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변하지 않는 그 정서의 이어달리기 <동경가족>
따뜻하게 마주잡은 손과 다정하게 나누는 눈인사야 말로, 가장 든든한 응원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싸들고 찾아온 부모님의 모습, 꿈을 좇아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아들을 한심해 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충돌, 돈을 쓰는 것만으로 효도를 했다고 생각하는 자식들의 모습은 우리와 너무 흡사해 공감이 된다.
가족, 변하지 않는 그 정서의 이어달리기 <동경가족>
※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일본적인 거장으로 인정받는 오즈 야스지로의 1953년 작품 <동경이야기>가 중견감독 야마다 요지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다. 절제되고 무심한 듯한 오즈의 시선은 전후 일본을 살아내야 하는 대도시의 소시민 가족을 늘 이야기의 중심에 두었다. 오즈 스타일이 완벽하게 구현되었다고 손꼽히는 <동경이야기>, 도쿄에 사는 아들 집을 방문한 시골 부모의 쓸쓸한 체류기를 그린 이 영화는 세대 간의 갈등에 대한 보편적이면서도 소박한 이야기를 극도로 절제된 형식에 담아내며, 잔잔함 속에 삶에 대한 비애에 젖어들게 만드는 영화였다.
야마다 요지 감독은 소박하고 서민적인 스타일의 영화로 인정받은 감독이다. 동시대에 활동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작품으로 주목받았다면,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와 <행복의 노란 손수건> 등 야마다 감독의 영화는 인간미 넘치면서도 대중적이다. 70대에 처음으로 도전한 시대극 <황혼의 사무라이>는 2004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출품 등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여전히 건재한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동경가족>은 올해 83세에 접어든 노장의 눈으로 바라본 동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담아낸다. 노장이 만든 고전의 리메이크라 고루할지도 모른단 편견은 가뿐하게 접어도 좋다. 절제미 가득했던 오즈 야스지로의 원작에 비한다면, 야마다 요지 감독은 훨씬 더 친절하고 직설적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따라서 깊이 사유하지 않아도, 쉽게 동감할 수 있다.
반백년의 노장, 젊은이에게 희망을 걸다
<동경가족>은 야마다 요지 감독의 데뷔 50주년 기념작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반백년의 시절 동안 영화를 만들어 온 거장의 뚝심과 오래 묵어도 군내나지 않는 화법은 <동경가족> 속에서 여전히 빛난다. 영화사적 의미를 되짚기 위해 오즈 야스지로 감독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동경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그의 영화를 되찾아 볼 필요는 없다. 원작과 50년의 간극이 있고, 동경이라는 도시도 급변했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화두, 그 속에서 삶을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소시민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지금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묘하게 겹친다.
<동경가족>은 흔한 이야기다. 이야기도 단순하고, 패턴은 익숙하다. 늘 가까이 있을 거라 믿어서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의 무심함을 드러내기에 이런 익숙한 형식은 효과적이다. <동경가족>은 보편적이고 새로울 것 없어서 더 의미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은 섬에 살던 부모가 자식을 보러 동경을 방문한다. 각자의 생활에 바쁜 자식들은 부모님의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서, 슬슬 부모님을 귀찮아하기 시작한다. 야마다 요지 감독은 어떤 의미에서 도쿄의 낯선 이방인인 시골 노부부와 그들이 겪는 마음의 상처, 그리고 그 여정에서 겪게 되는 마음의 변화를 담아낸다. 그리고 생채기를 내고 밀어내도, 결국 가족이라는 군내 나는 화두 속에 어쩔 수 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깊은 사랑 또한 녹여낸다.
영화 <동경가족> 스틸컷
<동경가족>의 크랭크인을 20일 앞두고 일본 사회는 대격변을 맞이했다.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다. 재앙은 일본사회를 휘청이게 만들었고, 사람들의 삶도 완전히 바꿔버렸다. 야마다 요지 감독은 영화 제작 일정을 연기했고, 새롭게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제작은 1년이 미뤄졌고, 그 기간 중에 야마다 요지 감독은 재해를 경험하고 방향을 잃어버린 현재 일본,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서민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전후 일본 사회의 불안을 그 바탕에 깔았다면, 야마다 요지 감독은 인간과 자연에 의해 빚어진 참사가 쓸고 간 일본을 배경에 담았다. 물론 직접적인 언급도 없고, 사람들의 삶 자체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대안은 없지만, 열심히 살아내는 젊은이들에게 그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믿음을 츠마부키 사토시와 아오이 유우의 얼굴을 빌어 드러낸다.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싸들고 찾아온 부모님의 모습, 꿈을 좇아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아들을 한심해 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충돌, 돈을 쓰는 것만으로 효도를 했다고 생각하는 자식들의 모습은 우리와 너무 흡사해 공감이 된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자식이 효도를 한다는 사실도…….하지만, <동경가족>은 그 과정에서 어느 누구의 편도, 어느 누구의 탓도 하지 않는 현명한 화법과 그 논조를 이어간다.
영화 속 어머니는 마치 세상을 달관한 현인처럼 아무런 불평도 원망도 없이, 그들의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아버지는 조금 수다스럽고 고루하지만, 강압적이진 않다. 부모의 마음을 담아내는 그 담담한 화법은 영화의 종반부에 관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마치 부모님을 위하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사실을 귀찮아서 보냈던 고급 호텔에서의 하룻밤은 노부부에게는 휴식이 아닌 상처가 되었다. 아직 별 볼일 없이 살아가지만, 착하고 살갑고 또 사려 깊은 여자 친구를 둔 막내아들의 작은 방에서 보낸 하루가 어머니가 동경에서 보낸 가장 행복한 하루였다는 사실은 마음을 아릿하게 만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느 누구의 삶도 비난하지 않는 야마다 요지 감독은 <동경가족>을 통해 이미 중년이 되어버린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의 다소 이기적인 삶도 인정하고, 불안정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막내아들과 그 여자 친구의 삶을 향해 상냥하게 웃으며 토닥거려 준다. 야마다 감독은 손을 잡아 끌어주고, 등을 떠밀어 나아가라는 메시지 대신, 낡은 시계를 건네는 것으로 그 믿음과 사랑을 전한다. 따뜻하게 마주잡은 손과 다정하게 나누는 눈인사야 말로, 가장 든든한 응원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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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동경가족, 야마다 요지, 오즈 야스지로, 츠마부키 사토시, 아오이 유우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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