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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지킬, 나> <킬미 힐미> 두 남자를 한 몸에 담아내는 궁극의 판타지

SBS <하이드 지킬, 나>, MBC <킬미 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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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인격이라는 소재는 포장이다. 궁극의 판타지 로맨스를 만들어내기 위한!

가난한 다중인격환자에겐 로맨스란 불가능하겠지


한국 로맨틱 혹은 멜로 혹은 아침 드라마의 남자주인공 중 한 명이 재벌이 아니면 이야기는 결코 진행되지 않는걸까? ‘다중인격’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 때도 필요한 조건은 재벌이다. 현대판 로맨스에 궁핍은 죄악인가보다.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현빈 분)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호텔과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원더그룹의 상무, <킬미 힐미>의 차도현(지성 분)은 승진그룹 계열사 ID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이다. 아직 그들이 어째서 이중인격 혹은 다중인격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여느 해리성 정체 장애 환자들처럼 어린 시절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으로 인한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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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2세든, 3세든 사는 건 참 힘들어. 돈이 많아도 권력이 있어도 누구든 정신적인 타격을 입으면 다중인격을 갖게 된다니 참으로 공평한 것 같아.’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이들이 자신의 병을 통제하기 위해 갖춰 놓은 시설을 보라지. 하루 종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녹화할 수 있고, 심신 안정을 위해 꾸며놓은 명상 공간하며, 병을 알고 있지만 물심양면으로 지켜줄 수 있는 심복도 있다. 전문 상담의는 또 어떠하고 말야. 드라마잖아. 드라마. 설정이라는 걸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로맨스란 정말 꿈 같은 일일 것이다. 일상생활 조차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잘도 사랑에 빠지고 이사회에도 참석하고 회사를 경영한다.


그나마 <킬미 힐미>는 다중인격을 가진 사람의 내면적 괴로움과 그 사실을 알고 지켜보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를 다루긴 한다. “내가 무섭지 않아요?” 자신을 상담하다 두려움에 떨며 도망친 전문의들을 겪어 온 차도현은 자신을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오리진(황정음)은 그런 그에게 “이름이 뭐예요?”라고 묻는다. 한 사람의 정체를 명확하게 해주는 명명의 단계. 그것을 통해 오리진은 차도현에게 주치의가 아닌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말한다. 물론 차도현은 자신이 가진 위험한 다른 인격들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친구도 만들지 않은 채 살아왔다. 실은 누군가 자신 곁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가 될 때 애타게 진짜 자기를 불러줄 누군가가 필요했음에도 그걸 거부한 채 살아왔다. 차도현은 자신의 다른 인격인 자살지원자 요섭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는 동시에 오리진의 다중인격 환자를 대하는 진심 어린 마음을 엿보고 기대감을 품기도 한다. 물론 그녀를 곁에 붙여둘 정도의 재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재벌이 아니었다면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고 있다 하더라도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요원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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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니까 이해해볼게. 그럼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이 질문의 승자는 <킬미 힐미>가 될 것이다. 적어도 지성의 연기만으로 이 드라마는 볼거리가 있다. 여러 인격을 한 배우가 소화해낼 때 분위기를 달리한 분장이나 의상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지성은 정확하게 다른 눈빛과 연기로 같은 얼굴에 다른 분위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신세기, 페리박, 안요섭, 안요나까지 현재 드러난 5개의 인격은 확실히 지성의 연기로 구분된다. 그리고 여러 인격을 몸에 안은 채 모두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 차도현의 괴로운 눈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보듬어주고 싶게 만드는 애틋함이 있다. 동시에 이 병증의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마치 오리진이 되어서라도 그의 곁에서 애정을 다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하이드 지킬, 나>는 숨어있다 발현된 인격이 도리어 선하고 영웅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 신선하긴 했다. 그러나 드라마의 시작부터 현빈이 살고 있는 집, 옷 입은 스타일, 말투, 표정 그 모든 것이 새로운 드라마가 아닌 <시크릿 가든>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 데 실패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로빈이 튀어나왔을 때도 현빈이 웃는다 이상의 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이드 지킬, 나>에서 구서진의 병은 가족들이 알고 있지만 누구보다 그 사실을 덮고 싶어한다. 어머니는 로빈이 다가갈 때 한 발 물러선다. 구서진이 아닌 다른 인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저 기생충 취급을 한다. 그런 인격이 생겨난 데에는 가족 내부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 텐데 자신의 아들을 그렇게 만든 상황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 혹은 죄책감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구서진보다 로빈이 사랑받기에 충분한 캐릭터임에도 그의 가족들은 경영권 문제가 생길까 봐 노심초사한다. 다중인격을 유발시킨 트리거였던 장하나(한지민)의 역할도 지나치게 순진해서 쌍둥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다. 1,2화는 드라마의 배경설명이었거니 하고 지켜보다 3화 마지막에 장하나를 두고 구서진과 로빈이 같은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야기가 조금 흥미로워지고 있구나 싶었는데 4화에서 이 드라마를 더 지켜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어졌다. 


<킬미 힐미>는 추리소설 작가인 오리진의 오빠 오리온(박서준 분)를 통해 재벌 요소에 출생의 비밀까지 곁들였다. 재벌 승계와 관련한 비밀까지 뻗어있는 전형적 한국드라마의 룰을 지켜내고 있다. 그럼에도 빤하게 누구의 비밀인지 드러내기보단 헷갈리게 만든 구조로 긴장감을 더 했다. 심지어 그 출생의 비밀을 바탕으로 이복남매 간의 애정까지 다루고 있으니 자극적인 흥미거리로는 최고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차도현의 다른 인격 신세기마저 오리진을 좋아하니 ‘모든 남자는 너만 좋아해’의 캔디 스토리까지 덧입혀 로맨스 장르에서 빠지지 말아야 할 모든 것을 잘 범벅 시켜 놓았다. 이렇게 놀리고 흠잡을 비현실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다중인격’이라는 소재를 다룸에 있어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 제목에서도 전면에 드러내고 있는 킬미가 아닌 힐미를 이야기 속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점에서 다중인격을 이해하게 만들고 그들이 가진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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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미힐미의 한 장면, 자살지원자 요섭이 그래피티로 KILL ME라고 써놓은 것을 오리진이 HEAL ME로 고쳐놓고 미국으로 가게 되고, 뒤늦게 차도현이 자신을 구원해주었던 목소리를 들었던 이 곳에 올라와 오리진의 진심이 담긴 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건 정말 판타지일 뿐이야. 판타지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사랑하는 이야기는 여자들의 판타지이자 허영을 자극한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 그 순간은 정말 괴로워. “<하트 투 하트>도 차라리 고이석을 환자 강박증이 아니라 이중인격으로 만들어서 장 형사와 고이석으로 나눠놓지 말고 한 인물로 만들어 버리지 그랬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놓치고 싶지 않은 두 남자가 사랑해 주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하이드 지킬, 나>에서 구서진은 예민하고 신경질적이고 안하무인이지만 ‘날 이렇게 대한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의 캐릭터로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정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겠는가? 비주얼을 봐라. 현빈이야! 그런데 로빈은 선량하고 위험할 때 언제든 나를 구해줘. 극이 진행되면서 구서진 역시 여주인공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생겨서 본의 아니게 장하나를 설레게 만들 것이다. 결국 두 인격이 프로토콜 트웬티 “장하나를 지킨다” 라고 할 때 설레고 떨리고 만다. 거기에 감정이입 해서 강한 남자에게 보살핌 받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드라마를 통해 충족시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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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지킬, 나의 3화 마지막 장면. 구서진이 만든 로빈이 필요 없어지면 사라져야 한다는 프로토콜을 삭제하고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는 장면. 각 인격이 서로 이렇게 소통하고 규칙을 만들어 공존할 정도로 케어 가능한 단계인데 그의 가족들과 구서진 본인만 받아들이지 못한다. 물론 융합치료는 필요하겠지만 구서진보다 로빈이 훨씬 더 나은 인간이잖아.

 

<킬미 힐미>에서 오리진이 처음 만난 인격은 신세기. 아비정전의 시계 1분 같이 바라보기와 같은 허세가 뚝뚝 떨어지는 장면을 연출하고 "내가 너한테 반한 시간", "이 얼굴을 하고 다른 이름을 대는 녀석은 가짜야, 난 유일해" 손발이 오골거리는 대사를 내뱉지만 그럼에도 야수 같은 눈빛에 거부하기 힘든 강인함으로 이끄는 섹시한 마력을 탑재하고 있다. 그에 반해 정중하고 선하고 배려심 넘치고 고군분투하는 차도현은 완벽하게 다른 사랑스러움을 내뿜는다. 그런데 이 둘이 한 사람이야.


각자 다른 인격이고 융합되어야 하는 인격이라고 한들 교통정리를 어렵게 할 필요도 없어. 한쪽 인격이 사라지면 다른 인격은 기억을 못하니까. 완벽해. 정말이지 완벽하잖아.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 받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제대로 긁어주는 느낌이라니까. 그래. 그런 판타지 때문에 이걸 볼 수 밖에 없을 거야. 그러니 두근거릴 수밖에 없는 거야.


(+) 그런데 의사 윤리는 없는 건가요? <하트투하트>에서도 고이석이 차홍도랑 자더니 연애까지 하고 <킬미 힐미>에서도 신세기와 오리진, 차도현과 오리진이 너무 자주 키스하는 거 아닌가요? 보면서 꺅꺅거리고 좋아하긴 했지만 의사와 환자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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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현정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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