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세상살이에 만능키는 없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 독자와 만남
허지웅은 모두가 엇비슷한 존재이기에 자신이 특별하다는 자의식을 버리라고 주문한다. 세상살이의 전쟁 속에서 자기 자신은 조금 내려놓고 어떤 어려움이 와도 기꺼이 버텨내라고 이야기한다.
10월 8일,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는 허지웅 저자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 독자와의 만남이 열렸다. 커다란 극장을 가득 메운 독자들은 작가와 진솔한 고민을 나누며 대화했다.
“글 쓰는 허지웅 입니다.”
허지웅이 등장하자 환호 소리가 가득 메워졌다. 인기를 실감하게 만드는 열렬한 분위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그의 말 한마디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유명세를 반영하듯 지난 봄 펴낸 소설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에 이어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도 인기를 끌고 있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는 오랜 기간 여러 매체에 기고한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그가 유년 시절의 생채기를 풀어낸 아픈 이야기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지면서 생기는 고충까지. 저자 개인이 삶에서 겪어낸 날 것 그대로 시선이 들어있다. 그만의 솔직하고 강렬한 화법이 녹아있는 글들은 많은 독자의 공감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날 저자는 『버티는 삶에 관하여』 출간에 관한 짧은 소회를 이야기한 뒤 곧장 독자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독자들의 고민을 듣고 함께 대화하는 일. 그의 요청으로 극장의 불빛이 밝아졌다. 2시간 넘게 이어진 독자들의 질문에 얼굴을 맞대고 진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세상이 절박할수록 버티는 힘이 가장 필요한 때라고 힘주어 이야기하는 허지웅. 험난한 세상살이에는 냉소적인 객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버티는 삶에 관하여』는 다소 무거운 제목이다.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이 제목을 다들 반대했다.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버틴다’는 말에 관해서 부연 설명하자면 표현 그대로 굉장히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상태다. 억눌린 것을 참고 있는 느낌이고 묵묵하게 맞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런 일을 하고 있다면 믿음을 가지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끝까지 잘 버티자는 뜻이다.
버티는 몸을 만드는 데 책이 도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버티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그저 그렇게 늙어가는 것 같지만 다들 부단히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종류의 자기 인식,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버티는 삶이란 웅크리고 침묵하는 삶이 아닙니다. 웅크리고 침묵해서는 어차피 오래 버티지도 못합니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지금 처해 있는 현실과 나 자신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얻어맞고 비난받아 찢어져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저 오기가 아닌 판단에 근거해 버틸 수 있습니다. 요컨대,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자, 는 것입니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中
‘열외’하려고 하지마라.
허지웅은 모두가 엇비슷한 존재이기에 자신이 특별하다는 자의식을 버리라고 주문한다. 세상살이의 전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조금 내려놓고 어떤 어려움이 와도 기꺼이 버텨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힘든 수렁에서 도망가려고 하는 나약함이 언젠가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스스로는 열외될 수 있다고 정당화하지 말자. 그 순간에는 몸이 편할 수 있어도 나중에 후회한다. 우리가 가끔 너무나 부끄러워서 몸서리쳐지는 일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그런 상사들, 그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열외하지 말아라. 한 가지 확실한 건 언젠가 버티려는 노력들이 보답 받는다. 오래 그 자리에서 하다 보면 티내지 않더라도 계속하면 티가 안날 수 없다.”
“‘부조리해, 힘들어’ 관둬버리는 일이 워낙 많아서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잘 간파한다면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 남들이 알아준다는 것이 굉장히 유치하고 별거 아닌데 살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인정욕구가 과하면 괴물이 되지만 그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인정은 받는 일은 중요하다. 방해요소를 다 물리칠 수 있는 건 오래도록 버티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옆에서 뭐라 하는 사람이 사라진다.”
직장 생활에서는 살아남는 게 무조건 이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잘 버틸 수 있을까? 주변을 돌아보면 상대를 누르고 야비하게 안착하는 사람들이 잘 버틴다. 잘못 버티면 다른 사람에게만 도움이 되고 아무 소용 없어지는 순간도 많다.
회사를 우주의 중심으로 두는 사람을 많이 봤다. 그런 사람이 주로 빨리 방전되거나 정치를 한다. 어떤 라인에 서거나 뒷담화로 나은 입지를 가지려고 한다. 평사원의 경우 둘 다 못 버틴다.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회사가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한다. 회사에서 오래도록 잘 버티는 지인이 있는데, 그는 만나면서 한 번도 회사 욕을 한 적이 없다. 굳이 생존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이들이 더 오래 버틴다. 위치가 주는 안락함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가 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 맡고 있는 업무에만 충실해서 오래해서 인정받는 게 안전하다는 포지션을 취해야 한다.
사실 대부분 여기 계신 분들이 그렇듯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정말 힘든 상사들이 많다. 자신의 능력치를 파악하고 결과적으로 이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는,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어두자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특별한 어떤 사람들한테만 허락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가능한 일이다.
버티다보면 나 자신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소신껏 잘 버티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 잘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구체적인 지침을 듣고 싶다.
세상살이에 만능키는 없다. 본인이 하는 분야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만드는 요령은 본인이 찾아야 한다. 각자 개별적인 답변이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짊어지는 고민이 인생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금방 다 사라져버린다. 고민은 사랑처럼 영원하지 않다.
고민이 많은 20대 초반이다. 20대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런 건 없다. 어떤 세대에 해야 할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계발 서적에 있는 걸 다 따라 하다보면 허망하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대부분은 자기 위치에서 성공한 이야기를 쓴다. 물론 그 경위는 이해가 간다. 자신의 성공이 옳다고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이들의 계발서보다 요즘 같은 때일수록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방면의 최악이었던 사람들이 앞으로의 위기사항에서 대처할만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영화 <닉슨>의 이야기로 실패담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성공담이 과잉으로 소비되는 시절에 <닉슨>을 볼 때 마다 펑펑 운다는 그의 고백은 독자들을 공감시키기 충분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닉슨>이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실패한 대통령이자 부패와 거짓말의 상징이다. 무수한 텍스트 속에서 악의 화신으로 인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한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 집요하게 쫓아간다.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고 그리워하는 이에 대한 영화는 누가 만들어도 잘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닉슨>은 최악의 인생이라고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 될 때 우리는 어쩌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다. 반면 실패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의 이야기는 보기 드물다. 타인의 불행과 실패를 그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 정작 전염될까봐 사유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성공담이 제공해줄 수 있는 건 잠시 동안의 쾌감과 환상뿐이다. 우리가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고 혹시 모를 성장의 기회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경청해야 하는 것은 성공담이 아니라 굴복하고 실패한 이들의 이야기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中
책에 보면 좋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얼마만큼 가까워졌는지 알고 싶다.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밥벌이를 하는데 좋은 사람일 수가 없다. 다 별로다. 관건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데 계속 실패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객관화이다. 내 일을 남 일처럼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그게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다. 세상에 특별한 사람은 없다. 나만 특별하다는 생각이 삶을 갉아먹는다.
언제부터 글 쓰는데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았는지 궁금하다.
어릴 적부터 책 보는 게 그저 좋았다. 특히 괴기소설을 좋아했다. 메리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여전히 최고로 친다. 사실 고전적인 괴기 소설들이 문학적으로 대단한데도 평가절하 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께서 이야기 성서 전집을 사주셔서 열심히 읽었다. 들으면 믿지 않겠지만 어릴 적에는 성경 시편 외우기 대회에서 1등 했다. 나만의 이야기를 써서 어머니께 보여드리는 등 꾸준히 글을 썼다.
다음 책의 출간 계획이 궁금하다.
실제 사건을 취재해서 건조한 르포소설을 쓰고 싶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생소한 장르이다, 특정 사건에 대해서 통찰할 수 있는 종류의 글을 쓰고 있다. 이것을 위해 지방에 취재 갈 예정이다.
이날 그는 여러 독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며,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마음속에 자신만의 문장을 새기고 건강하게 잘 버텨나가자는 응원을 잊지 않았다.
타인의 순수함과 절박함이 나보다 덜할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절대악과 절대선이 존재하는 세상을 상정하며 어느 한 편에 서면 명쾌해질 것이라 착각하지 말되, 마음 속에는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中
버티는 삶에 관하여허지웅 저 | 문학동네
글쓰는 허지웅이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그의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기억, 20대 시절 그가 맨몸으로 세상에 나와 버틴 경험들과 함께, 소용돌이 가득한 이 시대에 한 사람의 평범한 사회인으로서 견디고 화내고 더 나은 세상의 가능성을 꿈꾸며 써내려왔던 글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그가 어떻게 살고 어떤 생각을 하며 버텨왔는지가 문장마다 낱낱이 박혀 있는 ‘글쓰는 허지웅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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