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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창피한 아빠 vs 아빠가 두려운 아들

아이는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이해하고 상처를 어루만져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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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기대를 받는 아이는 초반에 기가 질려 일찍부터 좌절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노력도 하지 않게 된다.


morguefile By dancerinthe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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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컴퓨터 게임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며 중3 아들을 억지로 상담실에 끌고 온 아버지가 말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들어선 윤식이는 깡마른 남학생이었다. 학교를 가도 몇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머리가 아프다며 조퇴해서는 낮이고 밤이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다고 했다. 너무 조퇴가 잦아서 선생님이 더이상 허락해주지 않자 무단이탈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란다. 그나마 교실에 있을 때도 대놓고 엎드려 잠을 잘 뿐이다. 벌점은 눈덩이처럼 쌓여갔다.

 

“할말 없어요.”
나와의 첫 만남에서도 윤식이는 졸린 듯 눈을 반쯤 감고 말했다.

“졸립구나?”라고 묻자 그제야 눈을 살짝 뜨더니 “네” 하며 귀찮다는 듯 답했다.
“밤새 게임하느라 한숨도 못 잤어요.”
“그럼, 좀 쉬고 있어.”


아무래도 비몽사몽한 상태에서는 제대로 상담이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아, 일단 아이를 좀 쉬게 하고 먼저 부모를 만났다. 윤식이는 공부보다 운동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였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아버지도 주말마다 아들과 함께 축구를 하며 즐겁게 땀을 흘렸다. 회사일로 늘 바쁘지만 그래도 주말이면 함께 신나게 놀아주는 아버지를 아이는 좋아했다. 땀흘려 운동한 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꽤 다정한 부자지간이었다.

아이의엉킨마음을풀어주는법

 

그런데 윤식이가 6학년이 되면서부터 아버지는 갑자기 과외교사로 돌변했다. 학원을 보내도 성적이 향상되지 않자 직접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에게 배우면서부터 아이는 가뜩이나 흥미 없는 공부가 더욱 싫어졌다. 차라리 월수금은 수학학원, 화목토는 영어학원을 다니느라 밤늦게 집에 돌아왔던 때가 그리울 지경이었다. 일주일 분량의 숙제를 내준 아버지는 토요일이면 숙제 범위 내에서 시험을 치렀다. 틀린 문제 수만큼 때리기도 했다.


그때부터 아버지와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다. 지금은 다정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어쩌다 주중에 마주치기라도 하면 숙제 잘하고 있느냐는 말뿐인 아버지, 아버지의 잔소리를 걱정하며 빨리 방에 들어가 공부하라고 채근하는 어머니. 집에서는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상담 첫날, 피곤하다며 잠을 잤던 윤식이. 그래서 첫 만남엔 서로 인사만 나누었다. 한 시간 이상 윤식이가 단잠을 자는 동안 깨우거나 귀찮게 하지 않았다. 세상과 소통하기 싫어서, 아니 소통할 수 없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게임으로 도망친 아이라면 억지로 상담을 진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차라리 아이가 원하는 휴식을 주는 것이 신뢰감을 쌓는 데 도움이 된다.


마음이 꼬이고 엉켜 있는 아이에게, 바른 자세로 앉아서 질문에 대답해보라고 한들 기꺼이 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임처럼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든지, 아니면 힘들어 보이니 조금 쉬는 게 좋겠다며 마음을 헤아려주는 편이 효과적이다. 항상 꾸짖고 비난하는 어른들만 만난 아이는 자신을 좀 다르게 대해주는 어른에게는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외롭기 때문이다. 게임중독인 아이들은 대부분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게임을 시작했다가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두번째 만남부터 윤식이는 약간 경계심을 푼 듯했다. 집과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묻자 “그저 그래요” 하며 성의 없게 대답했지만, 귀찮아하거나 짜증스러운 반응은 아니었다. 세번째 만남부터는 졸려하지도 않았다. 아이도 누군가와 말하고 싶었던 걸까? 말할 사람이 없었을 뿐,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를 기다려온 것은 아닐까?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하던 아이가 이번에는 아버지의 첫인상이 어땠냐고 먼저 질문을 던져왔다. 잠시 머뭇거리자 솔직히 말해보라며 재촉하는 아이.


“나보다는 윤식이가 아빠에 대해서 할말이 많은 것 같은데?”
“지금 아빠에 대해서는 별로 할말 없어요. 그냥 짜증나요.”
“지금 아빠?”
“공부 귀신 들린 아빠요.”
“예전의 아빠가 그립다는 말로 들리는데, 맞아?”
“……”
윤식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을 보면 미래가 없는 듯 답답할 수 있다. 아무런 충고도 호통도 통하지 않는다는 갑갑함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아이는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왜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자신을 이해하고 상처를 어루만져주길, 게임 속 세상에 갇힌 자신을 현실세계로 이끌어주길, 표현하지 못할 뿐 분명 기다리고 있다. 게임중독인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고 싫으면서도, 그런 못난 자신을 잊기 위해 또다시 게임을 하게 된다. 악순환이다.


아이가 갑자기 잠만 자거나 게임만 한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인 경우가 많다. 윤식이도 그랬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무조건 명령에 따르라는 아버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성적만을 강조하는 아버지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대를 채워줄 수 없다는 절망감이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못나고 부족한 자신이 싫고 미워서 또다시 게임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는, 우리 가족이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다 본인이 좋은 대학을 나왔기 때문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니 너도 명문대에 가야 한다고, 그래야 제대로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식이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처럼 명문대에 갈 자신이 없었다. ‘그럼 난 사람답게 못 사는 걸까? 난 사람 구실도 못 하는 걸까?’ 아버지의 기대가 커질수록 아이의 자신감은 줄어들었다. 아이는 점점 작아져갔다. 중학생이 되자 학습량은 더욱 늘어났다. 제딴은 열심히 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원하는 만큼은 해낼 수 없었다. 금요일 밤만 되면 토요일에 벌어질 아버지와의 전쟁이 두려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있어봤자 걱정만 밀려오기에, 잡념을 떨치고자 게임을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중3이 된 아들이 고교 진학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언제부턴가 아버지가 내준 과제를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용돈을 끊겠다고 협박도 하고 체벌도 해보았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 특히 아버지와는 눈도 맞추지 않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빠는 제가 창피하대요. 공부 못하는 아들이 쪽팔리다는 거지요.”
윤식이는 아버지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
“윤식이는 아버지와 다시 잘 지내고 싶어하는 것 같아.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이 많아 보이는데, 예전의 아버지는 어땠는지 좀 들려줄래?”
“……”
아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
“예전의 아빠는 나를 보고 많이 웃었어요.”
그리고 피식 웃었다.
“지금은 인상부터 쓰니까 마주보기 싫어요. 나 때문에 엄마하고도 매일 싸우고요. 엄마도 나만 보면 못살겠다고 해요.”
“속상했겠구나.”
“우리집이…… 나 때문에 엉망이 되어버렸어요.”


윤식이는 자신으로 인해 아버지와의 관계도, 가족 간의 화목도 깨져버렸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모든 문제를 자기 탓으로 돌리는 아이는 의기소침했고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였다.

 

부모는 자식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서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때로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구체적인 관심과 격려와 칭찬이 자녀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게 되고 좀더 향상된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를 받는 아이는 초반에 기가 질려 일찍부터 좌절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노력도 하지 않게 된다. 어차피 달성할 수 없는 목표라고 생각하는 순간, 노력을 멈춰버린다. 그렇게 아이는 점점 무력감에 빠져든다. 학습과 관련된 목표를 상실한 아이들은 다른 도피처를 찾게 된다. 게임에 중독되거나 또래와 어울려 비행을 일삼기도 한다. 때로는 무기력해져 혼자 방에만 틀어박혀 있거나 오랜 시간 잠만 자기도 한다. 공부에 대한 의지가 꺾이는 순간, 삶에 대한 의지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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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법 이경자 저 | 아우름
이 책에는 부모와 친구들 그리고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닫아버리고 혼자 힘들어하는 많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아이들 때문에 고민하는 학부모, 교사에게 아이의 마음속 실타래를 푸는 방법을 보여준다”는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추천처럼, 20여 년간 특수교사와 심리상담가 등으로 일해온 저자는 아동심리 전문가로서 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간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가 말하지 못한 마음’을 들어주고, ‘아이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방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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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자

이경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그간 1천 여 명이 넘는 교사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아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어루만져줄 수 있는지에 대한 강의를 진행해왔다.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하고 20여 년간 조기교육실, 특수학교, 발달클리닉 등에서 특수교사로 재직했다. 용인교육지원청 Wee센터에서 특수상담사로 학교부적응 청소년들을 상담했다. 라임오렌지나무아동청소년센터에서 상담실장으로 재직하다 현재는 분당에 위치한 이경자심리상담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시형 박사가 운영하는 '세로토닌 키즈'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아이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법

<이경자> 저12,4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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