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아이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법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vs 엄마는 날 몰라
어머니는 딸의 대답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용기를 내 말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사랑을 원하면서 겉으로는 화를 내고 있었다. 왜 마음을 몰라주느냐며 투정을 부렸던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자기가 주고 싶은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표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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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간의 불편한 관계가 두 달 이상 지속되자 더이상은 두고볼 수 없다고 판단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상담실에 온 유진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값비싼 브랜드 제품으로 휘감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생에겐 다소 과해 보이는 차림이었다. 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따라오긴 했지만, 상담에 응할 의사는 전혀 없어 보였다. 어머니와 멀찍이 떨어져 앉아 불만 가득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유진이는 결혼 후 10년이 넘도록 임신 소식이 없어 마음고생을 하다가 간신히 얻은 귀한 딸이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좋은 것은 모두 해주고 싶은 심정으로 딸을 키웠다. 유진이 어머니는 어린 시절 집안형편이 어려워 원하는 것을 제대로 누려본 적 없었기에 딸에게만큼은 최상의 것만을 사주려고 애썼다. 디자인이나 품질보다는 어느 브랜드인지, 얼마인지를 확인하고 딸의 물건을 샀다. 자신을 위해서는 단돈 몇만 원에도 벌벌 떨면서, 딸을 위해서는 절대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예쁘게 크던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달라졌다. 늘 엄마 말이라면 믿고 따르던 아이가 말대답을 하기 시작했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고 수업시간에도 집중하지 않는다는 학원선생님의 연락도 여러 번 받았다.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다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엄마를 봐도 반기는 기색은커녕 시큰둥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인사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날도 많았다.
온갖 잡동사니로 뒤엉킨 방을 정리해주는 것도 점차 짜증이 났다. 그래도 아이가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별다른 잔소리 없이 청소를 해줬다. 조용히 들어가 책상과 침대를 정리해주고 나와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당연하다는 듯 구는 딸아이가 얄밉기까지 했다. 다음날이 되면 또다시 방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결국 화를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네 방 좀 들여다봐. 도깨비 소굴인지 쓰레기장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럼 들여다보지 마! 누가 보래?”
“정리해놓으면 뭐하니. 하루를 못 가는데……”
“그러니까 누가 정리해달라고 했냐고! 도깨비가 나오든 뭐가 나오든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너,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아, 몰라. 짜증나.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는 신경 꺼.”
딸과 한바탕 입씨름하고 나니 서글퍼졌다. 울적한 마음에 아웃렛 매장을 찾았지만 여전히 딸 옷만 보는 자신을 발견했다. 들고 있던 옷을 내려놓고 매장을 나와버렸다. 아이를 낳은 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아이를 위한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헌신했는데 딸은 언제나 불만 가득한 표정이다. 어떤 이야기에도 토를 안 다는 법이 없다. 도대체 더이상 뭘 어쩌라는 건지 알 수도 없었고, 혼자서만 애쓰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다른 집 딸들도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위안이 되진 않았다. 참으려 해도 화가 치밀어올랐다. 딸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2주 이상 최소한의 대화만 했다. 아이 역시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이렇게 지내다간 정말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을 고쳐먹었다. 예전처럼 대하려고 애썼는데, 딸의 반응은 너무도 냉랭했다.
유진이는 엄마와 말을 섞지 않는 것은 물론,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필요한 것이 있어도 아빠에게 부탁했다. 딸이 삶의 이유였던 유진이 엄마에게 딸과 소통하지 못하고 불편하게 지내야 하는 하루하루는 지옥이었다.
“유진이 피곤해 보이는데 상담할 수 있을까?”
“네.”
“아빠랑 다정한 모습, 보기 좋더라.”
“네, 아빠랑은 잘 지내요. 엄마랑 그렇게 되고 난 후부터.”
“엄마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돼?”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화를 내면서 저한테 말을 안 했어요.”
“유진이가 엄마한테 말을 걸었는데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고?”
“네.”
“아무 반응이 없는 엄마를 보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어?”
“짜증나서 나도 말 안 했어요.”
“혹시 엄마가 왜 말을 안 했는지 물어본 적 있어?”
“아니요.”
“이유가 궁금하지는 않았어?”
“……”
아이는 어른이 화난 이유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화가 났다는 그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그로 인해 자신이 불편해지는 상황을 더 크고 중요하게 느낀다. 이유와 상관없이 화를 내는 부모가 못마땅하고, 그래서 자신도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유진이 어머니는 딸한테 예쁜 옷과 신발을 사주면서 많이 행복하셨던 것 같아. 너도 느끼고 있었니?”
“엄마의 자기만족이에요. 새 옷 사오면 빨리 입어봐, 걸어봐. 장난 아니에요. 우리 엄마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몰라요.”
“유진이가 엄마한테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정말 궁금한데, 말해줄 수 있어?”
“별것 아니에요. 그냥 친구 같은 엄마요. 내가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끝까지 잘 들어주고, 스킨십도 많이 해주고. 우리 엄마는 사랑한다고 절대로 말 안 해요.”
유진이는 자기 말을 잘 들어주고, 따뜻하게 손잡아주고 안아주는 엄마를 원하고 있었다. 딸이 원하는 애정표현은 따로 있는데, 어머니는 자신이 받고 싶었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던 것이다. 일방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감정을 표현하고는 잘 몰라준다고 서운해하며 원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부모와 자녀 관계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에서도 이러한 실수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일방적으로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 더욱 커지기도 한다. 자식만이 삶의 전부인 경우, 자식에게 서운해지면 인생이 모두 무너진 것 같은 공허함을 느낄 수도 있다. 자신이 좋아서 한 일이지만 상대를 향한 원망이 커지고, 결국 자신은 물론 아이에게까지 상처를 주는 일이 많다.
상담을 통해서 유진이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힘들었던 어머니의 상처를 보게 되었다. 브랜드 상품만을 고집했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이 자신을 향한 사랑의 표현법이었음도 알았다. 머리로 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서먹해진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유진이는 엄마와 마주앉아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엄마를 원망하기만 했다. 좋은 것만 주고 싶어하는 엄마가 고맙다고 생각한 적도 별로 없었다. 그저 그게 당연하다고만 여겼다.
유진이와 어머니가 함께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어색하게 마주앉았다. 어머니가 먼저 용기를 냈다.
“유진아, 너무 못나게 살아온 내가 싫었던 건데, 괜히 너한테 말 안 하고 화내서 미안해.”
“나도 엄마한테 말 안 하고 화냈는데 뭘.”
“엄마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은 후회되는 일이 참 많아.”
“뭐가?”
“너한테 좋은 엄마도 아닌 것 같고, 아빠한테도 그렇고.”
“……”
“엄마가 너무 가난하게 자라서 우리 딸한테는 뭐든 해주고 싶었는데……”
“난 비싼 옷 필요 없는데…… 그런 거 좋아하지도 않아.”
“그랬구나. 엄마가 잘 몰랐어. 그러고 보니 우리 딸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았네. 미안해, 유진아. 엄마는 정말 우리 딸 사랑해. 우리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
“우리집이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아.”
“……”
어머니는 딸의 대답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용기를 내 말했다.
“고맙다, 딸. 그럼 우리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거지?”
지금까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사랑을 원하면서 겉으로는 화를 내고 있었다. 왜 마음을 몰라주느냐며 투정을 부렸던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자기가 주고 싶은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표현하면서 말이다. 이제 각자가 바라는 바를 안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마음이 통했다. 유진이는 엄마가 잡아준 따뜻한 손에 이끌려 어깨를 기댔다. 처음 마주앉았을 때의 어색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다정한 눈빛이 오고갔다.
아이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법 이경자 저 | 아우름
이 책에는 부모와 친구들 그리고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닫아버리고 혼자 힘들어하는 많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아이들 때문에 고민하는 학부모, 교사에게 아이의 마음속 실타래를 푸는 방법을 보여준다”는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추천처럼, 20여 년간 특수교사와 심리상담가 등으로 일해온 저자는 아동심리 전문가로서 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간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가 말하지 못한 마음’을 들어주고, ‘아이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방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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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아이의엉킨마음을풀어주는법, 육아, 양육, 아이, 교육법
이경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그간 1천 여 명이 넘는 교사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아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어루만져줄 수 있는지에 대한 강의를 진행해왔다.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하고 20여 년간 조기교육실, 특수학교, 발달클리닉 등에서 특수교사로 재직했다. 용인교육지원청 Wee센터에서 특수상담사로 학교부적응 청소년들을 상담했다. 라임오렌지나무아동청소년센터에서 상담실장으로 재직하다 현재는 분당에 위치한 이경자심리상담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시형 박사가 운영하는 '세로토닌 키즈'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경자> 저12,420원(10% + 5%)
아이가 자라면서 천사 같기만 하던 내 아이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귀찮을 정도로 졸졸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물어보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묻는 말에 대답은 고사하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린다. 분명 내 아이인데,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야기를 건넨다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