는데도 가방 속에 텍스트를 가지고 간다. 이 작업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이다. 그게 내겐 중요한 것이다. 하루 종일 일 한다고 볼 수도 있고, 하루 종일 사는 게 일이고 일이 사는 것이다. 스트레스, 외로움도 해소해야 하는데, 30대 때는 한 달에 두 번씩 여성심리 심포지엄에 갔다. 그곳에 가면 여성들이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것저것 배우고 어휘도 익히고 외로움을 해소하기도 했다. 기분 좋을 때는 꽃시장도 가고, 혼자 다양하게 잘 논다. 앞으로 좋은 번역자 후배를 많이 만들고 싶다. 학교에서 강의 요청이 오면 꼬박 간다. 지금껏 해온 것처럼 언어를 벼리고 힘닿는 데까지 좋은 번역을 하고 싶다. 지금은 성인 소설에 주력하고 있지만 청소년물과 아동물도 제대로 해보고 싶다. 
 
번역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교과서적인 얘기겠지만, 문법에 충실하면서 제대로 읽으면 좋겠다. 느낌으로 읽으려면 모국어여야 한다. 영어를 느낌으로 이해할 수 있으려면, 그 정도 수준의 어휘와 정서, 지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공법으로 문법에 의거한 문장 읽기가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번역자는 우리말을 전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말 어휘를 늘리고 표현을 잘 알아야 한다.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문장과 어휘, 이해할 수 있는 정서 등이 총합으로 조화롭게 가야 한다. 외국어 공부 못지않게 우리말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혼자 번역하다보면 실수도 할 텐데, 3자가 감수를 해주나?

 

짝을 이뤄서 하면 좋을 텐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편집자가 중요하다. 편집자들이 글을 읽다가 원문 대조가 필요하다거나 무슨 이야기인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그게 역자 교정이다. 누군가가 일일이 지켜봐주면 좋은데, 출판계 현실이 아직 그렇지 못하다.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는 스무 명이 한 팀이 돼서 썼다는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할 만한 시간과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지 못한다. 그런 시간과 투자를 할 수 있는 시점이 오면 좋겠다. 그러면 더 좋은 번역물이 나오겠지. 좋은 편집자가 그래서 번역자에겐 큰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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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봄 애거사 크리스티 저/공경희 역 | 포레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숨은 명작 여섯 편을 모은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의 『두번째 봄(원제;Unfinished Portrait)』이 출간됐다. 『두번째 봄』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소박한 꿈을 키우며 살아가던 여자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 무너지는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낸, 애거사 크리스티의 자전적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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