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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세월호 참사를 말하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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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릴 수 없는 배』는 경제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월호 참사의 숨겨진 얼굴에 대한 이야기다. 표면에 드러난 사건의 실체임에도 누군가에 의해 가리워진 ‘현실’에 대해 『88만원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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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당국이 세월호에 학생들을 태웠다


『88만원세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아픈 진실을 조명했던 생태경제학자 우석훈이 새로운 책 『내릴 수 없는 배』를 펴냈다. 이번에도 그의 눈길을 잡아매었던 것은 한숨과 눈물이 뒤섞인 현장이었다. 죽어서도 내릴 수 없는 배에 태워졌던 이들, 그들이 잠든 곳. 바로 세월호 참사의 현장이다.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는 이상한 일들이 정말 많다. 그중 가장 이상한 일은 대통령의 사과였다. 배에서 벌어진 사고니까, 배를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배에 대한 말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것도 사고가 발생한 이후 한참이나 지난 다음, 대책을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배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그리고 정부의 대책 중에 배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 역시 없었다. 그래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늦었다면 늦었고, 이르다면 이른 시기에 말이다. ( 『내릴 수 없는 배』 6~7쪽)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두고 출간된 『내릴 수 없는 배』에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사건 이면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출간 이후 두 달여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낯설다. 그러나 꼭 한 번쯤 수면 위로 올려야 하는 문제들이다. 그런데 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가. 『내릴 수 없는 배』는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지난 27일, 한겨레 신문사에서 독자들과 만난 우석훈 저자는 『내릴 수 없는 배』의 여정에 대해 들려주었다.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 시작된 강연은, 경제학자로서 저자가 세월호 참사를 향해 던지는 질문들로 이어졌다.

 

“『내릴 수 없는 배』를 구상하면서 제가 처음 세웠던 가설은 ‘수학여행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배를 교통수단으로 선택했을 것이다’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자료를 모아보니까 그 가격이 결코 싸지 않더라고요. 세월호 편도가 7만 천원인데요, 만 원만 더 주면 비행기를 탈 수 있었어요. 오히려 저가 항공기는 더 싸게 이용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는 조사 끝에 2011년에 부산해양항만청에서 교육당국에 협조 공문을 보낸 사실을 알아냈다. 내용은 수학여행을 떠날 때 페리호를 이용해 달라는 것. 당시 선박 산업은 경제적 위기에 놓여 있었다. 페리호의 대표적인 제주-부산 노선조차 저조한 수익률을 이유로 2012년에 운행 중지되었을 정도였다. 이 노선은 지난 해 운항이 재개되었는데, 수학여행의 이동수단으로 채택된 영향이 컸다는 게 저자의 이야기다.

 

“그냥 놔두면 망했을 페리호를 고등학생들을 태우면서 살려낸 거예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세월호에 학생들이 탄 게 아니고 태워진 거더라고요. 태운 사람들은 교육당국이었던 거죠. 그런데 오히려 교육부 장관은 부총리가 되었죠. 이 사건의 원인 제공자 중 한 명인데 말이에요.”

 

당시 연안 여객들이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은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저가 항공과 고속철도의 신설, 고유가 현상 등이 겹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같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하지만 문제에 대처하는 자세는 저마다 달랐다. 공공기관이 운영에 참여하는가 하면, 지역자치단체가 직접 배를 구입해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배가 철저하게 ‘국영재’였던 것과 달리 그들은 ‘공영재’로써 배를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문제 해결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배의 안전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그토록 엄청난 참사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선박 사업에 대한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엉뚱한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우석훈 저자는 ‘재난자본주의’를 말했다. 나오미 클라인이 『쇼크 독트린』에서 이야기한 이 개념은, 재앙으로 인해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사회의 기득권층이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일을 실현시키는 것을 일컫는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는, 슬픈 일이나 재난이 생기면 그것을 교훈 삼아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할 것 같잖아요. 그래서 지금보다 더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고요. 그런데 그렇게 좋아지는 사회가 거의 없더라고요. 재난이 생겼을 때 그걸 기회로 사회 지배층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일반적이더라고요.”

 

그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재난자본주의를 설명하는 한편, 지금 우리의 현실이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가 그랬어요. 9.11 이후 국토안전부가 생기면서 테러범을 잡겠다는 명목으로 검문검색을 강화했죠. 이를테면 거대한 국정원을 하나 만든 거예요. 그러면서 백악관에 있던 컨트롤타워 기능을 국토안전부로 옮겼어요. 사람들은 그게 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라는 사실을 태풍 카트리나로 피해를 입었을 때 알게 됐죠. 당시에 소방청, 국토안전부, 지방정부 중 누구도 이걸 어디에서 관할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 상태에서 사람들이 죽게 됐거든요. 그래서 이후부터 컨트롤타워 기능은 다시 백악관으로 옮겨졌어요. 지금 우리 정부가 내세우는 대책 중 핵심이 되는 게 특별한 재난 관리 기구를 만드는 건데요. 9.11 때랑 똑같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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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 1993년 서해 페리호 사건을 기점으로 선박 관리 업무가 정부 부처에서 민간 회사로 이양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로 인해 선박 사고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아닌 민간 업체의 몫이 되었고,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재난관리시스템도 그러한 성격을 띠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조치들은 이 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정부가 첫 번째로 했던 조치는, 행정고시에서 5급 공채를 줄이고 특채를 늘리겠다는 거잖아요. 그건 정말 세월호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거든요. 오랫동안 부자들의 숙원 사업이었던 것을 이번 기회에 실현시켜준 거죠. 너무나도 슬픈 사건을 핑계로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세월호 대책이라고 말하는 거죠. DTI?LTV도 마찬가지예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인의 부동산 대출 상환제한을 없앤다는 이야기잖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더 나쁜 사회로 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풀기 위한 것인지 알기 힘든 정책들만 난무하는 가운데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슬며시 뒤로 밀려났다. 바로 배에 대한 것이다. 이번 참사로 증명된 선박 운항의 문제점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세월호를 대신해 운항할 배는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는 것.

 

“앞으로 배는 더 위험해질 거예요. 이제 배를 타는 사람들의 숫자는 더 줄어들 것이고, 그런데 정부가 조치해 주는 부분은 없으니 수익성은 더 떨어지겠죠. 그에 따라 비정규직과 파견직의 숫자는 늘어날 거예요. 돈이 안 되니까 안전 장비를 정비하고 교체하는 데에는 지출을 줄일 거고요. (현재 선박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해운조합은 자신들의 회원인 선사들의 과적을 철저히 단속하지도 못할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세월호가 취항하던 노선이 운행 중지된 상황이기 때문에 세월호 대신 다른 배들이 화물을 나르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해주지 않으면 이제는 그 배들이 과적을 하게 되는 상황이 될 거예요. 이렇게 배에 대한 조치가 시급한 상황인데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우석훈 저자는 이와 같은 문제의 대안으로 앞서 이야기했던 해외의 사례를 언급했다. 운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선을 지역자치단체 혹은 국가가 운영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내릴 수 없는 배』 안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지금의 현실을 돌파할 출구가 아니라, 미세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현실의 민낯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자체로 유의미하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논제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 번도 이야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아무도 알지 못하는 듯한, 표면적인 것 같으면서도 이면적인 ‘현실’을 포착해내는 우석훈의 시선은 여전히 날카롭다.

 

“『내릴 수 없는 배』를 쓰면서 ‘내가 울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경제학자로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제가 우는 게 사건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눈물이 너무 많이 났습니다. 이건 독한 얘기일 수 있는데요,  지금이 울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놈이 나쁜 짓을 하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권투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맞을 때 눈을 뜨라고요. 맞을 때 눈을 감으면 맞아 죽는다고요. 우리가 슬퍼서 눈을 감으면 나쁜 놈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예요. 그러니까 절대 눈을 감지 말고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릴 수 없는 배』에서 저자는 살아남은 우리 역시 ‘내릴 수 없는 배’에 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배를 타고 목적지까지 함께 가야하는 공동운명체이기에, 지금 이곳에서 세월호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결코 내릴 수 없는 이 배에서, 지금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일까. 『내릴 수 없는 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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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릴 수 없는 배우석훈 저 | 웅진지식하우스
경제학자 우석훈이 쓴 《내릴 수 없는 배》는 어떻게 이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한국 사회를 깊숙이 관통하는 시점으로 그 배경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왜 생명의 문제가 경제적 차별에 좌우되는가? 이 크나큰 비극 뒤에서 재난 자본주의는 어떻게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 희망을 가져다줄 미래의 주체들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모두가 함께 이 문제를 풀지 않는다면 아무도 내릴 수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배에 꼭 필요한, 아프지만 지혜로운 해답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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