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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화에서 그려진 사이코패스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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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진짜 사이코패스의 해악을 느끼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했을 때다. 주말 연속극에서 자신의 뒤틀린 사랑을 위해 모든 이들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인물도 역시 사이코패스 아닌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태연하게 타인을 해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그들에게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범죄만이 아니라 그들의 악의에서.

이제는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일상용어가 되었다.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흔히 사이코패스라는 말을 붙인다. 사이코패스는 자기중심, 자기도취적이고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죄책감이 없는 이를 말하니까. 하지만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등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가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지 전문 용어가 아니라고도 한다. 애매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사이코패스는 너무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연쇄 살인자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에서 사이코패스는 당연한 것이고,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다양한 유형이 나오고 있다. 사이코패스 히어로까지 가능해졌으니까.

음흉하게-꿈꾸는-덱스터


일단 사이코패스라는 용어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살펴보자. 19세기 프랑스 정신과 의사 필리프 피넬이 사이코패시 증상에 대해, 1920년대 독일의 심리학자 슈나이더가 사이코패스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만 ‘한 세기 전만 해도 사이코패스는 어근의 의미 중 하나인 ‘정신질환’을 뜻하는 말로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2차 대전을 즈음해서는 용어의 사용양상이 변했다. 속임수를 써서 남을 ‘등쳐먹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신뢰할 수 없으며 자신이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무례하고 때로 폭력적인 행동에 전혀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가 되었다.‘(<범죄의 해부학>, 마이클 스폰) 이후 사이코패스의 정의는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와 동료들이 사이코패스 진단법을 개발하고, <진단명:사이코패스>라는 책을 내면서 구체화되었다.

 

보통 사이코패스의 특징으로 ‘놀라운 언변과 외적 매력, 과장하는 버릇, 남을 속이거나 조종하려는 태도, 병적인 거짓말 습관,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의 부재, 타인에 대한 냉담함, 공감 능력 부족,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 등’(<범죄의 해부학>)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 말은 사이코패스가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성공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특징을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범죄심리학자 니시무라 유키는 사이코패스를 일컬어 ‘정장차림의 뱀’이라고 했고, 로버트 헤어 역시 화이트칼라에게서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많이 발견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아메리칸 사이코』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모든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며 합리화하고 실행에 옮기는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의 극단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아메리칸 사이코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 포스터


그렇다면 사이코패스 성향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이유 역시 분분하다. 사이코패스로 보이는 살인자들은 전두엽이 비활성화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선천적일까, 후천적일까? 만약 선천적인 이유로 사이코패스가 생겨난다면, 일종의 우생학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한때는 두개골의 모양으로 범죄자를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던 것처럼 미리 사이코패스를 발견하고 격리할 수도 있다. SF에서 흔히 나오는 설정 중 하나가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서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거나 범죄자로 낙인찍어 격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후천적인 이유로, 즉 유년기의 극단적인 폭력이나 사고 등으로 공감 능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존재한다. 사이코패스가 생기는 이유를 무엇으로 보는가, 에 따라 어떻게 그들을 대하고 교화할 것인가, 도 달라져야 한다.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로 시작하여 후속편이 이어지고, 드라마 <덱스터>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던 제프 린제이의 소설에서 덱스터는 ‘사이코패스’로 나온다. 덱스터는 유아였을 때,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현장에 며칠간 방치된다. 그 충격으로 ‘감정’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경찰이었던 양아버지는 덱스터의 정신상태가 남다르다는 것을 일찍 깨닫고 교화 방법을 만들어낸다. 덱스터의 내면에 있는 ‘검은 승객’의 존재를 인정하고, 세상의 악인들을 살해하여 욕망을 충족시키게 한 것이다. 덱스터는 아버지가 만들어낸 코드를 철저하게 지키면서 경찰의 혈흔분석가로 지내고, 밤에는 살인자를 사냥하는 살인자가 된다. 덱스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살인자를 죽이면서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일상에서 중요한 것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적어도 ‘이해’를 하기 위해 덱스터는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한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감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덱스터는 사이코패스 캐릭터 중에서 진일보한 존재인 것이 분명하다.

 

양들의 침묵

영화 <양들의 침묵> 포스터


로버트 해리스의 『레드 드래곤』『양들의 침묵』에서 만난 한니발 렉터는 아마도 소설과 영화에서 만난 최강의 사이코패스일 것이다. 외과 의사이며 정신과 의사인 한니발 렉터는 해박한 지식과 수준 높은 교양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지성인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는다. 왜인지는, 한니발도 잘 모른다. 최근에 드라마로 나오는 <한니발>에서는 이 점을 파고든다. 한니발은 대체 어떤 인간인가. 어떤 점에서 본다면 한니발도 보통의 인간과 다름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으면서 행복함을 느끼는데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 한니발은 다른 살인자들을 만나고, 그들이 무엇을 원했고 발견했는지를 지켜본다. 욕망을 인정하지만 결코 휘둘리지 않는 한니발은 타인을 공감하지 못하지만 존중하고 예의를 지킨다는 점에서 덱스터와 비슷하다. 윤리 의식은 전혀 다르지만, 덱스터에게는 코드를 만들어준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고 덱스터는 생각하지만, 한니발에게는 모든 도덕과 질서가 단지 위장일 뿐이다. 한니발은 무엇이든, 어떤 끔찍하고 추악한 일이라고,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처음 사이코패스에 대해 쓴 소설로는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을 든다. 자살 사건을 조사하던 보험조사관은 ‘마음이 없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 흔히 생각하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은 물론 타인에 대한 마음이 전혀 없는 존재. 작품을 통해 기시 유스케는 사이코패스가 ‘다른 종’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인간과 전혀 다른 사고방식, 마음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 그것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면서, 인간을 자신의 먹이로 삼는 포식자와도 같다. 흔히 뱀파이어나 악마로 그려지기도 하는 존재. 정체를 숨기면서 인간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온 존재가 있다면, 사이코패스도 그렇지 않을까.


기시 유스케가 다시 한 번 사이코패스에 대해 쓴 『악의 교전』에서는 교사가 된 사이코패스가 나온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왕국을 만드는 것이다. 호감 가는 외모와 행동을 하며 대부분의 선생과 학생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위태로운 순간을 맞이하자 그는 간단한 결정을 한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위험요소를 제거한다. 시체를 숨기는 제일 좋은 방법은 전쟁터의 시체들 틈에 숨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하나의 살인을 숨기기 위해 대량학살을 한다. 그러면 동기가 숨겨질 테니까. 『악의 교전』은 사이코패스가 왜 위험한 존재인지를 말해준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단순한 이익을 위해서 타인을 궁지에, 지옥으로 몰아넣는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는 말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검은 집』의 문제의식에는 가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범죄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사이코패스를 다루는 작품은 너무나도 많다. 특히 연쇄 살인의 경우에는 거의 모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진짜 사이코패스의 해악을 느끼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했을 때다. 주말 연속극에서 자신의 뒤틀린 사랑을 위해 모든 이들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인물도 역시 사이코패스 아닌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태연하게 타인을 해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그들에게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범죄만이 아니라 그들의 악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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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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