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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혁명으로 이룬 아름다운 공부

소파 자리에는 책장을 두고, 거실 가운데에는 넓은 책상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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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의 독립 전에 가슴 가득히 채워주어야 할 감정 중에 하나는 공부가 즐거울 수 있다는 것과 평생 함께해도 좋겠다는 편안함이 아닐까?

유년시절, 동네에 꼭 한 명쯤은 있었던 모범생 때문에 수시로 비교를 당하며 힘들어했던 경험을 누구나 가졌으리라! 나의 경우는 하필 바로 옆집에 사는 두 살 정도 많은 형이 동네에서도 부러워하는 대표적 모범생인지라 겪어야 하는 고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각종 시험에서 1등을 할 때마다 동네에 소문이 나고, 어찌 그리 상은 잘 받고 자주 받는지. 그리고 그 받은 상은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모든 동네 아주머니들이 직접 본 것처럼 칭찬 일색이었다.


부러움과 시기에서 발생한 미움이 컸던 관계로 친하게 지내기보다는 그저 형을 피해 다녔던 기억이 크다. 옆집 아주머니는 참 인자하고 좋았는데, 어찌 그리 형은 싫어했던지 새삼스럽다. 옆집이라는 물리적인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멀리 있었던 마음을 결정적으로 바꾼 사건이 생겼다. 공부를 잘한다는 소문 덕택인지 옆집을 지날 때마다 형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나 습관적으로 기웃거렸다. 그러던 어느 여름철, 더위 때문에 대청마루에서 앉은뱅이책상을 마주하고 있는 형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즐거움이라고 표현해야 딱 맞을 표정으로 책에 몰입하고 있는 형을 보는 순간, 이제까지 나의 나쁜 감정과 시기는 모두 사라졌다. 그렇게 그 짧은 순간 나의 유년시절 영웅은 만들어졌다. 이후 형이 하는 모든 행동은 나에게는 따라 하면 즐거운 일들로 굳어졌다. 물론 앉은뱅이책상에서 공부하는 모습 또한 나의 일상으로 굳어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요즘은 한국대학으로 유학 오는 젊은 학생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나의 수업시간에도 어김없이 국제화가 찾아왔다. 개강하고 수강을 신청한 학생 이름 가운데 중국학생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수강자 모두가 한국 학생인데 무리가 없을지 수업이 시작하기 전 면담을 하였다. 중국에서 한국어를 2년 정도 배웠다고는 하나, 면담시간에는 제법 한국어를 잘하는 중국인 선배를 동행하고 와야 할 정도로 학생은 자신 없어 했다.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한 학기 수업이 시작되었고, 학생은 늘 제일 먼저 오고 가장 앞자리에 앉는 정성을 보였다. 몇 주가 지나면서는 수업이 끝나면 교재에 표시한 한가득 질문공세를 시작하였다. 이후 치른 중간고사에서는 중상 정도의 성적을 거두면서 강의 시작 때 가졌던 나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중간고사 이후에도 열정적으로 수업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흐뭇하였다.


한 학기가 거의 지나가던 12월 어느 날 아침. 하얀 눈이 학교운동장에 가득하였고, 운동장을 돌아난 길을 따라 조금 이른 출근길 운전 중이었다. 그때 저 멀리한 학생이 무언가를 열심히 쳐다보면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느릿느릿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눈과 어우러진 영화 같은 장면 속에서 혼자 걷고 있는 학생이 인상적이었고, 이른 시간에 무얼 저리 들고 즐거운 표정으로 보는지도 궁금하였다. 혹 연인 사이에 주고받은 달콤한 연서라도 보고 있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하는 사이 학생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왔고, 놀랍게도 수업시간의 그 유학생이었다.


차창을 열고 물어보았다. 이른 아침에 무얼 그리 즐겁게 보면서 걷고 있었냐고. 답변은 참 신선했고,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학생의 말을 잘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아침에 이렇게 빈 운동장을 걸으며 교실로 향해요! 이때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읊조리기도 하고, 읽기도 하면서 암기를 하면 그렇게 잘 되고 기분이 좋아져요!“


그러고 보니 한 학기 동안, 언어의 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의 성적과 이해는 상당한 수준으로 진전되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채점을 위해 학생의 답안을 꺼내 든 순간 나의 얼굴에도 흰 눈 가득한 운동장에서의 학생 표정이 재현되었다.

 

아빠가알고있는걸

 

막연히 공부는 힘들고 딱딱하다는 선입견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언제 어떤 인연으로 공부가 즐거운 모습으로 다가설지 모르지만, 이후의 모습은 그저 같이 있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연인처럼 변해 버릴 수 있다. 이런 신선함과 즐거움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만나게 해줄까? 희망 같아서는 한글을 막 배우는 유치원에서부터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의 이런 기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언제 만날지 모르는 결정적인 인연을 외부에서만 찾기에는 너무 막막한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해주길 바라는 모습은 부모가 먼저 보여주면서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여러 매체에서 제시된 ‘거실의 혁명’을 시도하였다. 일단 거실에서 텔레비전, 오디오, 소파를 추방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이들이 편안히 작업할 수 있는 길고 넉넉한 책상, 컴퓨터, 프린터, 조명 등을 설치하여 혼자서 하던 컴퓨터 및 학교 관련 작업을 공용 공간인 거실로 가져오게 하여, 수시로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컴퓨터가 공용공간으로 나오면서 각종 서핑과 인터넷의 유해성 및 게임걱정 등은 현저하게 줄었다. 텔레비전은 방으로 보내고, 시청이 필요한 프로그램만 보도록 하면서부터 텔레비전 소리가 온 거실을 가득 메우던 비효율성이 사라졌다. 아이들이나 부모인 우리도 꼭 필요한 것만 보게 되는 현명함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거실의 붙박이던 소파도 자취를 감쳤다. 더는 한사람이 소파에 누워서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조작하며 거실을 포함한 집안의 가장 넓은 공간을 독차지하는 현상은 사라졌다.


소파 자리에는 책장을 두고, 거실 가운데에는 넓은 책상을 두었다. 거실은 아늑한 작업공간이 되었고, 아이들과 지근거리에서 책장을 같이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 수학의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무슨 참고서가 필요한지를 알 수 있었고, 숙제하는 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함께 나누면서 부모와 아이들은 같은 정서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아이들이 먼 훗날 생각해도 이 순간이 즐겁고 복된 날들이었고, 공부를 생각하면 부모님과 거실에서 함께하던 행복한 기억이 떠올랐으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가? 공부가 과연 초중고 및 대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단어인가? 공부는 대학 이후 좋은 직장을 위해서, 직장 내 승진을 위해서, 또 다른 도전을 위해서 오랫동안 함께 해야 할 숙명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부모와 거실에서 함께 노력했던 유년시절 기억을 떠올릴 수만 있다면, 공부는 더는 힘든 단어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우리 아이에게 그토록 찾아주고 싶었던 공부가 결정적으로 좋아지는 인연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의 독립 전에 가슴 가득히 채워주어야 할 감정 중에 하나는 공부가 즐거울 수 있다는 것과 평생 함께해도 좋겠다는 편안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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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필요한 순간들 여기태 저 | 카시오페아
이 책은 지난 10년간 저자가 경험한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졸업까지 아빠만이 할 수 있는 인생 멘토링이 풍부한 사례와 더불어 실려있다. 여교수는 아이가 힘든 순간에 아빠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 그것이 아빠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조언한다. 또한 아이가 인생을 살면서 넘을 굽이길을 현명하게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좋은 습관을 몸에 붙일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표현할 방법도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아빠들과, 아빠가 제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엄마들에게 적절한 길을 제시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관련 기사]

- 강풀 작가의 두 번째 그림책 『얼음 땡』
- 김근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기대 반 우려 반”
-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vs 엄마는 날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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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필요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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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여기태

현 인천대학교 교수. 대부분의 한국 아빠들처럼 육아는 뒷전으로 앞만 보고 살았다. 해외체류 기간을 거치면서 자녀들의 생각, 자녀교육, 자녀독립에 대한 무지함과 절실함을 느끼고, 특히 아빠 역할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갖게 되었다. 살면서 아이가 힘든 순간에 아빠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 아빠의 가르침을 가슴속에 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아빠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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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학교수가 10년간 부정父情으로 써내려간 감동적인 실천 육아 일기 이 책을 집필한 여기태 인천대 교수는 학자로서는 성과를 인정받았지만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자녀교육에서는 주변인으로만 살았다. 아이의 기저귀조차 제대로 갈아준 적 없이 당장 해야 하는 일이 급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해 가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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