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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하루가 금방 지나갈까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아마도 분명히 ‘시간이 아름답게 길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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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시간에도 수명이 있다면 내 시간의 수명은 어느 정도일까. 새해 첫 날에 이런 저런 다짐을 하고 구정 지나면 구정용 마음 재정비를 한다. 하지만 돌아서면 금요일, 돌아서면 5월, 돌아서면 일 년. 어떤 사람은 하루를 쪼개고 또 쪼개서 알차게 쓴다는데 왜 나만 이렇게 하루가 금방 지나가는 걸까.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시간에도 수명이 있다면 내 시간의 수명은 어느 정도일까. 새해 첫 날에 이런 저런 다짐을 하고 구정 지나면 구정용 마음 재정비를 한다. 하지만 돌아서면 금요일, 돌아서면 5월, 돌아서면 일 년. 어떤 사람은 하루를 쪼개고 또 쪼개서 알차게 쓴다는데 왜 나만 이렇게 하루가 금방 지나가는 걸까.

 

시간상자

 

시간상자


시간에는 주관적 시간과 객관적 시간이 있다. 내 시간의 수명이란 일종의 주관적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분명히 어떤 시간은 길다. 시간을 주관적으로 느끼는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그 시간의 생생함과 구체성이다. 구체적인 순간은 우리에게 짧은 순간마저 더 길게 느끼게 만들어준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첫 번째 선물을 주고받았던 어느 카페의 저녁이라거나 처음 입사시험의 최종면접에 올랐던 날의 마지막 준비시간 몇 분을 회상해보면 동작 하나, 분위기 한 자락까지 생각나면서 그 시간이 잠시 길게 느껴졌다는 생각이 든다. 생생한 기억은 그 시간이 분명히 길었던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즐거운 기억만 생생한 것은 아니어서 슬프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생생함이 유지되는 한 그 시간은 남달리 느리고 아프게 지나간다.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모자란다고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문제일 수도 있다. 시간과 분주함은 대개 반비례한다. 어르신들은 ‘나이가 들면 시간이 바람처럼 지나간다.’고 말하지만 요즘은 어린이들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산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부터 학교 시험에 대비하러 학원에 다니고 그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시험을 본다. 시험을 위한 시험의 시험대에 오르는 사이에 친구와 다정한 대화를 나눌 시간, 엄마 아빠와 눈을 마주 보고 나누는 맛있고 따뜻한 밥을 먹을 시간, 동생과 나란히 앉아 마당에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볼 시간도 구간 삭제되어 버린다. 누구에게나 이번 봄은 한번뿐이지만 다섯 살의 봄, 열 다섯 살의 봄, 스물 다섯의 봄이 얼마나 특별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시기인지를 생각하면 어린 시절을 허겁지겁 보내야 하는 이 시대의 속도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를 뒤 쫓아와 다그치는 ‘정해진 시간’을 되돌려 보내고 싶다. 여기서 조금만 더 머무르겠다고 말하며. 시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괜찮다. 나를 좀 더 낭비하고 더 값진 것을 얻어가라’는 대답을 들었으면 좋겠다.

 

시간상자


데이비드 위즈너의 『시간상자』는 책을 읽는동안 시간을 잠시 잊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이 책에는 글자가 없다. 하지만 책 속 한 장면 한 장면을 따라 가는 동안 우리는 객관적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지금 내가 바라보는 장면의 시간 속에 깃든 수많은 이야기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서게 된다. 바닷가에서 놀다가 파도에 휩쓸려 온 바닷가재와 게 한 마리를 발견한 소년은 그들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눈 속에 담긴 저 바다 깊은 곳의 어떤 세상을 상상한다. 어느 날 물놀이 중에 파도에 휩쓸렸다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자신의 손 안에 어디서 떠밀려 왔는지 알 수 없는 작은 수중 카메라가 놓여 있었다. 소년은 이 수중 카메라안의 사진을 인화해보고서 깜짝 놀라게 된다. 오랜 세월 파도를 타고 여행했던 이 카메라는 바다 깊은 곳에 살고 있는 많은 생물들의 시간을 기록해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년을 산다는 바다거북의 등딱지에 집을 짓고 사는 수많은 소라들의 시간, 고래와 대화를 나누는 불가사리의 시간, 언젠가 살짝 바다 깊은 곳을 들렀다 간 외계인들의 시간, 그리고 머나먼 동쪽 나라, 남쪽 바닷가에 사는 또래 친구, 이름 모를 아저씨의 낯선 시간까지 그 카메라는 헤아릴 수 없는 존재들의 시간 여러 겹을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었다.


카메라 안에는 그들의 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어린 시절 시간들도 담겨 있었다. 이 수중카메라를 만났던 존재들은 누구나 그 전에 만난 사람들의 사진을 들고 자신의 모습을 셀프 카메라로 찍어 남기고 있다. 소년도 바로 직전의 장면을 인화해 들고 자기 얼굴을 찍은 다음 카메라를 바다에 던져 넣는다. 이 비밀의 시간 상자, 카메라는 지금쯤 어느 대륙, 또는 어느 섬을 떠돌고 있을까.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남극을 거쳐, 파도를 타고 어느 따뜻한 섬나라에   사는 곱슬머리 소녀가 시간 상자를 줍는 모습이 나온다. 이제 시간상자는 그 소녀의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할 것이다.

 

시간상자


우리들에게는 저마다 시간상자가 있다. 그 각자의 시간상자는 ‘공통시간표’ 또는 ‘시테크 다이어리’로 획일화 할 수 없는 각별한 질문과 추억으로 가득 할 것이다. 작가인 데이비드 위즈너는 아마도 우리에게 ‘당신의 시간상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오늘도 시간상자에 꼭 담아두고 싶은 소중한 몇 분 또는 몇 초가 우리를 기다린다. 시간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는 건 아마도 그 때의 반짝임을 놓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아마도 분명히 ‘시간이 아름답게 길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같이 보면 좋은 책


신기한시간표

신기한 시간표

 



오카다 준 글/윤정주 그림/박종진 역 | 보림

날마다 시간표에 따라 똑같은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던 아이들에게 어느 날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이른 아침에 시작된 수업은 한밤중까지, 모두 6교시에 걸쳐 일상과 다른 놀라운 사건과 함께 찾아온다. ‘바쁘기만 하고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지루한 날들뿐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서 제각기 다르고 풍요로운 환상의 시간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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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은 (동화작가)

김지은. 동화작가, 아동문학 평론가. 어린이 철학 교육을 공부했다. 『달려라, 그림책 버스』,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을 함께 썼고 EBS '라디오멘토 부모'에서 '꿈꾸는 도서관'을 진행했으며, 서울시립대, 한신대, 서울예대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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